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23
122화
깡!
황급히 도끼를 쳐내고 이주혁 쪽을 쳐다본 왕후성이 욕을 지껄였다.
“이 새끼……!”
“파울이네. 아까워라.”
출구를 막고 있던 조직원들은 전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웬 마스크를 쓴 놈들이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중간에 있는 이주혁이 자세를 바로 했다.
‘언제 당한 거지?’
왕후성은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미간을 좁혔다.
싸움에 집중하고 있긴 했지만, 그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수하들을 다 쓰러뜨린 것이다.
혀로 피가 묻은 이빨을 닦고 침을 탁 뱉은 왕후성이 이주혁을 노려봤다.
‘후회하게 될 거다.’
주변 사람들을 지켜도 모자랄 판에 수하들을 끌고 오다니.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명령을 내려놨었다.
‘그 여사장과 같이 목을 쳐 주마.’
왕후성은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나는 고개를 드는 고광목을 보며 혀를 찼다.
“고광목. 왜 이렇게 걸레짝이 됐어?”
“…….”
고광목은 누군가를 찾으려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부장은 왜 안 데려온 거냐!”
“부장님?”
하긴, 내가 저놈 앞에서 싸운 적은 없긴 하지.
“나 혼자서도 충분해.”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쟤네 좀 구해 줘. 저러다 죽겠다.”
“그래.”
타닷-!
팀원들을 보냈으니 저 녀석들은 걱정할 필요 없고.
남은 건 왕후성이랑 고광목인데…….
“끄으…….”
고광목은 출혈이 심했다. 칼질도 당했고, 무엇보다 손목이 날아갔는지 바닥이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왕후성도 머리가 산발이 되고 셔츠에 피가 좀 튀어 있긴 하지만, 고광목에 비하면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
빨리 치료를 받아야겠는데.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져 전화를 걸었다.
날 빤히 보던 왕후성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렸다.
“여유롭네?”
“쉿. 통화하잖아.”
매너 없는 왕후성은 내 말에 당황한 눈치였다.
일단 전화부터 좀 하고 시작하자.
-여보세요.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조폭 치료 전문 의사, 신 닥터였다.
보험 처리가 안 돼서 비싸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사람이다.
“예, 신 닥터. 의뢰 좀 하려고 합니다.”
-환자 상태가 어떻게 됩니까.
“도끼에 손목이 날아간 것 같습니다. 출혈도 심하고요. 칼 맞은 사람도 보이고…… 환자가 좀 많습니다.”
-알겠습니다. 출발할 테니 지혈하고 계십시오. 장소는 문자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주소를 보냈다.
“허. 이런 어이없는 놈을 다 봤나.”
왕후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 손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살벌한 손도끼가 들려 있었다.
“죽고 싶어서…….”
“아, 잠깐만.”
손을 들어 왕후성의 말을 끊고 고광목에게 다가갔다.
옆에 쓰러진 놈의 겉옷을 벗기고 고광목의 잘린 손목에 묶었다.
꽈악.
“끅!”
고광목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제대로 지혈하고 있어라. 의사 불렀으니까.”
“고, 고맙다…….”
힘이 쭉 빠진 고광목을 뒤로하고 다시 왕후성을 마주했다.
“흐. 이 개새끼가…….”
내가 계속 무시해서 그런가,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시작하자.”
그래도 꽤 실력이 있는 고광목을 저렇게 만들다니, 어느 정도로 강할지 궁금하긴 하다.
“어이, 이주혁.”
“음?”
머리를 쓸어 넘기던 왕후성이 기습적으로 도끼를 던졌다.
후웅-!
“흡.”
탁!
눈에 감각을 집중해 도끼의 자루를 정확히 붙잡았다.
검붉은 피가 굳어 있는 날이 눈앞에 보였다.
“…….”
왕후성은 내가 도끼를 잡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잘 던지긴 하는데, 너무 뻔한 거 아냐?”
“X발!”
흥분한 왕후성이 달려왔다.
나는 손에 들린 도끼를 살피다 옆으로 내던졌다.
굳이 이놈이 쓰던 도끼를 쓰고 싶진 않다.
놈의 빠른 주먹이 날아왔다. 손바닥으로 옆을 쳐 흘려보내고 발을 채찍처럼 휘둘러 몸통을 노렸다.
왕후성은 피하거나 막지 않았다.
팔을 이용해 옆구리에 내 다리를 붙잡고, 내 반대쪽 다리를 걷어찼다.
턱!
“훅.”
곤두박질치는 몸을 두 손을 짚어 버틴 뒤, 그대로 몸을 지탱하며 내 다리를 꺾으려는 왕후성에게 발차기를 마구 날렸다.
퍽! 퍽!
“크윽!”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막아 낸 왕후성이 뒤로 한 바퀴 굴러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놈의 눈앞에는 이미 내 무릎이 있었다.
뻑-!
“컥!”
쿠당탕!
바닥을 뒹굴며 거리를 벌린 왕후성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손으로 막은 것 같았는데, 자기 손에 부딪혀서 이마가 찢어진 모양이네.
왕후성이 입에 흘러 들어간 피를 탁 뱉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왕후성,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어.”
체급은 내가 위. 스피드도 내가 위.
이 싸움은 질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히죽거리며 도발했다.
“성인군자 나셨구만. 어디 대가리에 구멍 나도 그딴 소리 지껄일 수 있나 보자.”
“거……. 말 좀 이쁘게 하자.”
슈악!
손 뒤에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는지, 놈의 왼손에서 갑자기 칼이 튀어나왔다.
쳐내려던 손을 거두고 역으로 놈의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커흡.”
내 몸통 박치기에 맞은 왕후성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호흡을 뺏긴 채 밀려나는 놈의 몸통에 몸을 띄우며 발차기를 꽂았다.
퍽!
“크악!”
제대로 들어갔고.
촥!
이어서 공격하려다 깊게 베고 들어오는 칼질에 몸을 뒤로 젖혔다.
왕후성은 계속 앞으로 다가오며 내 빈틈을 노렸다.
얼핏 보면 흥분한 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격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맨손보다는 무기를 쥐었을 때 훨씬 무서운 놈이다.
‘!’
미친 듯이 칼질을 퍼붓던 왕후성이 몸을 낮춰 바닥에 떨어진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아까 내가 던진 거였다.
“이런…… 씨.”
좀 멀리 날릴 걸 그랬나?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손도끼를 휘두르는 공격을 물러나면서 피했다.
이대로는 계속 피하기만 할 것 같은데, 나도 수를 써야겠어.
허리춤에 매달린 손잡이를 붙잡고 쿠크리를 뽑았다.
“!”
챙-!
칼날끼리 부딪치니 손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놈도 내 특이한 무기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어지간하면 이걸 쓸 생각은 없었는데…….
“훕.”
까앙!
아무래도 저 도끼를 맨손으로 상대했다간 손가락 몇 개는 날려 먹을 것 같아서 말이야.
캉! 캉!
몇 번 더 칼을 부딪치다 도끼를 쳐내며 파고들었다.
무기로만 싸우면 무기가 하나밖에 없는 내가 불리하다.
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궤적 안으로 들어와 배를 후벼팔 기세로 쿠크리를 휘둘렀다.
도끼를 놓은 왕후성이 다급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앞으로 휘어진 쿠크리의 형태 탓에 이미 옆구리에 칼날이 들어간 상태였다.
이래서 쿠크리를 쓴다. 상대가 거리 재는 게 어려워지거든.
“으아아!”
왕후성이 내 머리 뒤에서 칼을 당기며 내 목을 노렸다.
가볍게 머리를 젖히며 피하고, 칼을 뽑으며 옆구리를 발로 찼다.
퍽!
“큭, 끄악!”
칼이 박혔던 부위를 맞은 왕후성이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놈을 보며 쿠크리를 빙글빙글 돌려 피를 털었다.
피식.
“안 되지?”
“…….”
왕후성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X발. 개 같은 새끼가…….”
나는 어금니를 깨무는 왕후성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정신이 좀 들어?”
***
왕후성의 오른팔, 강두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웬일로 그냥 두시나 했는데…… 역시는 역시군.’
피식 웃은 강두가 조금 전 왕후성에게 받았던 명령을 떠올렸다.
‘풍원한정식으로 가서 여사장을 납치해라.’
왕후성이 풍원한정식에서 겪었던 일.
원래 같으면 그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을 텐데 그냥 넘어가 의아했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여직원……. 꽤 예쁘던데.’
강두는 혀를 할짝거리며 음흉한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사장은 왕후성에게 넘겨야 하지만, 그 여직원은 별말 하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킨 강두가 머리를 굴렸다.
지금쯤 왕후성은 서울광목파 놈들을 족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이주혁이 놈들을 도우러 간다면, 사장이 있는 풍원한정식을 지키는 인원은 몇 없을 터.
‘조무래기 몇 놈은 충분히 담그고 남지.’
강두는 품 안의 칼을 만지작대며 창문 바깥으로 담배를 던졌다.
부웅-!
“흐흐.”
사장과 직원을 유린할 생각에 저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여자가 납치됐다는 걸 알았을 때의 표정이 궁금하네.’
이주혁. 그놈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여자 둘을 포기하고 끝까지 맞설지, 아니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을지.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큭.”
강두는 추악한 미소를 지으며 속도를 더 높였다.
***
“오늘인가.”
“축하드립니다.”
“쯧, 축하는 뭘. 나가 봤자 머리만 아프지.”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과는 다르게 머리 손질은 열심이었다.
주철수에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한 고문 변호사.
외눈박이 한인석 변호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가족분들 뵈러 가실 수 있잖습니까.”
“음.”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내가 면회도 자주 못 오게 했으니까.”
“많이 보고 싶으셨겠습니다.”
“애들 성공하는 걸 내가 곁에서 못 봐 준 게 아쉬워.”
“저도 그렇습니다.”
한인석 변호사가 감방 벽에 기대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아내랑 아이가 그립습니다. 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뭐, 자네가 받아먹은 주철수 돈으로 잘살고 있지 않겠어?”
“하하. 그러려나요……. 워낙 고지식한 사람이라, 나쁜 놈 돈이라고 쓰지도 않고 그대로 모아 놓은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면회 왔을 때 안 물어봤나?”
“제대로 얼굴을 들지도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물어보겠습니까.”
한인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남자를 보며 물었다.
“나가서 뭐부터 하실 겁니까?”
그 말에 남자가 잠시 고민했다.
“음. 일단 마누라는 알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을 테니까 맨 마지막에 찾아가야지. 애들도 미국에 있으니까 바로 얼굴 보진 못할 거고…….”
생각하던 남자의 머릿속에 한 어린놈이 떠올랐다.
“아, 그렇지. 그 녀석이 있었지.”
고등학교 동창이자, 남자의 은인이 정성으로 키우던 아들.
학창 시절에는 좀 건방지긴 해도 싹수가 있던 놈이었는데, 동창 녀석이 사람들 구하다 그렇게 되고 나선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직도 감방 안에서 신문에 난 친구의 소식을 들은 게 잊혀지지 않았다.
“이, 주혁. 이주혁이.”
어떻게 컸나 궁금했다.
그때, 간수가 문을 탕탕 두드리며 남자를 불렀다.
“시간 다 됐습니다. 나오십쇼.”
“그래, 갑시다.”
끼익.
전 여당 국회의원, 한광철은 감방을 나서며 기대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 진 빚은 주혁이한테 대신 갚을 테니, 이걸로 퉁 치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