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대신전에는 신관뿐만 아니라 성기사도 존재했다.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북관은 기사와 전투 병력을 담당한다.
활동 반경이 달라서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마주칠 일이 없어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엄청 고위 기사단의 복장이야!’
그것도 무려 제1 기사단.
성황의 근위대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정예 부대였다.
그런데 저들이 왜?! 친하게 지내라고 소개시켜 주는 건 아닐 텐데.
“앞으로 요이델 님의 호위를 맡아 주실 분들입니다.”
“네에?!”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누가?! 내가 저들의 호위를 받는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성하의 호위기사면 몰라도 한낱 신관에게? 너무나 과한 처사였다.
‘신종 괴롭힘인가 봐!’
요이델은 옷자락을 꼭 잡고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율리시스는 담담히 말했다.
“당신의 지위가 승격된 이후 안위와 관련된 위험이 발생했습니다. 호위를 갖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 하지만…….”
요이델이 망설이자 율리시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테오 신관과 공작 부부, 다음은 누구일지 모릅니다. 당신이 다치면 제 몸도 다치고, 제가 다칠 일은 없는데 그대만 다칠 일이 많군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니까.
실제로 요이델은 그와 페어가 된 이후 몇 번을 다쳐 왔다.
요이델만의 문제가 아닌, 성황인 그와도 연관된 문제였다.
그를 다치게 했다고 생각하니 조금 시무룩해졌다.
율리시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요이델을 두 기사의 앞에 내세웠다.
“이쪽 검은 머리 성기사는 휘스테론 님.”
“반가워, 요이델! 아니, 요이델 님! 맞지? 우리 동갑이니까 친구 하자!”
검은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 날카로운 흑표범 같은 소년은 생김새와 달리 무척 방정맞았다.
서글서글한 소년은 굳어 있는 요이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나 요이델의 귀에 들어온 건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친구? 나보고 친구 하자고 그랬어.’
동공이 커지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친구 하자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본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냐면 요이델은 사람인 친구가 없었으니까.
예전에는 요이델이 세상을 왕따시키듯 홀로 고립되었다면, 이제는 누구도 친구로서 다가오지 않았다. 갑자기 지위가 올라 동경만 받을 뿐.
“자중하십시오, 휘스테론 님.”
그러나 율리시스가 그들의 손을 딱 끊어 버렸다.
“에이, 성하 너무하다. 치사하기는. 악수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성하만 잡아? 욕심쟁이네.”
“휘스테론.”
금발 소년이 주의를 주었지만 휘스테론은 능청맞게 넘어갔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랐다.
‘성하의 말을 넘기다니 간이 두 개인가 봐!’
율리시스는 익숙한 듯 흑발 소년을 가볍게 무시한 후 시선을 옮겼다.
“이쪽은 라이오스 님.”
“처음 뵙겠습니다, 신관님.”
금발 소년은 절도가 몸에 밴 몸동작으로 차분히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
‘진중한 사람인가 봐. 두 사람 느낌이 엄청 반대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라이오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뭐 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그가 요이델의 손에 입을 맞췄다.
“으악! 뭐 하는 거예요!”
“기사 서약의 전통대로 합니다.”
옅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라이오스는 꼭 그림 속 천사 같았다.
하지만 성격도 천사만큼 엄한 것 같았다.
요이델은 파르르 떨며 손을 거둬들였다.
모습을 지켜보던 율리시스도 괜히 찝찝한 듯 자신의 손등을 문질렀다.
묘하게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신체만은 아니었다. 이 괜한 불길한 느낌은 무엇인지.
두 호위기사는 요이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마주 보았다.
‘친구를 원하긴 했지만 호위기사를 바라진 않았는데.’
물론 엄청 큰 검을 찬 사람도.
요이델은 괜히 둘의 대검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묘한 느낌에 심장이 쿵쿵 뛰어 왔다.
이건 불길함일까, 아니면 새로운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일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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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괜찮은 걸까!’
요이델은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신전을 걸었다.
“요이델, 걸음이 빨라! 우리가 부끄러워?”
“약 스무 걸음 앞에 부서진 타일 조각이 있습니다. 발이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신관님.”
“고, 고마워요.”
고마운데 부끄럽다. 요이델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다. 이건 벌일까, 상일까?
요이델의 뒤에서는 그녀의 짐을 빼앗다시피 해 대신 든 휘스테론과 라이오스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다.
“요이델 님은 엄청 특별 취급받는 것 같아.”
“그럴 만하시잖아.”
“그게 아니라, 나도 특별 취급해 드리고 싶은데 말도 걸 수가 없어서 섭섭해. 저 성기사들은 누구야?”
“문양을 봐. 제1 기사단이잖아! 호위기사로 발탁됐대.”
그녀의 귀에도 주위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친구가 생겼으면, 하고 바라긴 했지만 모두의 관심을 받았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없었다.
이건 너무 과하잖아.
‘혹시 성하의 새로운 괴롭힘일까?’
호위기사가 된 그들은 요이델의 모든 행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장실을 갈 때도, 심지어 잠자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임무 중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해, 요이델 님.’
그러면서 빤히 쳐다봤다.
밥을 먹을 때도 고기를 썰기 위해 나이프를 들면 휘릭 빼앗아 가 전부 먹기 좋게 썰어 주는 등, 너무 과했다.
그들은 밤이 늦어도 자신이 편안히 눈을 감는 걸 보고 난 뒤에야 돌아갔다.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바쁘니까.’
요이델은 호위기사들을 애써 모른 척하며 플로테스를 위한 연회 준비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수백 년이 지나 겨우 태어난 귀하디귀한 신수.
단순한 동물이 태어난 게 아닌, 성국의 영향력을 널리 떨칠 상징적 존재의 탄생인 것이다.
그러니 모든 나라에 소문이 날 정도로 거대한 연회를 열자는 게 대신전의 결정이었다.
“플로!”
플로테스의 방에 요이델이 들어왔는데도 신수는 반응이 없었다.
“꾸웅.”
“화났어, 플로? 미안해, 정말 미안. 연회 준비랑 산맥 쪽 일이 바빠져서 못 왔었어.”
“꾸우웅.”
플로테스는 화가 난 듯 등을 돌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짠! 플로가 좋아하는 하얀 박하 풀잎이야.”
그 목소리에 작은 등이 조금 움찔했지만, 의외로 결심은 단단했다.
눈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플로테스는 반대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 플로의 생일 연회가 열리는데, 어쩌지? 나는 플로랑 같이 갈 수 없겠네?”
요이델이 갈 수 없다는 말에 플로테스는 크게 동요해 꾸웅, 했다. 하지만 곧장 고개를 저었다.
하는 수 없지.
요이델은 무릎을 펴고 방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플로, 지금까지 고마웠어. 나는 갈게.”
플로테스는 움찔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삐졌구나. 하지만 가장 효과가 있어.
“이제 다신 못 보겠지만, 플로가 있어서 행복했어. 잘 지내. 안녕.”
“꾸우웅! 꿍! 꾸웅!”
타다다닥.
플로테스는 짧은 다리로 도도도 뛰어와 요이델의 품에 안겼다.
“꾸우!”
한 시간 뒤 요이델은 한참 투덜거리다 잠든 플로테스를 안고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이번 연회에 오르비스 상단의 주인도 온다고 쓰여 있었어.’
직업이 적힌 건 아니었지만, 요이델에겐 이름이 적힌 명단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이름이 눈에 박혔다.
그의 겉 신분은 다른 거였으나, 뒤로는 상단을 이룬다는 비밀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대대로 명망 높은 집안이라 가족들은 그가 상업에 뛰어드는 걸 반기지 않았고, 금융에 감이 있던 그는 자신의 재능을 숨겨야 했다.
‘광물의 유통을 이런 대상단이 맡아 주면 좋을 텐데.’
그는 상단을 일궈 크게 성공했다.
게다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유명해 요이델이 ‘당신의 비밀을 알아요.’ 하면서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성국도 타국과 무역을 하지만 현재는 조금 혼란이 있었다.
원래라면 게르암이 관리하는 영역이지만, 그와 관련된 인물은 전부 잘랐으니까.
아쉬움을 달랜 요이델은 거대한 연회장을 거닐며 플로테스가 다칠 수 있는 구조물과 동선 등을 꼼꼼하게 계산했다.
물론 그 뒤엔 호위기사 둘이 바짝 붙어 있었다.
‘아니야, 기사님들을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 미안하잖아. 게다가 나를 보호해 주려고 따라다니는 것뿐인걸.’
별안간 휘스테론이 무엇인가를 보고 소리쳤다.
“요이델! 이것 봐, 도마뱀이야! 신전 바닥에 이런 게 기어 다닌다.”
“꺄아악!”
“꾸웅!”
요이델이 크게 놀라 소리치자 플로테스도 같이 놀랐다.
“델델, 요이델! 개구리 완전 신기하지! 악!”
그때 라이오스가 휘스테론의 뒤통수를 퍽 때렸다.
“라이오스, 왜 머리를 때려! 아프다고!”
“한심하긴. 신관님이 놀라시는 게 보이지 않나.”
휘스테론은 꾸중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요이델, 크리온 광물의 쓰임새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하일 할아범도 놀라던데.”
“그건, 어,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봤어! 여러 가지를 엄청 봐서 나도 모르게 떠올렸나 봐.”
어쨌든 원작도 책은 책이니까. 요이델은 식은땀을 감추며 대답했다.
“흐음, 그래?”
휘스테론은 어쩐지 수상하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사실 크리온 광물은 내 고향에서는 많이 쓰이거든. 근데 그걸 제국 출신인 네가 알고 있어서 놀랐어.”
“고향?”
“응. 생명의 대륙, 메디아. 거기가 라이랑 내 고향이야. 말 안 했나?”
메디아는 세 개의 대륙 중 가장 비밀에 휩싸인 대륙이었다.
정령과 소환수, 마나와 생명력의 근원이자 모든 마법의 발상지.
아름다운 환상 속의 대륙, 메디아.
풍부한 자원과 믿기지 않는 금은보화를 보유한 강대한 대륙이기도 했다. 분쟁이 계속되는 성국과 제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국이고.
‘그런데 십여 년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문을 걸어 잠갔다고 했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