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걸작이다, 신수님.”
“바!”
“난 아빠가 아니라니까. 신수님은 신기해. 성하는 이름을 제대로 부르면서. 이유가 있어?”
“꾸우.”
휘스테론은 즐거운 듯 하하 웃었다.
왕녀가 들어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요이델이 걱정되어서 서둘러 쫓아갔더니, 신수가 왕녀에게 침 뱉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휘스테론은 플로테스에게 간식을 먹였다.
“신수님, 매일매일 델을 지켜 줘.”
“꾸!”
“델, 우리 오늘 일이 있어서 잠시 호위를 비워야 할 것 같은데. 다른 기사들에게 맡겨 놨어. 그러니까 걸을 때 놀라지 말라고.”
“대신 안 붙여 줘도 괜찮아.”
“델, 왕녀가 왔잖아.”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은 주위를 둘러본 뒤 조용히 속삭였다.
“왕녀의 라보르비치 지리 자문은 수단이야. 최종 목적은 성후가 되어 성하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거라고.”
“아…….”
“단기간 내에 떼어 내야 돼. 왕녀에게 지금은 잘못이 없다고 해도, 지오르베니가 후견인이야. 여기 눌러살겠다고 작정하면 학술원 문제도 있어서 제거하기도 곤란해. 그렇게 영원히 체류하려고 들 거라고.”
휘스테론은 지오르베니의 속셈을 알겠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물밑의 소문 말고, 대외적으로 지오르베니의 평판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휘스가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성후의 자리를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조금은 이상했다.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자신이 그와 페어링으로 묶인 반려 관계라는 걸 모를 테니까.
게다가 자신은 남장 중이다.
‘성하께서 결혼하려면 나와의 페어링을 풀어야 한다는 걸 둘도 알고 있는 걸까?’
요이델은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나자, 휘스테론은 다시 모르는 척 웃었다.
“아니 그게, 성하는 오랫동안 혼자였으니까 누가 생기면 좋긴 한데, 그게 남이 밀어붙여서 되는 일은 아니잖아. 성하도 취향이 있다고. 하핫.”
“……그렇지.”
라이오스도 고개를 끄덕여 휘스테론에게 동의했다.
“그리고 그 왕녀, 성격이 보통 아닌 것 같으니까 조심해, 델.”
“나? 왜?”
“그…… 사람은 보통 본능적인 직감이라는 게 있거든. 너를 떨떠름하게 보겠지. 그리고 낯선 땅이니 기선 제압도 해야 하고, 뭐 그쪽 입장으로 볼 때는 그렇단 거야.”
그리고 휘스테론은 플로테스를 쓰다듬었다.
“우리 신수님이 저지른 것도 있고.”
━━━━⊱⋆⊰━━━━
“라나, 왕녀님을 봤어요?”
“네. 조금 날카로우시지만 괜찮았어요.”
“그렇군요. 나이는 몇일까요?”
“이제 막 성년이 되셨다고 해요.”
요이델은 왕녀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두 호위기사가 조언한 것과는 다른 이유로.
‘내 또래 친구가 될지도 몰라.’
게다가 학술원의 건립에 도움을 줄 사람.
대신전에서 요이델은 갑자기 고위신관으로 올라가 버렸기에, 같이 교육받았던 이들과는 묘한 역할 간격이 생겨 버렸다. 선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이델은 그게 조금 아쉬웠다.
‘성격이 맞을 것 같진 않지만.’
게다가 지오르베니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 브리칼트와 연관이 있는 걸까?
‘라보르비치는 브리칼트의 우방국이야. 여러 요인으로 학술원 제2 부지가 되기는 했지만, 경계는 계속해야 해.’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네가 요이델이라지.”
“안녕하세요, 왕녀님.”
“왕녀님으로 부를 만큼 격 없진 않은 것 같은데. 왕녀 전하가 맞지 않나?”
“우리 신관님은……!”
한 시종이 발끈했으나 요이델이 제재했다.
왕녀의 티타임에 초대된 요이델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첫 번째 티타임에서는 면박을 당한 채 왕녀의 설교를 듣고 왔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성하가 너를 가까이 둔다는데. 보는 시선에 따라 오해를 살 수 있으니 거리를 두는 게 어때.”
“아, 저는……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왜? 내가 성후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나? 알현은 거절당하고 오자마자 마중도 없이 소박맞아서.”
두 번째 티타임은 더 차갑게 끝이 났다. 요이델은 앉지도 못하고 내내 서 있어야 했다.
쾅!
문을 격하게 닫은 시종은 분노에 차 울먹거렸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세요, 왕녀님은!”
“그러니까요. 아무리 지오르베니 원로 예하의 손님이라고 해도 요이델 님을 함부로 취급할 수는 없어요. 분통이 터져 죽겠어요!”
처음엔 왕녀의 등장에 신기해하던 신관과 시종들도 과도한 처사에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당사자인 요이델도 가만히 있는데 본인들이 나설 수는 없었다.
왕녀의 체면 때문이 아니라, 왕녀가 뒤에 지오르베니를 후견인으로 두고 있으니 요이델에게 불똥이 튈까 봐 염려해서였다.
“저쪽에 지오르베니 원로 예하가 있다면 저희는 마르셀리나 대원로 예하께 이를까요?”
“로렐, 손이 까졌네. 다친 거야?”
“요이델 님―”
요이델은 어린 시종의 손을 치유해 주며 말을 돌렸다.
이제야 왕녀가 자신을 날카롭게 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하께서 냉정히 대하셨구나.’
그는 보통 때라면 아주 작은 공국이나 소왕국의 사신에게도 예의를 차려 주었으나, 라보르비치의 왕녀에게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직접 맞지 않은 것만 제외하면, 섭섭하지 않을 만큼 대우해 준 편이었다.
하지만 성국은 특별하니까.
부푼 상상을 안고 올라온 왕녀에게는 마음에 차지 않는 대접일 수 있었다.
‘그런데 성하는 정말 어디 가셨지?’
그는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라보르비치의 왕녀가 올라오는 걸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리를 비웠다는 건 명백한 무시였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무시일까.
‘지오르베니?’
그렇다면 성하도 그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신 걸까.
‘그런데 왜 쓸쓸할까.’
요이델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고작 며칠 못 봤을 뿐인데.
그에게 적응이라도 한 걸까?
‘성하, 성후, 진짜 혼인.’
요이델은 백지에 두 단어를 써 놓고 골똘히 고민했다.
‘당연한 단어 조합인데 낯설어.’
그가 결혼을 할 수도 있다니?
원작에서 나오지 않았던 일이라 그런가, 그가 혼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일단 그가 정말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럼 페어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학술원을 빨리 추진해 페어링을 풀 단서와 메디아가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당장은 무리였다. 시간이 걸린다.
요이델은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우선 결혼해서 애정이 생기는 경우.’
성하에겐 좋은 일이지만, 그럴 경우 성후가 되실 분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진다.
사랑하는 남편의 부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것도 일단은 남자인 자신과!
“어떡해, 큰일이야.”
뒷머리까지 감싸고 폭 고개를 숙였다. 요이델은 두 가지를 고민했다.
하나는 그가 받게 될 의심, 하나는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이쪽에서도 사절이었다.
‘그래, 페어링을 풀어야 뭐라도 할 수 있어.’
요이델은 으으, 신음을 내며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런 오해는 절대로 받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마법에 대한 단서가 아마도 메디아에 있을 지금, 그들과 소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물론 아슈레오에게도 물어봤지만.
‘사랑 마법? 그런 것도 있나?’
그에게는 관심 외의 문제였다.
“휴우……”
쨍그랑!
그 순간 팔에 밀린 잉크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날카로운 파편이 여기저기 튀고 잉크가 하얀 옷자락을 적셨다.
“아야!”
유리 조각을 줍던 그때, 날카로운 조각에 손끝이 베였다.
요이델은 곤란함에 한숨을 쉬었다.
“성하께서 계셨다면 바로 치료해 주셨을 텐데.”
왠지 모르게 그가 생각났다.
‘나 성하를 너무 구급상자처럼 생각했구나.’
살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바람이 먼저 들어오고, 존재감이 느껴졌다.
“……성하?”
“제 손에도 피가 흐른다 싶어 찾아왔더니, 왜 망연히 계십니까.”
율리시스는 성큼 다가와 마법으로 모든 걸 수습한 후 손가락을 치유해 주었다.
“잘 다녀오셨어요?”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지도 않으시는군요. 별로 그대의 흥밋거리가 아닌가 봅니다.”
여전히 퉁명스러운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평소의 그였다.
“하일 원로에게 다녀왔습니다.”
“와! 하일 원로님은 잘 계세요?”
“무척. 그보다…….”
요이델의 얼굴을 태울 듯 응시한 그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 쉬었다.
“왕녀의 심한 처사를 들었습니다. 왜 보고하지 않으십니까.”
“그럴 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당신은 제 소관입니다. 제 개인사는 성국 모두의 일이기에 본인에게도 중하다 말씀하시더니, 정작 요이델 님의 일은 제게 귀띔조차 해 주시지 않는군요.”
참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어조에는, 묘한 분노가 묻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 왕녀님께서 성후가 되시면 나중에 곤란해질 테니까 참았어요. 별거 아닌 일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학술원의 일도 있고요.”
“누가 성후입니까. 지오르베니가 그리 말했습니까? 혹은 왕녀가.”
“추측이에요.”
“그녀의 쓰임은 자문의 역할에 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합의라면 지오르베니 님과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요이델은 놀라 물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치료가 끝난 요이델의 손을 놓아주었다.
“당신께서도 숨기시니 저 또한 마땅히 알려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인정하게 되네요…….”
시무룩한 요이델을 본 율리시스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내렸다.
“제겐 이미 반려가 있습니다.”
율리시스는 무심히 말했다.
“둘이나 필요합니까?”
나직한 울림이되 강한 어조였다.
말과 동시에 요이델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주 가까이에서 요이델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일말의 의심조차 없는 맑고 푸른 눈으로.
그 시선이 부끄러워진 요이델은 괜히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아, 저, 그게…….”
“일어날 리 없는 가정 하지 마십시오.”
이상했다. 그 말에 어딘가 안심이 되는 건 왜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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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안 만나 주는데 어쩌라고?”
왕녀 아키스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지오르베니의 개인 공간에 대충 걸터앉아 푸념했다.
“나도 미치겠다고. 돌아온 이후에도 안 만나 줘. 성후는 무슨, 만나기라도 해야 뭘 하지.”
“그럼 왕녀님께서 노릴 인물을 변경토록 하는 게 어떻소.”
“누구?”
아키스는 잠시 눈을 붙이다 번쩍 떴다.
“설마, 그 분홍 머리 신관?”
“그렇소.”
“왜? 괴롭히래서 괴롭혀는 봤는데, 별로 안 하고 싶던데. 애가 너무 착하잖아. 가책 느껴지게.”
울먹이면서도 절대 울지는 않던 게 마음에 들었다. 그 강한 눈빛이.
그러나 아키스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몸. 지오르베니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 신관은 성황의 큰 약점이 될 것이오.”
“왜?”
“그가…… 성황의 반려니까.”
“둘이 사귄다고? 뭐 어쩌라고. 그게 무슨 약점이야.”
지오르베니는 왕녀의 방종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의 반려 관계는 특별하오. 성황의 피는 특별하니, 고대 마법인 페어링을 맺었을 것이오.”
“알아듣게 얘기해.”
“간단히 말해 운명 공동체.”
“운명?”
“한쪽의 몸에 해가 가면, 다른 한쪽에도 똑같은 외부적 고통이 생기오.”
‘흐응…… 그렇단 말이지.’
왕녀의 입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