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휘익―
구릿빛 피부를 가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소년이 휘파람을 불었다.
“쟤가 걔지? 성국 최대의 골칫덩어리였던 요이델. 근데 의외네, 봤어?”
보랏빛 눈을 흥미롭게 굴리던 그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요이델이라는 이름은 아예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그들조차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듣기로는 성황을 그렇게 추종했다는데, 거의 반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다. 성황이 그깟 조무래기의 위협 따위에 신경을 쓸 것 같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도 그랬고.
외형이 뛰어나고 성품도 좋은 성황을 남몰래 흠모하는 신관들은 많았다. 대놓고는 더 많았고. 요이델도 개중 하나였으나 성격이 더 악독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게 악랄하기로 소문난 신관의 모습이라고? 다들 눈이 삔 거 아니야?”
“…….”
“야, 라이오스. 너도 봤잖아. 어? 세상에 못된 놈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쟤는 악의도 없어, 얼굴에.”
구릿빛 피부의 소년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털며 흥분으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심심했던 차에 발견한 재미있는 인간이었다.
성황이 최근 재밌는 제안을 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더 흥미로운 일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단어는 더욱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라. 그리고 무례한 휘파람 소리도 자중하도록 해.”
잠자코 듣던 하얀 피부의 소년이 시선을 들었다.
하얀 피부와 구릿빛 피부, 금발과 흑발은 각각 선명한 대조를 이뤘으나 눈빛은 비슷했다.
그들의 눈은 흥미로움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티를 내느냐 아직 지켜보느냐의 차이일 뿐.
“이건 내 버릇이거든. 목소리 크기는 안 고쳐져. 그보다 방금 그거 다시 보고 싶다.”
구릿빛 피부의 소년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려 방금 전에 본 요이델의 모습을 재연했다.
“제 바닥은 제국의 하늘보다 높으니까요.”
소년은 자신의 몸을 비비 꼬며 감탄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는 금발 머리 소년의 곁에 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년은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요새 바뀌었다는 소문이 진짜인가 봐. 악랄했다는 소문이랑 너무 다르잖아!”
하얀 갑옷에 거대한 검을 두른 두 소년은 흥미로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동의한다.”
“골칫덩어리는 무슨, 역시 세간의 말은 믿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나 쟤 좋아. 방금 반했나 봐.”
그 가벼운 말에 금발 소년은 힐난의 눈길을 보냈다.
“아, 오해하지 마. 그런 뜻으로 반했다는 게 아니라고. 그 눈빛 좀 거둬 줘라.”
“…….”
“그건 그렇고 페어라고 했던 거 말이야, 진짤까?”
장난스러운 물음에 금발 소년은 책에서 시선을 떼고 글라스를 벗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 무심한 눈을 가진 그 소년은, 장난꾸러기 소년과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
“당연하지, 나도 이 귀로 똑똑히 들었는걸. 페어라고 했어, 그것도 성하가 직접.”
“그건 성하께서도 함부로 하실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치? 페어는 그거잖아.”
“반려.”
두 소년은 동시에 말했다. 둘은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사라진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재미있겠어, 앞으로.”
“요이델이라…….”
소년들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가 더 있었으니.
“바, 바바바, 반, 반려!”
투두둑.
사랑스러운 수제자가 되어 가는 요이델에게 책을 선물하러 온 하일 역시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점이다.
━━━━⊱⋆⊰━━━━
‘원로로서 이 사랑을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성하의 오랜 신하로서 반려를 찾으신 것을 축복해야 하는가.’
매주 월요일 아침, 대신전 대회의장.
모두가 열띤 토론을 하는 가운데, 하일은 축 처진 어깨로 꽃잎 점을 쳤다.
‘좋아한다, 안 한다. 성하께서 그 소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안 한다, 좋아한…… 끄악!’
탁!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하일은 경기를 일으키며 꽃송이를 패대기쳤다.
“으아악!”
“우선 라크라스 산맥의 광물 유통에 대하여…… 하일 님.”
갑작스러운 비명에 모두의 눈이 모였다. 의장이 의문을 제기하자 하일이 답했다.
“미안하네. 헛것을 봐서 그만.”
“자중하십시오.”
일을 할 때만큼은 다른 짓을 용납하지 않는 율리시스도 낯빛을 굳혔다.
하일은 큼, 헛기침을 한 뒤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저게 뭔가.
‘성하의 몸에 왜 손톱자국이 생겼는가! 멍은 또 뭐고?’
요즘 들어 율리시스의 상태가 이상하긴 했다.
게다가 그 분홍 머리 소년을 부쩍 신경 쓴다 했더니. 눈을 뗀 사이에 이 사달이 나다니.
‘그 대단했던 파장이 이해가 되는군. 요이델 신관은 신수님을 깨웠지. 뛰어난 두 사람이 맺어졌기 때문인 게야.’
둘의 대화를 엿들은 이후 하일의 귀에 회의 소리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요이델 신관의 말이 맞군요. 설마 그 크리온 광물이 새로운 빛의 광물로 등극할 줄이야…… 놀랍습니다. 그런 쓰임새가 있었다니요.”
회의장 안의 모든 신관이 감탄했다.
다듬기 위해 건드리기만 해도 으스러지는 무른 돌이라 햇볕을 쐬게 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만 자라는 그 광물이 빛을 머금으면 등이 될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하겠는가?
“밤에 등불을 켜고 유지하기 위해선 발화제가 되는 대량의 연료가 필요했는데, 이제 무리하게 브리칼트에서 들여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걸 처음 알아낸 분이 요이델 신관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우리 모두가 보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악독한 사형수였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착하게 행동하더니 급기야 신수를 깨우기까지. 뿐만인가?
“라크라스의 괴수에게 이름까지 붙였다던데요.”
“베리라고 하지요. 신수 관리자를 뽑는 시험에서 그 괴수를 길들여 내놓았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저는 보고도 믿기지 않더군요.”
그 커다랗고 머리 셋 달린 짐승에게 베리라는 망측하고 귀여운 이름을 달다니.
“대단한 건지, 용감한 건지.”
“둘 다겠지요. 게다가 신수님의 관리자 아니십니까.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라도 세상을 가진 것 같을 겁니다. 하마터면 그런 분을 몰라보고 보낼 뻔했군요.”
그 모습을 보며 하일은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세상을 가진 걸 수도 있다네. 성하를 가졌으니.’
그러나 뒤집어지는 그의 속과 달리, 대다수의 신관들은 연달아 터진 좋은 소식에 허허 웃기 바빴다.
“브리칼트 제국이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겠군요, 푸하하!”
“체통을 지키세요, 신관.”
그러나 자중시키는 신관의 안면마저도 기쁨으로 씰룩댔다.
“요보힐데 공작가가 요이델 신관을 찾아와 소동을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대귀족의 추방령은 이례적인 사안이라 벌써 성국 밖의 나라도 들썩이고 있다지요.”
“그들의 성정은 대륙적으로 유명하니 결국……. 쯧, 듣자 하니 무리한 입국 시도로 규율을 어기고, 그 과정에서 난동을 부려 퇴출당했다던데 이런 망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외적으로 요보힐데 공작가의 추방은 입국 심사와 관련된 패악 때문으로 알려졌다. 괜히 요이델의 이름이 엮여서 좋을 게 없었으므로.
“성하께서 막지 않으셨다면 어떤 사달이 일어났을지요.”
“그렇습니다. 직접 그들의 소란을 듣고 경비병들의 곤란을 덜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성하의 안배가 온 나라 안에 닿은 듯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율리시스는 평온하게 앉아 있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혹시 그의 뒤에 천장화가 펼쳐지고 있던가?
말없이 부드럽게 휘어진 눈을 보며 모든 신관이 그의 분위기에 경탄했다.
하지만 사실 이 웃음은, 귀찮으니 더 묻지 말라는 일축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의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율리시스는 피곤했다. 누구도 손들지 않길 바랐으나, 그때 하일이 번쩍 손을 들었다.
율리시스가 피로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피했으나, 완강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발언을 허락해 줬다.
“성하, 이번에야말로 혼인을……!”
“안 합니다.”
“그렇다면 후사는……!”
“안 태어납니다.”
율리시스는 웃으며 충신의 간청을 차단했다.
저놈의 결혼 타령.
자신을 종마 취급하는 것을 몇 번을 들어 줘야 하는 건지.
“정말 안 하실 겁니까!”
“저는 성국과 결혼했습니다.”
그 말에 하일이 비명을 지르려다가 소음을 삼키고 굳어 버렸다. 어쩐지 할 말이 많은 눈이었다.
“……한데 하일 원로신관님께서는 신수님이 부화하면, 그 주역을 안고 대신전을 횡단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언제 하실 예정이십니까.”
종용에 짜증이 솟구친 율리시스가 부드럽게 그를 비꼬았다.
단순한 심술이었으나 하일은 그 물음을 듣고 알 수 없는 설움에 눈물을 삼켰다.
‘연인을 그리 띄워 주고 싶으십니까, 성하! 아주 이마에 교제한다고 박고 다니시지요!’
그의 오해는 날로 깊어졌다.
━━━━⊱⋆⊰━━━━
회의를 끝낸 율리시스는 성궁에 돌아와 앉았다.
“또 시작이군.”
원래도 원로 3인방은 그의 결혼에 진심이었으나, 최근 들어 하일은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마치 율리시스가 다른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있기라도 한 듯 다급히 군다.
온 대륙 영애들의 초상화를 싹 모아 펼쳐 놓지 않나. 이상형을 알려 달라며 닦달하지 않나.
율리시스는 이어지는 두통에 눈을 감았다.
“성황으로서 성국을 생각하라니, 무슨 소리인지.”
자신의 피가 특별한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신족의 마지막 핏줄,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체는 글쎄.
목적을 위해 이뤄진 결혼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 무의미함은 율리시스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좋은 부모는커녕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깊이, 아주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눈치를 보던 요이델이 슬며시 질문했다.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네.”
“저, 정말요?”
요이델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눈빛에 떨던 요이델이 용기를 쥐어 짜냈다.
“맞아요. 제가 성하의 집무실에 있는 민트 캔디 하나 먹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무슨.”
“역시 다 아시는군요. 죄송해요, 사실 두 개 먹었어요.”
율리시스는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설마 자신이 그깟 사탕 몇 개쯤 주워 먹었다고 바라본 줄 아는 건가? 이 내가? 그 생각이 더 괘씸했다.
“예. 반드시 사 놓으십시오. 저건 허브향 캔디가 아니라, 체력 회복에 탁월한 요정의 결정이지만 말입니다.”
그는 소매 사이로 드러난 요이델의 팔을 째려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역시. 범인은 당신이었습니다. 제가 어딘가 부딪혔나 했는데.”
팔에는 푸른 멍과 할퀸 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 하일과 연구를 위해 라크라스 산맥을 올라 노동을 했던 흔적이겠지.
율리시스는 그 모습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앗! 죄송해요, 상처가 난 줄 몰랐어요.”
“자의와 타의로 위협을 겪으시니, 당신께 사람을 붙여야겠습니다.”
“사람이라면…….”
율리시스는 말없이 문가를 바라보았다.
“들어오도록.”
끼이익―
율리시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나타난 건 두 명의 소년이었다. 금발과 흑발. 아주 다른 느낌의 두 사람.
“성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