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44
143화
동대문구 용신동의 한적한 한 건물.
저벅.
수려한 외모의 남자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건물이 노후된 탓인지, 문과 계단도 상당히 낡아 있었다.
“후…….”
한숨을 내쉰 남자가 삐걱대는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자의 정체는 강남파의 전 이사이자, SA시큐리티 지하실에 붙잡혀있던 마종석이었다.
여기가 선생의 의뢰를 전달한 남자를 만나기로 한 장소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간 마종석의 눈에, 방 한가운데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이런 그의 등장에 뒤돌아 있던 남자가 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셨군요.”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선생의 연락책, 강 권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마종석 씨.”
강 권사는 앞에 선 마종석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멀쩡하시네요?”
“어째, 멀쩡하지 않기를 바라는 말툰데.”
피식 웃은 강 권사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한테 붙잡혔다길래 당연히 죽거나 불구가 되셨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강 권사가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돌리며 마종석을 은근히 쳐다봤다.
“함정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칼까지 챙겨왔으니까요.”
“음.”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오신 겁니까?”
마종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인 건 맞다.”
“단순히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마종석 씨가 영국 특수부대 SAS에서 훈련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강 권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부대’ 출신인 사람들을 뚫고 탈출했다니, 솔직히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그 부대라는 의미심장한 말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마종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탈출이긴 한데,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니지. 이주혁 그놈 밑에서 일하기로 했으니까.”
“그렇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강 권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이주혁 밑에서 일하기로 했으니, 죽여달라고 찾아오신 건 아닐 테고. 그래서 왜 만나자고 하신 거죠?”
죽인다는 강 권사의 이야기에 마종석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그 안에서 무슨 정보를 가지고 나왔을 줄 알고?”
“음?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용병질 하면서 정보를 얻으려고 일부러 포로로 잡혀본 적도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흠.”
“지금 강북의 상황을 알고 있나?”
강 권사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서울광목파가 정리 중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삼합회에서 워낙 들쑤셔 놨으니까요.”
“마치 그쪽은 관계없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선생이 삼합회와 협력 관계인 걸 모르는 게 아닌데.”
그 말에 강 권사가 옅게 미소지었다.
“얼마 전 있었던 사건은 중국의 범죄 조직이 저지른 거지, 저희와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그럼 그런 걸로 하고, 네가 말한 대로 중국의 범죄 조직이 저지른 사건 탓에 강북의 패거리들이 대부분 와해 됐다. 그걸 고광목이 정리 중이고.”
“그래서요?”
“고광목이 이주혁과 연계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나?”
강 권사의 표정을 확인한 마종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모를 리가 없지. 삼합회가 담그려던 고광목을 구한 게 이주혁이니.”
“할 말은 그게 답니까?”
“날 고용해라.”
“네?”
마종석은 의문을 띄우는 강 권사에게 설명했다.
“난 이주혁에게 고용됐다. 연에 5억. 용병으로선 꽤 괜찮은 계약이라고 할 수 있지.”
“…….”
“하지만 나는 더 큰 돈을 원해. 그래서 제안하는 거다.”
“이중 계약을 하자는 겁니까?”
끄덕.
“우선 놈의 신뢰를 사,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전달해주지. 왜인지 몰라도 선생은 이주혁을 꽤 싫어하는 것 같던데,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닌가?”
“그 대가로 5억 이상을 달라, 이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하던 강 권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만,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선생한테 이 말을 전해. 그럼 받아들일 거다.”
“무슨…….”
마종석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변수’가 왜 변수인지 알아냈다고.”
***
-선생이 보낸 거라고?
-그래. 정 목사 당신은 눈치 못 챈 거야?
-그런 느낌은 전혀 못 받았는데.
-쯧. 어쩐지 더럽게 캐물어 보더니……. 시간만 버렸어.
옷에 붙여놓은 도청 장치에서 들려오는 성자의 말투는 아까 기도회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성자와 정 목사는 상하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대화하는 투가 딱 공모하는 사기꾼들이거든.
-그럼 그놈은 어떻게 할 거냐? 그냥 보낼 건가?
정 목사의 물음에 성자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입막음은 해야 하지 않겠어?
-입을 막는다고? 어떻게?
이어지는 성자의 이야기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묻어야지.
묻는다. 설마 죽인다고?
그 말에 의문이 들었다.
현재 성자는 선생 놈의 하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그쪽에서 보낸 사람을 처리한다니. 이게 말이 되나?
정 목사가 내 심정을 대변하듯이 말했다.
-미쳤어?! 그런 짓을 하면 선생이 잘도 가만히 있겠다. 우리 다 모가지야……!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우린 죽을 거야. 선생이 우리가 한 짓을 안 이상, 가만 놔둘 거 같아?
-그렇긴 해도 입막음까지 하는 건 너무…….
-넌 몰라. 왜 사람들이 선생을 그리 무서워하는지.
그렇게 이야기하는 성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오더니 결정을 내린 듯 말했다.
-그러니까 놈을 죽여서 묻고, 사고사로 꾸미자고. 그럼 적어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놈 말이야…….
-누구? 이주혁 그 사람?
-알잖아. 나 사람 보는 눈 정확한 거.
-알지. 네가 그걸로 사람 등쳐먹고 다니던 놈인데.
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성자가 나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독사 같은 놈이야. 어떻게든 우릴 물어뜯으려는 게 눈빛에서 보였다고.
오, 어떻게 알았지?
성자랑 정 목사. 이 두 놈은 꼭 족치려고 했는데, 성자가 내 의향을 정확하게 맞혔다.
인이어를 나눠 끼고 같이 듣던 부장님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이거, 상당한 개새끼들이네.”
“그러게요.”
역시, 내 예상대로 예전부터 이런 짓을 계속하며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던 놈들이었다.
-하……. 결국 이 목사 짓거리도 여기서 끝이네. 그래도 그동안 꽤 짭짤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선생 그놈이 우리를 의심하는 이상, 더 이상 이 짓도 못 할 테니까.
-X발. 이게 맞냐?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이유로 다 접는 게 맞아?
-언제까지고 그 편집증 사이코 밑에서 일할 거야? 아까 그놈 죽이면 시간은 좀 벌 수 있을 거다. 그때 돈만 챙겨서 일본으로 뜨면 돼. 알고 있기로 유일하게 선생 그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일본이었으니까.
일본이라는 말에 부장님과 난 거의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정보를 얻었어.
-어찌 됐든, 정 목사 너는 이주혁 다시 불러와.
-어떻게 하려고? 옆에 직원까지 같이 처리해야 할 텐데.
-일단 시간 좀 끌고 있어. 그 괴물 놈 데려와서 시키면 돼.
-아, 그러면 되겠네. 잠깐, 이 새끼 설마 벌써 간 거 아니겠지?
-X발. 그러니까 빨리 데려오라고.
거기까지 들은 나는 인이어를 빼고 다시 복도로 나갔다.
뒤를 따라오던 부장님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시작이냐?”
“시작해야죠. 원래는 좀 천천히 할까 생각했는데…… 저놈들은 그럴 것 같진 않네요.”
이런 식이면 데려온 팀원들을 써먹을 수밖에 없겠어.
부장님이 씩 웃으며 날 툭 쳤다.
“다른 애들은 포위만 시켜. 혹시 비밀 통로 같은 곳으로 튈 수도 있으니까.”
“그럴까요?”
슥.
나는 무전기를 꺼내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긴 이주혁. 지금부터 원래 계획했던 플랜 A로 전환한다. 입구랑 출구 싹 다 봉쇄해. 성자랑 내가 사진으로 보여준 정 목사. 둘 다 못 빠져나가게 막아. 1조가 북쪽. 이후로는 시계 방향대로 간다.”
-1조 확인.
-2조 확인.
-3조 확인.
팀원들의 회신을 듣고 무전기를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저 멀리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이, 이주혁 형제님-!”
정 목사가 복도 저편에서 날 부르며 달려왔다.
“목사님.”
“혀, 형제님. 헥, 헉…….”
얼마 되지도 않는 복도를 뛰어온 정 목사가 헥헥대며 무릎에 손을 짚었다.
“아직 안 가셨군요…….”
“무슨 일이시길래 이렇게 뛰어오세요?”
숨을 고르던 놈이 날 보며 말했다.
“성자님이 형제님을 급하게 찾으셔서요.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아, 시간이 없어도 내야죠.”
우리 성자님이 부르시는데 바로 달려가서 조져야지.
“감사합니다. 하하. 성자님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하셔서…… 가시죠.”
“네.”
정 목사의 뒤를 따라 다시 우리가 나왔던 방으로 이동했다.
복도를 걷는데, 부장님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대가리는 내 거다?’
우릴 잡으려고 오는 사람 중에 제일 잘 치는 놈을 본인이 상대하겠단 말이다.
끄덕.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날 죽이기 위해 어떤 놈들이 올진 몰라도, 어지간하면 부장님 선에서 정리될 거다.
덜컥.
정 목사가 조금 전 왔었던 방의 문을 열었다.
나와 부장님이 안으로 들어가자 정 목사가 문을 닫고 다가왔다.
“잠시 기다리시면 성자님이 오실 겁니다.”
“급하게 찾으신대서 여기 계실 줄 알았는데요.”
“하하. 잠시 누굴 좀 데려오신다고…….”
그 말과 함께, 아까 성자가 들어왔던 문을 통해 놈이 한 번 더 입장했다.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이주혁 형제님.”
“성자님?”
그건 바로, 성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뒤에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이 새끼, 저놈으로 우릴 잡으려는 건가?
성자는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할 생각도 없는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하러 여기 오신 겁니까?”
“네?”
“선생 그 새끼, 다 알고 너 보낸 거 맞지?”
갑자기 훅 들어오네.
기도할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성자는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며 날 향해 소리쳤다.
“왜 온 거냐고! 이 개새끼야!”
이거,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인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서, 성자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뭐?”
“혹시 빙의되신 겁니까? 귀신 들리신 거예요?”
“…….”
“설마 선생님한테 갖다 바쳐야 하는 돈 몰래 꿀꺽한 게 괜히 찔려서 이러시는 건 아니죠?”
내가 오버스럽게 걱정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격양되어있던 성자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역시 알고 있었네. 베드로 형제님?”
“네. 성자님.”
성자의 말에 놈 뒤에 서 있던 거인이 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90은 되는 덩치보다 한 20cm는 더 커 보이네.
“후…….”
열이 뻗치는지 머리를 한번 쓸어넘긴 성자가 베드로라 불린 놈한테 말했다.
“저기, 사탄 들린 자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자입니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성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저 이단자를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으로 심판받게 합시다.”
“네.”
쿵.
거인이 나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거, 아무리 봐도 무술을 배운 것 같은 폼은 아닌데.
아무래도 타고난 덩치 때문에 성자가 전투원으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소매를 걷으며 나서려던 순간, 부장님이 내 어깨를 턱 잡았다.
“주혁아.”
“아.”
맞다. 부장님한테 맡기기로 했었지?
뚜둑.
목을 좌우로 꺾은 부장님이 내 옆을 스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빅 사이즈 베드로가 멈칫하더니, 성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성자님. 이 사람은 어떻게 해요?”
“그자도 이단입니다! 같이 심판받게 하세요!”
“네.”
베드로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쪽을 다시 돌아보는 사이, 부장님은 이미 놈의 눈앞에 서 있었다.
“어.”
“친구야. 한눈팔면 쓰나.”
놈의 턱에 부장님의 펀치가 작렬했다.
쩍-!
“억.”
털썩.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은 베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부장님을 쳐다봤다.
그에 부장님은 씩 웃으며 발을 치켜들었다.
“안 막으면 다친다?”
그리고, 놈의 머리를 향해 부장님의 뒤꿈치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꽝-!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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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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