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부탁을 마친 요이델은 다시 돌아와 마르셀리나에게 갔다.
“마르셀리나 님!”
“요이델 군? 나를 찾아서 급히 온 건가요?”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르셀리나 님, 어디 아프세요?”
“아…… 아니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머리가 조금. 그보다 무슨 일이죠?”
요이델이 본 마르셀리나의 안색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지금 상황에 물어도 되나 조심스러웠지만, 묘한 확신이 있었다.
“지난번에 제게 가르쳐 주셨던 마법에 대한 것 있잖아요, 마르셀리나 님.”
“음― 요이델 군과 나눈 대화가 워낙 많아서.”
“큰 마법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요.”
그 말에 마르셀리나는 “아아, 기억이 나네요.” 하고 대답했다.
“사람에게 어떤 못된 마법을 걸려면, 대가가 어느 정도 필요할까요?”
“그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난도 저주술 같은 경우라면 대량으로 필요할 거예요. 생명이 좋고, 사람일수록 좋죠. 마법의 완성도와 실패율이 달라지니까요.”
“고마워요, 마르셀리나 님!”
“어머.”
요이델은 마르셀리나를 꽉 껴안았다.
“또 올게요. 정말 감사해요!”
그 덕에 기분이 한결 좋아진 마르셀리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녀는 책상에 놓인 세 수련신관의 초상화를 안 보이게 뒤집어 놓았다.
마음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이 안겼던 온기를 떠올리며 후후 웃었다.
‘요이델 양이 내 조카를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는데.’
그리고 진심으로 소개 자리를 주선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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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다 이제 오는지 모르겠군.”
“왕녀님.”
“나 이제 꼼짝도 못 해. 이 대신전이랑 저 회의장에 갈 때 외에는 방문 밖으로 출입 금지 당했으니까 네가 와 줘야겠어.”
그녀의 이동 거리가 제약된 건 들었다. 시종들이 잘됐다고 신이 나서 수군거렸으므로.
“심심하셨어요?”
“심심은 무슨.”
요이델은 이제 그녀가 그저 투정쟁이처럼 보였다.
“그 은백색 괴물은 가져오지 마. 다음엔 깨물릴까 봐 무섭군.”
“네.”
“이곳은 지루해. 라보르비치처럼 따뜻한 날씨인 것도 아니고, 길이 너무 잘 닦여서 말을 타고 세게 달릴 수도 없어.”
“왕녀님의 나라는 예쁜 곳이었나 봐요.”
“엄청 아름답지.”
아키스는 그리운 눈을 했다.
“우리나라의 북부 지방은 여기의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 온난하지. 열매는 얼마나 단지 알아?”
요이델은 그녀의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대외용 위엄 있는 말투가 아니라,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그래요? 정말 좋았겠어요.”
“그치.”
요이델은 이제 진짜 묻고 싶던 얘기를 꺼내 보기로 했다.
“왕녀님은 왜 성국에 오셨어요?”
“얼른 가라고 쫓아내는 건가?”
“그게 아니라 궁금해서요. 휴양지로 좋은 나라는 많잖아요.”
“…….”
“혹시 성하를 좋아하세요? 정말 학술원은 핑계고, 옆자리를 갖고 싶어서 오신 건가요?”
당돌한 질문에 아키스는 조그만 신관을 픽 웃으며 쳐다보았다.
“불안하니?”
“아뇨, 저는 묻고 싶어요. 왕녀님이 쓸쓸해 보여서요. 저도 혼자 있을 때 그런 표정을 자주 지었거든요.”
아키스는 말없이 요이델을 바라봤다.
“왕녀님, 저한테 모지신 거, 그리고 여기 계시는 거. 왕녀님이 하고 싶어서 하시는 건가요?”
흔들리는 금색 눈동자를 보며, 플로테스와 똑같지만 다르다고 생각했다.
플로테스의 눈이 맑다면, 아키스의 눈은 의외로 무척 깊었다.
“정말 이게 좋아서 하는 거예요?”
“…….”
“말해 주세요. 아니면 성하를 좋아하세요? 그것도 아니면…….”
요이델은 침착하게 말했다.
“지오르베니 님의 청을 거절할 수 없으세요?”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럼 브리칼트군요.”
그 순간 아키스의 몸이 경직됐다.
“이거, 수면에 좋은 향이에요. 왕녀님이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 보여서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얼굴에 피로가 가득한걸요. 제 눈은 속일 수 없어요.”
요이델은 라나에게 줬던 것과 같은 향낭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녀님이 원한다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
“성하의 뜻도 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으면 말해 주세요.”
━━━━⊱⋆⊰━━━━
휘스테론은 요이델에게 소라 껍데기처럼 딱 달라붙어 다니는 왕녀를 바라보았다.
이거 뭐, 신수님 같은 게 하나 더 늘었네.
“이 왕족님이시구나. 그런데 왕족님, 다리를 쩍 벌려 앉는 사람들은 정력이 후지대.”
아키스는 다급히 드레스를 수습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무례한 변태 같으니.”
“내가? 아니면 왕족님이? 난 후자 같은데.”
“이…….”
“아아. 그보다 델, 부탁한 자료들 여기 가져왔어.”
휘스테론은 하하 웃어넘겼다.
‘역시 그랬어.’
자료를 후루룩 훑은 요이델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 들었음을 느꼈다.
요이델은 그 자료들을 자신의 방에 놓아 달라고 부탁한 후, 휘스테론을 먼저 보냈다.
‘휘스랑 왕녀님이 같이 있으면 엄청 싸울 것 같단 말이야.’
어쩐지 미묘하게 둘의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버리셨네요?”
“그래.”
향낭은 박박 뜯겨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안에 들어간 꽃잎은 후드득 가루처럼 이리저리 흩날려 포대에서 몸을 쏟아 냈다.
“필요 없는 걸 주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
“브리칼트니 뭐니,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종알종알 시끄러워 죽겠네. 봐, 나한테 정떨어졌지?”
“네.”
“……어?”
여태까지 모든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던 요이델이었다.
이번에도 분명히 “아뇨.”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와서, 아키스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잠깐만 이게…… 울면 어떡해.”
아키스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요이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덜 외로웠으면 해서 열심히 만들었어요.”
“…….”
“잠을 못 잔다고 들어서 꽃잎만 조금 넣었어요. 향낭에 독을 넣지도, 마법에 걸려 있지도 않아요. 그냥 향낭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리자 아키스는 쩔쩔매며 입술을 물었다.
“그게, 그니까.”
“왕녀님 말대로 모르니까 묻는 거예요.”
터진 향낭을 주워 든 요이델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거든요?”
“뭐?”
요이델은 꿋꿋하게 탁! 소리 나게 향낭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향낭 안의 꽃잎은 향기 용도뿐만이 아니라, 차로 타서 먹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터지게 만들어도 소용없어요! 활용할 수 있다고요!”
아키스는 멍하게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왜 그쪽으로 더 화를 내는 건데?”
“답답해서 그래요! 왕녀님이 말을 안 해 주시면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도울 수가 없어요.”
요이델은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은 슥 닦아 냈지만 붉은 울음기는 남아 있었다.
“좋아요, 그럼 갈게요.”
“어?”
요이델은 방의 창문을 모두 닫아 주었다.
“포근해도 겨울이라서 문 열고 자면 감기 걸려요. 이것까지만 해 줄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 봐.”
“싫어요.”
“가지 말라고!”
“싫거든요.”
그 순간 요이델의 옷자락이 덥석 잡혔다.
아래를 바라보자 아키스가 금색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울먹이는 눈이었다.
휙!
아키스는 향낭 헝겊을 빼앗아 손에 쥐었다.
“너 뭔가 알아?”
“…….”
“너는 요보힐데잖아. 근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너네 미친놈 같은 황제가 저 모양인데? 네 아빠랑 엄마도 제정신 아니야. 제일 잘 알지 않아?”
“……말씀해 주시면요.”
“너 진짜 바보 같아. 왜 마음대로 나한테 잘해 주려고 해? 남는 장사야?”
아키스는 눈을 찡그렸다.
“호구도 정도껏이지. 내가 이런저런 시중을 시키는데 밉지도 않아?”
“안 밉다고 안 했어요.”
“밉다는 거네. 그렇다 치자. 그럼 왜 나한테 잘해 줘? 내가 동정받을 사람인 줄 알아?”
“그건…….”
“나는 태어나서 동정받아 본 적 없어. 근데 네가 그걸 해. 그런데 싫지가 않아. 넌 뭐야?”
꽉 쥐어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잠을 설치든 말든, 아프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 왜 함부로 나를 위로하려고 들어? 응? 이유가 뭐야? 왜?”
아키스는 순수한 궁금증에 물었다.
그녀의 금색 눈이 정말 보석처럼 반짝였다. 흡사 광기 같았으나 한편으로는 순진했다.
당황한 요이델을 바라보던 아키스는 갑자기 눈물을 주륵 흘렸다.
“너 진짜 짜증 나. 나 이런 멍청이 처음인데, 되게 기분 좋아.”
눈을 뜨고 훌쩍거리는 아키스는 욕을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아 냈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나 운 거 소문내면 가만 안 둬. 나 구분 철저한 사람이거든.”
잠시 고민하던 요이델은 제 두 눈을 찹찹 때렸다.
“보세요, 저도 아까 울었잖아요. 왕녀님보다 먼저 울었다고요.”
“허, 진짜.”
“이제 똑같아요. 저도 우는 걸 들킨 거예요. 우리 둘 다 똑같아요. 창피하면 저도 창피하고, 혼자가 아녜요.”
요이델은 제 눈가를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토끼처럼 붉은 눈이 왕녀보다 더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왕녀님도 저 운 거 소문내시면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럼 네가 어쩌게.”
“이거 뺏어 갈 거예요.”
요이델은 아키스의 손에 있는 향낭을 가리켰다.
“성직자가 더럽게 치사하다. 너희 신조가 박애라며. 이거 터졌으니까 하나 더 줘.”
“싫어요.”
“좀 해 줘.”
입씨름을 하던 아키스는 저도 모르게 확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짜증 나!”
아키스는 웃은 자신이 짜증 나고 창피해서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울컥했다.
“왜 나한테 거지 같은 정성 가득한 향낭도 만들어 주고, 독약처럼 맛 더럽게 없는 약도 가져다주는지 이해가 안 돼. 왜 그렇게 잘해 줘? 이거 너희 나라 수법이야?”
아키스는 요이델을 힘껏 끌어안고 조용히 울었다. 그러면서 옷을 더 꽉 잡았다.
옷이 축축해진 걸 느낀 요이델은 머리를 들어 쓰다듬어 주었다.
“네 얼굴 따위 보기 싫으니까 지금은 내가 숙여 주는 거야. 알겠어?”
“그럼 저도 방으로 돌아갈까요?”
“씨이, 흑, 으앙.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좀만 더 있어 줘.”
요이델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솔직한 편이 좋아요.”
움찔한 아키스는 요이델을 우물쭈물 올려다봤다.
“그럼 나 이제 좋아? 방금 솔직했잖아.”
“아, 음.”
요이델은 우물쭈물하다 대답을 못 했다. 솔직히 좋은지 싫은지 물으면 좋다,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너 진짜 싫어.”
아키스는 후, 한숨을 내쉬고 대충 다리를 그러모아 앉았다.
“좋아, 네가 궁금해하는 얘기를 해 줄게. 브리칼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