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끼익-.
서명대학교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 정선라운지.
차를 타고 그 앞에 도착한 나는 백기준의 전화를 받았다.
“어. 좀 알아봤냐?”
내 물음에 전화 너머의 백기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 우재성이랑 같이 움직였다.
민정수석에 대해 알게 된 날, 나는 백기준에게 민정수석의 둘째인 민지훈을 조사하라고 했었다.
첫째와 막내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지만, 회사 대표에다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민지훈은 직접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은밀한 추적 전문인 백기준에게 조사를 맡긴 거다.
“뭐 나왔어?”
-아니. 딱히 건질 만한 건 없다.
“그래?”
-해 봤자 그놈 동선 정도?
동선이라.
백기준의 말처럼 크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긴 해도 언젠가는 써먹을 구석이 있겠지.
-집, 학교, 회사가 전부다. 딱 이 세 군데만 돌아다니더라고.
“대학원생이랬지?”
-어.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교수 빼곤.
“음…….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
잠시 생각하던 백기준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이건 우재성이 따로 조사한 건데, 민지훈이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간다더라고.
“봉사활동이라고?”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백기준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 보육원, 요양원, 무료 배식에 연탄 나르기까지. 봉사도 다양한 분야로 하던데?
“봉사라. 어떻게 그 망나니들 사이에서 그런 바른 생활 청년이 나왔지?”
-글쎄다. 뭐 어쨌든 성과는 이 정도다. 계속해야 되냐?
“조사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냐. 부탁한다.”
-오케이.
뚝.
백기준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가장 털어서 뭔가가 나올 만한 사람은 둘째인 민지훈이다.
하지만 민지훈의 연구실이나 회사에 들어가 정보가 있나 뒤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흠.”
일단 민지훈이 급한 건 아니니까, 하던 일부터 마무리하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우선 클라이맥스를 남겨 두고 있는 첫째, 민지용부터 처리하자고.
꾹.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한 사람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서울강남경찰서의 한 사무실.
형사과장 송태석은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민정수석비서관 민기형. 이놈을 조사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출근은 청와대로 하니 사람을 붙이지도 못하고, 상세한 내용을 열람하게 되면 기록이 남는다.
민기형이 자신이 조사당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될 가능성이 높단 말이다.
“X팔…….”
그렇게 송태석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우웅-.
가장 전화 받기 싫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개새끼]이주혁이었다.
꾹.
“……여보세요?”
-예. 송 과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순간 잘 지냈겠냐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송태석은 겨우 참아 넘기고 물었다.
“예. 무슨 일로 전화하신 겁니까?”
송태석은 그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함을 느꼈다.
이주혁이 전화 시작부터 저런 말을 할 때면, 항상 골치 아픈 일이 굴러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아. 별건 아니고, 뭐 하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말에 송태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뭡니까? 이번엔 또.”
-그러니까…….
한참 동안 이주혁의 설명을 듣던 송태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지금 던져 놓은 일거리가 몇 갠데, 이젠 또 경찰 인력을 대규모로 움직여 달란 말입니까?”
-네.
“그게 지금…….”
-송 과장님도 아시잖습니까. 이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송태석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문제가 생기진 않겠죠?
“예. 뭐…… 이주혁 씨가 말한 게 다 사실이라면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탁.
전화를 끊은 송태석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려다 말았다.
이 계획이 성공만 한다면, 민정수석을 조사하는 게 더 쉬워지긴 할 것이다.
송태석은 체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서장실로 향했다.
***
딸랑-.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웨이터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민수진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건지, 직원들은 나를 어디론가 인도했다.
“이쪽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직원을 따라가자, 한구석 창가 자리에 앉은 민수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수진도 나를 보고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와서 앉아.”
“넵.”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민수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저, 선배님. 저한테 무슨 용건이 있으셔서 여기까지…….”
“이주혁.”
“네?”
미소를 지으며 답하던 나는 이어지는 민수진의 말에 입꼬리를 내렸다.
“신입생 명단에 그런 이름은 없더라?”
“앗, 진짭니까? 뭔가 오류가 있었나…….”
민수진은 자연스럽게 변명하는 나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뻔뻔한 성격이구나? 너.”
“네?”
“본론으로 들어갈 테니까 쓸데없는 연기는 하지 마.”
음. 내 연기가 안 통하다니.
확실한 증거가 있어서 그런가?
결국 나는 입맛을 쩝 다신 뒤 의자 뒤로 기대앉으며 물었다.
“그럼, 다 알았겠네. 그래서 여기까지 부른 용건이 뭔데?”
“……보기보다 예의 없는 성격이기네.”
잠시 나를 관찰하던 민수진이 손을 살짝 들고 웨이터를 불렀다.
“네. 필요하신 사항 있으십니까?”
“코스 A 두 개.”
“와인은 늘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어. 그렇게 해.”
식사를 주문하는 민수진을 지켜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남의 거짓말을 이렇게 까발려 놓고, 밥은 또 같이 먹잔 건가?”
“거짓말이라기엔 너무 성의가 없지 않니? 최소한 명단에 있는 이름이라도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민수진은 내 말을 태연하게 받아치고 말했다.
“솔직히, 네가 신입생인 척한 건 별로 상관없어.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궁금했던 거지.”
“단순히 그게 궁금해서 날 불렀다고?”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거짓말까지 하면서 접근한 이유를 대충 알 것 같거든.”
“?”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민수진이 피식 웃었다.
“나랑 만나고 싶어서지?”
뭐?
“배경도 좋고, 외모도 뛰어난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보고 싶어서 신입생인 척까지 한 거잖아. 네 반반한 얼굴이면 내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예?”
이,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헛소리에 내가 당황하는 사이 아까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수진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뭐, 이해해. 너 같은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거든.”
“아…….”
“근데 그중엔 네가 제일 낫네.”
나는 민수진이 고도의 수를 던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러니까, 내가 널 꼬시기 위해 접근한 거다?”
“이렇게 예의 없이 구는 것도 새로운 매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고.”
“…….”
아니, 진짜 그냥 이상한 애인 것 같다.
이게 그 공주병인가, 도끼병인가 하는 그건가?
민수진은 진심으로 내가 그런 목적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 다 들키니까 부끄럽니?”
도를 넘어서는 개소리에 내가 뭐라 입을 못 떼고 있자, 민수진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앞에 놓인 냅킨을 만지작댔다.
그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민수진의 저 망상에 맞춰 주면 분명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긴 할 거다.
근데 과연 저런 공주병 철부지가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걸 알고 있을까?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에 올라타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시선을 슬쩍 들어 민수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런 건 생전 마주쳐 본 적 없는 난관이었다.
“음…….”
내가 사실 맞다고 대답할지, 아니면 헛소리 말라고 할지 고민하던 그때.
“그래서, 우리 둘한테 모두 이득인 제안을 하려고 해.”
“……제안?”
“응. 가까이 와 봐.”
슥.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민수진이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표정을 구겼다.
“우리, 약혼하자.”
……뭐 이렇게 진도가 빨라?
***
“그러니까…… 집안에서 독립하려면 결혼을 해야 하니까, 내가 그 상대가 돼 달라?”
끄덕.
“그렇지. 그럼, 너도 나랑 만나니까 좋고, 나도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까 좋고.”
나는 민수진을 보며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그럼, 뭣 좀 물어보자.”
“마음껏 물어봐.”
“집안에선 왜 독립하려는 거지? 부모님의 재산만 물려받아도 남 부러울 거 없이 살 수 있을 텐데.”
“음…….”
잠시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 고민하던 민수진이 턱을 살짝 들며 말했다.
“그건 조금 곤란한 질문이네. 우리가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 아직은.”
역시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알려줄 만큼 가벼운 문제는 아닌가 보네.
내가 고민하는 걸 봤는지 민수진이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고민은 해 봤니? 딱히 고민할 문제도 아니긴 하다만.”
“음?”
“아. 그리고 기간은 3년이야. 뭐, 마음에 들면 연장해 줄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진 마.”
뭐야? 이 당당함은?
어쨌든,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나?
좋다고 넙죽 받아들이기엔 마음에 좀 걸리고, 그렇다 해서 거절하면 민수진에게 더 접근할 방법이 마땅찮다.
“……이게 그렇게 오래 고민할 문제니?”
민수진은 아직도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네 집안이 우리 집안에 비해 변변찮은 것 때문이라면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몸만 와도 되니까.”
“…….”
이게 그 계약 결혼인지 그건가?
분명 좋은 기회다. 좋은 기회인데…….
자꾸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단 말이지.
‘유나 씨.’
이대로 민수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그걸 유나 씨가 알게 되면 끝장이다.
물론 날 완전히 쳐내진 않겠지만, 선을 그어 버릴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나 씨가 부장님한테 호신술을 배우고 있던 게 떠올랐다.
왜인지 등골이 싸한 느낌에 결국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본 민수진이 책상을 탁 쳤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냥 알겠다고 해!”
민수진은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짜증이 올라왔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생겨서 받아 준다잖아! 네가 마음에 든다고!”
“그래?”
내가 피식 웃자, 민수진은 자기가 이런 소리까지 할 줄 몰랐다는 듯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완전히 외모지상주의구만?
부모님의 유전자에 감사해야겠어.
“나도 그래.”
“응?”
드륵.
나는 음식이 다 세팅된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면, 그걸 미루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유나 씨한테는 이 상황에 대해 잘 이야기해 봐야겠다.
“대답은 나중에 줄 테니까, 밥 마저 먹고 집에 들어가라.”
“뭐? 잠깐!”
민수진이 날 불렀지만, 그대로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뒤에서 민수진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네가…….”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아서 황급히 레스토랑을 나섰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타닥.
몸을 움츠리며 내 차의 운전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민수진의 마지막 말을 들은 이상 답은 나왔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민수진이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거다.
이건 감인데, 왠지 그 이유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단 말이지.
“후…….”
부릉-.
나는 차에 시동을 걸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민수진은 넘어가고, 슬슬 때가 됐다.
히죽.
망나니 첫째를 조질 시간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