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전부 실패라니…… 젠장.”
요보힐데 공작은 손톱을 짓씹었다.
황제가 불같은 성정을 떨치며 그를 책문할 것은 불 보듯 훤한 일.
‘살아 있는 게 여자아이 쪽이라는 사실을 황제에게 말해서는 안 돼. 하지만 대신전에 가장 타격을 입힐 방법은 그것뿐.’
한편 초조함이 숨통을 조여 왔다.
‘성국에서 내쫓기면 데려와 없앨 작정이었더니. 그마저도 실패군.’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절대 메디아의 문이 열리게 둬서는 안 된다.
과거 교역로가 닫힌 게 그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 성국이 지상 대륙에 학술원을 세울 계획을 펼치고 있다.
‘빌어먹게도, 지상 대륙의 학술원이 성공한다면 다른 대륙에까지 진출을 노릴 수 있겠지.’
메디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고는 해도, 뛰어난 정보력으로 듣는 귀는 열려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기랄, 차라리 안 들켜서 다행인지도 모르겠군. 그 아이의 곁에 메디아 출신의 성기사들이 붙어 있다니!’
문득 불안에 시달렸다. 물어뜯은 손톱 끝에서 피가 흘렀다.
성황이 하필이면 메디아 출신 성기사를 발탁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쨌든 요이델을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성황과 가까이 있는 상황은 더욱 위험하다. 그가 평생 여자를 곁에 들인 적 없다고는 하나, 미래는 모르는 일이었다.
과거 그를 직접 알현했을 때 느낀 압도적 위압감, 그리고 묘한 불길함.
일개 신관을 그가 그리 신경 쓸 이유가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도대체 성황은 아는가, 모르는가!
‘젠장, 무슨 이따위 상황이 다 있나.’
쾅!
“성국이 먼저 학술원을 준비하다니.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 아닌가!”
황제는 극도의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브리칼트 제국, 황궁 내부의 분위기는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위태롭게 얼어붙었다.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요보힐데 공작을 바라보았다.
“학술원 계획은 폐기해야겠군.”
“자네의 아들이 주도했다는데, 요보힐데 공작. 자네가 뭔가 한 것 아니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공작은 연이은 실패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자식을 데려오는 것도 처참히 실패.
보낸 마법사도 모두 잃었다. 아무리 하급 마법사라고 해도 인력 손실은 큰 타격이었다.
‘그나마 입단속은 해서 다행이지.’
자결 마법을 걸어 놓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줄줄 불면 곤란했으니까.
그런데 가장 많은 걸 불 수 있는 요이델은 어떻게 해도 죽이기 곤란했다.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요보힐데 공작은 초조함에 손을 뜯었다.
브리칼트의 고위 귀족들은 자신을 견제했고, 황제는 지금 한배를 타고 있다곤 하나 완전히 자신의 편을 들어 주리라고 보긴 힘들었다.
‘제길.’
학술원의 건립을 통해 브리칼트가 얻으려던 건 단순히 신관의 확보뿐만이 아니었다.
더 큰 세력.
‘메디아마저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
브리칼트에게는 그게 필요했다.
그런데 성국의 첩자를 통해 알아보길, 성국의 최종 목적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우리 제국의 우방국을 끌어들이려는 게 목적일 겁니다.”
“중립국부터 끌어들이겠지. 성국이 브리칼트를 어지간히 견제하나 봅니다, 폐하. 하하하…….”
“지금 웃음이 나오나.”
황제의 정색에 다른 귀족들도 싹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요보힐데 공작의 생각은 달랐다.
단순히 그게 아니다.
인재의 발굴. 그것까지는 브리칼트와 똑같았다. 그러나 성국으로서는 현재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지상 대륙의 나라 몇 개를 합치더라도 성국의 수도 위용 하나만 못했다.
‘그 너머의 세력을 노리고 있다.’
그건 아마도 메디아.
성국에서 메디아가 교역로를 닫은 이유를 눈치챈다면 머잖아 파멸이다.
다행히 아직 잠잠한 것을 보아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으나……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
‘성국에서 이번 학술원 계획이 성공한다면, 메디아의 귀에까지 들어가겠지. 교역로를 닫았다뿐이지 소식통은 열려 있을 테니.’
성국이 학술원을 계획하면서 표면상으로는 선행을 이유로 내걸었다지만, 가장 먼저 준비한 건 바로 인재를 끌어모을 체계의 구성이었다.
혈액에 녹은 타고난 신성력의 농도를 측정하는 아티팩트도 개발됐다고 들었다.
이건 요보힐데 공작과 황제 둘만이 아는 내부 기밀이었다.
게다가 성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 영향을 떨친 대신관 카렐리아의 뜻을 계승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대륙 각지에 퍼진 학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들이 선생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건립되지 않은 학술원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수많은 정보가 성국으로 모인다.’
다른 이들이 알지는 못할 비밀이지만, 집단의 힘이 모인다면 ‘그 일’이 발각될 수도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메디아가 잠자코 있는 게 힘이 없어서가 아님을 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단 말인가.’
공작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세게 물어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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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의뿐만 아니라 정기 회의도 체력이 많이 필요하네요.”
요이델은 대회의 이후, 정기적으로 열리는 간단한 회의에도 매번 참석해야 했다.
“성하, 며칠 전에 손을 다치셨던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갑자기 통증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늦은 밤이었는데, 잠에서 깰 정도로 아팠다.
잘못 봤나 싶어서 손을 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불에 핏자국이 묻어 나와 라나가 놀랐었다.
“걱정은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그 전에 본인의 소지품부터 챙기시는 게 어떨지.”
“소지품이요?”
“이것.”
“앗!”
제 옷에 달려 있던 고위신관 뱃지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에 가 있었다.
언제 잃어버렸지?
은색으로 반짝 빛나는 뱃지는 주인을 버리고 더 넓은 품에서 빛을 발했다.
‘아까 떨어뜨렸나 봐. 하필이면 왜 거기 있니?’
사고 회로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율리시스는 다시 돌아와 요이델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는 요이델의 옷에 직접 뱃지를 달아 주었다.
부드럽게 감은 눈이 자신의 턱 아래로 다가왔다.
“흐읍.”
요이델은 될 수 있는 한 힘껏 숨을 참았다.
“제가 직접 달아 드리는 영광을 두 번이나 누리시지는 않길 바라겠습니다.”
“푸하!”
핀이 채워지고 그가 일어서자, 요이델은 참았던 숨을 크게 뱉어 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숨도 너무 참아서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다.
요이델은 그의 긴 머리카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하, 머리를 묶어 드릴까요?”
그의 맞은편에서 지도를 정리하던 요이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율리시스는 상냥하게 웃었다.
“아니요.”
“네.”
단칼의 거절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눈치를 못 채셨구나. 다행이야.’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며칠이 지났지만, 율리시스가 특별히 제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의 집무실로 돌아온 요이델은 지도를 펼치고 학술원의 위치를 가늠하다가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혹시 성하께서는 머리카락에도 신성력을 담고 계신 거예요?”
“그게 이제야 비로소 궁금해지셨습니까.”
“아, 아뇨. 처음부터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신성력이 담겨서 기르고 계신 거예요?”
원작에서도 딱히 나오지는 않았는데.
그는 생긋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그리고 싸늘히 얼굴을 굳혀 책상을 두드렸다.
이거에나 집중하라는 뜻이다.
“성하, 하나만 더 여쭤도 될까요?”
“하문하십시오.”
“게르암이 산 땅 중에 메디아는 없겠죠?”
“당연히 없습니다.”
율리시스는 삼 대륙의 지도를 펼쳐 놓고 손으로 쓸었다.
“이곳에는 수백 개의 나라와 세 개의 대륙이 존재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네. 시작의 대륙, 빛의 대륙, 생명의 대륙이요.”
“별칭이군요.”
“공식 지명은 앞에서부터 브리칼트가 있는 아르샤룬 대륙, 성국이 있는 팔라디움 창공 대륙, 마나의 발상지인 메디아 대륙이에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원작을 너무너무 좋아했으니까.
요이델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주인공은 많이 이상하지만.’
“눈빛이 불경하군요.”
“아, 아닌데요?”
정말 눈치가 빠르다니까. 율리시스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의심했지만, 요이델은 끝까지 모른 척했다.
율리시스는 다시 한번 지도를 가리켰다.
“메디아는 마법과 정령술, 소환술 등 생명의 탄생지라고 불리는 만큼 타 대륙보다 다양한 종족이 삽니다.”
“라이와 휘스의 눈도 특별했어요.”
“특별한 눈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들은 순도 높은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귀족의 특징입니다.”
“귀족…….”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제게 하는 것과 달리 그들과는 제법 긴밀한 사이처럼 보이셨습니다만.”
요이델은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라이랑 휘스는 항상 친절하니까요.”
“…….”
“……성하를 닮아서겠죠? 성국의 성기사니까요.”
바쁘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역시 그와 있는 건 기운이 쭉쭉 빠진다. 그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면 유독 쌀쌀맞아졌다.
“라이랑 휘스는 저보다 나이가 많대요. 그런데 외모는 저랑 비슷해요. 이곳의 신관님들처럼 수명이 긴 걸까요?”
율리시스는 떨떠름하게 요이델을 바라보았지만 일단은 시선을 돌려주었다.
“성국처럼 신성력에 따라 다른 것은 아니고, 메디아 대륙의 평균적인 기대 수명 자체가 선천적으로 긴 편입니다.”
“그렇군요…… 환상의 대륙이네요! 성하께서는 직접 가 보셨겠죠?”
“성국과의 국가적 사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쇄 이후 왕래는 드뭅니다.”
“드물다는 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네요?”
율리시스는 행간을 읽은 요이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습니다. 요이델 님의 두 호위기사는 수장 측의 부탁으로 제게 의탁된 이들입니다.”
“대가로 성하께서도 얻는 게 있으셨던 거죠?”
그는 대답 대신 약간 놀라 표정을 굳혔다.
요이델이 거기까지 빠르게 추론해 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그렇습니다.”
간단한 대답이라는 건 말해 줄 생각은 없다는 뜻.
요이델도 받아들였다.
브리칼트와 메디아는 원래 사이가 나쁜 편이었고, 메디아와 성국은 원활한 관계라면…….
요이델은 메디아가 궁금해졌다.
정말로 그들이 찾는 게 사람이라면,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텐데 왜 모든 문을 잠갔을까.
보통 일상생활에서 문이나 뚜껑이 쓰이는 건, 안에 보호해야 할 게 있을 때인데.
“어떤 사람들이 살까요? 라이랑 휘스처럼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들일까요? 수장은 더 특징이 뚜렷한가요? 어떠셨어요, 성하?”
많은 질문에 율리시스는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특별히 한눈에 보일 정도로 다른 점은 없습니다. 맑은 기운이 가득한 땅이라 용모가 빼어난 정도입니다. 현 수장은 공동으로 두 명. 그 아래로 그들의 아들인 후계자가 한 명, 어린 딸도 한 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 교류를 하셨어요?”
“대륙 회의에서만 만났습니다.”
“사람을 의탁할 정도니까 친분이 있는 사이 아닌가요?”
“아니요.”
율리시스는 단호히 대답했다.
마치 엮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사적인 친분은 전혀 없습니다.”
“메디아의 수장도 그…… 욕심이 있는 분들인가요?”
브리칼트처럼 못된 사람들인가 물으려다가 순화해서 물었다.
율리시스는 숨은 뜻을 간파했다.
“메디아의 수장 일가는 악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나, 무른 이들도 아닙니다. 다만…….”
율리시스의 차분한 안색이 묘하게 껄끄러워졌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며 한숨 쉬었다.
“글쎄요. 저는 그들과 개인적인 연을 맺고 싶은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