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0)
30화
그는 마치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을 것이니 소문날 걱정은 말고.”
“네? 네…… 감사해요.”
무슨 소문일까 잠시 고민하던 요이델은 바로 해답을 찾아냈다.
쓸쓸함을 많이 타는 걸 성하께서 알게 되면, 그의 약점이나 다름없다고 혼을 낼 게 뻔했다. 그와 페어링 된 몸이니까.
그러니 그는 성하에게 혼날 일 없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아라, 그런 말을 하는 듯했다. 아! 역시 그거구나!
요이델은 활짝 웃었다.
“역시 하일 님은 좋은 분이세요.”
“크흠!”
하일은 잘 빗어진 백발을 넘기며 쑥스러움을 숨겼다.
“거참, 사내가 웃음이 가벼워서야 원……. 요즘 젊은이치고도 사근사근해서 희한하군.”
저렇게 해맑게 웃어서 성하도 넘어가신 건가. 저 미소를 계속 보면 무리도 아니군.
차라리 인정하니 편했다.
저 햇병아리 신관을 미워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두고 보면 볼수록 장점이 많은 소년이었다.
“크흠! 아무튼 나는 자네의 뜻이 궁금했네. 미래 계획이라든가…… 신관들도 결혼은 가능하니까.”
“저는 결혼 생각은 없어요, 하일 님.”
“아니! 왜!”
“그건……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일은 혀를 끌끌 찼다.
비밀로 해 주겠다고 말했는데도 조심성이 워낙 커서 시치미를 떼려는가 보다.
그럼 어른으로서 같이 장단을 맞춰 줘야지.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강요를 싫어한다고 들었으니까.
“아무튼 내가 장래 희망을 물은 이유는 그것이 아니네.”
하일은 엄숙하게 기침했다.
“본관의 신관은 알다시피 성하의 직속. 그러나 자네의 재능이 약초와 치료술 등에 더 맞는 듯하니 소속을 복수로 갖게 해 달라고도 충분히 청할 수 있네.”
“하지만 플로테스는…….”
“신수님 말인가? 아니 아니, 소속과 거주지는 유지하면서 학문을 갈고닦는 부분에 한해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일세.”
“그럼 소속을 두 개 가지라는 말씀인가요?”
요이델이 놀라 바라보자 하일은 끄덕였다.
“본래 중앙은 대신전 안쪽의 성궁과 밀접한 곳으로, 성국 전반의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지. 조금 더 실리를 따지는 곳이고. 무역이나 자금 관리, 외교 등 하는 일이 대신전의 네 가지 관들과 성향이 다르네.”
그가 말한 것은 모두 요이델도 느끼는 바였다.
“자네는 무엇을 목적으로 대신전에 들어왔는가?”
허를 찌르는 물음이었다.
요이델이 신전에 들어온 건 13살 무렵이었다. 가문의 수치로서 이곳에 버려졌다.
그리고 가문이 움직이는 대로 대신전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게르암이 일을 저지를 때 이목을 끌어야 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머리 위로 툭, 사람의 온기가 얹혔다.
하일이 편안한 붉은 눈으로 요이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수님의 부화는 훌륭했네. 자네가 보여 준 성과는 눈부셨어.”
“…….”
“그것만으로도 몫은 다했으니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찾아보게, 햇병아리여. 아, 크흠, 신관이여. 이곳에 있는 자네는 영 심심해 보여서 괜히 이 늙은이가 신경이 쓰이는군.”
하일은 요이델을 몇 번 가볍게 다독여 주었다.
요이델은 그가 돌아가고 난 뒤에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해야 할 건 성하의 신뢰를 완전히 얻어서 무사히 살아남고 페어링도 푸는 거야.’
하지만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지금의 삶에서도 그런 걸 고민할 만큼의 사치는 부릴 수 없었으니까.
“델, 저번에 준 그 찐득한 거, 뭘로 만들었어?”
“휘스!”
훅 나타난 휘스테론이 씩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거 쓰니까 통증이 싹 낫던데. 하나 더 만들어 줄 수 있어? 아니면 두 개…… 혹시 세 개도 돼? 기사단 녀석들이 자기들도 달라고 해서.”
“…….”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 진짜 고마웠어, 델.”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휘스는 북관 소속이지?”
“응, 기사들은 그쪽이니까. 델도 기사 하게? 난 언제든 좋아. 가르쳐 줄까?”
“이 무례한 자는 무식합니다. 배우시겠다면 제가 보좌하겠습니다, 신관님.”
둘은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밖에서 싸우자며 나가 버렸다.
급격히 적막해진 로사리움 안, 요이델은 서재에서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을 덮었다.
열심히 표시하면서 열람한 흔적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책 겉면에는 저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일.
성을 적지 못했다는 건 대신전의 사람이라는 뜻.
요이델은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남관으로 뛰어갔다.
“저, 하일 님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치료 마법을 더 배워 볼래요!”
“정말인가?”
“하일 님께서 쓰신 책,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에요. 그런 책을 쓰셨다니, 대단하세요.”
“크흠!”
하일은 아침부터 방문한 햇병아리를 보며 속으로 음하하핫 하며 크게 웃었다.
물론 겉으로는 점잔을 뺐다.
“뭐,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내 연구실을 방문하게. 책도 많으니 와서 보든가 하고.”
하일은 금색 바탕에 날개 달린 화려한 새가 양각으로 새겨진 카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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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계속 있게 해 달라고 빌어야겠어.”
요이델은 결심을 굳혔다.
“나는 여기가 좋아. 가문으로는 돌아갈 생각도 없고, 타국은 플로나 휘스, 라이, 하일 님도 없는걸.”
분수대의 사건 이후 어쩌다 보니 성하를 알현하지 못하고 시일이 지나갔다.
요즘 그는 더욱 바빠진 건지 대신전에서도 보기가 힘들었다.
“좋은 일일까?”
그렇게 큰 사고를 치고도 변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약간은 더 생긴 거니까.
‘분수대 배상액이 어마어마할 거야.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은이 아니라 백금이라고 했으니까. 백금이 훨씬 비싸댔어.’
요이델은 손가락을 접어 보다 그만두었다.
‘그냥 마차를 탈 걸 그랬어.’
대신전의 부지가 넓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신전 내의 구역은 크게 중앙과 동서남북 사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관에서 남관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앙에서 남관까지 가는 데도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길이 잘 닦여 있는 이유가 이거였어. 절대 걸어서 갈 수 없으니까.’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 동안 걷던 요이델은 결국 마차를 얻어 타고 남관에 도착했다.
“어쩌죠? 하일 님께서는 오늘 자리를 비우셨는데, 실례지만 성함이…….”
“요이델이에요.”
“아!”
남관의 출입을 관리하던 신관은 당황하여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실례를 했습니다. 요이델 님은 언제든지 출입 가능하다는 원로 예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요이델은 뜻밖의 호의를 받고 남관의 문을 통과했다.
“이곳에 계신 모든 책과 자료들을 자유롭게 보셔도 됩니다.”
“정말요?”
“예하께서 한 분을 특정하시며 당부하시긴 처음이셨습니다.”
관리신관은 상냥하게 웃었다.
‘각 관은 장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더니, 여긴 하일 님과 사람도 건물도 느낌이 비슷해.’
요이델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외관은 대신전 내의 모든 건물이 그렇듯이 대부분 백색을 띠었지만, 안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율리시스의 성궁은 내부는 화려했지만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반면 이곳은 편안한 짙은 녹색 벽지와 따뜻한 갈색, 목재를 사용한 가구가 많아 전체적으로 온난하고 익숙한 분위기를 주었다.
사람들도 섬세하고 꼼꼼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누구 하나 컵을 엎질러도 쳐다보지 않고 각자의 일만 하는 게, 딱 하일과 비슷했다.
요이델은 하일이 없는 연구실에서 방대한 양의 책을 읽은 후 자리에 놓았다.
‘그림?’
원목 테이블에는 하일과 두 신관이 같이 그려진 그림이 놓여 있었다.
‘아! 원로님들인가 봐.’
무척 앳된 모습의 신관들이었다. 지금의 원로들은 오랜 친구라고 했으니까 맞을 거다.
오랜 관계에 대한 부러움을 품은 요이델은 이만 돌아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런데 연구실 안쪽에 있던 사람이 요이델을 따라 나왔다.
“요이델 신관님! 겉옷을 놓고 가셨습니다.”
“아, 고마워요.”
“……이름이 요이델?”
“요이델 님이라면 분명히.”
각자의 일을 하느라 복도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신관들의 시선이 파바밧 한 번에 꽂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요이델은 차츰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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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 님! 단순한 출입이 아니라 저희 남관을 선택해 주신 게 맞지요?”
“저, 저기 한 명씩…….”
“본관은 좋지만 엄격합니다. 꼭 하나의 관만 택하셔야 하는 건 아니니 잘 생각해 보시고 소속을…….”
“저는 소속의 일은 됐습니다. 그냥 저와 악수 한 번만! 아니면 어떻게 신수님을 깨우셨는지, 다들 비키세요. 순서를 지키고 저도 말 좀 합시다! 못 참겠네! 이 남관 놈들아!”
순식간에 남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성하의 밑에 직속으로 계시면 배울 것이 많을 것입니다만, 조용하여 심심하실 겁니다. 흥미로운 저희 쪽으로 오시지요!”
“아, 고맙…… 고마운데…….”
그들은 요이델을 보자 먼저 대화하기 위해 저들끼리 치고받았다.
“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고마워요.”
“잠시만요! 신관님!”
“가지 마십시오!”
그 광기 어린 붙잡음에 요이델은 후다닥 뛰어나왔다. 하마터면 정말 잡힐 뻔했어.
요이델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잡고 헉헉 숨을 돌렸다.
“요이델 님!”
“엄마야!”
뒤를 쫓아와 부르는 신관을 피해 재빨리 움직이다가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손바닥에서 찌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그때 한 남자가 그녀의 앞에 섰다.
손바닥에 방금 전의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입은 남자가.
“이게 무슨 꼴이십니까.”
요이델은 멀거니 내려다보는 푸른 눈을 반갑게 바라보았다.
“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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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붙잡은 것 같다. 그의 표정이 무척 안 좋아 보였다.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마차 안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요이델은 옷을 꼭 쥐고 애써 창문을 보았다.
하지만 율리시스의 시선은 줄곧 요이델에게 붙어 있었다.
“요이델 님.”
“네, 네?”
“당신이 왜 남관에서 몰래 나오다 제게 들키셨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그는 긴 다리를 꼰 채 맞은편의 요이델을 차갑게 응시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대의 소속은 중앙.”
율리시스의 목소리가 지극히 낮았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 그는 흔들림 없이 요이델을 노려보았다.
“제 소속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