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율리시스의 태연한 태도와 달리, 대회의에서 발언하게 된 것은 요이델과는 협의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학술원?”
회의장이 소란으로 술렁였다.
요이델은 배신감에 주먹을 쥐고 그를 쳐다봤다.
이 의견이 오간 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학술원을 만들면 어떨까요?’
‘게르암의 사유지였던 그곳에 말입니까.’
‘네. 각 나라에 퍼져 있으니 분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소유권을 그냥 넘기기에는 성국의 손해가 크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다른 이익을 얻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이익이라면,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사람이요. 성국은 앞으로를 유지해 갈 인재가 필요해요. 현재 신관의 발굴 숫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과거 제 포악함에도 불구하고…… 저를 내쫓지 않으신 것도, 신관의 숫자가 줄어들어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
요이델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저희는 인재를 더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땅에서, 더 많은 사람을요. 학술원이 세워지면 많은 사람, 많은 정보가 들어올 거예요. 그 과정에서 어쩌면―’
한 번 손을 꼼지락한 후 율리시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메디아가 찾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저희가 먼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타국의 일입니다. 교역로를 닫았다 한들, 성국이 찾아 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율리시스는 일부러 요이델의 의중을 떠봤다.
확실히 흥미롭다. 자신의 시선만 받아도 움찔 떨던 신관이 이제는 굴하지 않고 제법 똑똑히 제 뜻을 말한다.
‘메디아와 협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브리칼트는 성국을 견제해요. 하지만 메디아와 긴밀하지도 못하죠. 그래도 브리칼트는 겉으로라도 성국보다는 메디아에게 몸을 낮추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할 거예요.’
‘왜?’
‘메디아는, 황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대륙이 아니니까요.’
성국이 창공 대륙에 있다는 점은 브리칼트의 황제가 발악하는 태생적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교역로가 열려 있던 시절, 메디아와 성국은 원활한 무역을 했어요. 하지만 급하게 문을 닫아 저희 쪽에 타격이 컸지요. 만일 그들이 찾는 걸 저희가 먼저 찾아 협상한다면, 유리한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 거예요. 과거의 일까지 더해서요.’
가만히 말을 듣던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말 중 의아한 부분을 짚었다.
‘요이델 님은 메디아가 왜 폐쇄적인 상태로 돌입했는지 아시는 듯 들립니다.’
‘소문을 들었어요. 보물을 잃어버렸다고요.’
‘보물이라…….’
‘보통 보물은 간직하려고 하거나, 잃어버리면 막대한 사례를 주고서라도 찾으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메디아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메디아가 잃어버린 건,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사람. 율리시스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썹을 찡그리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근거는 있습니까.’
‘네. 그리고 메디아와 친해져야 저희의 관계도 풀 수 있을 거예요. 페어링이라는 마법은 메디아에서 시작된 거니까, 분명히 그쪽은 방법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마지막 말에 율리시스는 어딘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곧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의에서 말해 보겠다고 의견을 올려 보라고 한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 말해 보겠다는 게, 내가 직접 말하라는 거였어?’
요이델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는 그런 언질을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 좋은 생각이라고 독려했을 뿐.
요이델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율리시스는 고개를 살짝 틀곤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이 나쁜 사람.’
심장이 쿵쾅 뛰었다.
“하오나 성하, 현재 각 나라에 학술원이 존재하는데 저희까지 교육에 뛰어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성국 내 새로운 신관들의 교육은 대신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반 성국민들도 관할 기관에서 교육합니다. 천 년이 넘은 전통이며, 성하께서 직접 채택하신 방식 아니셨습니까.”
신관들은 의아함에 말을 얹었다.
저마다 생각이 달라 소란으로 웅성거렸으나, 율리시스만은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그렇습니다. 성국엔 학술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발의자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차분히 의견을 듣던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향해 눈짓했다. 무언의 압박이었다.
탕탕.
의장이 봉을 두드리고, 산드로도 눈치껏 술렁임을 잠재웠다.
“성하의 말씀대로, 발의자께서는 의안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보충해 주십시오.”
“누구의 의견이지?”
“학술원이라니 신기하군.”
축제를 준비했을 때부터 게르암의 사유지를 보며 생각해 왔던 것.
너무 많은 주목에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요이델은 손을 들었다.
대회의장에 앉은 수많은 신관들의 눈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발언하십시오, 요이델 신관.”
산드로는 예상 밖 인물의 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요이델 신관의 본관은 요보힐데 아닌가? 그 브리칼트 제국 출신, 게르암의 친척.”
“쉿.”
여전히 요이델을 수상쩍게 보는 시선들도 있었다.
요이델은 자신을 향해 꽂히는 의심을 충분히 인지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학술원은 일반적인 학교가 아니에요. 신관을 양성하기 위한 학습의 장소임과 동시에, 치료소의 성격을 띤 교육 기관이죠.”
“성국은 가장 많은 수의 신관을 보유하고 있소. 굳이 신관을 양성해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네만.”
역시 설득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이델도 굴하지 않았다.
“말씀해 주신대로 성국은 신관들의 최고의 이상향이에요. 하지만 신성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성국에 있는 건 아니에요. 다양한 신성 능력자들이 세상에 퍼져 있죠.”
유일신인 주신 시엘로를 믿는 건 같았으나 교단이 다르거나, 성국의 신전이 되는 게 어려워서 등의 이유였다.
대신전의 신관들은 보다 엄선하여 뽑았으므로.
“현재는 성국의 신관이 많지만, 해마다 새로운 신관이 발탁되는 일이 적어지고 있어요.”
신성력이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내려면 부모가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생업에 급급한 이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생각이 있다고 해도 당장의 생계가 급해 아이에게 투자를 하지 못한다.
“그건 그렇지만, 아직은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네. 신성력을 갈고닦을수록 수명이 길어지니까 인력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현직의 신관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니 인력 유지는 아직 괜찮다고 보네만.”
“말씀하신 대로 아직일 뿐이에요. 아직이라는 단어에는 충분히 도래할 수 있는 미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시지 않나요?”
“크흠…….”
이 세계에서 신성력이란 타고나는 것이었다. 성국이라 해도 모든 성국민들이 신성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성국 전체 인구로 따졌을 때는 2할 정도가 신관이었다. 이것도 무척 많은 수치였다.
나머지 8할은 모두 평범한 성국민들이었다.
다행히 신성력을 갈고닦을수록 수명이 길어져 신관의 규모는 비슷하게 유지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신규 신관의 수가 줄어드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리고 원작에서 나중에 등장하게 될 게 바로 브리칼트의 학술원.
“문제가 일어난 다음에 대책을 세우면 늦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워낙 낙관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성국은 율리시스에 의해 건국 이후 늘 평화를 유지했으므로.
“선택받은 힘이기에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선택받을 수 있으니까요. 성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한 명의 신관이라도 더 확보해야 합니다.”
그때 요이델의 말에 의문을 가진 신관 하나가 손을 들었다.
“신관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오만. 누가 대신전에 오르는 영광을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간단 말이오?”
그게 브리칼트의 학술원이 될 거다.
브리칼트는 과거 메디아가 폐쇄된 이후 떠도는 마법사를 흡수하여 학술원을 만들었으나,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성국엔 있으나 브리칼트에는 거의 없는 것. 그것 중 가장 상징성이 큰 게 바로 신관의 존재였으니까.
하나를 가졌으니 하나를 더 갖고 싶어 했다.
수많은 자본을 퍼부어 성국의 신관을 조금씩 빼돌렸다. 그건 따지자면 대륙 간 조약을 어기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성공했지.’
브리칼트는 공격적으로 인재를 색출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웬만한 귀족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영재 혹은 천재이길 바라며 신전에 데려가 성력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나 형펀이 안 되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식량 배급을 이용해서 가난한 아이들 중 신성력을 가진 아이들을 데려갔어.’
배곯는 아이들에게 빵과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면서 인재를 파악했다.
그리고 개중 자질이 보이는 아이는 학술원으로 데려가 훌륭한 신관으로 양성.
그리고 양성하거나 돈으로 끌어들인 신관들을 대륙 곳곳에 파견하여, 주로 성국의 일이었던 치료와 봉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한다.
선의를 떨침으로써 인식도 개선하고, 같은 지상 대륙에 있다는 이점을 활용해 성국을 점차 밀어낸다.
이 세계는 주신이 유일신이었지만 브리칼트 내에서 또 다른 체계를 만들어, 같은 주신을 믿되 서서히 사람들을 성국의 영향권에서 멀어져 가게 한다.
그렇게 기반을 만들어 지상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고 종국에는 성국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게 그들의 목표일 거다.
‘이상함을 눈치챈 뒤에 하면 늦어.’
그러나 그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는 일.
“……성국 팔라디움의 신조는 자비와 자애, 빛의 변두리에 있는 이들에게도 온정을 미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성국에 대한 자부심을 들먹이며 그런 위기가 있겠냐고 반문한다면, 똑같이 성국으로 받아치는 수밖에.
요이델은 자신감 있게 웃었다.
마치 자신도 성국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처럼.
“지도신관님께 배웠던 훌륭한 가르침이었죠.”
“흐흠!”
초급 시절 요이델을 지도했던 신관 코엘은 입을 가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대신전은 최고의 신성 기관인 만큼 다른 곳으로 갈 이들은 없으리란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게르암이 남기고 간 땅이 있고, 그건 지상 대륙의 각 나라에 퍼져 있죠.”
게르암이 사 들인 땅이 문제라 이런 회의까지 열게 된 것 아닌가.
“하지만 요이델 신관, 타국이 자신의 땅에 남의 학술원을 세우는 걸 허가할 것 같은가?”
“그렇지. 각 대륙끼리 맺은 조약으로 인해 자칫하면 침략으로 간주할 수 있네.”
“지상 대륙은 문맹률이 높아요. 글을 읽을 수 없는 건 일상 속에서 많은 불편을 초래해요. 기본적인 생활조차 보장이 되지 않겠죠. 평민은 더 힘들고, 빈민은 늘어날 테니까요. 나라의 기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힘을 써야 해요. 이걸 그들도 알고 있을 거예요.”
모든 국민에게 신경을 쏟을 수 없는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밝혀지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땅도 있고.
브리칼트 제국은 지상 대륙에서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나라들을 우방국으로 우선 포섭했다.
그 외에는 눈 밖이거나 들러리 취급했다.
시기상으로 지금쯤이면 한창 학술원 계획을 세울 때일 거다.
모든 걸 어그러뜨려 좌절감을 주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학술원의 시발지는 어디로 생각하는가?”
“지상 대륙의 산맥 쪽. 라보르비치 왕국 주위의 나라들이에요.”
“거긴…… 너무 척박하지 않나? 아무리 좋은 목적의 학술원이라지만 사람이 오지도 않을 것 같군. 게다가 라보르비치라면 왕위 계승 문제로 한창 내란이 있지 않은가. 썩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하네만.”
몰라서 하는 말이다.
라보르비치는 브리칼트의 우방국이지만, 철저한 상하 관계로 묶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주신을 믿는 국민이 제일 많은 나라죠.”
‘지금은 부와 거리가 멀지만, 원작에선 나중에 상당량의 매장 광물이 발견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브리칼트는 옛날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선을 베푸는 척 대단한 광물을 쓰레기인 양 헐값에 사 가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라보르비치는 푼돈을 쥐여 주며 생색내는 브리칼트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고.
‘그런데 브리칼트가 라보르비치의 땅을 어떻게 파헤쳐 본 거지?’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내란으로 혼란스러운 지금, 라보르비치를 브리칼트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브리칼트가 세력을 넓힐 수 없도록.
“성국은 지리상 타국과의 교류가 적었던 만큼, 이번 학술원 소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죄인 게르암이 성국의 신관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쉽게 땅을 살 수 있었던 만큼이요.”
요이델은 일부러 죄인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크흠.”
요이델과 브리칼트 제국의 유기성을 의심하던 몇 신관들은 멋쩍게 기침했다.
“기존 학술원들은 학비가 비싸고 웬만한 귀족들의 후원이 없으면 접근조차 할 수 없죠. 적어도 상인 계층의 자본력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성국의 학술원은 평민들을 위한 학술원이 될 거예요.”
“아니, 어째서…….”
“그게 신관이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에 대한 박애니까요.”
요이델은 침착하게 말했다.
“대륙을 막론하고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신관이셨던, 카렐리아 초대 대원로 예하 역시 빈민 출신이셨다는 점은 수련신관의 교육 때 늘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죠.”
“그, 그건 그렇지, 동화로도 나와 대륙에 모르는 이가 없으니.”
“학술원은 그 뜻을 계승할 겁니다.”
브리칼트는 마법사와 귀족, 상위 계층을 선호한다. 아직은 그들의 눈이 빈민가에까지 닿지 않을 시기이다. 평민 신관을 발굴하자는 치명적인 계획은 시간이 더 지나야 나올 것이다.
“비용을 전부 감수할 수는 없어요. 학술원은 각 나라와의 연합으로 만들어져야겠죠.”
“그렇지. 땅의 소유 문제도 있고.”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요. 저희는 보다 장기적인 인재 발굴에 총력을 다해야겠죠. 학술원 출신의 인재는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은 반드시 성국에서 일해야 하는 등 조건도 필요할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브리칼트를 무시하고 성국의 손을 잡긴 힘들지 않겠나?”
“저희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공통점이라면? 아.”
“……종교로군.”
삼 대륙의 국가들은 대부분 주신을 믿는다.
그렇기에 성국이 창공 대륙일지언정 어디에나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거고.
‘심장이 떨려.’
말을 마친 요이델은 긴장을 탁, 풀고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린 바로 그때, 율리시스의 미소를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아주 작게 잘했다고 끄덕이며.
요이델도 기쁘게 따라 웃었다.
“학술원이라…….”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방안이었다.
시끄럽던 대회의장 안에는 온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광명을 찾은 듯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