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8)
68화
“너희는 가 봐. 요이델 신관, 이리 와서 등 리본을 묶어.”
대신전의 시종들은 일동 경악했다.
고위 성직자, 게다가 남자인 요이델 님에게 그런 시중을 시킨다니.
원로원 수장님이 봤다면 호통을 치셨을 일이다. 그분이 요이델 님을 아끼는 것은 자명한 사실.
“왕녀님, 신관님께서는 남자분이시니 저희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나는 요이델 신관이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왕녀님의 뜻과 다르게 오해를 살 수도 있기에―”
시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키스의 표정이 가히 광기라 할 만큼 흉흉했으므로.
“죄송합니다.”
“됐어. 하지만 요이델 신관, 네가 해 주지 않으면 이 시종들이 거슬릴 거야. 그럼 얘들이 어떻게 될 것 같지? 그대 생각은 어때?”
잔인한 말에 시종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방 안의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던 그때.
요이델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다 됐습니다.”
“흐응, 좋아. 그럼 이제 구두끈을 묶어 봐.”
아키스의 패악이 갑자기 심해졌다.
왕녀는 무엇을 하든 요이델을 가까이 두었다. 심지어 이렇게 단장할 때까지도.
“너무하셔, 정말. 왜 요이델 신관님이 수발까지 들어 드려야 하는 거야? 기사님들께 알려야겠어.”
시종들이 저들끼리 속닥이던 순간, 아키스가 다리를 휙 꼬았다.
“구두끈이 이게 뭐지? 지금 대충하겠다는 건가. 신관, 다시 묶어.”
“…….”
“뭐 하는가? 내 발을 괴상한 몰골로 둘 셈인가 보군.”
“왕녀님의 성에 차지 않으면 슬퍼서 어쩔 수 없죠. 이게 최선이니까 저는 시중을 들 수 없어요. 다른 시종을 불러 드릴게요.”
잠시 고민하던 요이델은 몸을 일으키고 단단한 눈빛을 했다.
아키스의 표정이 곧바로 곤혹스럽게 바뀌었다.
“거절하지. 요이델 신관이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어.”
“방금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잖아요. 다시 묶으라고 하셨어요.”
“……제기랄, 왜 얘기가 그렇게 돼.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래서 시중을 들 영광을 주는 거고.”
“그런데 제가 묶은 구두끈은 마음에 안 드신다면서요.”
“……그렇지?”
“그럼 제가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는 뜻이잖아요. 그죠? 그럼 저는 실망만 드리니까, 왕녀님의 곁에 있을 수 없어요. 너무 죄송한 일인걸요.”
요이델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아키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시 보니까 예쁘군. 딱 내 취향이야. 마음에 드니까 계속해.”
아키스는 삐쭉 튀어나온 입을 삐약대다가 얌전히 두 다리를 내밀었다.
“왕녀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니 기쁘네요.”
“……흥. 참나.”
둘을 지켜보던 시종들은 풋, 웃음을 흘렸다.
━━━━⊱⋆⊰━━━━
마르셀리나는 알현실을 찾아 성황 율리시스에게 질문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왕녀에 대한 소문이 들린다.
‘그런데 어딜 다녀오셨기에 저리 표정이 좋아 보이시지?’
꼭 즐거운 일이라도 있던 사람처럼 숨길 수 없는 편안함이 티가 났다.
“보필하는 원로로서 걱정이 되어 말을 올립니다, 성하. 왕녀님과 혼인을 생각하신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데. 이 괴소문이 사실입니까, 성하?”
“아닙니다.”
그의 즉답에 마르셀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왕녀가 요이델 양에게 유독 집착하는 게 이상해. 설마 그녀가 눈치를 챘나? 라보르비치 왕국은 브리칼트의 우방국이니 요보힐데 출신의 요이델 양을 박대할 이유가 없는데, 왜?’
아니면 우방국부터 섭외하겠다는 의도에 반발한 브리칼트에서 압박이 들어온 건가.
마르셀리나는 주먹을 힘껏 쥐었다.
라보르비치 왕녀는 요보힐데 가문과 가까우면 가까웠지, 결코 적대시할 만한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왕녀의 반응은 이상하다. 마치 라이벌이라도 되는 듯이 구니까.
‘물론 요이델 양은 작고 귀여워서 금방 눈치챌 수 있어. 어지간히 둔한 이가 아니고서야.’
마르셀리나는 어지간히 둔한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특정 신관에 대한 왕녀의 집요함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성하.”
“특정 신관이라면, 요이델 신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두 번째로 두는 것으로도 모자라 보호조차 안 해 준다면 어쩌겠다는 건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는 성국은 물론, 대신전들의 품위에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보호의 의무마저 어기는 일이 됩니다.”
율리시스는 알겠다는 듯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마르셀리나 님의 의견을 구할 일이 있었습니다.”
“제…… 의견 말씀이십니까?”
마르셀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율리시스는 알현실의 모두를 물러나게 했다.
“이게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꽃이네요…….”
잠시 바라보던 마르셀리나는 아, 하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시체꽃과 비슷합니다, 성하. 이건 독성이 있을지도 모르니 반드시 소멸시켜 없애셔야 합니다.”
“대원로께서 보시기에도 그렇습니까.”
율리시스는 서늘히 웃었다.
“학술원 부지 정찰로 방문했던 곳에도 이와 닮은 꽃이 있더군요.”
“그곳은 성국의 변방 아닙니까? 그곳에 왜…… 마법으로 인해 죽은 이들에게서 드물게 피어난다는 그 꽃이.”
마르셀리나는 말끝을 흐렸다.
어쩌다 우연히 피어날 수는 있었지만, 웬만큼 강한 힘이 아니면 잘 피지 않는 꽃이었다.
마법으로 죽은 모든 시체에서 피는 게 아니다.
“지오르베니의 고향과 가깝더군요.”
“그럼, 설마.”
“마침 그와 동향 출신의 시종이 있어 아는 것이 있는지 하문했습니다. 신년제 당시 고향에 다녀와 아는 것이 많더군요. 한데…….”
율리시스는 우습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리고 느슨히 다리를 꼬았다.
“원로원의 재정비가 필요할 듯합니다. 제가 마르셀리나 대원로께 드리려던 말씀은 그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성하,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밀려와서, 조금.”
마르셀리나는 충격으로 잠시 휘청거렸다.
“왕녀는 내버려 두십시오. 그녀의 쓸모는 지금이 아니니.”
“말씀 받잡겠습니다.”
그리고 마르셀리나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성하, 요이델 신관은 고위급 신관입니다. 그런 신분으로 왕녀의 수발을 드는 일은 묵과하기 힘듭니다.”
“수발?”
마르셀리나의 마지막 말에 율리시스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얼굴이었다.
━━━━⊱⋆⊰━━━━
요이델은 왕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피해 개인 집무실로 들어왔다.
의외로 왕녀를 상대하는 건 쉬웠다. 지난 삶에서 왕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돌봤으니까.
그러니까, 수녀원의 어린아이들.
“떼를 쓰는 게 똑같아. 의외로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꾸우.”
진이 빠져 누운 요이델의 머리 위로 뭉툭한 손이 톡톡 다가왔다.
어느덧 플로테스는 요이델을 능숙하게 위로할 줄 알게 되었다.
학술원의 준비도 바빠 눈코 뜰 새 없었다.
‘지오르베니를 원장으로 앉힐 수는 없어. 다른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해.’
성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런데 아키스 왕녀도 성하에게 말만큼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아.’
요이델은 종이에 관계도를 적었다.
라보르비치는 브리칼트의 우방국. 그리고 주신을 믿는 이들이 가장 많고, 에너지 매장량이 상당하다.
‘이건 눈 뜨고 브리칼트에게 빼앗기고 있고. 아무리 브리칼트보다 약해도, 라보르비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관계를 완전히 뒤틀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라보르비치를 끌어들이는 건 어렵지 않아진다.
브리칼트는 저번 반지 사건도 그렇고,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위협했다. 그러니 이제 눈 뜨고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묘하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찜찜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브리칼트 사람들은 땅을 개척할 때 알았겠지. 그런데 남의 나라 땅을 함부로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가능하지?’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땅을 판다, 그럼 파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타국의 땅이니 거기에 매장된 에너지가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을 거다. 그럼 우연히 발견했어야 하는데.
‘땅을 왜 파지…….’
요이델은 곰곰이 고민했다. 땅은 보통 뭘 묻을 때 판다. 야생동물이 자신의 것을 저장하듯이.
그럼 숨겨야 할 게 있던 걸까?
‘아니면 장례를 치른다거나.’
아.
요이델은 뒤로 젖혔던 몸을 다급히 앞으로 당겼다. 그래, 장례. 지상 대륙은 땅이 넓어 매장하는 장례 형태가 발달했다.
‘그런데 타국의 장례에 관여할 일이 있을까? 말도 안 되는데.’
덜컹.
그때 라나가 약속한 10종의 쿠키를 들고 돌아왔다.
“고향은 잘 다녀왔어요, 라나?”
“시골이라 길이 험해서 오래 걸렸지 뭐예요, 요이델 신관님.”
“그냥 오셔도 되는데…….”
“에이! 그래도 그럴 수 있나요.”
라나는 어깨가 뻐근한지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요이델은 그녀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 주었다.
“신관님을 오랜만에 뵈어서 좋네요. 역시 수도 생활이 좋다니깐요. 괜히 고향에 갔더니 전염병이 퍼져서 아버지 일이나 돕고…….”
“전염병이라면, 괜찮으신 거예요?”
“네, 저희 아버지는 쌩쌩해요. 지나치게요. 돼지들만 걸리는 독한 전염병이라 불쌍한 돼지들을 생매장해야 했지만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생매장이요? 그냥 흙에요?”
“네, 대량으로 묻어서 구덩이를 아주 깊게 파야 했답니다.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네요.”
라나는 눈물을 훌쩍였다.
‘대량 구덩이에, 매장.’
그리고 요이델은 그녀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말을 들으니 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휘스, 라이!”
“델, 넘어져. 뛰지 마.”
“헉, 허억…… 하, 하나만 알아봐 줄 수 있어? 옛날 일인데…….”
“우리 델이라면 뭐든.”
휘스테론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흙 묻은 신을 닦아 주었다.
“라보르비치에서 주신을 믿는 풍조가 언제부터 늘었는지 조사해 줘. 아마 급히 늘었을 거야. 그때를 알아봐 줘.”
“알았어, 델. 그리고 또?”
“치료소의 진료 기록. 라보르비치는 열악하니까 아마 주위 나라로 갔을 거야. 거기에 라보르비치의 사람들이 어디가 아파서 갔는지, 증상이 어땠는지, 그리고 인구가 감소된 마을이 있는지도 조사해 줄래?”
“물론. 기간을 좁혀 줄 수 있어, 델?”
요이델은 확신에 차 고개를 들었다.
“메디아가 문을 닫은 시기에서 오차 범위 5년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