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6)
26화
“꾸웅.”
“졸려, 플로?”
“하암―”
플로테스는 입을 뽁 벌린 후 다시 입맛을 냠냠 다시며 졸았다.
오늘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무리한 탓이었다.
“꾸.”
“잠깐이라도 잘래?”
“꾸우, 꾸.”
“성하께 가겠다고? 정말이야 플로?”
자진해서 가겠다니 무슨 일이지.
플로테스는 작은 앞발로 자신을 안은 요이델의 팔을 콕콕 찔렀다.
그리고 품을 꼬물꼬물 벗어나, 율리시스에게로 자비 없이 풀쩍 뛰었다.
“꾸!”
그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신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거운 걸 알고 주인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왔군요.”
“꾸우.”
“제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한 네발짐승입니다.”
플로테스는 맞다고 짧은 목을 끄덕거렸다.
요이델은 작은 동물의 배려 덕에 대연회장의 계단 아래로 내려와 자유를 누렸다.
“맛있어!”
자그마한 입에 음식을 쏙 넣어 준 호위기사들은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지, 델? 이것도 먹어 봐.”
“이것도 맛있어, 휘스!”
“정말 편식을 안 한다니까 델은. 혹시 샴페인도 좋아해?”
“응!”
일반 술은 도수가 있어서 업무를 반쯤 겸하는 이런 연회에서는 지양해야 했지만, 샴페인이라면…….
달달하고 톡 쏘는 맛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샴페인이 안 보여, 휘스.”
“저기 있잖아. 딱 한 병. 원래 따라 줘야 하는데, 저 인간이 독점하고 있어. 값비싼 샴페인이거든.”
말을 마친 휘스테론이 마치 샴페인을 뺏으려는 듯 걸어갔다. 요이델은 그를 다급하게 말렸다.
“다른 사람이 마시고 있는 거잖아?”
“맞아, 델.”
“맞는 게 아니라 휘스, 내 말은 이미 다른 사람의 물건이라는 거야.”
“저거 세계에서 한 병밖에 없어.”
“라이, 휘스 좀 말려 줘……!”
그러나 라이오스는 그곳을 보며 눈을 좁혔다.
“욕심이 많은 자군요. 이미 마신 것까지 토해 내게 하겠습니다. 신관님.”
“아니야, 휘스. 그게 아니라…….”
라이오스는 알겠다는 얼굴로 천사처럼 수줍게 미소 지었다.
“불편하실 일 없게 저자를 통째로 처리하겠습니다.”
설마 라이오스까지 이럴 줄이야. 두 사람은 장난기 한 점 없이 진지했다.
요이델은 바람을 쐬겠다고 말하고 두 친구를 겨우 말리고 나왔다.
“신관님?”
“아, 그때 그 상점의!”
“여기서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대연회장의 바깥쪽 정원으로 나오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요이델은 그의 이름을 알았지만 통성명을 하지 못했기에 어그러뜨려 불렀다.
“어떻게 여기 계세요?”
“저는 대신전과 진행할 일이 있어서, 이번에 초대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곳이 신관님의 일터인데 제가 괜히 놀라운 얼굴을 했습니다.”
그는 민망한 듯 웃음 지었다.
“아니에요, 저도 가끔 대신전에서 일한다는 게 신기한걸요.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뻐요.”
“하하…… 대신전에서 일한다는 건 좋은 것이죠. 저도 이곳에 오랜만에 오니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랜만이요?”
요이델의 질문에 그는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묘하게 착잡해 보이는 미소.
“부끄러운 일이지만, 과거 저도 신관복을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겨우 수련신관에 불과한 어린애였죠.”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는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구나.
“어떠세요? 대신전은 그때와 비교해서 많이 바뀌었나요?”
“거의 그대로입니다. 다만 제가 많이 늙었더군요. 하하.”
그는 가벼운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눈가에 있는 자연스러운 주름이 그와 잘 어울렸다.
그때 미켈레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신관님께선 보통의 정식신관이 아니셨군요.”
“아.”
“어린 나이에 벌써 은색의 뱃지시라니, 촉망받는 신관이셨군요. 이거 참, 더 잘 보였어야 하는데…….”
그리고 미켈레는 뭔가 생각난 듯 짧게 감탄했다.
“저번에 주신 광물, 안료로서도 아주 적합하더군요. 물감에 섞어 쓰기도 좋았고 서걱거리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선물이 마음에 드셨어요?”
“놀랐습니다. 신관님께 양보한 그 원석보다 훨씬 뛰어난…… 혹시.”
미켈레는 대연회장을 잠시 쳐다봤다.
“그 친구분의 생일이라는 게, 신수 님이셨습니까?”
“맞아요. 신수님은 반짝이는 걸 좋아하세요.”
“……그랬군요. 저도 말로만 전해 듣던 신수님을 살아 있는 동안 직접 뵐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의 말이 괜히 씁쓸하게 들렸다. 들키지 않으려는 듯 미켈레는 금방 자상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신관님의 성함은 바로 요이델 님이시겠군요.”
“맞아요.”
“제 인사가 늦었습니다. 미켈레 사야, 제2 예배당 천장화의 의뢰를 맡아 대신전에 출입하게 되었습니다.”
“와! 너무 기대돼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한번 놀라서인지 제대로 놀라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
어딘지 어색한 요이델을 본 미켈레는 잠시 침묵했다.
“혹시 신관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네?”
“아뇨, 아닙니다. 일면식이 없는데 그럴 리가…….”
그리고 홀로 혼란스러운 듯 눈을 굴린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요이델을 응시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신관님께 주신의 영광이 함께하시길.”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요이델의 목소리에 미켈레가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전대 신수 관리자를 아세요?”
━━━━⊱⋆⊰━━━━
요이델의 직감은 정확했다.
미켈레와 처음 만나고 난 이후, 뜯긴 자료를 보던 요이델은 표지와 설명용 그림의 솜씨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 짧게 적힌 설명과 집필자의 필체 차이가 극명한 걸 발견했다.
“제가 그림을 그린 것은 맞습니다. 글은 다른 신관이 썼었죠.”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그러나 미켈레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생사를 모르는 친구였습니다.”
“애정이 가득한 자료였는데, 왜 떠났을까요?”
“그건…….”
미켈레는 뭔가를 아는 것 같지만 아직 말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 일이 미켈레와도 연관이 있다는 뜻 같은데.
‘역시 천장화 의뢰를 받아들인 건이유가 있어서였어. 하지만 대신전은 열려 있는데, 보고 싶으면 누구든 들어와서 예배할 수 있잖아.’
마치 대신전에 들어올 구실을 찾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작에서 미켈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 비밀이 있는 조금 까다로운 예술가였을 뿐. 성국 가문 출신이니 브리칼트와도 연관이 없고.’
주신 시엘로의 자애를 표방하는 성국은 웬만한 일로 출입 자체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요보힐데의 공작 부부 정도는 되어야 얼씬도 하지 못하고, 성국의 게이트가 아닌 대신전의 문턱은 더욱 낮다.
‘단 하나, 파면된 신관일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대신전에 들어올 수 없지.’
매우 드문 경우였다.
그건 대신전에 해가 되는 일이나 중요한 걸 파손했을 때나 받는 처벌인데…….
아, 설마.
“자료를 찢은 게, 미켈레 씨였어요?”
“벌써 거기까지 추측을 하셨군요.”
“정말인가요?”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은 아니라는 뜻 같아요. 미켈레 씨가 하신 게 아닌가요?”
그는 애매모호한 얼굴로 웃었다.
“신관님께서는 이미 짐작하고 물으시는 것 같군요.”
“그게 아니라면 살해나 사주 같은 어마어마한 등급의 범죄자여야 하는데 미켈레 씨께서 그럴 분으로 보이진 않아요.”
“하하, 영광인데요.”
그리고 그는 긍정했다.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평생 성직자로 살 생각은 없었기에 후회가 남지는 않습니다.”
미켈레의 옅은 갈색 눈은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대신전에 와야 할 이유가 있으셨던 거죠?”
“속여 봤자 소용이 없겠군요. 예, 맞습니다. 출입 제재가 풀리는 대신 그림에 드는 비용을 이쪽에서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값을 안 치러 주진 않을 텐데요?”
“그 정도는 제가 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이상하다는 듯 미켈레는 끙, 앓았다.
“혹시 광물을 주신 것도, 일부러였습니까?”
“속여도 소용이 없겠죠?”
“……이런. 이래서 어리다고 함부로 보면 안 된다는 거군요. 과연 고위신관의 비상함은 따라갈 수 없습니다.”
미켈레는 허허 웃었다.
“제게 바라시는 게 뭡니까?”
바로 말할까, 하다가 잠시 고민했다. 일단 광물이 그의 마음에 든 건 맞다.
하지만 확언을 받아 내기엔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 수상하게 여겨 더 꺼릴지도 모르고.
“아까 여쭤본 걸 다시 물을게요, 미켈레 씨. 이곳에 온 이유가 분명히 있으셨던 거죠?”
“…….”
“미켈레 씨처럼 저명한 예술가가 명성보다 작은 의뢰를 최우선으로 맡으셨단 건, 이유가 있을 거예요.”
대예배당과 제1~제3 예배당은 모두 대신전의 중앙, 즉 본관 쪽에 위치했다.
제2 예배당은 현재 요이델의 서재에 놓인 자료들이 있던 서고와 가깝다.
“미켈레 씨가 그림을 그리신 그 자료들은 서고에 없어요.”
허를 찔린 듯 그의 표정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저는 보관 장소를 알고 있어요.”
“어딥니까? 설마 성궁입니까?”
미켈레는 제가 순순히 되묻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요이델은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제집이요.”
━━━━⊱⋆⊰━━━━
“로사리움이라…… 대단하군요.”
순간적으로 예민해졌던 미켈레는 대답을 듣고 얼빠진 얼굴을 했다.
요이델은 전대 관리자의 자료들을 드르륵 끌고 와 쿵, 내려놓았다.
미켈레가 마치 성물에 경배라도 하는 얼굴로 자료에 손을 뻗으려던 그때. 요이델은 그의 손길을 차단했다.
“……?”
“단, 저도 조건이 있어요.”
물건이 눈앞에 있는 걸 본 후에는 자제력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기회는 지금.
요이델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르비스 상단에서 크리온 광물의 유통을 맡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