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원래 세 개의 대륙은 활발히 교류했으나, 약 십수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메디아는 모든 교역로를 폐쇄했다.
메디아는 성국처럼 하나의 대륙이 곧 나라였다.
수장 일가를 필두로 철저히 움직이는 메디아의 사람들.
메디아는 별개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성국이나 지상 대륙들에서 쓰는 공용어를 능숙히 사용했고 외형도 똑같았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색조 정도일까.
라이오스의 피부색은 요정의 핏줄인 양 유난히 하얬고, 휘스테론의 피부는 매우 드문 구릿빛이었다.
눈동자는 더 예뻤다.
라이오스의 눈은 파랗지만 자세히 보면 동공 주위에 금빛이 섞여 있었고 휘스테론은 보라색에 푸른색이 섞여 있어서 아주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한테 말해 줘도 되는 거야?”
요이델이 조심스레 물었다.
일방적 소통 정지 이후, 그들을 보는 눈은 곱지 않아졌다.
게다가 메디아 출신들은 외형이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 암암리에 노예로 비싼 값에 매매되기도 했다.
그런 일에는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브리칼트 제국이 으뜸이었다.
그 사실을 둘이 모르진 않을 텐데.
‘나는 어쨌든 브리칼트 제국 출신이니까.’
조심히 묻자 오히려 두 기사가 무슨 소리냐는 듯 웃었다.
“우리는 네 호위니까. 요이델도 우리에 대해 알아 둬야지! 그리고 요이델이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미 대신전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신관님.”
휘스테론은 재미있다는 듯 능청스레 웃었고, 라이오스는 묵묵히 긍정했다.
“뭐, 그래서 혹시 너도 메디아의 피가 섞였나 했지. 동물들이랑 친해지는 것도 그렇고 크리온 광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그런데 아닌가 보네.”
휘스테론은 웃다가 잠시 진지한 표정을 했다.
“그래도 우리 소문처럼 남한테 저주 거는 그런 능력 없으니까 안심해.”
대륙 봉쇄 이후, 메디아인은 특수한 능력을 쓰며 남에게 저주를 걸 수도 있다거나 무시무시한 병을 갖고 있는 야만인이라는 등의 괴소문들이 널리 퍼졌다.
물론 근거는 하나도 없었지만 애초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메디아인을 꺼리기 위해 만든 명분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교역이 중단된 데에 대한 분노랄까.
그 헛소문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메디아인에 대한 소문은 날로 나빠져 갔다.
그때 옆에서 같이 연회 준비를 하던 한 신관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메, 메디아인?”
그러자 그 옆의 신관도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메디아 출신이 성기사를…….”
휘스테론과 라이오스가 메디아인인 것을 알게 된 경우, 보통 반응은 두 가지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감탄하고 희귀 종자 취급하거나, 꺼리거나. 둘 다 최악이었다.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메디아 대륙을 나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감내해야 했던 반응이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요이델에겐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먼저 말했는데, 실수였나.
말이 없는 그녀를 바라보던 휘스테론은 괜히 머쓱해져서 밝게 웃었다.
“자! 요이델. 어서 점검 끝내자. 금방 밤 되겠다.”
그러나 요이델의 얼굴은 점차 굳어졌다. 무른 성격이긴 했지만, 별것 아닌 척하는 말 속에 숨은 뜻까지 모를 정도로 아둔하진 않았다.
요이델은 분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가 활짝 웃었다.
“멋있어!”
“……어?”
휘스테론은 물론 라이오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요이델만은 눈을 빛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럼 마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겠네?”
마법의 근원지인 메디아는, 요이델과 율리시스가 묶인 페어링을 가장 먼저 탄생시킨 대륙이었다.
메디아에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종족이 많았고, 자연히 종족의 혼혈이 많아 보통 수명이 길었다.
그러니 반려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즉, 그들의 관계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다는 것. 사실상 메디아 대륙의 기록이 유일한 단서였다.
요이델은 휘스테론의 손을 덥석 잡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생활의 편리에 쓰이는 건축 마법이나, 하수도 시설을 건설하는 마법, 직물에 마법을 깃들게 하는 방법 같은 것들은 모두 메디아에서 나온 거잖아. 영상을 담는 아티팩트도!”
“……으음, 그렇지?”
갑작스러운 요이델의 반응에 능청스러운 휘스테론조차 당황했다. 그러나 요이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메디아 대륙을 무시하는 바보는 이 대신전에 없을 거야. 그렇지?”
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아까 전 그들을 꺼렸던 이들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잠깐 굳어 충격으로 멍하니 있었다곤 하나,그들에게 머무는 싸늘함을 똑똑히 느꼈었다.
요이델은 더 잘 들으라는 듯 일부러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아까 싸늘한 말을 내뱉었던 두 신관이 몸을 움찔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신관들은 그들을 향해 혀를 차거나 요이델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내 근처에 있다면, 엄청난 바보들일 거야. 아니면 오랜 변비에 걸려서 기분을 주체 못 하는 사람이라든가.”
그 말에 뒤에 있던 신관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도 요이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네 말이 맞아, 요이델.”
그리고 둘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멍청이들이라니까.”
한 명은 쾌활하게, 한 명은 웃음을 꾹 참으며 미소를. 그러나 둘의 눈은 똑같이 기분 좋은 감정을 담고 요이델에게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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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요이델은 상점가로 나왔다.
‘플로의 선물을 사 줘야지.’
요이델에게는 넉넉한 돈이 있었다.
고위신관이 된 후 봉급이 천지 차이로 올랐고, 또 베리가 출입을 허락해 준 이후 사프란 꽃밭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그것에 대한 성과를 파격적으로 얹어 준 면도 있어서 주머니가 넉넉해졌다. 주머니가 아니라 전부 현금화한다면 방 안 가득 쌓아 놔야 할 만큼.
‘평생 먹고 살 수 있겠어요!’
요이델이 기뻐서 그렇게 말하자 율리시스는 의문스러운 눈을 했었다.
‘겨우 한 달 치밖에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했었지.
거기다가 혹시 다음 달 몫도 빨리 달라는 반어법이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성하의 돈 개념은 보통이랑은 다른가 봐.’
하긴, 아무리 오래 비워 놨다지만 로사리움도 성국의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런 걸 자신의 몫으로 턱 줬으니까 짐작 가능하다.
“플로에게는 목걸이가 좋을까?”
근방의 상점가를 돌아다니던 요이델은 창문을 빤히 보며 고민했다.
플로테스는 동물이지만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라 마땅한 선물을 고르기 어려웠다.
‘인간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서적 속 기록에 따르면 신수는 인간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수는 수명이 기니까,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요즘 요이델은 책 읽기에 빠져 있었다.
낡은 서적들은 부식이 되거나 옛날 말이 많아 읽기가 힘들었는데, 그때 얼기설기 묶인 낱장의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비교적 훨씬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
한 장도 빠질 것 없이 필체마저 지극한 정성과 애정이 들어간 세세한 자료였다. 겉에 그려진 그림은 어떻고. 웬만한 예술가의 천장화보다 뛰어났다.
그 자료를 만든 사람은 전대 신수 관리자라고 들었다.
‘그렇게 애정이 넘쳤는데, 왜 일부분을 뜯고 가 버렸을까?’
마치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그 기록들은 다른 서적들보다 훨씬 상세했지만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찢긴 종이를 다시 이어 붙인 흔적도 역력했다.
부식은 되지 않았지만 보존 상태가 고서보다도 별로인 것도 몇 개 있었다.
다른 서적 중 몇몇은 척 보기에도 언어가 달라 보여서 슥 보고 덮어 놓았다.
“아, 저거 괜찮을 것 같아.”
창가에 진열된 상품 중 반짝이는, 잘 제련된 원석이 있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간 상점은 조명이 은은하게 펼쳐져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했다.
‘플로테스는 요즘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니까. 저건 분명히 마음에 들어할 거야.’
태어났을 때보다 약간 자란 플로테스는 이제 취향을 구분할 줄 알았다.
반짝이는 걸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꺄르르 웃으며 요람의 이불 아래에 숨겨 두었으니까.
“앗.”
“어.”
그때 요이델과 동시에 물건을 잡은 사람이 있었다.
놀란 요이델이 고개를 돌리자 역시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건 딱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보석인데. 손님들의 안목이 높으셔서 딱 겹쳤군요.”
“전시된 것 하나밖에 없나요?”
“새로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기다리셔야 할 텐데…… 죄송합니다, 손님.”
가게 주인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보석 이름이 뭔가요?”
“아아, 네! 손님. 그건 클레티아 광물로 손님들처럼 안목이 높으신 분들이 자주 찾는 상품입니다. 보통은 목걸이나 귀걸이 등으로 가공해서 파는데, 가끔 원석을 찾는 분들도 계셔서 그렇게 들여놓아요.”
요이델은 그 원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건 중년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딱 플로테스의 마음에 들 것 같은데, 어쩌지?
소심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저는 재료를 사러 왔는데, 신관님께서는 어떤 일이십니까?”
“죄송하지만…… 곧 소중한 친구의 생일이 있어요. 치사하지만 제가 먼저…… 집은 것 같은데, 양보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부탁드려요.”
“아, 생일.”
간절하게 묻자 인상 좋은 수수한 분위기의 남자는 옅게 미소 지었다.
오른쪽 손의 검지와 중지만 살짝 휘어 있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굳은살, 외모와 달리 거칠고 갈라진 손이었다.
‘클레티아 광물은 반짝이고 물감의 흡착력을 좋게 해 주고 은은한 광을 만들어 내서 예술가들의 안료로 주로 쓰여.’
그의 직업은 화가인가 보다.
요이델이 진지한 얼굴로 골똘히 생각하자 남자는 결국 웃으며 물러섰다.
“소중한 친구분의 생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친구분의 생일 축하드립니다. 주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남자는 웃으면서 물러났다. 그때, 요이델은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국은 예술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고 그만큼 대우받았다. 거리에서 예술가를 찾는 일은 동전 줍기보다 흔했다.
“손님, 포장해 드릴까요?”
어쩐지 석연찮은 느낌에 그가 나간 창을 바라보았다.
가게의 주인은 어쨌든 물건이 팔린 기쁨에 흥얼거리며 예쁘게 포장을 해 주었다. 그리고 요이델의 작은 걱정을 짐작하고 상냥하게 웃었다.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돼요, 손님. 미켈레 님은 이미 많은 재료를 갖고 계셔서, 그리 급하시지 않을 거예요.”
“미켈레요?”
“네, 방금 나가신 분이요. 사야 가문의 사람이세요. 유명한 예술가시죠.”
아니다.
그는 오르비스 상단의 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