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성하? 안색이 안 좋으세요.”
“괜찮으니 제게 다가오지 마십시오.”
“……네?”
요이델은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또 왜 그럴까?
‘내가 그렇게 싫으신가 봐.’
어쩐지 시무룩해져서 종종걸음으로 물러나 집무실 구석에 섰다. 요이델은 서서히 벽으로 스며들 듯 책장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율리시스는 그런 요이델의 소심함을 그저 보고 있었다.
‘뼈대가 작은 편이어도 분명한 소년이다. 여자로 보이다니 말도 안 되지.’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제대로 보였다. 요이델은 그저 평범한, 예전의 모습과 똑같은 소년이었다. 자신을 볼 때는 바르르 떨면서 무서워하기 바쁜.
“요이델 님, 혹 제게 숨기시는 게 있으십니까?”
“네, 네? 제가요? 뭘요? 아, 아니요?”
그의 말에 요이델은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율리시스는 자조하듯 웃었다.
피로가 얼마나 쌓였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한 거지?
이게 다 하일의 결혼 압박 때문이었다. 그 인간의 저주 같은 혼인과 후손 돌림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율리시스는 저쪽 벽 한구석에 놓인 책장으로 몸을 반쯤 숨기고 눈치를 살피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뭐냐고 묻다니. 뭔가가 있긴 한가 봅니다.”
“아니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그렇지. 저 성격에 자신을 속일 대담할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는 나른하게 손짓했다.
“그런데 왜 구석에서 그렇게 계십니까?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제가 사실 구석을 정말 좋아해요.”
“오십시오.”
“네!”
꺼리는 마음과 달리 몸은 착실히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섰다.
‘역시 연회 날 분수대를 고장 내서 화가 나셨나 봐. 손해 배상금을 어마어마하게 청구를 하시겠지?’
요이델이 아는 율리시스는 냉혈한에 속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봐줄 리가 없다.
“저…… 그날은 감사했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분수대에서 건져 주신 거요. 성하께서 데리고 나와 주셨잖아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율리시스는 침착하게 요이델을 건져 냈었다. 물론 좀 짐짝처럼 휙 들긴 했지만.
‘아! 그런 수고를 시켜서 더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 그것도 비용으로 치시려는 건 아니겠지?’
간이 쪼그라들었다. 얼마 전 플로테스의 선물을 사서 돈이 줄어들었는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할까?
몸이 저절로 떨려 왔다. 하지만 성하는 부자니까, 조금은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일개 신관의 코 묻은 돈을 빼앗을 리가…… 있을 수도. 그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차라리 자진 납세하자.
“저, 성하. 지금은 돈이 조금 부족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갚을게요. 그, 그 분수대 은빛이 번쩍하던데 혹시…… 많이 비싼가요?”
율리시스는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찡그렸다. 방금 저 조그만 입에서 나온 말이 분수대의 값어치에 대한 건가?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밑을 굴렀다.
율리시스는 황당함에 턱을 괸 손을 미끄러뜨렸다.
“너무 비싸면 아마 좀……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래도 반드시 갚을 테니까 믿어 주세요. 차용증이라도 쓸까요?”
“설마 제가 그깟 분수대 사용료라도 받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신성력이 말도 안 되게 높게 나왔잖아요! 고장 난 게 분명해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대단하다고 알고 있는데 어쩌죠? 그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도 있나요?”
요이델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도대체 얼마를 청구하려고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눈물이 주륵 흐를 것 같았다. 사형 위기에서 도망쳤더니, 다음은 빚쟁이라니. 삶이 기구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당신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서, 성국을 떠나 상업 왕국으로 가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 볼게요.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정말로…….”
율리시스의 눈빛이 무시무시했다.
“……같은 건 생각도 해 본 적 없어요! 아하하! 제가 노동을 하면 성하의 몸에도 똑같은 근육통이 생길 텐데, 안 되겠죠? 하하.”
율리시스는 냉랭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거야 또? 그가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볼 때면 따끈따끈한 화로에 구워지는 꼬치가 된 느낌이 들었다.
무서워, 잡아먹힐 것 같아.
하지만 율리시스에게 그런 티를 내면 더 싫어하니까. 요이델은 일부러 기죽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아, 아니야. 역시 무서워.’
요이델은 그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 섰다. 꼭 율리시스가 병균을 옮기는 숙주라도 된 것처럼.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직접 노동할 각오까지 되어 있다면 뭐든 하실 수 있겠군요.”
요이델은 그의 다음 말을 경청했다.
“우선 방대한 힘을 다루는 방법부터 배우십시오. 이전에도 금방 익히셨으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네, 네?”
요이델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대한 힘이라고?
“하지만 서, 성하께서 제게 힘을 주시려면…….”
접촉을 해야 하는데요? 요이델은 그 말을 삼켰다. 물론 율리시스는 요이델이 삼킨 말쯤이야 금세 눈치챘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추측에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저도 요이델 님에게 제 힘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설마하니 또 제 멱살을 틀어쥐고 입술이라도 찍으실 생각입니까?”
그는 불결하다는 듯 입을 스윽 가렸다.
‘아니거든요? 저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뽀뽀할 생각 전혀 없어요! 저도 취향이 있다고요!’
하지만 요이델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전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순결을 지켜 온 그의 입술을 뺏은 건 바로 그녀였으니까.
“죄송합니다…….”
요이델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본 율리시스가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분수대 고장이라는 게 뭘 이야기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힘은 진실입니다. 그 분수대는 고장 난 적 없습니다. 따라서 그대가 배상하셔야 할 금액도 없습니다.”
“……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요이델은 고개를 확 들고 굳어 버렸다.
“제 힘이 정말인가요? 고장이 난 게 아니라요?”
“예.”
그 모습을 보던 율리시스는 역시 제 눈이 착각을 일으켰다 생각했다. 저 어설픈 소년이 여자일 리 없다. 특별한 신체 변형도 느껴지지 않고.
“우선 현재 대신전 내에 있는 원로들이 당신에게 지식을 가르쳐 줄 겁니다.”
“아, 하일 님이신가요?”
“하일 원로뿐만 아니라 대원로도 그날의 당신을 보고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아직 서툰 당신에게는 좋은 기회이니, 습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요이델의 눈이 반짝거렸다. 율리시스는 햇병아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저런 눈빛을 가진 자를 문책해 봐야 시간만 낭비다.
“가 보십시오. 오늘 당신을 부른 이유는 그게 전부입니다.”
━━━━⊱⋆⊰━━━━
“자네.”
“꺅! 하일 님!”
돌아가는 복도에서 백발의 신관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요이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머릿속으로는 반려 관계에 대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런데 눈에 불꽃이 튀던 순간…….
“오랜만이에요, 하일 님! 목소리가 좋아지셨네요?”
“……크흠, 그렇지. 자네도 잘 지냈는가.”
반가운 듯 방긋 웃는 요이델의 미소에 전의를 상실했다.
‘나 참, 이렇게 해맑아서야 뭘 물을 수도 없군!’
하일은 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나온 후 집무실에 들어간 요이델을 보았다. 하일은 크게 고민했다.
그는 나름대로 신앙심이 깊은 신실한 신관이었다.
같은 시기에 수련한 세 명의 원로 중 가장 빠르게 승진했고 제일 먼저 원로로 발탁됐으니까.
“하일 님, 어디 아프세요?”
살면서 이런 일로 고민하게 될 줄이야.
성하의 신성한 핏줄이 여기서 끊어지고 마는가…….
‘눈앞의 이가 남성만 아니라면 성후님으로서 완벽하다. 하지만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이겠군.’
신수 연회장에서 하일도 요이델의 힘을 제대로 봤다.
자신이 분수대에서 수영을 해도 그만한 힘이 나오진 못할 거다.
‘그 정도였다면 이전의 파장이 설명되는군. 아니, 요이델 신관이 확실하다. 대신전을 흔들었던 힘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맞지.’
차라리 예전처럼 해괴하기라도 하면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맑은 눈이라니!
“하일 님?”
하일 님이 왜 그러지? 오늘따라 성하도 하일 님도 이상하다.
요이델은 조심히 무릎을 굽혀 그의 안색을 확인했다. 그 순간 하일의 붉은 눈이 확 뜨였다.
“오래 생각했네.”
“네?”
하일은 일생의 유언이라도 남기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요이델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능력, 앞으로 성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 비록 그런 미래의 발전은 아니지만 다른 미래의 발전은 될 게야.”
그는 미친 것처럼 중얼거렸다.
“어, 어떤 미래 말씀이신가요?”
“모른 척하느라 애쓰는군, 자네.”
“그게 아니라 정말로 무슨 말씀이신지…….”
“괜찮다네. 그래,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햇병아리이니 이런 독촉이 놀랍고 무섭겠지.”
가만히 생각하던 하일은 입을 씰룩였다.
“그런데 자네도 대담한 선택을 했군.”
“제가 무슨 선택을 했죠?”
“거참, 괜찮대도…… 나는 다 아네. 자네, 쓸쓸하지 않은가?”
하일은 요이델의 마음을 지레짐작했다. 성하는 바쁘니 소홀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지나가다 본 요이델은 호위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혼자였고.
“아무리 사랑받는다고 해도 업무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견디기 힘들어질 걸세.”
요이델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어디가 아프다면 성하께 알려야 하니까.
그런데 웬 사랑? 아, 대신전의 사람들이 보내 주는 관심을 말하는 건가 보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과분할 만큼 넘치게 받았지만, 넓은 로사리움 안에 요이델 외에 생명이라곤 플로테스뿐이었으니까 쓸쓸하긴 했다.
소속은 본관이었지만 사용하는 건물이 아예 달라 사람과의 접점이 없었다.
특히 창문으로 동서남북 관의 신관들이 우르르 다니는 걸 지켜볼 때면 너무 부러웠다.
“하일 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네.”
“네? 정말요?”
“여태 부정했지만, 겨우 찾은 사람이니 그분께서도 다 뜻이 있으신 거겠지…….”
하일은 엄숙하게 고개를 숙인 후 시선을 바로 했다.
“자네를 인정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