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큭!”
곽환성이 비틀거렸다. 척추 부근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다리에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철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는 곽환성을 보며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퇴하십시오.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살아요. 그게 형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처, 철수야. 그게 무슨 말이냐.”
“형님은 평소에 마찰이 있던 통천파 놈들에게 당해 하반신을 잃은 겁니다.”
곽환성은 그 순간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주철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그의 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곽환성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난 것이다.
“누구냐?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시켰어?”
“…….”
“철수야. 철수야!”
간절한 물음에도, 주철수는 아무 말 없이 현장을 떠났다.
그 후로 그는 곽환성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곽환성이 중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사이, 그 틈을 탄 주철수가 환성파를 해체해 버렸다.
그리고 남은 세력을 흡수하고 전국의 이름난 주먹들을 모아 만든 주철수의 강남파는 순식간에 한강 이남의 최대 조직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곽환성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던 이들은 커다란 구심점을 잃었고, 주철수의 마수를 피하고자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저항한 이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을 뿐이었다.
이 탓에 돌아갈 곳도, 힘을 합칠 가족들도 사라진 곽환성은 어쩔 수 없이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철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네. 아무리 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셈이랄까.”
스륵.
곽환성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시선을 피하기 위해 환자 연기를 한 거였나.
바닥을 딛고 선 곽환성이 장례식장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리 간 것도 어찌 보면 업보인 거지.”
말은 저렇게 했지만, 노인은 과거를 후회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흠…….”
내가 알지 못했던 주철수의 과거를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네.
그래. 내가 알던 주철수의 그 쓰레기 짓은 누군가의 지시였을 확률이 높다. 여기까진 오케이.
그렇다면 그 지시를 내린 놈이 누구인지가 중요한데, 하는 짓거리를 보면 보통 개새끼가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놈이다.
강남파에 놈의 입김이 얼마나 들어갔는진 몰라도 많은 부분에 관여했겠지?
“그놈도 죗값을 치르게 해 줘야겠네요.”
“내가 자네를 왜 불렀다고 생각하나?”
곽환성이 손짓하자, 중년 남자가 품에서 붉은색의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 같은 걸 꺼내 나한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솔직히, 난 철수의 죽음을 앞당긴 자네가 싫네.”
“예?”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놈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능력이 있는 사람 말일세. 어중이떠중이들로는 절대 그놈을 끌어내릴 수 없네.”
당연히 그럴 거다.
아직 DG그룹을 만들기도 전의 주철수를 무너뜨리는 데도 인력과 시간이 꽤 들었는데, 그 주철수 위에 있는 놈은 얼마나 더 빡셀지 생각만 해도 까마득했다.
그런데도 난 나설 수밖에 없다.
아예 몰랐다면 몰라도, 그 존재를 알아 버린 이상 손 놓고 있을 수야 있나.
“애초에 주철수를 족치려고 사람들을 모으던 겁니다. 그 위에 누군가 있다면 그놈도 족쳐야죠.”
그래도 정의감에 경찰이 됐던 나다. 12명의 생명을 구한 영웅인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하고.
주철수보다 더 큰 악이 이 나라에 남아있는데 두 발 뻗고
나는 편지 봉투를 흔들며 물었다.
“그래서, 이건 뭡니까?”
“돌아가서 확인해 보게. 그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봉투를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에 관해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난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렇군요. 용건은 끝인 겁니까?”
곽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주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이제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우재성은 장례식장의 입구 쪽에서 시선을 거뒀다.
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물리적 충돌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건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탁.
“왜 이렇게 안 와? 슬슬 배부른데.”
라세흠 부장이 몇 그릇째인지도 모를 육개장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찾으러 가 볼까?”
“아뇨. 일단 기다려 보죠. 대표님이 위험하실 일은 없잖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그 영감이 주철수랑 관계가 있다는 것 같길래, 혹시 해서.”
숟가락을 들던 라세흠의 눈에 식장으로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음?’
짧은 머리에 입가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남자가 빈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강력한 수상함을 느낀 라세흠이 수저를 내려놨다.
툭툭.
“네?”
“재성아. 방금 빈소로 들어간 사람, 봤냐?”
“아뇨. 입구를 등지고 있어서 못 봤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라세흠은 다시 빈소에서 나온 남자를 곁눈질로 살폈다.
입가의 흉터를 제외해도, 얼굴과 몸 곳곳에 최근 생긴 듯한 상처들이 보였다.
넘어진 건 절대 아니었고, 무조건 칼을 쥔 누군가와 싸운 흔적이었다.
물론 조문객 대부분이 조폭이니만큼 칼빵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저건 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상처다.
‘저 새끼 뭐지?’
상대는 나이프 파이팅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 그리고 흉터가 있는 저놈도 그 상대와 맞설 만한 실력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백기준과 붙었다는 놈이 저놈이구만?’
추론 과정이 합리적이진 않았지만, 라세흠의 본능은 무조건 저게 그놈이라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재성아. 저놈 잡아야 된다.”
“네?”
“기준이가 쫓던 놈이야.”
“…….”
우재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
라세흠의 귀에 누군가와 통화하는 흉터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미간을 찌푸리고 더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자, 그 말소리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4번, 성공한 것 같습…….”
라세흠은 익숙한 단어에 우재성을 향해 눈짓했다.
“조용히 따라갑시다.”
“예.”
둘은 자연스럽게 먹던 그릇을 정리한 뒤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장례식에 누가 참석했는지 확인하려는 듯 이리저리 사람들을 둘러봤다.
라세흠과 우재성도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남자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남자도 둘을 언뜻 보고선 시선을 돌렸다.
‘들킨 것 같진 않죠?’
‘음.’
조용히 시선을 교환하던 둘은 앞쪽 복도에서 걸어 나오는 이주혁을 발견했다.
이주혁이 좌우를 슥 살피며 걸어왔다.
“왜 벌써…….”
라세흠이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뜻을 보냈다.
알았다는 듯 입을 닫은 이주혁에게 다가간 라세흠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기 마스크 쓴 사람, 보이냐?”
“아, 예.”
“기준이가 쫓던 놈이다.”
“확실해요?”
끄덕.
“어. 얼굴에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칼자국이 있었고, ‘4번’이 성공한 것 같다고 통화하는 걸 들었다.”
“여기서 잡아야겠죠?”
“그래야지.”
라세흠이 아직도 식장을 둘러보는 남자 쪽을 향해 힐끗 고갯짓하며 물었다.
“내가 잡아 올까?”
“그럽시다. 아무래도 그놈들한텐 제 얼굴이 더 팔렸을 테니까요.”
“오케이.”
“작전은 ‘택시’로 갑시다.”
끄덕.
라세흠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
.
이주혁과 우재성이 떠나고, 라세흠은 남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몇 분 정도를 가만히 있자, 다시 마스크를 쓴 남자가 수첩에 뭔가를 끄적거리며 나오는 게 보였다.
라세흠은 시선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갔다.
건물 바깥으로 나간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저벅.
‘어디 가는 거지?’
아지트로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어디에 또 볼일이 있는 건지.
장례식장을 나와 다시 마스크를 쓴 남자는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길이 넓지 않아 대놓고 따라가면 들킬 수 있었다.
라세흠은 잠시 기다린 뒤, 남자가 모퉁이를 돌고 나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뭘 하려고 이런 골목으로 들어가시나.’
남자가 사라진 모퉁이를 도는 순간.
쇄액!
“흡!”
황급히 상체를 젖힌 라세흠의 눈앞으로 시퍼런 칼날이 지나갔다.
라세흠이 자세를 바로 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눈치 까고 있었네? 왜 말 안 했어. 쪽팔리게.”
“……연회장에 있던 이주혁의 부하 직원이군. 이미 알아봐 놓고 모른 척한 건가.”
“나도 알아?”
“…….”
라세흠을 알고 있다면, SA시큐리티의 다른 직원들도 노출이 됐을 수 있다는 뜻.
일단 이놈을 잡아서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뭐 됐고,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형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순순히 따라오면 두들겨 패진…….”
후욱!
휘둘러지는 칼에 라세흠은 입을 다물고 몸을 움직였다.
“훅!”
“이 새끼…….”
촥! 파밧!
라세흠은 남자의 칼을 피하거나 쳐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추어 솜씨가 아닌데.’
인간의 급소인 혈관을 정확하게 노리는 실력 하며, 단련된 근육에서 나오는 스피드까지.
왼쪽에서 떨어지던 칼이 순식간에 오른쪽에서 날아들었다.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가는 행동임에도 상대는 서슴없이 사용했다.
팍!
“너, 뭐냐?”
확실히 백기준이 고전할 만한 상대였다.
그렇다고 함부로 파고들기도 뭐한 것이, 괜히 무리한 공격을 했다가 공격한 자신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었다.
칼을 이용한 방어도 탄탄했다. 그만큼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이놈도 약점은 있었다.
칼을 든 손을 흘려낸 라세흠이 남자의 가슴팍을 발로 찼다.
뻥-!
“큭!”
팔뚝으로 방어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라세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날아차기를 먹였다.
쾅! 퍽-!
“욱.”
남자는 벽에 등을 부딪치며 신음을 뱉었다.
“후.”
그건 바로 절대적인 피지컬.
180이 넘는 키에 근육으로 꽉 들어찬 라세흠과는 다르게, 남자는 170 초중반의 체격이었다.
기술도 중요하다지만, 그것도 사실 체급이 맞아야 통용되는 말이다.
게다가 라세흠은 피지컬도 기술도 완성된 상태. 남자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전력으로 빨리 끝내야겠네.’
괜히 여유를 부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라세흠은 스텝의 속도를 더 올렸다.
그러자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가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어어. 이 새끼 봐라.”
그걸 두고 볼 라세흠이 아니다.
탓-!
“어딜 도망가.”
쏜살같이 달려간 라세흠이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퍼억-!
“크악!”
쿠당탕-!
남자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라세흠은 그걸 따라가 남자의 머리를 잡고 담벼락에 처박았다.
퍽!
“…….”
추욱.
남자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라세흠이 의식을 잃은 남자를 둘러업고 주변을 살폈다. 소란이 조금 있었지만, 다행히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료 없이 혼자 움직이는 놈인 것 같았다.
남자를 들고 들어왔던 골목 쪽으로 나가니 입구 쪽에 서 있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달칵-.
“타세요.”
그쪽으로 다가가자 우재성이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라세흠은 남자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출발.”
우재성이 조수석에 다시 탔다.
부릉-.
“동료는 없었어요?”
운전대를 잡은 이주혁의 물음에 남자의 눈을 뒤집어 확인하던 라세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음. 하긴, 기준이랑 마주쳤을 때도 혼자였다고 하니까. 실력은 어땠어요?”
“X밥이던데?”
“큭. 기준이 표정이 보이네요.”
“이 정도 놈 하나도 못 잡은 거 보니까, 새끼들 감이 많이 죽은 거 같긴 하더라고.”
“존나 갈궈 주십쇼. 앞으로 더 큰 싸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주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여보세요?
“어, 기준아.”
-왜. 나 지금 바빠.
“그 새끼 잡았다.”
귀찮은 듯 말하던 백기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새끼? 설마, 그 새끼?
“어. 그 새끼.”
-X발. 어디야? 오고 있냐?
“그래. 싹 다 불게 만들 수 있지?”
-흐흐.
백기준이 전화 너머로도 음흉함이 느껴지는 웃음을 지었다.
-이 개새끼……. 지옥을 보게 될 거다.
그 말에 뒤에서 부장님의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뭘 잘했다고 저러는 거야? 이번 일만 끝나면 뒤졌다.”
음……. 아무래도 지옥을 보는 건 너일 것 같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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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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