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2
141화
내가 상상한 성자, 그러니까 선생 놈은 많아도 30대였다.
저번에 전화 너머로 들은 목소리가 중년이라기엔 젊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단상 위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남자는 젊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염색인지 원래 머리인진 몰라도 머리는 새하얬고, 눈가와 입가에도 미소 짓는 표정에 맞춰 주름이 진 상태였다.
툭.
옆에 앉아 있던 부장님이 조용히 물었다.
“저놈, 맞는 거 같냐?”
“음…….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네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놈이 젊다는 건 단지 내 예상일 뿐, 증명된 사실이 아니니까.
그때 단상 위에서 밝은 조명을 받던 성자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 아.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나한테 전화했던 놈과, 저 단상에 서 있는 놈의 목소리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핸드폰의 음질이 좋은 편은 아니라, 단순히 내가 헷갈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놈이 선생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흠…….”
나는 천칭자리의 표식이 새겨진 팔뚝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아무래도 정면 돌파는 안 되겠어.
일단 플랜 B.
정 목사를 통해 성자한테 접근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진행해야 할 거 같네.
톡톡.
마이크를 확인하던 성자가 선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이렇게 마흔아홉 번째 총기도회에서 여러분들을 만나니,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아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몇천 명의 목소리에 귀청이 다 아팠다.
-잘 지내셨지요? 저번 기도회 후로, 제가 우리 형제자매님들 한 명, 한 명 다 축복해 드리느라 밤을 몇 번 꼬박 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웃으며 말하던 성자가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중요한 예언이 하나 있을 겁니다. 다들 서서 듣지 마시고 자리에 앉으세요.
성자라길래 경건하고 진중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말투가 가볍네.
이건 좀 의외였다.
같은 사기꾼이라 그런가, 사발 이사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이번 분기에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헌금하신 돈은,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천국으로 나아가는 일에 쓰였습니다. 직접 찾아가 보니 아이들이 참 귀엽더군요. 형제자매님들의 헌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멘-!”
-이게 다 여러분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 덕분입니다.
성자가 단상 옆으로 나오더니, 정면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본 신도들이 곳곳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아이고, 성자님.”
“아멘!”
“우째 고개를 숙이신댜…….”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고개를 들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성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대로만 구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 크나큰 행복이겠지만…….
성자가 뜸을 들이자 신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 놈의 말에 집중했다.
-올해, 재앙의 불씨가 나타날 것입니다. 온 세상을 불로 뒤덮을 재앙, 그 재앙은 북편에서 시작될 겁니다.
성자의 예언 같은 말에 신도들이 눈을 감고 중얼거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아, 성자님…….”
“재앙이라니…….”
북쪽에서 시작되는 재앙이라.
잠시 생각하던 나는 기억 하나를 떠올리고 표정을 굳혔다.
2006년. 올해는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한 해였다.
다행히 이듬해에 남북관계가 회복되긴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불안에 떨기엔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해가 두 번 지나면 큰 환란이 닥쳐올 겁니다. 그 환란은 전례 없이 큰 위기이며, 전 세계의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나는 다시 한번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2년 후, 2008년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미국의 부동산 버블로 일어난 금융 위기로, 이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침체되는 일이 있었다.
만약 성자의 저 예언들이 내가 생각한 뜻이 맞다면…….
‘성자는 미래를 알고 말하는 거야.’
저놈이 선생이든, 선생 놈에게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놈이든.
미래에 일어날 큰 사건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많은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재물을 잃고, 가진 게 없는 자들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정적에 빠진 기도원 내부에 성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땅의 모든 것은, 결국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
-여러분. 내 아버지께서 강림해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탁.
양손으로 단상을 짚은 성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인들이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
마이크로 전달된 목소리가 넓은 장내를 돌며 메아리를 만들어 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성자는 신도들을 근엄한 눈으로 둘러보다,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고 눈을 감았다.
-기도합시다. 그리고 회개합시다! 이 땅에서 지은 죄를 모두 용서받고, 천국으로 가 여러분들이 쌓아 놓은 상급을 받읍시다.
“아멘-!”
-전능하신 나의 아버지시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죄 많은 이 자녀들의 기도를…….
성자의 기도가 시작되자, 기도원 내의 모든 사람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옆의 정 목사도 눈을 감은 걸 확인한 뒤, 나는 고개를 돌려 부장님과 눈을 마주쳤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그러게요.”
부장님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건지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 두면 진짜 큰일나겠어.”
“무조건이죠. 사이비에 전 재산 갖다 바치는 거 금방이에요.”
“악질이네. 끝나고 저놈이랑 만난다고 했나? 그러고 나서 붙잡으면 돼?”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부터 하고…… 제가 지시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렇게 부장님과 나는 한참 동안 이어지는 성자의 기도를 묵묵히 들었다.
내용은 정 목사의 설교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신을 찬양하는 듯 자신을 은근히 띄우고, 돈을 내길 조장하는 감언이설.
혹시 회귀나 미래 정보에 관한 단서가 있을까 해서 쭉 들어는 봤는데, 크게 의미 있는 정보는 없었다.
‘시간이 아깝네.’
그냥 저놈을 어떻게 족칠지나 고민해 봐야겠어.
이번에는 다른 놈들처럼 죗값을 치르기도 전에 죽게 둘 순 없지.
-예언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이 불쌍한 어린양들을 구원해 주십사, 속죄의 예물을 드리나니…….
슬슬 지루한 기도가 마무리됐다.
성자의 기도가 끝나고,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잠시 단상 위에서 눈을 감고 있던 성자는 이내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제49회 총기도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에게 축복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멘트와 함께 행사가 종료됐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조금이라도 성자를 더 보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품 안에 고이 넣어 뒀던 무전기를 켰다.
“아, 아. 들리나?”
-……들린다.
-확인.
-확인.
다행히 별일은 없나 보네.
모든 팀원이 응답하는 걸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춰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일단 특이사항 없으면 자리에서 대기. 눈치껏 주변 사람들 따라서 움직여. 기도원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오케이.
-확인.
내가 무전기를 다시 집어넣고 옷을 추스르자, 옆에 있던 정 목사가 이쪽을 돌아보며 날 불렀다.
“형제님?”
“네?”
“슬슬 만나러 가실까요? 말씀은 미리 드려 놨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정 목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일단 대화부터 나눠 보자고.
그런 후에야 어떻게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네.
“음?”
복도 쪽을 손짓하던 정 목사가 내 뒤를 따라오던 부장님을 보고 물었다.
“배상훈 형제님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네. 제가 신뢰하는 직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이라니요. 하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정 목사는 사람 좋게 웃고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으면 성자님께서도 오실 겁니다.”
나와 부장님은 복도를 지나 정 목사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아직 성자가 자리를 떠나지 않은 탓인지, 복도에는 신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걷고 있던 중, 정 목사가 뒤를 슥 돌아보며 설명했다.
“여기엔 성자님을 뵙기 위해 제주도 같은 섬이나, 심지어 해외에서 오신 형제자매님들도 계십니다. 성자님은 그렇게 고생해서 함께 기도하러 오신 분들을 위해 끝나고도 잠시 동안 거기 남아 계시는 거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너무 오래 계시는 건 아니니 금방 오실 겁니다.”
텅 빈 복도를 걷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흰색 문 앞에 도착했다.
명패 같은 것도 없어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방이었다.
이거, 갑자기 불안해지네.
갑자기 가둬 놓고 패는 거 아냐? 돈 내놓으라고?
물론 부장님과 같이 왔으니 걱정이 되진 않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시지요.”
덜컥.
문을 연 정 목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깔끔하고 넓은 공간이 눈에 보였다.
깔끔한 원탁과 의자, 그리고 티백과 주전자가 있는 걸 보아 응접실로 사용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차라도 한잔 내드리겠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 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나와 부장님은 동시에 거절했다.
적지에서, 그것도 잠재적 적군이 주는 걸 미치지 않고서야 곧이곧대로 받아먹겠어?
“음. 그럼 물을 끓일 필요는 없겠군요.”
“성자님은 안 드십니까?”
“네. 성자님은 차를 그리 선호하시지 않으십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가 들어온 곳이 아닌 반대편의 문이 열렸다.
끼익-.
그리고 아까 단상에 있던 성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위치를 보니 우리 왔던 복도가 아닌 다른 데로 온 듯했다.
벌떡 일어난 정 목사가 웃으며 성자에게 다가갔다.
“성자님.”
“정 목사님. 하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미소 지으며 손을 맞잡은 둘이 날 쳐다봤다.
정 목사는 이쪽을 가리키며 나에 대해 소개했다.
“이분이 제가 말씀드린 이주혁 형제님입니다.”
“아, 이분이십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큼성큼 다가온 성자가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이주혁 형제님. 진용현이라고 합니다.”
“이주혁입니다.”
성자, 진용현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곱씹었다.
“이주혁 형제님.”
나는 놈의 반응을 살폈다.
내 이름을 미리 알고 있거나, 날 여기서 묻어 버릴 생각이라면 반응이 있었을 거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반응이라든지, 손에 힘이 들어간다든지 하는 반응 말이다.
하지만 이놈은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날 처음 본다는 듯.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 목사님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시던데요?”
“칭찬이요?”
“네. 제 구원 사업을 위해 많은 금액을 기부하셨다고. 하하.”
성자 진용현이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덕분에 아이들 수십 명이 회개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형제님.”
이 사람이 정말 그 극악무도한 선생 놈의 하수인인가?
그냥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가식(假飾)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야말로 사발 녀석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이다.
그래서 기대된다.
저런 놈이 망가질 때 더 크게 망가지는 법이거든.
“성자님.”
“네?”
나는 짐짓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재앙 말입니다. 혹시…… 그걸 어떻게 아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진용현이라고 했나?
일단, 네 밑천부터 까 봐야겠어.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