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델! 요즘은 왜 성하의 집무실에 안 가? 델이랑 이렇게 붙어 다니기는 오랜만인데.”
휘스테론은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씩 웃었다.
평소대로라면 율리시스의 집무실에서, 요즘 한창 열을 올리는 학술원 관련 조사를 해야 했으나 요즘은 그가 이곳에 없었다.
“성하께서도 많이 바쁘신가 봐.”
“아아, 그건 그렇지.”
“신관님, 피곤해 보이십니다.”
라이오스의 수줍은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는 요이델의 얼굴에 직접 손을 대진 못하고 조심스레 정처 없이 손을 옮겼다.
“아, 고마워, 휘스. 그냥 잠을 좀 못 자서…….”
“잠? 왜! 델을 괴롭히는 것들은 다 죽여도 눈감아 준댔는데. 죽여 줄까?”
“아니! 싫어! 누가 그런 말을 해?”
“성하가.”
“성하께서?”
요이델은 깜짝 놀라 눈을 찡그렸다.
“놀랄 일은 아니야, 델. 우리의 우선순위는 너고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신관이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우리한텐 이 방식이 더 몸에 맞거든.”
“라이도?”
“…….”
“그렇구나.”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휘스테론의 말을 들으니 처음 만났을 때, 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성하가 떠올랐다.
그때 성하가 마수와 암살자들을 죽였던 것도, 그들의 사고로는 마땅한 것에 가깝겠지.
“응. 이해했어, 휘스. 그런데 팔은 다 나은 거야? 아프다고 했었잖아.”
“아아, 다 나았지. 난 튼튼하거든. 걱정했어, 델?”
“당연하지.”
“델…….”
휘스테론이 또 와락 끌어안으려 하자 요이델은 신속히 피했다.
“델이 나를 떠나는구나, 흑흑.”
우는 척을 하던 휘스테론은 뭔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델, 그 학술원 말이야. 라보르비치에도 세운다는 거 진짜야?”
“응.”
“어쩐지, 아까 출입국 관리소에 다녀왔는데 허가 승인된 게 있더라. 라보르비치였어, 그 이름이.”
“누가 라보르비치로 가는 거야?”
혹시 지오르베니인가.
요이델은 의구심에 되물었다.
“아니, 가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거던데? 며칠 후에.”
“들어온다고?”
“응. 라보르비치에서 팔라디움으로 입국이야. 그런데 그 신분이 꽤…… 흥미롭더라.”
휘스테론은 어쩐지 거슬리는 듯 끙, 앓았다.
그 이유를 라이오스도 알고 있는지, 어딘지 좋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닌데―”
휘스테론은 요이델을 보며 뒷말을 끌었다.
“델을 괴롭히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는 명을 충실히 따르면, 꽤 큰 희생이 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휘스테론은 요이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씩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은 염려야. 델은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 마.”
휘스테론은 진심 어린 눈으로 요이델을 쳐다봤다.
“라보르비치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휘스도 알아?”
현재는 그리 크지 않은 왕국이었다.
휘스테론은 아는 게 많았지만 수백여 개의 나라 중 그 작은 왕국의 일까지 다 알진 못할 텐데.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델, 네가 학술원까지 고안해 낼 줄 몰랐어.”
“휘스는 나를 바보로 알아.”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작아서, 뭐랄까, 음……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달까. 걱정돼서 그러지.”
“휘스의 고향에서 나 같은 사람이 날아다닌다는 얘기 들은 적 있어?”
“어, 봤어. 우리 대륙에는 날개 달린 사람도 살거든.”
요이델은 놀라서 반짝이는 눈으로 라이오스를 쳐다봤다.
“정말이야?”
“이봐, 델. 왜 내 말을 그쪽에 가서 확인받는 건데. 나 그럼 진짜 상처받아.”
“하지만 라이오스 쪽이 더 신뢰도가 높은걸.”
“난 그런 취급이야? 정말 속상해서 못 살겠네. 분홍 머리 델 키워 봐야 소용없다니까.”
“그의 말은 진실입니다, 신관님.”
“우와…….”
라이오스가 확언해 주고 나서야 요이델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메디아, 언젠가 꼭 가 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은 둘은 요이델을 보던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델.”
휘스테론이 작게 중얼거렸다.
━━━━⊱⋆⊰━━━━
정기 회의 날.
요이델은 긴장감으로 말라 가는 목을 축였다.
오늘은 성하도 불참했다.
‘지오르베니의 존재감이 크긴 크구나.’
마르셀리나 옆에 앉은 지오르베니는 엄숙한 눈길로 회장을 훑었다.
‘사실 지오르베니가 이곳에 안 들어왔으면 하지만, 아직은 그의 뒤를 캐낼 증거가 없어서 무리지.’
요이델은 그의 배신을 알고 있었다.
지오르베니는 성국 출신 정통파 신관으로, 처음에는 순진하고 열성적인 평범한 신관이었다.
자신의 계발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고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니 원로의 자리에까지 올랐을 뿐.
‘그때부터였을 거야.’
사람을 단기간에 바꿔 놓는 건 돈보다는 권력이었다.
애초에 부유한 집안 출신인 지오르베니는 돈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잦은 외도를 한 아버지와 정식 부인이 아니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가문 내의 외톨이로 성장했다.
가진 것은 신성력, 곧은 열정뿐이었던 그였지만, 그렇기에 더 빨리 권력의 맛에 물들고 만다.
‘사생아도 있지.’
주신을 따르는 성직자이지만 혼인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다만 사생아는 법에 저어됐다.
한쪽의 사별이나 실종 등의 이유라면 용인됐지만 그게 아닌, 방탕한 생활로 만들어진 사생아.
지오르베니에겐 그게 있었다.
‘그의 비밀을 눈치채고 접근한 게 브리칼트였고. 대신전의 높은 직급 중 가장 허물기 쉬운 사람이었을 거야.’
지금의 노련함은 없던 그때의 지오르베니는, 비밀을 숨겨 줄 테니 자신을 도와 달라는 제국의 제의에 순응한다.
그에게는 이미 잃을 것이 많이 있었으므로.
이를테면 원로의 자리에 따라오는 달콤한 권력이라든가.
그건 곧 죽어도 포기 못 하는 보물의 화수분이었다.
‘처음엔 작은 제의였지만 조금씩 크기를 키워 갔겠지. 걷잡을 수 없게 됐을 때는 지오르베니도 똑같이 물든 후였고.’
그런데 그의 배반을 입증할 증거를 어떻게 명확히 잡을까?
브리칼트의 황제와 만나는 모습을 아티팩트로 찍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무리일 텐데.
“끙…….”
“많이 힘들어 보이오, 요이델 신관.”
어느새 다가온 지오르베니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요이델에게 격려를 건넸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하지만 요이델은 그 모습에 속을 만큼 단순하진 않았다. 그와 같은 노련함은 없었지만, 입꼬리를 부들부들 끌어 올리며 밝게 웃었다.
“격려 감사합니다.”
“뭘, 이것 가지고.”
지오르베니의 붉은 눈이 요이델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비슷한 붉은 눈이구나.
“학술원 발의를 요이델 신관이 했다 들었소.”
지오르베니는 요이델을 가늠하듯 바라봤다.
“선대의 뜻을 계승한다니, 좋은 취지군.”
“……감사합니다.”
“내가 그 학술원의 원장직을 겸할 것 같다는 소식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소.”
“말씀을 들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지오르베니는 빙긋 웃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 라보르비치에 대해서는 잘 아는 이가 없고 하니.”
그는 말을 멈추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마르셀리나도 지오르베니를 바라보았다.
이제 지오르베니는 요이델이 아닌,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향해 굵은 저음으로 말했다.
“지리를 잘 아는 이를 초빙하여 자문을 구하면 어떨까 싶소.”
“자문이라면…… 설마 라보르비치의 사람을 데려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하?”
“그렇소.”
그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경계심이 감돌았다.
대신전 내에 외부인이 장기 체류하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기껏해야 연회 때의 손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자문을 요청한다는 건, 게다가 장기적인 일에 참여시키겠다는 말은 조금 다르다.
“어떻소?”
저번에 휘스와 라이가 해 준 말이 이거였구나.
지오르베니는 의견을 구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계획이 끝나 절차를 알리는 것뿐.
“저명한 학자입니까?”
“그렇진 않네. 하지만 누구보다 성국에게, 성황 성하께 도움이 된다고 자부하지.”
지오르베니는 씩 웃었다.
“아키스 라보르비치 왕녀일세.”
━━━━⊱⋆⊰━━━━
라보르비치의 왕녀는 예정대로 대신전에 들어왔다.
원로를 후견인으로 내세워 들어온 왕녀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성황의 손님은 아니었기에 성궁으로 안내받지는 못했다.
“저분이…….”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한 미모이시군.”
또각.
경쾌한 구두 소리가 대신전의 길을 유쾌하게 두드렸다.
장미처럼 붉은 머리에 금색 눈, 평균보다 훨씬 큰 키.
왕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미소는 더했다.
“성국 팔라디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왕녀 전하.”
왕녀 아키스는 자신에게 예를 갖추는 신관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조차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한 분홍 머리 신관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 품에 있는 은백색 아기 신수에게.
“참 예쁜 신수네. 안녕?”
왕녀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플로테스는 잔뜩 토라진 얼굴로 한 번 보고 요이델의 품으로 고개를 휙 돌려 볼살을 묻어 버렸다.
“꾸웅.”
왕녀는 언짢은 듯 요이델을 흘겨봤다.
“신수가 덜 자랐나 보군.”
“신수님은 사람으로 쳐도 아직 아기세요.”
“음, 그렇군.”
그러나 왕족으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그 모습이 마뜩잖은 듯했다.
“하지만 신수여도 인사는 해야지 않나. 버릇없이 오냐오냐 키운 사람의 잘못 아닌가.”
“꾸?”
“이리 내 봐. 내가 인사를 알려 주지.”
휙!
따뜻했던 요이델의 품에서 황야 같은 허공으로, 그것도 남의 손에 붙들린 플로테스는 겨우 두 개 난 앞니를 드러냈다.
그르릉.
플로테스의 금빛 눈이 분노로 번쩍였다.
요이델의 품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반응에 왕녀는 순간 움찔했다.
“네가 그 신수 플로테스군.”
하지만 왕녀는 꿈쩍 않고 최대한 상냥해 보이게 미소 지었다. 플로테스의 앞니는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움찔, 입질했다.
“일이 잘되면 내가 언젠가 네 새로운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데, 미래의 주인에게 태도가 너무 사납군.”
그 순간 플로테스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튜!”
“헉……!”
“와, 왕녀님!”
“이 신수가 내게, 하…… 하하, 아하하하하!”
왕녀는 제 얼굴을 슥 문질렀다.
“이렇게 버릇없을 수 있나.”
신관이든 왕국 측이든 할 것 없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왕녀의 장갑이 축축하게 젖었다.
“꾸!”
신수가 왕녀에게 침을 뱉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