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2)
52화
그의 심사는 여러모로 비비 꼬여 있었다.
도대체 이 밤톨만 한 신관은 어딜 굴러다니길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대광장에서 기운이 느껴진 건 착각인가.’
오판일 가능성이 컸다. 대광장의 인파는 대단한데, 거기서 어떻게 요이델 개인의 기척을 읽어 낼 수 있겠는가. 일부러 특정한다면 가능했겠지만 그는 휴가를 가 버린 신관을 굳이 찾아낼 마음은 없었다.
율리시스는 본인이 휴가 허가를 내 주었으면서도 몹시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제좌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꾸웅, 꾸, 무웅.”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플로테스의 마음도 같았다. 요이델의 곁에서는 동그랗고 예쁘게 빛나던 금색 눈이 그와 단둘이 있으면 뾰족하게 뜨였다.
율리시스는 신수를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아아, 저 동물님이 바로 신수님……!”
“과연 성하께서는 작디작은 신수님께도 다정하신 눈빛을 보여 주시는군. 사이가 참 좋아 보이셔.”
은발의 미남과 은백색의 신수. 지켜보기 황홀한 광경에 모두들 감읍했다. 그러나 둘의 상황은 달랐다.
“저도 당신이 소중해서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니 그리 원망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주인은 혼자 노는 것이 더 중한가 봅니다.”
“꾸!”
앙.
약이 잔뜩 오른 플로테스는 그의 손가락을 물어 버렸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기별도 안 간다는 듯 은은하게 웃어넘겼다.
플로테스는 아직 어려서 치아가 더 많이 났다고 한들, 딱히 아프지도 않았다.
플로테스는 신수들에게 받아 온 신수의 보석에서 선대들의 지식을 흡수했다. 그래서 더 이상 꾸벅꾸벅 졸지도 않았고, 이전보다 조금은 영특해졌다.
이후 신수의 보석은 쓸모를 다한 신성한 보석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가치였다. 보석은 신수의 결정답게 깨끗하고 강력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런데 이 신수는 거기서 뭘 배운 건지 날이 갈수록 건방져졌다.
“신수님께서 이 몸을 물으시면 당신의 주인께도 상처가 남습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꾸? 꾸우우.”
플로테스는 앙다문 치아를 서서히 벌렸다.
그 모습을 보며 율리시스는 코웃음을 쳤다. 작은 신수의 맹렬한 째림 따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법 말귀를 알아들으십니다.”
“헉, 신수님이! 성하의 손을!”
“아프실 텐데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시는군.”
“역시 성하께서는 인내가 깊으셔.”
그는 자신을 우러러보는 이들을 보며 상냥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플로테스는 조용히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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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피곤하군.’
일이 년 해 온 축제가 아닌지라 원래의 기획을 수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도 요이델이 축제 기간을 줄이자고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냥대회는 각개 전이니 불필요한 만남을 줄여도 되어 썩 나쁘지 않다.’
나라를 아끼는 것과 별개로, 의외로 그는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실정에서 이른 저녁부터 밤까지 국민들에게 얼굴을 내비쳐야 하는 이런 축제는 상당히 피로했다. 그는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인파가 많은 날은, 잠행하여 그가 몸소 파악하기 어려운 성국의 세태를 보다 평범한 성국민의 입장에서 편히 살피기에 적합했다.
대알현장에서의 일이 끝난 이후, 그는 쉬지 않고 곧장 잠행에 돌입했다.
신관복이 아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신관복을 입은 모습만 보이기도 했고, 사람들은 의외로 사소한 변화로도 동일 인물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봤어?”
“저 남자 말하는 거지?”
하지만 화려한 외형은 숨겨지지 않았다. 키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서 눈에 띄는 터라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아봤다.
이번에도 무리인가. 율리시스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사서 썼다.
이제야 이목이 끌리지 않았다. 축제 날 가면을 구입하여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으니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가면에 더해, 대부분 작은 종이를 손에 지니고 있었다.
그건 소원 종이로, 성국 특유의 전통이었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어린 나무에 매단 뒤에 절반은 찢어서 보관한다.
그리고 추후에 열리는 축제 날에, 그 반쪽 종이를 들고 옛날에 적어 놨던 소원 종이와 맞춰 나무의 성장을 보는 것이다.
그 특별한 소원 나무들은 사람들의 희망과 꿈, 행복을 먹고 자란다.
성국에 유난히 녹색 지대가 많은 건, 이렇게 묘목을 키워 옮긴 후 숲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율리시스는 소원 나무 구역을 눈으로 천천히 살폈다.
소원 나무는 반딧불이처럼 은은한 생명의 빛을 뽐냈다. 즐비한 연두색 빛들로 인해 조명 없이도 길이 밝았다.
휘이잉―
그런데 그때 문득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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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모습으로 나가도 될까요?”
“이런 게 어떤 거죠, 요이델 양? 이 마르셀리나의 눈에는 작은 천사가 한 명 보이는데, 그걸 말하나요?”
약 다섯 시간 전 거울 앞, 요이델은 곤란함에 눈을 굴렸다.
자신만 믿으라던 마르셀리나는 그 약속을 확실히 지켰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잘 어울려요. 어쩜, 귀여워라. 성하랑 마주친다고 해도 못 알아볼 게 분명하다니까요?”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것뿐인데 꼭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머리는 푸른 리본으로 반을 묶었고, 리본과 같은 색의 예쁜 푸른 드레스는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길이라 걷기 불편하지 않았다.
요이델이 조심스레 하일에게 선물받은 로브를 뒤집어쓰자, 마르셀리나는 망토를 휙 집어 던져 버렸다.
“위험하다 싶으면 로브에 넣어 놓은 걸 이용해 보아요. 칙칙하게 뒤집어쓰지 말고.”
“하지만…….”
“고대했던 축제예요, 요이델 양. 걱정 말고 나가서 오늘 밤을 실컷 즐기세요. 때로는 삶을 즐기는 것도 배워야 해요.”
그녀의 말은 진짜였다.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우와…… 모두 다른 곳을 보느라 바쁘고 즐거워서 그런가 봐. 와, 우와……!’
요이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뺨에 기쁜 홍조가 피어났다.
용기 내어 나온 광장엔 수천,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귀여운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한복판에서 춤을 추더라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 풍경에 머리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퍽!
그 순간, 신관복을 입은 남자와 몸이 부딪쳤다.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수련신관 시절. 내게 간식을 나눠 주었던 사람.
얼굴을 정면으로 봤을 텐데! 황급히 고개를 숙이던 찰나.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요이델이 놀라서 고개만 젓자 그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즐거운 축제 날, 주신의 축복 속에 안온한 날 보내시기를.”
고개를 숙이곤 아무렇지 않게 가 버렸다.
얼굴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는 기색이라거나 ‘요이델?’ 같은 물음을 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알아보지 못한 거야?’
기쁨에 광대가 마구 솟을 것 같았다.
자신감을 얻은 요이델은 축제를 당당히 돌아다녔다.
창공 대륙의 보호막 강화로 인해 만들어진 특별한 하얀 밤. 시간은 밤이지만 풍경은 밝은 간극이 이상하고도 아름다웠다.
그 하늘을 수놓은 등불들도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움직이는 멋진 날이었다.
요이델은 들뜬 기분을 만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국의 대광장을 채운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한 인파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넓었었구나!’
신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짧게 나왔던 때와는 전혀 다른 황홀함이었다.
요이델은 휘스테론이 알려 준 노점의 고기 꼬치를 뜯으며 저 멀리 있는 대신전을 바라보았다.
대광장에서는 아득히 멀었지만, 그래도 저 너머로 조그맣게 보이긴 했다.
성국 수도의 상징인 대신전과 그 뒤의 성궁.
은은한 상앗빛을 뽐내는 성궁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늘 저곳에서만 지내서 저렇게까지 거대한 곳인 줄 몰랐어.’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늘 지낼 곳이라는 게, 꼭 자신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져서.
그런 기분은 생소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랐던 곳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서, 성인이 되면 나가서 자립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도, 아니 이미 됐지만 등 떠밀리듯 나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 생겼다.
저기가 자신의 집인 것이다.
“아, 성하다.”
그 순간 귀가 멍해질 듯한 함성이 들렸다. 요이델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조금 헤벌렸다.
‘다들 엄청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일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참, 여기 사람이 몇 명인데.’
그럴 리가 없지.
과도한 생각에 머쓱해진 요이델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힐끔 돌아보았다.
오늘의 그는 평소와도 차림이 완전히 달랐다. 평상복도 멋지지만, 차원을 달리하는 화려함이었다. 금색, 은색으로 장식된 옷과 아래로 떨어지는 긴 망토.
무겁지 않되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하얗고 두터우며 결이 좋은 털 망토는 그의 건장한 체격을 한눈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성황의 관과 상체를 가로지르는 휘장까지. 가뜩이나 반짝이는 외모가 눈부시기까지 했다. 거기엔 플로테스도 함께 있었다.
그때 요이델은 손에서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앗. 또 플로가 성하를 물어 버렸구나.’
요이델은 이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곧장 입을 뗐는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이제 소원 나무에 가서 소원을 빌고 돌아가 볼까.’
축제는 즐거웠지만, 사냥대회 때의 사건으로 인해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그리고 왜인지 홀로 있으니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모두와 함께 오면 더 기억에 남았을 텐데.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10년 후에 또 오면 되니까.’
저절로 먼 미래를 그리는 자신을 깨닫고 조금 놀랐다가, 곧 웃었다.
‘성하께서도 그때보다 훨씬 상냥해지셨어. 진짜 남자주인공처럼.’
물론 ‘그때’라고 한다면 피를 뒤집어쓰고 검을 들이대던 때라,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는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보통의 사람은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 않으니까. 아니, 평생토록 그런 모습을 볼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것 또한…….
‘성하의 일이었을까?’
요이델은 그때 그가 왜 지하 비밀공간에서 그런 일을 벌이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으므로.
물론 요이델이 모르는 곳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나, 율리시스는 그런 모습까지 요이델에게 보여 주진 않았다.
‘아! 소원 나무!’
꼬치를 세 개는 더 사 먹은 요이델은 불룩해진 배에 살짝 힘을 주고 소원 나무 숲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율리시스를 정면으로 마주친 요이델은 허수아비처럼 굳어 버렸다.
‘……나, 얼굴은 그대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