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장례식장의 지하 주차장.
식장 안에 남아있던 곽환성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회장님. 타시죠.”
“그래.”
곽환성의 휠체어를 밀던 남자가 고급 세단의 문을 열고 그를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휠체어를 곱게 접어 트렁크에 넣은 뒤,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랐다.
탁.
“출발하겠습니다.”
부웅-!
“형님.”
“어. 아까 전화는 뭐야?”
“왕후성이 인천으로 출발했답니다.”
“그 백정 놈이?”
곽환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데, 더 골치 아픈 놈이 오는구만. 뭐 때문에 온다나?”
“아마 계속 얘기가 나오던 사업 확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그냥 둬야지. 그놈이 어디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놈인가? 이주혁한테 간단한 정보만 전달해 줘.”
그놈이 한국에 왜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제발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했다.
주차장을 나와 도로로 진입하던 때, 남자가 운전석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형님.”
“음?”
“이주혁 그놈.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못 믿을 놈이지.”
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남자가 룸미러로 곽환성을 살폈다.
“그런데 왜 그리 많은 정보를 풀어 주신 겁니까?”
곽환성은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의 눈빛을 봤거든.”
“눈빛 말입니까?”
“그래.”
뒤로 기대앉은 곽환성이 과거에 마주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눈빛을 가진 놈이, 결국 목표를 이루어 내는 법이거든.”
곽환성은 실패했다. 현실을 낭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주철수도 실패했다. 야망 있고 능력도 출중한 녀석이었지만, 더 큰 존재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살다 죽어 버렸다.
하지만 그놈의 눈빛은 둘과는 달랐다.
자신의 사람들을 챙길 줄 안다. 그렇다고 적에게도 자비로운 건 아니다.
적으로 판단하면 숨통을 끊을 때까지 물어뜯는다.
“그래도 그자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대항하려던 사람이 없던 게 아니잖습니까.”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녀석이다.”
“음……. 그럼 이주혁을 도우실 겁니까?”
“나 같은 늙은이가 돕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남자가 허허 웃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걸 다 넘겨주신다면 도움이 될 텐데요.”
“그런 식으로는 안 돼. 내가 낚시를 알려 줄 때 어떻게 했어?”
“음.”
“난 터만 제공하는 거지. 그놈은 처음부터 직접 찾아가야 하는 놈이야. 그게 아니면 절대 닿을 수 없어.”
“그렇습니까.”
곽환성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지만 이내 멈칫한 그가 담배를 다시 갑에 집어넣었다.
“아마 이 짓도 이게 마지막이겠구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놈이 날 여태 살려 둔 것만 해도 기적이다. 그 귀신 같은 놈이 내가 이러고 있는 걸 모르겠어?”
“…….”
꾸깃.
곽환성의 손에서 담뱃갑이 구겨졌다.
“내가 죽기 전에, 그놈 죽는 꼴은 보고 가야지.”
***
덜컹.
대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소식을 듣고 복귀한 팀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데려온 놈을 기다리고 있던 거겠지만.
라세흠 부장이 들고 있던 놈을 대련실 바닥에 던졌다.
쿵!
“이놈이에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네.”
팀원들이 마스크를 쓴 채 기절한 남자를 발로 툭툭 차며 살폈다.
놈이 오는 길에 자꾸 정신을 차리려고 하길래 부장님이 몇 번 재웠더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기준이 대련실에 보이지 않았다.
“기준이는?”
“아, 손님맞이 준비한다고 미리 내려가 있다.”
“그래?”
대체 무슨 고문을 하려고 그렇게까지 준비하는 거야?
순간 기절해 있는 놈이 살짝 불쌍해 보였다.
쿵쿵.
“데려왔다고?”
대련실 뒤편,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에서 백기준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놈의 얼굴을 보고 히죽 웃는 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눈에 선했다.
굳이 그 광경을 내가 볼 필요는 없어서 대련실을 나왔다.
바깥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던 우재성과 눈이 마주쳤다.
“네.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표님?”
“예.”
탁.
핸드폰을 품에 넣은 우재성이 다가왔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 제 사무실로 가시죠.”
턱.
사무실로 들어와 우재성에게 커피 한잔을 대접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우재성이 용건을 꺼냈다.
“배상훈 씨한테 듣기로, 주철수는 자신이 가진 부동산들을 급처분해 도피자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아직 남은 건물들이 꽤 있답니다.”
“호…….”
주철수의 부동산이라.
하긴, 서울 최대 규모 조직의 수장이니 재산이 어마어마하겠지.
내가 몇 번 큰 손해를 보게 하긴 했지만, 그건 현금에 한정된 손해.
놈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다.
“그걸 싹 다 우리 손에 넣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죠?”
솔직히 주철수가 관리하던 금싸라기 같은 강남의 부동산들을 국가에서 가져가는 게 아깝긴 했다.
하지만 괜히 내가 중간에서 장난질하다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
“일단 제가 알아보곤 있는데, 방법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그걸 가져올 방법이 있다고? 괜히 말을 꺼낸 게 아니었구만?
“네. 우선, 주철수의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던 업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요?”
“차명으로 된 부동산을 찾아야죠. 국가가 압수하지 못할 테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저게 있었다. 주철수가 법망을 피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수법.
강남파에 빚이 있는 사람들의 신상을 이용해 차명계좌나 부동산을 산다.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책임은 그들이 지게 되고, 그렇게 항상 주철수는 유유히 빠져나갔었지.
“그럼 바로 업자를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준비 중입니다.”
“오, 벌써요?”
“네. 배상훈 씨가 같이 만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우재성. 미국까지 날아가서 갱이랑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데려온 보람이 있다니까.
원래 같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해 주니까 편하네.
“그럼 일단 저놈부터 처리합시다. 슬슬 뭔가를 뱉어 냈을 것 같은데.”
“그러시죠. 저도 같이 갈까요?”
“음…….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내 말에 우재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이 듣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갑시다.”
다시 대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음?”
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지하 고문실에 내려가 있던 백기준이 언짢은 표정으로 팀원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설마 뒈지기라도 한 거야?
아무리 우리 SA시큐리티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잘 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건물에서 사람이 죽는 건 좀 곤란한데.
“무슨 일이야?”
다가가서 백기준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존심이 상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제스처였다.
“이 새끼……. 존나 독한 새끼야.”
“그놈이?”
“어. 뭔 짓을 해도 절대 입을 안 연다. 무조건 이주혁을 데려오라고만 하던데, 혹시 뭐 아는 거 있냐?”
“날?”
얼굴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놈이 날 지목해서 데려오라 한다고?
“일단 가 보지, 뭐.”
아마 이놈 위에 있는 그 자식이 시킨 게 아닐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긴 해도, 폭탄 조끼로 자폭하는 정도가 아닌 이상 위험한 일은 없겠지.
나는 지하실을 개조한 고문 장소로 내려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달칵.
“어우. 불 좀 켜고 살아라.”
“분위기라는 게 있잖냐.”
그런 내 뒤로 백기준과 우재성이 따랐다.
놈이 날 딱 집어서 찾았으니 굳이 다른 사람을 데려갈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탁. 탁.
“꼴이 말이 아니네.”
계단을 내려와 의자에 묶여 있는 놈과 마주했다.
워낙에 만신창이라 굳이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진 않았다.
“이 새끼 이름이 뭐냐?”
“몰라. 그것도 말 안 한다.”
“미친놈이네, 이거.”
놈의 입에는 세로로 그인 듯한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눈에는 독기가 가득한 게, 엄마 말 더럽게 안 듣게 생겼다.
축 처진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놈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고 눈을 마주쳤다.
“야.”
“…….”
“나 찾았다며. 뭔데?”
“이주혁.”
“왜?”
내 이름을 부른 놈이 시뻘게진 이빨을 드러내며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처웃고 있네. 이거 완전 또라이구만?
“날 왜 찾았냐고. 묻잖아.”
“다른 것들은 내보내라.”
“뭐?”
피 칠갑이 된 놈이 고개를 들어 형형한 눈빛으로 날 똑바로 마주했다.
“그럼 말해 주지.”
“……일단 나가 있어요. 백기준 너도.”
“알겠습니다.”
“쯧. 알았다.”
둘 다 고문실을 나가고, 이 어두운 공간엔 나와 눈앞의 미친놈만 남았다.
“자.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했지? 이제 털어 봐. 뭔 소리를 하려고 나만 남긴 건지.”
“……저 탁자 위에 핸드폰이 있다.”
“핸드폰?”
백기준의 살벌한 고문 도구들이 놓인 탁자 위, 놈의 말대로 핸드폰이 하나 보였다.
나는 그걸 들고 확인했다. 딱히 이상한 거 없는 그냥 핸드폰이었다.
“이게 뭔…….”
띠리링-!
“X발, 깜짝이야.”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수신된 게 보였다.
이렇게 대놓고 수상한 전화라니. 묶여있는 놈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핸드폰을 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꾹.
“여보세요.”
-……하하. 이주혁 씨?
전화 너머로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놈이 주철수 위에 있던 놈인 것 같은데, 내 상상보다 훨씬 젊은 느낌이었다.
“혹시 이놈 주인이냐? 사람을 감시하면서 막 물려고 하길래 내가 좀 때려잡았는데.”
-뭐,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꼭 한번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럼 만나서 대화하는 건 어때.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네요. 제가 당분간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주철수 뒤에서 온갖 쓰레기 짓은 다 해놓고 말투는 무슨 사회생활 잘하는 영업사원 같네.
그 괴리감에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 물었다.
“대화를 하려면 통성명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아, 그렇네요. 절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긴 합니다. 이주혁 씨도 편한 대로 불러주시죠.
“어, 그러지. 개새끼 주인. 그래서 전화는 왜 건 거냐?”
-……신선한 호칭이네요. 이주혁 씨한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뭐?”
놈의 입에서 미간이 찌푸려지는 말이 나왔다.
-왜 경찰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순간 머리가 굳었다.
무슨 의도로 한 질문이지? 뭘 알고 하는 소린가?
종이에 쓰여 있던 내 정보를 저놈이 쓴 건가? 설마 전생을 알고 있나?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 오래 고민하면 놈에게 단서만 줄 뿐이다.
“경찰? 무슨 말이지?”
-저도 한때 경찰이 꿈이었죠.
“그래서. 진로 상담하냐?”
-언더커버 형사 이주혁.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겁니까.
이 새끼, 뭘 알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떠보는 거라기엔 말투에 확신이 담겨 있다.
-배 안에서 살해당한 뒤 과거로 돌아온 거 아닙니까?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배 안? 나는 자동차에서 자살로 위장 당했지, 배 안에서 죽지 않았다.
-흠……. 우연이었나. 뭐, 알겠습니다. 이건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얘기 나누죠.
혼자 중얼거리던 놈이 일방적으로 작별의 멘트를 날렸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다시 대화 나누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전화해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고, 이제 또 끊겠다?”
-하하……. 급한 업무도 있고, 생각할 것도 있어서요.
어이없는 놈이네, 이거.
하지만 나도 생각이 많아진 건 마찬가지.
대충 보니 놈은 더 할 얘기도 없는 것 같고, 더 궁금한 건 잡혀 온 놈의 부하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그놈이 알아서 전화를 걸지 않을까.
“자. 이제 우리는 다시 대화를…….”
의자에 앉아 있던 녀석을 돌아보는데, 뭔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놈이 이 사이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설마…….”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
콰득!
히죽 웃은 놈이 입을 다물어 무언가를 씹었다.
“이런 X발. 뱉어!”
“컥……!”
그러자 순식간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런 미친 새끼가…….”
목에 손을 대 보니 맥박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아마 입에 뭔가를 숨겨 놓고 있던 것 같았다.
“하…….”
골치 아픈 상황이다.
유일하게 그놈과 가까운 사람은 혼자 죽어버렸다. 그것도 남의 회사 건물에서.
그리고, 방금 놈과의 전화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 새끼, 아무래도 회귀한 게 맞는 것 같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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