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ait, you will level up RAW novel - Chapter 40
제39화
선우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캡슐에서 나왔다.
“아, 짜릿하다… 이게 돈 버는 맛이구나….”
이강철의 아이템 풀 세트는 오크 마을 경매장에서 모두 팔렸다.
그것도 역사상 전례가 없던 가격으로.
“여보세요? 엄마. 제가 이따가 송금해드릴게요. 제가 게임으로 돈을 좀 벌었거든요.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엄마의 대출금을 갚아주기 위해 선우는 먼저 은행을 찾았다.
이번엔 목돈을 송금하는 만큼 은행의 도움이 필요했다.
“21번 고객님.”
“접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선우가 은행원과 마주앉았다.
약간 웨이브를 넣은 머리가 목을 덮고 있는 여자 은행원이었다.
신참 행원이니 잘 봐달라는 인사말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은행에는 프로 게이머들을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VIP 고객들부터 VVIP까지 지금은 게이머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게이머들의 커리어를 담보로 대출도 많이 빌려줬다.
그만큼 은행권에 새로 주목받는 직업이 게이머였다.
선우는 은행에 온 김에 그동안 돈이 없어서 관심을 안 뒀던 은행의 여러 서비스를 신청하기로 했다.
“얼마를 송금하시려고 하시죠?”
“6억 5천이요.”
선우의 대답에 여자 행원이 흠칫 하더니 다시 물었다.
“아, 그 정도 돈이면 한 번에 송금하시기 전에 미리 작성해주셔야 할 게 있는데요.”
여자 행원이 선우를 보는 눈빛이 반짝거렸다.
‘VIP 플레이어인가?’
“먼저 그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버신 건지 돈의 출처를 은행에서 확인하고 국세청에 알려줘야 돼서요. 여기에 지금 하고 계신 게임하고 캐릭터 네임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선우는 볼펜으로 작성을 시작했다.
“인피니티 로드를 하시는군요. 죄송한데 현재 레벨이 어느 정도 되시죠?”
“90 정도 됩니다.”
“아, 그러면 이쪽 칸에 레벨 적어주시고요. 가입하신 길드도 있으시면 적어주세요.”
“길드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쪽 칸에 인피니티 로드 가상계좌 번호를 적어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은행원의 타이핑이 빨라졌다.
“혹시 죄송한데 운영하시는 게임 방송 채널도 있으신가요?”
“있어요.”
여자 행원은 선우의 방송 채널 조회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조회수가 이렇게 많아? 올라온 영상은 몇 개 안 되는데 이거 혹시 버그 아냐?’
행원이 보기에도 믿겨지지 않는 선우의 채널이었다.
영상 개수는 얼마 되지 않는데 각 영상마다 평균 조회수를 따지면 1백만 명을 넘기고 있었다.
대개 이 정도 평균 조회수를 유지하려면 상위 랭커들도 영상 개수는 100개를 넘어가는 게 기본이었다.
수백 개의 영상 콘텐츠를 올려도 평균 조회수가 10만을 넘지 못하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선우처럼 시작 한 지 얼마 안 돼서 이 정도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는 건 극히 이례적.
여자 행원이 버그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인피니티 로드의 조회수 자체가 인기의 척도가 되자 여러 가지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조회수 버그를 만들고 계약을 하거나 은행에 가서 대출을 크게 빌리는 일들이 꽤 잦았으니까.
“응? 혹시 고객님. 오크 성 소유주 세요?”
행원이 영상 채널을 보다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인 영상을 발견했다.
오크 성 공성전 영상이었다.
“옙, 제가 주인입니다.”
그제야 행원은 납득했다.
‘어쩐지… 그랬구나. 겉보기와 완전 다르네. 대학 다니다 휴학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행원은 선우가 오크 성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뒤늦게 6억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 마스터 이강철의 아이템 판매 영상.
오크 마을의 경매장에서 선우는 이강철을 거의 두 번 죽이다시피 아이템 장사를 했었다.
그리고 총 판매 금액은 무려 7억원을 조금 넘겨버렸다.
이강철이 갖고 있던 아이템 풀 세트의 총 가격은 3억 5천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으니 선우는 자신의 수완으로 무려 2배로 뻥튀기시켜 팔아버린 것이었다.
이걸 가능하게 만든 건 이강철과의 1:1 결투 영상과 오크 성 공성전부터 빈집털이 영상까지 시리즈로 선우가 어필을 하면서 스토리텔링을 했기 때문.
초보 플레이어들을 등쳐먹으며 돈을 벌어온 이강철과 길드원들의 히스토리는 경매에 참가한 유저들을 감성적으로 자극했었다.
사람이 충동적으로 구매를 하면 지갑이 더 활짝 열린다는 것을 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언변과 그럴 듯한 히스토리, 여기에 화려한 임팩트로 가득한 영상 콘텐츠까지.
선우는 이강철의 아이템을 팔면서 또 한 번 주목받는 루키 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있었다.
“오크 성 주인이셨군요. 저는 혹시 조회수 버그가 아닌가 했거든요.”
“다들 처음 볼 땐 그런 말들 많이 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선우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자 행원은 속으로 안심했다.
‘휴우… 이분은 그래도 민감한 성격은 아닌 거 같네.’
인피니티 로드 게이머들 중 가끔 시건방진 갑질로 물의를 일으킬 때가 있었다.
“6억 5천만 원 송금해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찾아주세요.”
선우는 행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은행을 나왔다.
“고기나 좀 사갈까? 엄마 빚이 좀 남았지만 다음 번 크게 한탕하면 깨끗하게 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으니 일단 먹는 것부터 잘 먹어야지.”
7억을 벌었지만 선우가 필요한 금액만 남겨두고 나머지 돈은 엄마에게 보내줬다.
어차피 오크 성 공성전 성공으로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이제 빚은 선우에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크 마을 경매장의 유저들은 선우가 이강철의 아이템 장사로 매 시간마다 불어나고 있었다.
찻잎 판매로 거둬들이는 세금 외에 선우의 새로운 돈줄이 생긴 것.
“이제 생활비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빚 걱정도 안 해도 된다. 게임으로 이렇게 돈을 벌면서 살 수 있으니 좋다, 좋아.”
매달 들어오는 세금을 환전해서 엄마에게 보내줘도 빚은 순식간에 갚을 것이고 이번 오크 성 공성전처럼 이벤트를 열고 장사를 하면 한 방에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선우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 * *
치지직!
선우는 원룸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게임은 체력! 체력은 고기! 고기는 돈! 돈은 인피니티 로드! 아, 갑자기 생각났네. 인피니티 여신이시여, 잘 먹겠습니다.”
한우 등심과 안심, 치마살과 특수부위를 잔뜩 사온 뒤에 거의 흡입하다시피 먹어치웠다.
“요즘 1인분 양이 1인분 같지가 않구만. 더 구워먹어야지.”
선우는 고기를 후라이팬 위에 다시 올렸다.
지이잉-
침대 위에 놔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선우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시 후라이팬 앞에 섰다.
“여보세요.”
– 형!
“어, 유한이구나. 오랜만이다.”
– 형이 오크 성 먹고 있었어요?
“응, 이제 알았냐?”
– 저야 뭐 아르콘 대륙에서 논 지 좀 되다 보니까요. 하하. 벨론 대륙 쪽은 옛날에 졸업했으니 특별한 이벤트 없으면 잘 들리지도 않거든요.
김유한은 선우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게이머 후배였다.
선우가 게임을 하면서 서로 성격이 잘 맞아 단짝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하지만 선우가 레벨업을 하지 못하는 사이 유한은 빠르게 성장하고 길드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뒤엔 더 빨리 성장했었다.
길드 안에서 주목 받는 유망주로 성장하던 유한은 벨론, 로젠하임 대륙의 퀘스트를 모두 통과한 뒤 아르콘 대륙으로 들어갔었고 그 뒤 선우와 연락이 뜸해졌었다.
아르콘 대륙에서 잘나가는 양대 산맥 길드 중 한 곳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단 연락을 끝으로 오늘에서야 다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르콘 대륙 가보니 어떠냐? 정신없냐?”
– 와, 여기는 진짜 장난 아닙니다. 형. 아마 나중에 오시면 진짜 깜짝 놀라실 걸요.
“어떤데?”
– 일단 크고 작은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져요. 사냥터에서 몹 잡다가 다른 길드끼리 갑자기 길드전 벌여서 잠깐 구경하다가 템 주워 먹고 튀는 재미가 있고요. 마을에서 고기 사먹고 체력 비축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크 떼가 처들어와서 마을 난장판 되질 않나, 영지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산책하던 와이번이 나타나서 불을 끼얹질 않나,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습니다.
“오, 야 거기서 템 먹으면 얼마씩 팔리냐?”
– 템에 따라서 다르죠. 여기 도적 플레이어들은 길드전, 영지전, 공성전 같은 거 하면 근처에 숨어 있다가 조직적으로 템만 줍고 튀는 놈들 엄청 많거든요. 소매치기 스킬도 장난 아니라서 사냥터에서 임시 파티 맺고 사냥하는데 같은 파티원 아이템 슬쩍하는 놈도 있고요. 처음 여기 들어와서 적응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열 받는다고 결투 신청 잘못 했다가 털리고 템만 먹힌 적도 많고요. 헬 게이트 대륙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랜만에 연락이 온 유한은 아르콘 대륙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떠들어댔다.
선우는 계속 고기를 구워대며 맞장구만 쳐줬다.
– 형, 오크 성 공성전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뭐가?”
– 블랙 스콜피온 길드 마스터가 오크 성문 박살내려고 차징 스킬 써서 돌격했잖아요. 그거 보니까 갑자기 성문 안으로 워프 한 것처럼 들어가던데 그거 뭐예요? 저는 몇 번을 봐도 감이 안 오던데. 이강철 걔 전사 클래스라서 워프 스킬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영업 비밀이다.”
– 에이, 형. 그러지 말고 알려줘요. 저 뿐만 아니라 같이 본 길드원들도 신기해하더라고요.
유한이 궁금해 하는 건 선우가 오크 성문에 깔아뒀던 소환의 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신기해하거나 의아해 하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소환의 진 스킬은 선우가 스킬 사용권을 통해 뽑았으니까.
선우가 그런 스킬을 순순히 알려줄 리는 없었다.
“계속 신기해하라고 해.”
– 형, 그러지 말고 제가 있는 길드로 안 들어올래요?
“무슨 길드인데?”
– 아르콘 대륙에서 아누비스 길드 하면 다 알아주죠. 레비아탄 길드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대형 길드입니다. 아르콘 대륙 제패에 가장 근접해 있는 길드는 아누비스 길드가 1위거든요. 형이 길드 가입하신다면 제가 벨론 대륙부터 로젠하임 대륙까지 초스피드로 퀘스트 깨도록 버스 태워드릴게요.
“난 길드 필요 없다. 혼자서 뛸 거야.”
– 벨론 대륙은 초보 대륙이니까 솔플도 편한데요. 아르콘으로 들어오시면 솔플 어려워요. 솔직히 길드가 괜히 길드겠어요? 들어오는 정보력도 있고 길드 자금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외부에서 알 수 없는 고급 정보와 노하우가 많습니다.
선우는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젓가락으로 휙휙 집어먹었다.
“그거야 뭐 내가 아르콘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 형, 일단 만나서 좀 더 이야기 해봐요. 제가 내일 벨론 대륙으로 넘어갈게요. 형 계신 곳이 오크 성이죠? 오크 마을로 가면 돼요?
“응, 오크 마을로 와라.”
– 알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길드원들하고 레이드 해야 돼서 내일 오전 중으로 갈게요.
선우는 다시 고기를 구워댔다.
“길드를 왜 드냐? 나 혼자 해먹을 게 천진데.”
* * *
선우는 다음 날 아침 인피니티 로드로 들어갔다.
“확실히 경매장 세금이 많아지니까 가상계좌에 들어오는 돈이 확 불었네.”
오크 마을 경매장에 북적거리며 거래 하고 있는 유저들을 보면서 선우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귓속말이 왔다.
– 형, 저 오크 마을 왔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