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열이 이렇게 많이 나는데 아니라고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율리시스의 시선이 짙어졌다.
그는 요이델의 손길을 밀어냈다.
“공무 수행 중입니다. 잠깐의 열은 아무렇지 않으니, 그대의 일을 하십시오.”
율리시스는 뜨거운 숨을 숨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푸른 눈은 한없이 침착했다.
“단순 질병은 당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모든 일이 마칠 때까지도 율리시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성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점점 욱신거려.’
방에 누워 있던 요이델은 그의 통증이 단순 감기가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이 걱정하면 귀찮게 한다고 싫어할 텐데.
“꾸우?”
“응, 플로. 깼어?”
플로테스는 요이델의 품에 누워 있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작은 앞발로 요이델을 쓰다듬어 주었다.
꼭 위로해 주는 것 같아 신기했다. 알이었을 때도 그랬다.
“내가 성하를 걱정해도 될까?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꾸우.”
“좋아. 고마워, 플로. 잠시 다녀올게. 혼자 있을 수 있지?”
플로테스는 걱정 말라는 듯 등을 떠밀어 주다 곧 도로롱 곯아떨어졌다.
요이델은 성궁의 요람에 신수를 눕힌 뒤, 조리용 홀로 향했다.
“어? 요이델 신관님! 이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늘 드시던 간식을 드릴까요?”
대신전의 메인 조리장은 요이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전에 손목 통증으로 고통받을 때, 천으로 테이핑 하는 방법을 알려 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의 손목에는 압박 천을 감은 흔적이 있었다.
성하가 아픈 게 알려지면 안 되는데. 가만히 생각하던 요이델은 묘안을 떠올렸다.
“제가 조리 도구를 써도 될까요?”
━━━━⊱⋆⊰━━━━
율리시스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율리시스, 내 아가…… 너를 낳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벌써 천 년도 더 된 옛이야기였다. 또 이 지겨운 꿈인가.
‘율리시스, 눈을 감아 주겠니? 네 눈이 그를 닮았어. 보고 싶지 않아.’
‘죄송해요, 어머니.’
어린 율리시스는 어머니를 위해 엮었던 화관을 조용히 버렸다.
슬프지 않았다.
일상이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란 건,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살던 곳은 백색의 궁이라 불리는, 아주 외지고 성스러운 땅의 유리 궁전이었다. 지금은 멸종한 신수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 그러나 이제는 없어진 곳.
그 위에 자신만의 나라를 세워 옛 흔적을 없앴다.
어린 율리시스의 눈에는 성안의 시종들이 먹을 것을 아껴 몰래 숨겨 가 제 자식의 입에 넣어 주는 게 그저 조금 신기했었다.
나무 둥지의 새들조차 그랬다. 부모가 새끼에게 사냥감을 물어다 주는 게 신기했다. 그게 다였다.
어차피 받아 본 적 없는 감정이니 궁금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다만 그 이해 못 할 맹목적인 감정이 의아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
지형을 넘어 대륙의 지대가 바뀌는 지루한 세월 동안 감정은 잊혔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고장이 난 듯했다. 같은 시절의 기억만 몇 번이고 되돌아오는 걸 보면.
흔해 빠진 이야기다.
혈통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어머니와 모든 것에 관심이 없던 아버지.
의무뿐인 결혼. 목적 달성 같은 아이. 그게 율리시스였다.
맞지 않았다. 꾸지람을 듣지도 않았다. 그저 방치, 방치, 또 방치.
뛰어나도 모자라도 책망받지 않았다.
백색의 성이라 불린 그의 어릴 적 집은 먼지 쌓이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적막했다.
아무도 소리 내지 않고 누구도 대화하지 않는 성에서 율리시스는 책을 벗으로, 부모로 삼고 자랐다.
심심했지만 괜찮았다.
흥미의 정의를 배운 적도 없었다.
어떤 게 책에서 말하는 ‘재미있는’ 것인지 몰랐으니 괜찮았다.
이따금 변하는 창문 밖의 풍경이 그나마 재미라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가 성황이 되어 나라의 대소사를 계획할 무렵의 일이었다.
“탄신 연회는 성대하게 치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하.”
누군가가 말했다.
율리시스는 그 물음의 이유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생일이니 큰 소리는 지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신하는 “기쁜 날이니 가장 성대하게 보내야지요.” 하고 답했다.
“그것이 왜 기쁜 일이 됩니까.”
순간 회의장에 정적이 웃돌았다. 다른 뜻이 없는 순전한 물음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은 특이점을 읽어 냈다.
이들은 애써 웃으며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그야 성하께서 태어나신 날이니, 충분히 축하받고 즐기셔야지요. 어릴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생일은 일 년에 한 번뿐이니까요.”
그제야 깨달았다.
‘생일’의 의미엔 슬픈 뜻이 없다는 걸.
자신을 붙잡고 울분을 토해 내는, 장례를 치르는 것 같은 짐승 같은 울음을 듣는 날이 아니라는 것을.
‘보통의 아이들’은 충분히 축하받고 선물을 기대하는 기쁜 날이라는 걸.
율리시스는 그날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웠다.
‘율리시스, 율리시스, 율리시스.’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 주던 건 오로지 그를 원망하던 생일날뿐.
그 이후로 고열은 어릴 때부터 지속되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홀로 앓았다. 누구의 관심도 귀찮은 걱정도 받고 싶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 이겨 내면, 자신만 알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무리하고 계시잖아요!’
그 순간 발끈하던 목소리와 함께 잠이 깼다.
“후우…….”
악몽이라 그런가, 그 햇병아리가 꿈에 제멋대로 나온다.
율리시스는 더운 숨을 토해 내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무도 곁에 없는 몸이 추웠다.
율리시스는 머리맡의 물을 마시고자 위를 더듬었다. 그런데 테이블이 꽤 말랑했다.
“아.”
“…….”
“앗, 그게. 일부러 지켜보던 건 아닌데요, 음, 안녕히 주무셨어요?”
율리시스는 서서히 상황을 인지했다.
덮은 적 없던 거대한 담요가 훌렁 덮였고, 분홍 머리 신관은 자신을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더듬거린 건 저 햇병아리의 손이었다. 이 말랑한 온기의 범인.
“맹세하는데 해치려던 건 아니었어요! 좀 더 주무시는 게 좋아요. 아직 몸이 뜨거우시니까요.”
요이델은 안절부절못했다.
혹시나 해서 왔더니 역시나, 그는 집무실 한쪽 소파에 대충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한눈에 봐도 아파 보였다.
땀이 나 몸에 차분히 붙은 아름다운 은발, 달뜬 안색과 묘한 예민함과 처연함.
눈을 뜬 그는 잠시 숨을 내뱉고 요이델을 흘겨보았다.
쌕쌕 내뱉으며 오르내리는 흉통이 힘들어 보였다. 요이델은 일어나려는 그의 가슴팍을 다시 꾹 눌렀다.
“너무 싫어서 두드러기가 나셔도 안 되겠어요.”
“뭡니까.”
“누우세요. 바빠서 식사를 못 하셨을 것 같아서요. 조금 챙겨 왔어요.”
“식사는 안 해도 무관합니다.”
“이렇게 열이 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난생처음 듣는 버럭에 율리시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요이델은 조그만 입을 분노로 달싹이며 목소리를 키웠다.
“꼭! 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돌아오셔서까지 집무실에 계신 거예요?”
“……제가 아프더라도 당신께 폐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콜록.
율리시스는 기침을 하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렸다.
그로서는 햇병아리 신관 앞에 누워 있는 이 상황이 제일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포한 기세에, 감히 햇병아리를 거역하고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폐가 아니라 이건 걱정이에요.”
“걱정?”
그게 뭐냐는 듯한 눈.
낯선 단어를 들은 얼굴이었다.
“자! 빨리 ‘아―’ 하세요. 이러다 다 식어요.”
“하…….”
꿀꺽.
율리시스가 어이없어서 입을 벌린 그 순간, 준비해 온 음식을 휙 밀어 넣었다.
푸른 눈이 크게 뜨이고 입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요이델은 뿌듯하게 웃었다.
“옳지, 잘하시네요. 한 입만 더요.”
“……허.”
“이렇게 냠냠 씹으세요.”
“…….”
“냠냠이요. 우물우물 이렇게.”
율리시스는 당황했다.
이 용감한 햇병아리 신관은 아무래도 자신을 은백색 신수급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기름기 없게 살코기로만 만든 닭고기 수프예요. 감자도 묽게 으깼으니까 넘기기 쉬우실 거예요. 자, ‘아―’ 하세요.”
까다로운 율리시스의 식성을 고려하여 평소 그가 잘 먹던 것을 떠올리고 내린 해답이었다.
요이델은 작은 입으로 후후 불어 식혀 먹기 좋게 만든 다음에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전 삶에서 같이 자란 동생들이 아플 때, 많이 해 줬던 방식이었다. 신수 취급당한다는 율리시스의 추측은 어느 정도 맞았다.
율리시스는 수프 한 그릇을 비워 내고 옆에 있는 달고 쓴 향이 나는 차를 바라보았다.
“이건 뭡니까?”
“아! 꿀생강차라는 거예요.”
“…….”
“기침하시는 걸 보니 목도 아프실 것 같은데, 생강이 좋아요. 남기지 말고 쭉 드세요. 꿀을 넣어서 피로도 풀리고 맛도 조금은 달달할 거예요.”
율리시스는 수상한 눈으로 요이델을 바라봤다.
“독은 없어요. 그런데 기미를 해 드릴 순 없어요. 쓰거든요.”
“달다지 않으셨습니까.”
“달, 달걸요. 달긴 한데, 달…….”
휙.
컵을 빼앗아 한 입 맛본 율리시스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풀이 죽은 요이델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맛이 없습니다.”
“열심히 달였는데…….”
율리시스는 결국 한 컵을 비워 냈다.
그를 본 요이델이 방긋 웃었다. 율리시스는 묘하게, 어쩐지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가지 않고 계십니까.”
“제대로 방에 가셔서 주무시는 뒷모습 확인하고 가려고요.”
“…….”
“집무 도구도 전부 치웠어요. 푹 주무시기로 약속해요, 성하. 일 처리는 필요하다면 제가 해 볼게요.”
“괜찮습니다.”
요이델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흠칫 놀랐다.
밤이 깊었다. 푸른 눈동자는 달빛보다도 감미로웠다. 성격에 가려져서 외모를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차분히 생각에 잠긴 듯하던 율리시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페어링이라는 마법이 이점도 있군요.”
“그렇죠?”
중얼거리듯 흘린 말에, 요이델은 밝게 웃으며 끄덕였다.
“성하께서 저를 도와주셨던 것처럼요.”
요이델은 공작에게 맞았던 뺨을 가리켰다. 그런데 율리시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데.
아, 고통이 똑같아서 그런가 보다.
민망해 고개를 돌린 요이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성하, 눈이 내려요!”
창밖으로 새벽녘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
금방 녹아 사라지는 눈이 아니라 쌓여서 하나의 세상을 덮을 것처럼 존재감이 큰 첫눈이었다.
“예쁘죠?”
“……네.”
율리시스의 시선이 창가를 향했다.
그는 손에 쥔 아무것도 없는 찻잔에 입술을 대었다가 천천히 떼었다.
“본 것 중 제일.”
━━━━⊱⋆⊰━━━━
함박눈이 쌓여 요이델의 발이 포옥 들어갔다. 뽀득한 소리가 좋았다.
플로와 같이 발자국을 콩콩 남기던 그때.
“꺄악!”
“조심하세요, 신관님.”
라나가 미끄러지는 요이델을 받쳐 주며 쿡쿡 웃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많은 이들이 그녀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다들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요이델은 첫눈을 본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자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플로가 눈을 정말 좋아해요.”
“음―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신관님.”
라나는 모르는 척 웃었다.
“탄신 연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네요. 올 신년제에도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있던데, 미끄럼 주의하세요.”
“고마워요, 라나.”
기사들이 바닥을 벅벅 긁어 눈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라나는 요이델에게 폭신한 마시멜로가 띄워진 코코아를 건네주었다.
찬 공기로 따뜻한 김이 폴폴 풍겼다.
“정말 겨울이네요. 올해도 탄신 연회와 신년제가 함께 치러지는 거죠?”
“그렇답니다, 신관님. 항상 1월 1은 탄신 연회와 신년제가 동시에 열렸으니까요.”
“라나도 고향에 다녀오나요?”
“짧게 다녀올 것 같아요. 신년제는 매년 있는 가장 큰 연레 행사니까 말이죠. 신관님은…… 죄, 죄송합니다.”
“네? 아, 다른 생각 중이었어서 못 들었어요. 미안해요, 라나.”
씩씩한 거짓말을 들은 라나는 조금 슬프게 웃었다.
요이델이 요보힐데 가문과 연을 끊었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괜찮다는데 계속 슬픈 얼굴을 하는 것도 실례되는 일. 라나는 요이델이 좋아할 만한 걸 고민했다.
“저희 고향에 비스토스 제과점 본점이 있는데, 혹시 쿠키 좋아하세요, 신관님?”
“좋아요! 꼭 먹어 보고 싶었어요! 버터쿠키로 유명한 제과점이죠?”
“후후, 좋아하시니 꼭 챙겨 와야겠네요. 맛별로 10상자씩 사 올게요.”
라나는 뭔가 생각난 듯 앞치마를 뒤적거렸다.
“참, 아침에 편지가 도착했어요. 낯선 발신인이라 거를까 했는데, 혹시 비엘라 세공점에 의뢰를 맡기셨나요?”
요이델은 “아!” 하고 짧게 감탄했다.
드디어 선물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