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잠시만요!”
요이델은 부리나케 쫓아가 미켈레를 붙잡았다.
“……아까 상점의 신관님?”
“네, 맞아요.”
“무슨 일로 급하게 오셨습니까?”
겨우 뛰어 따라잡았다. 요이델은 헉헉 차오르는 숨을 돌리며 그에게 상자를 건넸다.
“이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그것 때문에 심하게 뛰어오셨군요. 큰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신관님.”
겉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년의 남자였다.
사야 가문은 성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집안. 그들은 자존심이 고고해서 상인의 일은 꺼린다고 했다.
‘하지만 미켈레는 사업에 재능이 있고,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어.’
이번에 미켈레가 플로테스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화가로서도 뛰어난 그가 대신전의 제2 예배당에 천장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켈레의 실력이라면 고작 제2 예배당 정도를 허락할 리가 없어.’
그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미켈레의 그림은 색감이 따뜻하고 고풍스러운 데다가 화풍이 부드러워 상위 계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려면 한 나라의 국왕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 몸값은 알만하다.
‘상단의 일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테니 그림 의뢰는 자주 받을 수 없었겠지. 수요는 대단한 데에 비해 그의 작품 수가 적은 이유가 그거였어.’
그런 그가 제1 예배당이나, 성하가 쓰는 대예배당도 아닌 제2 예배당의 천장화를 흔쾌히 맡았다.
‘신앙심이 깊은가?’
자신도 일단 신관이면서 할 물음은 아니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딱히 성국의 의뢰만을, 그것도 작은 의뢰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저…… 왜 흔쾌히 양보해 주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요이델은 직접 묻기로 했다.
그러자 미켈레의 얼굴이 살짝 놀라움으로 물들다가 친절하게 웃었다.
“어린 신관님이시니, 나이 든 사람으로서 양보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드려요.”
“그 말씀을 위해 오셨습니까?”
“그건, 저기…….”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이델은 품에 안은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그래도 플로테스의 선물이다. 도로 줄 수는 없었다.
‘안료로 갈아서 섞어 쓰기 괜찮은 광물…… 그거라면, 혹시.’
아까 산 원석은 반짝거리는 재질을 갖고 있었다.
미켈레의 그림은 인물의 베일이나 하늘을 그릴 때 살짝 옆에서 보면 반짝거려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오르비스 상단 주인의 안목은 까다롭다.
‘본인이 안목이 좋으니까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반대로 말하면 다른 아첨 없이 물건만 괜찮다면 받아들인다는 뜻.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혹시 예술가이신가요?”
“아, 가게의 주인이 알려 드렸나 보군요.”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사람답게 개인정보에 신중을 기하는 듯했다.
상냥했지만 그의 신상에 대한 물음이 나오니 표정이 살짝 껄끄러워 보였다.
“아니에요, 손을 보고 혹시나 했어요. 그리고 손톱 아래에 낀 물감의 흔적은 잘 빠지지 않으니까요. 아마 방금 전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오신 게 아닐까 했어요.”
“이런, 제가 또 허술하게 나왔군요.”
미켈레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잘 입은 차림이었으나 사실 겉만 보기에는 그런 대단한 상단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뿌리 깊은 귀족 가문의 일원보다, 수수하고 평범한 사람 같아 보였으니까.
요이델은 그에게 가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양보해 주신 선물은 감사해요. 그래서 저도 보답이라기엔 소박하지만…… 안료로 쓸 만한 돌을 드리고 싶어서요.”
“제게요?”
“네, 부숴서 쓰기 좋은 무른 광물이에요. 듣기로는 햇볕에 장시간 노출시키면 태양 빛을 머금으면서 반짝거린대요.”
“……그런 광물이 있었습니까?”
미켈레는 처음 듣는다는 듯 의아한 눈을 했다.
“아, 혹시 이 돌은…….”
“네?”
“아닙니다. 이거 양보한 값으로 받기에는 과분한 선물이군요.”
미켈레는 아는 체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신전 내에서 연구 중이라 외부로는 새어 나간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정보력이 빠른 미켈레는 알고 있을 것이다.
크리온 광물.
그는 요이델의 신관복이 사칭을 위한 술수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듯, 눈으로 로브를 훑다가 순순히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흥미가 있어 보여.’
요이델은 미켈레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과연 그의 눈이 반짝였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사치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만한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였으니까.
보여 주기식으로 경쟁하듯 값을 매기는 면도 있었고.
‘그러니까 미켈레의 작품에 크리온이 섞이면 일반 귀족들도 큰 흥미를 보일 거야.’
홍보가 되겠지. 등불 대신 쓰는 실용적인 용도도 좋지만, 값이 날만 한 사치적인 소비처도 필요했다.
‘대신전에서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할 테니 값이 폭등해서 본래의 목적으로 쓰이지 못할 위험도 없을 거고.’
요이델은 미켈레가 마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광물이 그의 마음에도 쏙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혼자 속삭였다.
“잘 부탁해요…….”
“뭐를?”
“엄마야!”
하마터면 심장을 떨어뜨릴 뻔했다.
요이델이 놀라 넘어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등을 굳건히 받쳐 주었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였다.
노을 때문에 그들의 머리 위로 오렌지빛 후광이 반짝거렸다.
“신관님, 저자는 누구입니까. 신변의 위협은 없어 보였지만 모르는 이는 조심해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 있어?”
“우리?”
둘은 비슷한 이목구비지만 완전히 다른 색 대비처럼 아예 다른 말을 했다.
“우리는 네 호위기사니까!”
휘스테론이 씩 웃었다.
“아까부터 쭉 몰래 따라갔다고! 몰랐구나?”
“조금도 눈치 못 챘어…….”
“성하께서 네가 어디 가든 잘 보필하라고 했거든.”
“성하께서?”
두 호위기사는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물건은 다 샀어? 들어 줄게.”
“이미 내가 들고 있다. 아둔한 놈.”
요이델은 둘의 으르렁거림을 보면서 웃었다. 요보힐데 가문이 없어도, 요이델에겐 돌아갈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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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율리시스는 이상한 걸 보는 표정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미쳐 가고 계신 거라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정신적 고통이 공유되지 않는다 한들, 어떤 위험이 따를지 모르는 일이니.”
대연회장. 율리시스는 신수를 보필하기 위해 함께 앉아 있는 신관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왜 저러나.
요이델을 미심쩍게 여기던 그때, 일련의 무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신수님의 탄신을 경하드립니다.”
“꿍.”
요이델의 품에 안긴 플로테스는 통통한 앞발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연회 당일, 본래대로라면 플로테스 혼자 율리시스의 옆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의 곁에만 가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요이델이 신수를 안고 있었다.
덕분에 요이델은 저려 오는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몇 시간째 손님을 맞게 되었다.
대연회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단상 위,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은 훨씬 아래에 모여 있어서 외롭고 심심했다. 배도 고프고.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네? 음, 그게요.”
아까 웃었던 이유가 생각났다. 요이델은 괜히 플로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성하, 저 있잖아요. 친구가 생겼어요.”
그가 시선을 던지자 요이델이 수줍게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두 명이나요! 너무 좋아요.”
“……좋다?”
요이델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진심으로 밝게 웃더니 그녀에게 또 한 번 손을 내밀었다. 그때 그들이 뭐라고 했냐면…….
‘요이델, 우리 친구 하자. 진짜로.’
휘스테론이 다시 한번 말했고 라이오스도 동의했다. 요이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감격에 젖어 강하게 수긍했다.
그렇게 요이델의 두 번째, 세 번째 친구가 생겨났다.
“라이가 만들어 준 도시락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 라이는 과일도 잘 깎아요! 막 이렇게 토끼 모양으로…….”
그런데 율리시스의 표정이 말을 할수록 험악해졌다. 뭔가 잘못했나? 아, 그걸 빼먹었구나.
“휘스랑 라이를 만나게 된 건 다 성하 덕분이에요.”
내심 뿌듯했다. 이제 자신은 제법 사회생활을 할 줄 알았다.
봐라, 성하가 원한 게 바로 이런 말이겠지.
‘……아니었구나. 큰일 났다.’
더 험악해진 시선에 요이델은 입을 다물고 스르륵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친구 놀이 따위는 보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하지만 말을 먼저 거신 건 성하인걸요?”
“저는 요이델 님의 행동을 보고받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이 앞뒤가 다르잖아? 축하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평판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에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더 기분 나빠하는 걸까.
“꾸웅!”
아그작.
그때 무릎에 있던 플로가 율리시스의 손가락을 콱 물었다. 율리시스는 채 나지도 않은 이빨에 물린 손가락을 문지르며 황당한 눈을 했다.
“제 주인의 손까지 부어오르는 줄도 모르고 멍청한 짓을 하셨군요.”
율리시스가 손을 물렸으니 당연히 요이델의 손가락도 아프다. 그 말에 놀란 플로테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상처를 핥아 주었다.
“꾸웅…….”
“괜찮아, 플로. 나도 가끔 입을 꼬집고 싶기도 해.”
요이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보고는 그쯤 하시고.”
그때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불쑥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늘은 요이델 님이 주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주의요?”
율리시스는 심드렁한 눈으로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 곳을 짚었다.
저 멀리, 통유리창 너머 정원에 있는 평범한 은백색 분수대.
몇몇이 손을 담그자 분수가 많아졌다가 줄어들고, 물의 색이 탁해졌다가 맑고 반짝이기도 했다. 손을 담글 때마다 다른 색의 물줄기가 피어올랐다.
‘단순히 분수대라기엔 특이해.’
요이델이 신기해하며 마냥 그곳을 바라보자, 율리시스의 입이 열렸다.
“정원에 있는 분수대에 절대 손을 담그시면 안 됩니다.”
“왜요?”
“저건 손을 댄 사람의 신성력에 따라 물줄기가 달라지니까. 요이델 님이 손을 대시면 터무니없이 적은 신성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들키고 말 겁니다.”
그 말에 식은땀이 났다.
‘절대 손대지 말아야지.’
요이델은 품에 있는 플로를 더욱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