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요이델은 순간 당황했다.
“하일 님께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마음껏 읽어도 된다고 하셔서 갔었어요. 성하께서도 지식을 얻으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원로는 오늘 외부의 일로 나갔습니다.”
“네, 그래서 혼자 있었는데 남관분들이…….”
그 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권유를 받았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눈빛으로 잡아먹을 기세인데.
하지만 성하는 변명을 싫어한다.
“그보다 소속은 복수 선택이 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성하?”
그래도 사실대로 말할 순 없지. 화제 전환을 하는 요이델의 얼굴은 더없이 어색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보고 상냥하게 미소 짓다가 한쪽 입꼬리를 더 올렸다.
“그렇군요. 남관의 신관들이 두 번째 소속으로 선택해 달라고 난동을 부렸군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성하?”
“방금 시인하셨습니다.”
요이델은 엉덩이를 슬금슬금 옮겨 마차의 가장자리, 구석으로 몸을 슥 숨겼다.
왜 이 마차 안에는 숨을 곳도 없는 거야?
“원칙대로라면 복수 선택이 가능한 것은 맞으나, 실제 행한 신관은 드뭅니다.”
율리시스는 한발 물러서 주며 대답했다.
“왜인가요? 본 소속의 눈치가 보이나요?”
“그렇습니다. 각 관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서로를 낮추봅니다.”
“다른 관끼리도 활발히 교류하고 다들 존칭을 쓰던데요?”
“정식신관들 사이의 존중은 대신전의 원칙입니다. 다만 겉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서로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차분하게 옛 기억을 되짚었다.
“수십 년 전, 어느 서관의 신관이 남관과 협력 업무 수행 중에 남관의 업무에 흥미를 느껴 소속을 옮기려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집중하는 요이델의 눈빛에, 율리시스는 눈을 가느다랗게 접고 웃었다.
“서관의 신관은 자신 측 신관을 빼앗아 가려 한 남관 신관을 찾아서 언쟁 중 두꺼운 성서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고, 마찬가지로 참지 않았던 남관의 신관은 복통과 구토를 동시에 일으키는 약을 상대의 식사에 탔습니다.”
“…….”
“그런 겁니다.”
실제 사례에 핏기가 식었다.
요이델은 하하, 어색하게 웃고 조용히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협박인 거지?
그녀의 예상대로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본관의 신관을 빼앗으려 한 남관 신관의 처사가 놀랍기 그지없군요.”
“……사형시키실 건가요?”
“그대의 머릿속에서 제가 꽤 굉장한 사람인가 봅니다.”
그의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
“저, 저는 본관이 좋아요.”
자신의 목숨도, 남관의 목숨도 구해야겠다. 요이델은 용기를 쥐어짜 말했다.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두 개의 소속을 가질 일은 전혀, 절대 없을 거예요!”
율리시스는 울상을 지으며 눈으로 간청하는 분홍 머리 신관을 바라보았다.
‘남관이 처벌받는 일을 막고 싶은 건가.’
물론 그런 걸 처벌할 수 있는 규율 따위는 없다.
그래도 묘한 불쾌함을 거두지 못하자, 요이델의 눈이 더욱 울먹울먹 변했다.
“계속 성하의 직속이고 싶어요.”
율리시스의 시선이 천천히 떼어졌다. 그는 팔짱 낀 자세를 풀고 차분하게 고쳐 앉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요이델의 주머니에 금빛이 번쩍이는 뭔가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건 남관의 출입증이군요.”
“출입증이요? 그냥 손님용 카드인 줄 알았어요.”
“금색은 그중에서도 각 관의 장들에게 나누어 주는 특별한 패입니다. 신분 패와는 달라서 소수에게 초대의 형식으로 주기도 합니다.”
“그런 걸 제게 주신 거예요?”
“당신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우와…….”
순간 요이델의 얼굴이 행복하게 달아올랐다. 요이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정말요?”
그는 어쩔 줄 모르며 기뻐하는 요이델을 묵묵히 응시하다 시선을 돌렸다.
“하일은 곧 외부의 일로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수업을 제대로 맡아 주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내준 듯합니다.”
“원로가 되면 밖으로 다니실 일이 많나 봐요…….”
“본래 원로원은 제 권한을 경계하기 위한 기구. 제 견제를 받아 밖으로 내돌려지는 일이 잦습니다.”
“네, 네? 정말요?”
“아니요.”
율리시스는 자꾸 놀라는 요이델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뭐야, 정말로. 요이델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나쁜 사람 중 제일 이상한 사람이야.’
요이델은 옷자락을 꼭 붙들고 속으로만 소심하게 투덜거렸다.
“그래서 당신의 수업은.”
“앗, 네?”
“대신전 내에 남은 원로가 대원로뿐이니, 대원로가 맡게 될 겁니다.”
신수 연회 때 얼핏 본 적이 있으나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았다.
“대원로님은 서관의 장이시죠?”
주로 생체, 물리 화학이나 실용적 연구를 도맡아 하는 서관.
“요이델 님께서 알아 두셔야 할 것은, 각 관의 성질은 보통 관장을 따라간다는 겁니다.”
“……아까 성서로 사람을 때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율리시스는 모호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는 서관과 남관의 장, 즉 두 원로가 젊었을 적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
대원로님께 혼나지 않으려면 예습을 철저히 해야겠구나. 요이델은 그 뒤로 서재에 살았다.
“미켈레 씨는 이 책이 메디아의 언어로 쓰였다고 하셨지.”
그건 요이델이 슬쩍 보고 덮어 놨던 책이었다.
‘그때는 대충 보고 다르게 생긴 언어라 못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잘 읽혀서 신기해.’
아마도 과거에 배웠던 언어가 아닐까? 귀족가 사람은 보통 어릴 적부터 여러 소양을 익히니까.
요이델은 하품을 하며 서재의 불을 끄고 나왔다. 아무도 없는 로사리움은 적막했다.
투둑, 투두둑―
그때 유리창에 불길한 빗물이 튀었다.
갑작스러운 비가 꽈르릉 천둥까지 몰고 온 걸 보니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플로?”
아, 플로테스도 성하와 있어서 여기 없지.
휘오오―
덜컹, 덜커덩.
‘창문 소리가 조금 무섭네. 얼른 가야겠어.’
시종을 쓰지 않아서 요이델이 직접 복도와 침실의 불을 밝혔다. 진짜 모습을 들키면 안 되니까 조심하고 있지만, 가끔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안이 쓸쓸하고 외로웠다.
쿵!
“꺄악!”
깜짝이야, 그냥 바람이었구나. 누군가 쿵쿵 두드리는 것 같은 불길함에 요이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런 날에 혼자 있는 건 역시 조금 무서웠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무서워해서 안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냥 혼자가 됐어.’
어쩐지 쓸쓸했다. 친구라지만 휘스와 라이는 북관에서 생활했고. 집 주변을 지키는 경비병들과 친구가 되긴 어려웠으니까.
방으로 돌아온 요이델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거울 앞에 섰다.
요이델의 하얀 손에는 평범해 보이는 은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를 슥, 빼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으음.”
큰 차이는 없었다.
원래 요이델의 모습에서 체격이 많이 달라지지도 않았고, 도형으로 치면 둥근 모서리 사각형에서 뾰족 모서리 사각형으로 바뀌는 정도일까.
‘만약 반지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겨우겨우 친구들도 만들었고 이제야 사람들의 눈초리가 누그러졌는데, 다시 예전의 차가운 눈빛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요보힐데 공작 부부가 자신에게 보냈던 그런 눈길 같은 것.
요이델은 고개를 저으며 반지를 꼈다.
‘어쩌면 플로나 라이, 휘스는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성하는 절대 용서해 주시지 않을 거야.’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입안이 바짝 말랐다.
“감히 저를 속이시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으신가 봅니다.”
거울을 보던 요이델은 그의 어투와 표정을 흉내 내며 입을 달싹였다.
“아마도 이런 느낌으로?”
이 남장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그리고 성하에게 내내 안 들킬 수 있을까?
남장을 하게 된 이유는 요보힐데 공작가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여러 의미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버려서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신원을 속인 건 성황인 율리시스를 향한 기만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용서해 주지 않으실 거야.’
요이델은 곤란한 기분에 괜히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심란한 마음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웠지만, 그러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쿠르릉.
거대한 천둥소리에 놀란 요이델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찰나, 시야가 멀어 버릴 듯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이불을 뚫고 들어온 빛에 멍해진 요이델은 베개를 꼭 끌어안고 덜덜 떨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삼백이십오 마리…….”
천천히 시야가 흐려졌다. 주위가 온통 암흑이었다.
그러다 물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이제 비가 오지 않나 봐. 하지만 추워. 왜지?’
바로 그때였다.
“요이델!”
저 멀리서 요보힐데 공작 부부가 나타났다.
어떻게 성국에 출입했지? 분명 추방당했을 텐데. 왜 갑자기 그들이…….
“어떻게 이 기본적인 것조차 해결을 못 해! 응? 이런 백치를 낳다니!”
자세히 보니 공작 부부의 얼굴이 젊었다.
손을 들여다보니 자신의 손이 어린아이의 것처럼 아주 작았다.
게다가 그들은 요이델의 시야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요이델, 너를 백치로 키우려고 그 고생을 한 게 아니야. 자, 시엔델의 반만이라도 해내 보렴.”
“가망이 없군. 쓸모없는 반쪽을 만들었어.”
“메디아 언어로 쓰인 책은 읽지 말라고 했잖니!”
━━━━⊱⋆⊰━━━━
쿠르릉.
대신전에 때늦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꾸우우우.”
“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도 좋습니다.”
율리시스는 제 품에서 버둥거리는 은백색 덩어리를 내려놓았다.
말을 듣자마자 플로테스는 율리시스를 흘겨보고 문가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꾸.”
율리시스의 기준에서는 은혜도 모르는 짐승이지만, 성국을 상징하는 신수이니 공식 석상에 동행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둘은 조금도 친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날개를 퐁 꺼내서 뽈뽈 날아가려던 신수가 돌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꾸!”
“비가 무서우십니까?”
“꾸우우우!”
플로테스는 가다 말고 돌아와 짧은 팔로 율리시스의 다리를 토도도독 쳤다.
“꾸우, 꾸!”
“무슨 일인지…….”
귀찮은 기색이 넘치던 율리시스가 순간 멈칫했다.
저 건방진 짐승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였다. 요이델과 관련 있을 때.
그는 신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요이델 님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