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1
100화
툭. 툭.
라세흠 부장이 피떡이 된 아귀의 뺨을 몇 번 때리더니,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풀썩 널브러지는 놈을 보며 마음속으로 애도하려다 말았다.
저렇게 처맞아도 싼 놈이니까.
“하. 풀컨디션으로 한번 붙어 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쩝. 팍 식네. 돌아가서 마종석이랑 놀아야겠어.”
마종석?
그러고 보니 그놈을 잊고 있었네.
나중에 한 번 찾아가서 대화를 좀 나눠 봐야겠다.
쓰러져 끙끙대는 놈들을 보고 있던 때,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왔네.”
“경찰이야?”
“네. 저희끼리 이 많은 놈을 다 처리할 순 없으니까요.”
몰려온 경찰차에서 내린 서해결 검사의 동생, 서한결 형사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형을 찾았다고 연락했더니, 바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나섰지.
서해결 검사가 조사하던 날 의심할 만한데, 내가 범인이라면 납치를 저지를 리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주혁 대표!”
“예. 형사님.”
“형은요? 찾았습니까?”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서해결 검사가 일어나 다가오며 말했다.
“…난 괜찮다.”
“형!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 팔다리가 좀 저린 거 말곤 다친 데 없어.”
“얼굴에 이 상처는 다 뭐야?!”
우애가 참 좋네.
“감동의 재회 중 죄송한데, 이놈들 깨어나기 전에 수갑 다 채우는 게 좋겠습니다. 워낙 닳고 닳은 놈들이라.”
“아, 예. 이놈들 다 체포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경찰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헉!”
“이, 이게 무슨…….”
좀 당황스러울 거다.
자기네 팀장이 시켜서 왔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바닥에 엎어져 있으니.
찰칵. 찰칵.
“윽.”
“끄으…….”
경찰들이 현장 사진을 찍고 반죽음 상태의 킬러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뒤 끌고 갔다.
아마 심문한 뒤 법의 심판을 받게 되겠지.
무려 대한민국 현직 검사를 건드렸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주혁아.”
“네?”
라세흠 부장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쟤네들은 주철수를 잡는 데 쓴다고 하지 않았냐? 이렇게 경찰에 넘겨도 되는 거야?”
“그랬죠. 그래서 넘기는 겁니다.”
“음?”
씨익.
주철수를 엿 먹일 생각에 저절로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이제 저놈들 입에서 주철수라는 이름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
강남경찰서의 취조실.
서한결 형사의 배려로 나는 서해결 검사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검사님.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얼굴은 좀 치료받으셔야 할 것 같긴 한데.”
“뭐,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면 싸게 먹혔죠.”
서해결 검사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럴 때가 아닐 텐데. 나한테 뭐 할 말이 없나?
“검사님.”
“예.”
“우리 집 앞에서 납치당하셨더군요? 마침 제가 집 앞에 CCTV를 따로 설치해 놔서 다행이지, 아니면 더 시간이 오래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거긴 왜 가셨어요?”
내 말에 서해결 검사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왜, 날 의심해서 조사하러 갔다고는 말 못 하겠어?
“음. 그냥, 배성복 서장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뭔데요? 그게.”
“큼. 그…….”
“씁. 됐습니다.”
나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명, 죄책감 자극하기.
“서로 가는 방법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저를 의심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절 의심해서 제집 앞에 오신 거 아닙니까? 제가 배성복 서장 비리가 담긴 사진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궁금하셨다거나….”
“오해입니다. 이주혁 씨. 의심이라기보단, 확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이 양반이 교묘하게 빠져나가네.
“솔직히 말하자면, 배성복 서장이 지나가듯 말한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뭐라고요?”
“‘이주혁은 강남파다’라고요.”
“하!”
배성복. 이 새끼가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려고 발악을 한 모양이네.
나는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예전에 배성복 서장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 서장을 속이기 위해서였죠. 설마 그것 때문에 절 의심하신 겁니까?”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섭섭하네요, 검사님. 이미 제 과거도 조사해서 아실 텐데, 제가 진짜 강남파겠습니까?”
“꼭 강남파가 아니라도, 혹시 다른 의도가 있진 않나…….”
드르륵!
나는 짐짓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이렇게 날 의심해? 라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해 봤다.
“주, 주혁 씨.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저를 주철수와 같은 족속이라고 의심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많이 실망입니다.”
“주혁 씨. 정말 아닙니다. 그런 뜻은 없었습니다.”
서해결 검사가 미안한지 벌떡 일어나서도 날 붙잡지도 못한 채 안경만 올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제가 검사님 잡혀 있는 위치도 찾아내고, 직접 찾아가서 싸우고, 동생분한테 부탁까지 해 가면서 구해 드렸는데….”
“알죠. 압니다. 노여움 푸시고……. 제가 나중에 일 있으시면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 주셨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나의 완벽하게 삐진 연기에 서해결 검사는 거의 무릎을 꿇을 듯한 얼굴로 연신 사과했다.
이만큼만 몰아붙여도 되겠지? 그래도 좋은 사람이니까.
그냥 서해결 검사의 신뢰와 호의만 얻을 정도로만 죄책감을 심어 준 거 같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난 털털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해 못 할 건 아니니, 저도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러시면 진짜 섭섭할 겁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정말요.”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깐 눈치를 보던 서해결 검사가 궁금했던 건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혹시 부장이라고 부르시던 그분은 뭐 하는 분입니까? 몸놀림이 보통 사람이 아니시던데요.”
“아, 부장님이요? 군대에서 교관이셨습니다. 호랑이 교관. 저도 어지간해서 꿀리진 않는데, 군대에서 교관님한테는 엄청나게 맞았죠.”
“음. 그렇군요…….”
달칵.
취조실의 문이 열리고, 서한결 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뭐야. 형은 무슨 대화를 하길래 일어나 있어?”
“아.”
아까부터 서 있던 서해결 검사가 자리에 앉았다.
서한결 형사가 웬 서류들을 들고 다가오더니, 책상을 짚으며 물었다.
“형. 그런데 저번에 이주혁 씨 출국 기록은 왜 본 거야? 그거 때문에 수배 때릴 준비까지 했잖아.”
나는 서해결 검사를 홱 돌아봤다.
그러자 검사는 입만 뻥긋거리며 말을 잇질 못했다.
그래, 내 출국 기록까지 봤다는 거지?
이거 아주 본격적으로 뒤를 터셨구만.
땀을 흘리며 내 시선을 피하던 서해결 검사가 화제를 돌렸다.
“한결아. 그래서 증언은 나왔어?”
“어. 딱 한 놈 입에서 이름이 나오더라.”
“누구?”
“강남파 주철수.”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낚였구나.’
조금 전, 유치장에 갇힌 킬러 놈들한테 미끼를 던졌다.
-니들. 입 다물고 있을 거야?
-…….
-삼합회 이름은 기대도 안 해. 그냥 주철수가 시켰다고만 증언해라.
-cao(X발).
-아니면 공안에 넘겨져서 모가지 날아가든가. 선택해.
내 말에 오귀 중 한 놈이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다.
삼합회에 충성하던 놈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겠지.
하지만 감옥에서 사형당하기 싫은 녀석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배신자가 나왔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네요. 이제 이걸로 주철수는 끝이고, 성남의 삼합회도 엮여 있으니까 가능하면 그쪽에 관한 증언도 받아 주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정말 삼합회가 엮인 일입니까?”
“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녹음도 해놨지만, 법적 효력은 없으니 의미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서한결 형사가 물었다.
“그럼 이주혁 씨는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아, 뭐……. 비즈니스 때문에 잠깐 들릴 데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용감한 시민이자 모범 납세자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럼, 가 보겠습니다.”
취조실 문을 닫고 나왔다.
킬러 새끼들 조사가 끝났으니, 피해자인 서해결 검사 증언을 듣겠지.
나는 경찰서 바깥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후…….”
아까 서한결 형사가 어딜 가냐고 물었었지.
뭐,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어?
삼합회가 있는 성남. 주철수의 위치에 대한 단서도 얻을 겸 한번 찾아갈 생각이다.
아무래도 그쪽이랑 심도 있는 대화를 좀 나눠 봐야겠어.
***
주철수의 은신처.
초췌한 얼굴의 주철수가 의자에 기댔다.
방은 사무실처럼 꾸며 놨지만, 본사의 사장실에 비하면 초라한 꼴.
주철수는 더 이상 짜증이나 화를 낼 여력도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기에도 바쁜 까닭이었다.
‘슬슬 잠잠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한 일주일 전만 해도 주철수의 범죄 행각에 대한 소식이 신문과 인터넷으로 나돌았는데, 지금은 조금 잦아든 모양이다.
주철수는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계좌에 남은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때, 조직원 하나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저, 사장님.”
“왜.”
“지금 뉴스……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이젠 듣기만 해도 PTSD가 올 것 같은 말에 주철수는 미간을 좁히며 장 위에 놓인 텔레비전을 켰다.
그러자 뉴스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폭력 조직 강남파의 수장 주철수. 이번엔 현직 검사 납치 후 살해 사주…….]주철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장을 읽었지만, 글씨가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X발. 이게 무슨…….”
검사라니, 이게 무슨 개소린지.
‘미쳤다고 현직 검사를 죽여?’
진짜로 자신이 사주했으면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이 버젓이 보도되고 있으니, 주철수는 그야말로 미치기 직전이었다.
[바로 어제. 서울남부경찰청 소속 검사가 연변 출신 조선족 남성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보복성 조치로 추정되며, 범인들은 몸값을 요구하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주철수가 실성한 듯 웃었다.
‘돈 귀신, 이 개새끼들이…….’
이주혁 모가지 따라고 보냈다가 처맞고 돌아오더니, 이젠 현직 검사를 납치해?
그리고 사주한 적도 없는 자신의 이름은 왜 부른단 말인가.
주철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불 거면 삼합회 이름을 불든가, 입을 다물고 있든가.
‘X발. 안 그래도 도망 다니는 내 이름을 왜…….’
아무래도 만만하게 생각했나 본데, 언젠가 저놈들은 꼭 직접 찢어 죽일 것이다.
다짐한 주철수는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툭.
주철수가 조직원을 밀치며 방을 나섰다.
그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한 빌라촌.
언뜻 보면 평범한 주민들이 살 것 같은 이곳은, 알고 보면 음지에서 온갖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 중 하나다.
지금 걸어가는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저씨도 삼합회, 얼굴이랑 어울리지 않는 채소를 파는 놈도 삼합회.
이곳 주민의 대부분은 여기서 생활하는 삼합회 조직원이다.
외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평소에는 여느 생업 종사자처럼 생활하다, 중요할 때는 무기를 들고나오는 놈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고?
내가 직접 그 광경을 봤거든.
평범하게 생선을 손질하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빛을 바꾸며 사시미를 찔러 오던 모습.
‘다시 생각해도 충격이군.’
턱.
기억을 더듬어 언뜻 보면 평범한 민가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삼합회 성남지부의 보스가 사는 집이다.
“큼.”
나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녹슨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계십니까-!”
쾅! 쾅! 쾅!
대화를 좀 나눠 보자고.
대신, 그게 말로 하는 대화가 될지는 너희한테 달렸겠지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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