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알겠습니다.”
“……네?”
이렇게 즉답해도 되는 건가?
너무나 흔쾌한 답에 요이델이 더 당황했다. 정작 말을 한 미켈레는 멀쩡해 보였다.
“천장화의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기회를 봐서 대신전에 제의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처리가 되어서 저로서는 행운이지요.”
“이미 생각하고 계셨나요?”
“신관님의 선물을 가지고 가서 시험해 봤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의 마음에 들었었다는 뜻이다. 미켈레는 부드럽게 미소 짓다가 차츰 의아한 낯빛을 했다.
“그런데 신관님께선 어떻게 저에 대해 아셨는지요. 주인의 정체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미켈레가 알기로 요이델은 뛰어난 신관이었지만, 특별히 상단과 관련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에 요이델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가게의 주인이 미켈레 씨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으니까요.”
미켈레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게 증거가 됩니까?”
“거래가가 큰 귀중품을 취급하는 가게에서는 외상을 받지 않아요. 미켈레 씨는 따로 돈이나 아티팩트를 챙겨 오지 않으셨지만 가게 주인은 미켈레 씨의 돈 소지 여부를 묻지 않았고 당연하게 값을 지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걸요.”
“…….”
“미켈레 씨와 오래 거래한 곳이거나, 잘 아는 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떤 추측을 했습니까?”
미켈레는 자신을 향한 추적이 재미있는 듯했다.
“오래전, 미켈레 씨의 스케치가 오르비스 상단을 끼고 비싼 값에 낙찰된 일화를 알고 있었어요. 그때가 메디아가 교역을 닫아 전체적으로 크게 휘청였을 시기였어요. 그런데 작품 텀이 길고 모습도 잘 드러내지 않는 미켈레 씨의 그림이, 상단을 도와주듯이 세상에 나온 거예요.”
십여 년 전에 있던 일이었다. 완성된 작품만 내는 미켈레라서, 스케치의 등장은 큰 화제였다고.
“사야 가문은 상업을 지양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최소한 지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사 놓았던 스케치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왜냐하면 스케치를 그린 종이가, 성국의 것이었으니까요.”
둘에는 미세한 질 차이가 있었다.
“그림용 천은 메디아의 것이 가장 좋아요. 교역로가 열려 있을 시기의 작품은 그 천에 그려졌죠. 하지만 경매에 나왔던 건 성국의 종이였어요.”
“재료는 미리 구비해 놓기 마련입니다. 완성본 작품들은 교역로가 닫힌 후에도 메디아의 천에 그렸습니다.”
“어차피 금방 팔아치울 스케치에 비싼 천을 들이진 않으셨을 거예요. 제대로 작품을 그릴 천은 아끼는 게 좋으니까요.”
미켈레는 마른세수를 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최소한 관련이 있는 지인이거나, 명성이 있으시니 상단의 간부쯤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럼 주인이라는 추측은…….”
“주인인 건 방금 미켈레 씨께서 말씀해 주셔서 알았어요.”
“……!”
요이델은 활짝 웃었다. 앞서 그가 실토해 줘서 다행이었다.
그러자 미켈레는 충격받은 표정을 짓더니 결국 허탈함에 웃었다.
“그랬군요, 제가 그런…….”
테이블에 기댄 미켈레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을 주워 들었다.
“이건 메디아의 언어로 적혀 있군요.”
그건 요이델이 힐끔 보고 덮어 놓았던 책이었다. 언어가 다르니 못 읽을 테니까.
“그런데 이 자료들은 왜 찾으시려는 거예요? 반쪽을 갖고 계시나요?”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그곳엔 추억을 묻은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요이델이 의문의 눈을 하자 미켈레가 각 종이의 첫 문단 첫 글자들을 따서 읽었다.
그곳은 종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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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종이에 적힌 장소는 대신전 내에 있는 일곱여 개의 종탑 중 가장 중앙과 가까운 종탑이었다. 층고가 높은 건물들의 곱절은 높아, 저 멀리 있는 시가지까지 한눈에 보이는 곳.
그러나 종탑은 신성한 곳이라 신관 외에는 오르는 게 불가능했다.
그들이 숨겨 놓은 건 종탑의 가장 위, 종이 있는 곳의 북동쪽 바닥 벽돌 아래에 묻혀 있었다. 그건 낡은 아티팩트와 편지였다.
“찾았어요, 미켈레 씨.”
높은 곳이라 미켈레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이는 동작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휘잉, 불었다.
밑의 계단도 가파르니 조심해서 내려가는 게 좋겠다.
“잘못하면 떨어지겠어…….”
요이델은 계단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때 느닷없는 돌풍이 불어닥쳤다.
“꺄아악!”
발아래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작은 몸이 닻을 단 듯 가파르게 추락했다.
“신관님!”
“요이델!”
━━━━⊱⋆⊰━━━━
“꾸우우우웅.”
“어머, 신수님께서 성하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너무 휴식 시간을 길게 줬나. 율리시스는 없어진 요이델을 맹렬히 생각하며 속을 끓였다.
그는 신수 관리자인 요이델 대신 건방진 신수를 품에 안고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돌아오지 않는 건지.’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의 모습도 함께 보이지 않으니 위험에 처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이델에게 이상이 생기면 제일 먼저 율리시스 자신이 알아챌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꾸웅.”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그를 툭툭 건드리는 이 신수가 문제였다.
알 덩어리 상태일 때도 재수가 없더니, 태어나서까지 말썽인가.
신수라면 비슷한 피를 타고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야 할 텐데. 누구를 닮았는지 영 됨됨이가 별로였다.
“신수님께 축복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율리시스는 얼른 자그마한 신수를 건네줬다. 그가 바라던 바였다.
요이델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지만, 요이델이 플로테스를 안고 있을 때 율리시스가 오면 플로테스는 몰래 작은 분홍빛 혀를 내밀어 그를 약 올려 댔다.
그의 안색이 사납게 변하려고 하면 눈을 초롱초롱 뜨고 ‘꾸웅!’ 하면서 요이델의 품에 파고들어 오히려 괴롭힘당한 척을 했고.
“꾸우웅.”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온 신수는 불쾌한 티를 마구 냈다. 물론 율리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요이델 님은 정말로 어디까지 가신 건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마 자신의 직무인 신수 돌보기를 내팽개친 채 연회를 즐길 셈인가?
‘제국의 귀족가 출신이라면 연회가 익숙할 법한데 그런 티가 나지 않았지.’
공자로 태어나서 영애들만큼 사교계에 많이 나가 보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아한 점이 많았다.
그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긴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신수도 푸념하듯 그의 팔을 토도독 쳤다.
“꾸.”
“제가 싫으신가 봅니다.”
신수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 짜증 나는 듯, 날개를 파다닥 털었다.
“저도 당신이 싫으니 가서 주인을 찾아오십시오.”
율리시스는 남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의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였다.
율리시스의 등에 쿵,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진 건. 그러나 등 뒤에는 의자 등받이밖에 없었다.
율리시스는 품 안의 신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입니까?”
“꾸웅?”
신수가 장난을 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감각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햇병아리에게 난관이 생겼나.’
안위를 위해 호위기사를 붙여 놓았건만, 이 둘은 어디서 뭘 하는 건지.
그는 당장 일어나고 싶었으나, 신수 때문에 자신을 찾아오는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거대한 연회장, 신수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린 자리.
그는 주최자였으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요이델이 자신의 반쪽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아직 몸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고.
“성하!”
그때 신관 한 명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세 명의 원로 중 대원로인 마르셀리나였다.
원로신관 중에서 그 어느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침착함을 유지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법 숨까지 차 보였다.
“분수대에……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
“지금 당장 가 보셔야 할 듯합니다, 성하. 어서요.”
율리시스는 눈을 찡그렸다.
분수대, 큰일. 그리고 아까 느껴졌던 등을 세차게 부딪히는 감각.
‘설마.’
연회장의 문가를 살피니 과연 시선이 밖으로 쏠려 있었다.
그곳에는 분수대가 있다.
율리시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으로 다가갈수록 웅성거림은 커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위를 향했다. 그들의 고개는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그를 알아본 이들이 길을 터 주었으나 이미 자리한 사람들이 많아 분수대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직무 태만으로 근신을 내려야겠군.’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초조함을 누르고 분수대에 다다랐을 때.
툭.
투두둑.
연회장 밖에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환상이 아닌 게 맞겠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그러하네.”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는커녕 그대로 맞으며 경탄을 금치 않고 있었다.
게다가 사라졌던 두 성기사는 팔을 애매하게 벌린 채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그 끝에 다다라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하?”
자신에게 꽂히는 붉은 눈동자.
어느새 익숙해진 분홍 머리 신관이 분수대에 손을, 아니 몸을 넣은 채 자신을 바라보았다.
요이델은 떨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본 적 없는 환하고 밝은 미소로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 별똥별처럼 흩날리는 밝은 물방울들.
비가 내리는 게 아니었다.
보유한 신성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분수 때문이었다.
‘……매번 예상을 빗겨 나가는군.’
율리시스는 과거의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죄송해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뻔해서 얼른 마법을 썼는데 분수대에 착지해 버렸어요. 혹시…… 고장 난 건가요?”
은은히 빛나는 분수대에선 그 어느 것보다도 맑고 투명하며 알 수 없는 빛을 품은 물줄기가 구름에 닿을 듯 솟구쳐서 비처럼 땅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역대 최고의 신성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