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72)
외전 9화
“…….”
“이건 비밀인데, 제가 모아 놓은 비상금이 좀 있거든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 지쳐서 왕 자리를 내려놓고 싶으면, 음. 기분이다! 제가 먹여 살려 드릴게요.”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한 얼굴을 한 그에게 요이델이 눈을 찡긋했다.
“좋죠? 너무 믿음직스럽고, 그렇죠?”
쾌활한 요이델의 답과 달리 율리시스는 굳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만 봤다.
회전목마의 움직임이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보였다.
“율리시스 님? 율리시스…… 꺅!”
그가 요이델을 덥석 끌어안았다.
강약 조절조차 없는 우악스러운 힘이었다.
절박할 정도의 뜨거운 체온이 요이델의 어깨 너머에 묻은 고개와 온몸에서 느껴졌다.
무서울 만큼 유일한 감정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제가 할 말입니다.”
짐승같이 목을 긁는 낮은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만일 제가 그대를 지나치게 사랑하여 힘들게 하거든, 반드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네?”
“제가 실수하지 않도록.”
율리시스가 천천히 힘을 풀었다.
“그대를 좋아할수록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도 그대를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음, 가끔 보면 율리시스 님은 저를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요. 왜 일어날 리 없는 가정을 할까요?”
요이델이 가볍게 핀잔주듯 율리시스의 얼굴을 살그머니 쓸었다.
“저는 언제나 여기 있는데.”
요이델이 속상한 듯 약하게 울상지었다.
“전에는 말도 안 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 미안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꼭, 다 말해 줄게요.”
단순히 그래서만이 아니었다. 그가 그녀를 얼마나 지독하게 독점하고 싶은지 안다면 지금처럼 있진 못하겠지.
율리시스는 애끓는 속을 잠재우며 요이델을 응시했다.
“왜요? 뭐 묻었나요?”
“제 곁에 있어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요.”
“앞으로도 저를 가장 아껴 주셔야 합니다.”
“네? 당연하죠.”
“확언을 해 주십시오.”
그의 투정에 요이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겐 율리시스 님이 제일일 거예요. 가장 아끼고 사랑해요. 절대 변하지 않아요.”
“…….”
“정말 귀엽다니까요. 그게 듣고 싶었어요? 언제든 물어봐요, 계속 말해 줄 수 있으니까요.”
요이델이 푸훗 웃다가 이마를 툭, 갖다 댔다.
“율리시스 님은 가끔 눈빛이 독특할 때가 있어요.”
“…….”
“불안한 상상을 할 때 그런 거죠?”
“…….”
“만약에 제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면, 율리시스 님은 그 근방을 쑥대밭으로 만들 거잖아요?”
율리시스의 속내가 요이델에게 완벽하게 간파당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우린 같이 있어야 해요.”
“……좋아서 계시겠다는 말이 아닌 것으로 들립니다.”
“농담이에요, 농담. 율리시스 님이 어느 날 안 보이면 저도 화낼 거라고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가 잠시 멈췄던 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얼마나 화내 주실 겁니까.”
“음…….”
“아주 많이 화내시면 좋을 듯한데.”
“많이요? 어음, 음……. 아! 그럼 찾아서 막 방에 막 꽁꽁 가둬 놓을까요?”
요이델은 마치 공식의 답을 찾은 듯 웃었다. 그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밝은 대답을 보며 쓰린 속을 달랬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이델의 귓가를 만지작거리던 율리시스가 그녀의 목뒤를 잡고 깊게 입 맞췄다.
멀게 들리는 놀이공원의 소음 속에서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파앗!
“어?”
그 순간 잠들었던 마리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퍼졌다.
“설마 이 기운은……. 주신의 힘인가요?”
“우웅.”
곤히 자던 마리가 끔뻑끔뻑 눈떴다.
“하아암, 무슨 일 이써요?”
“아닙니다. 더 주무셔도 됩니다.”
율리시스가 두리번거리는 마리를 들어 안고 다독거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집으로 돌아가실까요.”
“벌써 가눈 거예요?”
“아마도 그대를 걱정하는 이들이 매우 많을 듯하니.”
“네에?”
“다른 이들에게 말없이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마리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우와아, 어떠케 한 거예요?”
율리시스의 이동 마법으로 순식간에 주위의 배경이 바뀌었다. 그들은 어느새 수녀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발을 떼지 못하고 주저했다.
“……저 들어가야 대요?”
풀 죽은 물음에 요이델이 무릎을 굽혔다.
“오늘 놀아 줘서 고마웠어, 마리. 너무너무 즐거웠어.”
“저도 재밌어써요!”
“…….”
“그럼 이제 요정님들도 가는 거예요?”
밤처럼 윤기 나는 암갈색 눈동자가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희는 그대가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을 겁니다.”
“그, 그럼 저 먼저 걸어가야 대요?”
아이는 걸음을 조금 떼었다가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가께요?”
“앞을 잘 보고 가셔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 아라요. 진짜 가께요?”
“아! 마리, 잠깐만!”
요이델이 한달음에 다가가 작은 큐브를 건네주었다.
“마법 주머니에 인형이랑 머리띠랑 잔뜩 넣어 놨으니까, 필요할 때 풀어 봐. 그리고 이건…….”
포슬포슬한 털복숭이 목도리가 마리의 목에 둘러졌다.
“내 선물이야. 눈이 잔뜩 내리는 추운 날에 나가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야.”
“아흐……. 눈 조아하는 거 어떻게 아라써요?”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는 얼굴을 푹 묻고 방긋 웃었다. 마리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이델을 꽉 껴안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던 율리시스의 얼굴이 차츰 굳었다. 요이델을 껴안은 마리의 몸이 덜덜 떨렸다.
“가기 시러요, 흐끅, 흑.”
“마리…….”
“꼭 가야대요?”
“미안해 마리. 같이 가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씩씩하니까 안, 안 우는데 흐아앙, 가기 시러요. 나도 데려가면 안 대요?”
훌쩍이던 울음이 점차 커졌다. 펑펑 우는 아이가 두 사람의 옷을 꽉 쥐었다.
“내년에도 와요? 둘 다, 후잉, 또 와 줄 거예요? 내일부터는 안 울게요. 그러니까 또 와 주면 안 대요? 아니면 지금 울어쓰니까 다음 크리쓰마쓰에는 안 올 거예요? 그럼 안 대는데…….”
마음이 아려서 요이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장 달래기 위해 또 오겠다고 말하는 게 최선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다.
“5천 밤쯤 자고 일어나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케 많이요?!”
율리시스가 마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약속을 하나 할까요.”
“요정님들이랑요?”
“반드시 다시 만나는 겁니다. 울지 않아도, 착한 아이로 살지 않아도 약속은 이행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율리시스가 아이의 손등에 빛으로 사슴과 산타 그림을 그려 주었다. 울던 마리가 신기한 듯 웃었다.
“우아, 산타 요정님은 그림 잘 그리는구나아아―”
“이 그림은 어디서 배웠어요?”
“사방에 온통 걸려 있어 모를 수 없더군요. 의미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습니다.”
꺄륵 웃던 마리가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다시 여기로 와 주 꺼예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요정님들이랑 헷갈리면 어떠캐요? 나중에 못 알아보면 슬플, 흑, 으앙.”
잠시 고민하던 율리시스가 마리를 응시했다.
“그렇다면 친구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아는 그대라면 그걸 무척 좋아하셨던 듯한데.”
“치, 칭구요?”
마리가 훌쩍거렸다.
“친구라는 말은 아라요. 하지만 아직 친구 없는걸요…….”
“여기 있지 않습니까.”
“어, 어른이고 요정님들인데 친구가 대도 괜차나요? 댈 수 이써요?”
“오늘 즐겁지 않으셨습니까?”
율리시스의 물음에 마리가 화들짝 놀랐다.
“재밌어써요! 너무너무요!”
“재미있게 놀았으니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 불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재미를 위하여 협력하는 존재들 아닙니까.”
“율리시스 님,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요이델이 율리시스식 설명에 머리를 짚었다.
“그러면…… 요정님들이랑 친구인 거예요?”
“아주 특별하시지요.”
“당연하지, 우리는 마리랑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마리 생각은 어때?”
“좋아요!”
아이가 활짝 웃으며 폴짝 뛰었다.
“근데 이짜나요, 친구는 좋은 거예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추억이 많아질 거야.”
“그쿠나아……. 친구, 좋은 거구나아.”
곱씹던 마리가 문득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요정님들은 바쁘지요? 그래서 나중에 만나는 거 마쬬?”
“응?”
“책에서 봐써요. 요정님들은 나쁜 요정을 피해서 요정 나라에 숨어 살아서, 사람들한테 들키면 안 댄다구요.”
마리가 히힛 웃었다.
“요정님들 만난 거 아무한테도 자랑 안 할 거예요. 비밀로 하께요.”
“영민하시군요. 요정들은 많은 사람에게 정체를 들키면 1년 정도 굶는 벌을 받습니다.”
“헙! 안 대요. 배고프면 힘드러요. 꼭! 꼭꼭! 약속 지키께요.”
“쉿.”
“쉬잇!”
율리시스가 입을 다무는 시늉을 하자 마리도 똑같이 따라 했다.
“이제 좋은 꿈을 꾸게 되실 겁니다.”
“잘 자요, 요정님들.”
율리시스를 꼬옥 안아 주었던 마리가 다시 요이델도 꼬옥 번갈아 안아 주었다.
“그런데 이짜나요, 요정님들은 이름이 모예요?”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마리 기억 잘해요!”
“제 이름은 율리시스입니다.”
“율……. 아! 다른 나라 요정님이여꾸나. 누돌프 요정님은요?”
“실은, 나도 마리야.”
마리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우리 이름이 똑가타요?”
“신기하지?”
방긋 웃던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비밀인데요, 누돌프 요정님을 쪼끔 더 조아해요.”
“…….”
“산타 요정님이 슬플 테니까 절대 말 안 하는 거예요? 아라쬬?”
수줍게 웃은 마리가 크게 하품하며 졸린 눈을 했다.
“또 만나야 대요…….”
스르륵.
요이델의 품에 툭 고개가 떨어졌다. 아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금방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율리시스는 잠든 마리를 안아 들었다.
“들렸나요?”
“못 들은 척하겠습니다.”
“섭섭해 보여요.”
쿡쿡 웃은 요이델을 보며 율리시스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저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였으나, 다만 꽤 쓸 만한 선물은 하나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율리시스가 마리의 이마를 짚고 작은 마법을 걸었다.
반짝이는 빛이 빙글빙글 돌더니 머리로 쏙 들어가 온몸에 퍼졌다.
“이게 무슨 마법이에요?”
“가지고 계시던 힘의 매듭을 끊은 것뿐입니다.”
“끊어요?”
율리시스가 수녀원 전체에 마법을 걸었다. 마리를 찾던 사람들이 마법에 걸린 듯 하나둘씩 자러 들어갔다.
두 사람은 마리가 침대 위에서 안전하게 잠든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금술을 튕겨 낸 영향인지 그대의 힘이 봉인되듯 결박되어 있더군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반사 작용이었을 겁니다.”
“아, 그런…….”
“이제 사고와 말, 타고난 능력 모두 제자리를 찾아 적응하기 시작할 겁니다.”
요이델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율리시스의 미소가 상냥하고 짓궂었다.
“말은 거창하나, 실은 요이델 님이 지니고 있던 힘을 개방한 것뿐입니다.”
“…….”
“당신이 제게 처음 오실 때 힘드시지 않도록.”
“이렇게 과거를 많이 바꿔도 되는 걸까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저에게는 이것이 처음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던 흐름처럼 느껴집니다.”
혼란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알 수 없이 포근한 밤이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요이델 님.”
미소 가득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몸이 점점 흐려졌다. 여기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저희의 시간으로 가서 행복해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