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정말, 진짜 성하세요?!”
“네.”
그는 평탄한 어조로 대답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가 맞았다.
냉담한 푸른 눈동자하며 어두운 와중에도 빛나는 외모까지.
그런데 성하가 왜 여기에 있지?! 정말 성하일까?!
“그 마수라도 보신 듯한 눈은 뭡니까.”
내리깔아 보는 시선에 권태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요이델은 그의 품 안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공손히 답했다.
“괜찮으셨어요, 성하?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그런데 저를 받아 주신 걸 보니 혹시 환상이라거나 변장한 마수이신가요?”
“누가 마수라는 겁니까.”
어쩌면 제국의 현혹 마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얼굴을 바꾸는 마수라든가.
‘성하가 나를 받아 줄 리 없잖아!’
추측은 나름 타당했다. 그동안 쌓아 온 경험치를 기반으로 했으므로.
요이델은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팔뚝을 쿡쿡 찔렀다. 어? 가만히 계시네.
이상하다 이상해. 사람 같지 않은 단단한 몸이라든가 체온은 성하가 맞는데. 그가 자신을 안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팍!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짐짝처럼 뚝 떨어뜨리고 손을 털었다.
“꺄악!”
“언제까지 안겨 계실 요량이신지.”
“으아앗…….”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어서 다행히 엉덩이가 아프진 않았다.
‘이 나쁜 성격, 성하가 맞구나!’
요이델은 폭신하고 시원한 눈발에 파묻혀 고개만 쏘옥 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살아 계셨군요!”
그 말에 율리시스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요이델은 허우적거리다 일어나 눈을 털고 밝게 웃었다.
그런 요이델을 가만 보던 율리시스는 고개를 기울이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살아 있어서 유감이십니까.”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요이델은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동처럼 훅 튀어 올라 율리시스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것과 상반되는 붉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를 본 율리시스의 입이 당혹으로 조금 벌어졌다. 이어 요이델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갑자기 팔이 너무 아파서 성하께 큰일이 생긴 줄 알고 무척 걱정했어요……. 멀쩡하셔서 다행이에요.”
얘기하지 않는 걸 보니 큰일은 아니었나 보다.
태어나서 오늘만큼이나 율리시스가 반가운 적이 없었다.
물론 그의 안위도 걱정이었지만, 자신의 목숨도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약간은 이런 마음도 섞여 있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성하. 멀쩡히 계셔 줘서 감사해요. 열은 없으시죠? 감기나, 으슬으슬한다든가요.”
요이델은 너무 추워서 코를 훌쩍였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히 바라봤다.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그의 혈통에 두 번째로 감사하게 되는 날이었다.
첫 번째는 그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던 페어링. 두 번째는 오늘.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골짜기에 떨어진 건 맞았다.
위에서 볼 땐 엄청 어둡고 아득했는데 막상 내려오니 새벽 정도의 어두움이라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좁은 곳도 아니었고.
“아, 그런데 어쩌다 팔을 다치셨던 거예요? 여기는 왜 계시고요?”
“…….”
“성하?”
말이 없어진 그를 살짝 올려 보다가 눈을 도르르 굴렸다. 아, 손을 잡아 버렸구나! 그는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두드러기가 나니까.
예상대로 율리시스는 맞잡은 손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앗, 죄송해요.”
손깍지를 빼려던 순간, 강한 힘에 도로 손이 꽉 붙잡혔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을 바라보다 조용한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따갑다 했더니 역시나 당신의 독단적인 행동 탓이었군요. 많이 긁혔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아, 그래서였구나. 깜짝 놀랐네.
“알지만 늦으면 성하께서 더 크게 다치고 길을 헤매실까 봐……. 그때는 몰랐어요.”
“압니다. 하지만 그대에게 찾아 달라 명한 적 없습니다.”
율리시스는 담담히 내뱉으며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하지만 빠른 판단은 훌륭했습니다. 그대의 생각이 맞아 들었으니.”
“네?”
“팔에 부상을 입었던 건 맞습니다. 요이델 님의 판단으로 무던히 회복한 것도 사실이고.”
그는 병을 주다 약을 주고 제 할 말만 해 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이야. 요이델은 괜히 손을 만지작거리다 눈을 크게 떴다.
손의 흉터가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또 하나, 위기가 닥친 것도 맞습니다.”
그는 눈발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차분히 쓸어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왜요?”
팔짱을 끼고 딱딱한 바위에 몸을 기댄 그의 모습이 어딘지 수상해 보였다.
혹시 지금 꽤 곤란한 상황이라거나…… 아니겠지? 그럴 리가.
요이델은 아닐 거라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바라봤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아니잖아, 그쵸?
정처 없이 먼 곳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천천히 요이델을 향해 맞춰졌다.
전례 없이 상냥한 미소를 짓고서.
아, 설마.
“팔을 다친 이유는 잠시 방심해서입니다. 이곳에 다른 손님들이 있더군요.”
“손님이라면…… 그보다 성하의 힘에는 상대가 안 되지 않나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율리시스는 자신의 손을 펴 보였다.
“힘에 제약이 생겼습니다.”
“……네?”
“이곳에서 나갈 방도도 모르겠고.”
“……그래도 괜찮아요!”
순간 배낭의 존재가 생각났다.
요이델은 씩씩하게 배낭에서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그럴 것 같아서 이동 마법 아티팩트를 가져왔어요. 이걸 두드려서 이렇게 발동시키면…….”
툭툭.
반응이 없다.
요이델은 소름 끼치는 무서움에 현실을 부정하며 재차 아티팩트를 두드렸다.
이게 왜 이러지? 고장 났을 리가 없는데. 이봐, 야!
미친 사람처럼 아티팩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 율리시스가 딱한 듯 혀를 찼다.
“일정 이상의 신성력 사용이 제한된 듯합니다.”
“그, 그 말은 설마…….”
“기약 없이 기다려야겠군요.”
안 돼!
━━━━⊱⋆⊰━━━━
요이델만 두고 돌아온 휘스테론은 괴로움에 버둥거렸다. 명색이 호위기사인데, 요이델부터 잘 챙겼어야 하는 건데.
“눈보라가 거세져. 할멈, 이거 그냥 기상 이변이 아닌 거 맞지? 어떡해, 할멈, 악!”
예의 없는 언사에 휘스테론은 입을 콱 꼬집혔다. 그러나 마르셀리나도 휘스테론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건방진 주둥이.”
“퉤, 델을 찾아야 한다고! 이거 풀어!”
호호 웃으며 손에 불끈 힘을 주던 마르셀리나는 막사 밖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기상 이변은 아니지만 제국의 기운과도 다르단다. 섞여 있지만 달라.”
“아, 아파. 근데 할멈도 모르면 누가 알아. 하일 할아범이라도 있으면 몰라. 정말 다들 어디 갔는데?”
다시 한번 입을 꼬집으려던 찰나.
달칵, 문이 열리고 굳은 얼굴의 기사단장이 그녀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분부하신 대로 협곡을 살펴보니, 상층부에 성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요이델 신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상 이변의 이유는?”
“협곡 내부에서 추측 불가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근처에서 이런 걸 발견하긴 했습니다.”
“외부의 소행이군.”
“그렇습니다.”
기사단장이 건넨 건 요이델이 뽑았던 나무 말뚝이었다. 얼핏 보면 흔한 말뚝이었으나, 밑부분을 자세히 보면 달랐다.
성국은 겨울을 제외하곤 계절에 따른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말뚝은 나이테가 선명했다.
이 땅에서 자란 나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삼 대륙 중 기후의 변화가 가장 뚜렷한 곳은 수십 개의 나라가 있는 지상 대륙, 브리칼트 제국이 속한 땅이었다.
‘가장 좋은 건 성하와 요이델 양이 함께 있는 것. 그다음은 각자 안전한 곳에 잘 있는 것이지만. 최악은…….’
그녀는 기사를 돌아보았다.
“말뚝은 보관하고 제1, 제2 기사단은 철수한다. 이 기후에 강행을 했다간 병력만 잃을 뿐이야. 성하의 신변에 대한 발설은 금지. 우리가 찾는 사람은 대외적으론 요이델 신관 한 명이 되어야 한다.”
제국의 말뚝이 있다는 건 외부 혹은 내부에 적이 있다는 뜻.
“눈발이 잦아들면 수색을 재개한다.”
“알겠습니다.”
마르셀리나는 스스로에게 변장 마법을 걸었다.
은발에 푸른 눈, 특유의 표정과 손짓. 율리시스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녀의 특기인 이 마법은, 보다 상급자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근데 지오르베니 할아범은 출장을 어디까지 보낸 거야. 저승에 보냈어? 원로 삼 인방이 아니라 할멈만 일하네.”
“그는 성하의 뜻에 따라 공무를 수행하러 사라지잖니.”
“수상해. 제일 이상해, 그 할아범.”
휘스테론은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묶인 손목과 의자에 묶인 몸을 덜그럭거리며 불만을 터뜨렸다.
요이델은 수련신관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으니 협곡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필요한 마법을 쓰는 것도 서투를 수 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그렇지 않다. 그 점이 불안했다.
아직 큰 파동은 느껴지지 않으니 죽은 건 아니겠지만…… 게다가 신수도 가만히 있고.
“꿍.”
“신수님, 할 일을 해 봐. 뭔가 대단한 소환 마법이라든가 추적 마법, 그런 건 못 하는 거야?”
“꾸잉.”
“신수님께 말을 삼가라, 휘스테론.”
직설적인 그의 말에 플로테스는 시무룩하게 몸을 말았다.
졸았다 눈을 뜨니 요이델이 없어서 상심한 건 플로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꾸우우우…….”
플로테스는 마찬가지로 포박당한 라이오스에게 뽈뽈 다가가 안겼다.
그는 의외로 능숙하게 신수를 위로해 주었다.
휘스테론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질풍이 너무 심하다. 날은 어둡고, 요이델은 어둠에 대한 공포가 있지.
“요이델은 어두운 곳에 혼자 있으면 울고 말 거라고. 아, 델. 대체 어디 있어? 그 다람쥐 같은 애가. 차라리 성하를 찾아서 눈밭에서라도 만났으면 다행인데.”
휘스테론은 포박된 손을 단숨에 풀었다. 그는 가뿐히 손을 털었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차라리 붙어 있는 게 낫지, 그 추위에. 그럼 생존 확률이라도 좀 올라가잖아.”
“…….”
“아무튼 걱정이다.”
연무장에서 요이델이 쓰러졌던 그날, 휘스와 라이도 적잖이 놀랐었다.
하물며 이런 날씨에 협곡이고, 지금은 밤이다.
이런 때에 홀로 있다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목숨이 위험해진다.
“아, 델. 너무 울고 있지 않아야 할 텐데. 좀만 기다려, 금방 찾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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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성하! 불 다 피웠어요!”
요이델은 다람쥐처럼 잽싸게 움직여 소량의 아티팩트로 불씨를 지피고 모닥불을 피웠다.
타닥, 작은 불똥이 튀기 시작한 주홍색 빛 앞에 쪼그려 앉고 안도 섞인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모든 동선을 망연히 지켜보던 율리시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하, 괜찮으시면 저기 가서 젖지 않은 나뭇가지들 좀 모아 와 주시겠어요? 빨리요.”
“…….”
“성하?”
“요이델 님, 대체 정체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