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8
197화
애들이 있는 대련실로 들어가려는데, 거기서 나오는 고상미를 발견했다.
“또 보네요. 왜 거기서 나와요?”
고상미도 날 보고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라세흠 찾으러 왔다. 풍원한정식인가, 거기 있다던데?”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그래요?”
“뺀질거리는 놈이.”
배상훈이네.
이 배신자. 그새 부장님 위치를 불었어?
“설마 찾아갈 겁니까?”
“당연하지.”
“그러지 마세요. 거기 그냥 일반 음식점입니다.”
고상미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가서 다 때려 부순대? 그냥 찾아가기만 한다니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네.
“아니, 그냥 거기 찾아가는 거 자체가 별롭니다. 사람 부담스럽게 뭔 일하는 데까지 쫓아가요?”
“야. 네가 계속 붙어 다니면 자연스럽게 정들고 한다며!”
“그건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다 보면 그렇다는 거고, 이건 업무 방해 아닙니까. 솔직히 좀 그렇죠.”
내가 뻔뻔하게 말하자 고상미가 움찔했다.
“……그런가?”
“네. 어차피 제가 복귀하라고 할 테니까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알았어.”
고상미는 이런 쪽으로 지식이 부족한지, 내가 무슨 조언을 해도 귀담아들었다.
“그래서 언제 오는데?”
“바로 부를 테니까 좀만 기다려요. 다른 애들이랑 놀고 있든가요.”
“그래야겠어. 몸도 풀 겸.”
순간 말을 뱉고 아차 싶었지만, 어차피 내가 상대하는 게 아니니 알 바는 아니다.
일단 풍원한정식 쪽에 연락부터 해 봐야겠다.
* * *
팡-!
임유나의 발차기가 정태섭의 가드를 두들겼다.
이젠 파워가 슬슬 일정 수준까지 올라왔다. 일반인 남자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까지. 태섭이는 이제 일하러 가라.”
“예…….”
한참 샌드백 역할을 하던 정태섭이 축 처진 어깨로 돌아갔다.
“고생하셨어요.”
“네.”
그런 정태섭의 뒷모습을 보며 임유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일이 바쁜데, 자꾸 고생시키니까 죄송하네요.”
“뭐 어때. 내 부하 직원인데. 그리고 우리 임 사장 실력이 너무 빨리 늘어서 보통 사람들은 감당 못 해.”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아니,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원래도 딱 운동하면 잘하겠다 싶은 몸이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실력이 늘 줄은 몰랐다.
이런 기술을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쓰는지. 또 간격과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한마디로 전투지능이 높다고 해야 할까.
라세흠은 훌쩍 성장한 자신의 제자를 흡족하게 쳐다봤다.
그때,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음?”
이주혁의 전화였다.
“어. 어쩐 일이냐?”
-출장입니다. 이번엔 해외로.
“해외 출장?”
통화를 듣던 임유나의 눈이 홱 돌아갔다.
“주혁 씨예요?”
“어. 해외로 나간다네? 아마 나도 같이 갈 것 같다.”
그 말에 임유나는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걸린다는데요?”
이주혁의 설명을 듣던 라세흠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미정인가 본데.”
“음…….”
“너무 걱정하진 마. 태섭이는 남겨 두고 갈 테니까.”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이다 순간 의아했다.
“이 정도면 걔는 거의 요리사로 직종을 바꾼 거 같긴 한데…….”
“혹시 주혁 씨한테 가기 전에 한번 들러 달라고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아, 그래. 주혁아. 사장님이 가기 전에 한번 보잔다. 어. 지금 바로 온답니다.”
“바로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본 임유나가 당황했다.
윗도리는 땀으로 살짝 젖어 있었고, 머리와 화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저,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임유나는 라세흠을 뒤로하고 가게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샤워실을 향해 움직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와 쓸데없는 소리를 했던 여자.
민기형 수석의 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참에 이주혁에게 말해 놔야겠다.
‘그 여자가 주혁 씨와의 관계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혹시, 정말 만약 혹시라도 그게 착각이 아니라면…….
싸아.
임유나의 표정이 순간 무섭게 가라앉았지만, 이주혁이 그럴 사람이 아닌 걸 알기에 이내 잡생각을 털어 냈다.
‘일단 얘기부터 해 보자.’
* * *
며칠 후,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한가운데 위치한 최고급 여관.
우리는 거기 도착해 짐을 풀었다.
필리핀으로 넘어온 인원은 꽤 많았다.
나와 부장님, 팀원들을 포함한 우리 쪽 인원만 거의 스물 가까이 됐다.
거기에다 고상미와 부하들까지 포함하면 스물다섯 정도.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저쪽 푯값은 가면남이 해결했다.
“하……. 미국이나 유럽인 줄 알고 설렜는데, 왜 필리핀이야?”
“필리핀 무시하냐?”
일단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서넛씩 조를 나눠 움직이기로 했다.
나와 같은 조가 된 배상훈이 숙소 침대에 누운 채로 투덜댔다.
“아니, 나는 금발 누님들을 상상했다고.”
“쯧쯧.”
“병신.”
쏴아-.
부장님도 화장실에서 나오며 배상훈 갈구기를 거들었다.
“하여튼, 대가리 속에 든 게 여자밖에 없어요. 대체 군생활은 어떻게 버텼냐?”
“누가 들으면 제가 무슨 클럽 죽돌인 줄 알겠습니다. 그 정돈 아니에요.”
“아니긴 개뿔. 부산 가서도 클럽 가 놓고선.”
“참나. 그러는 부장님은 시커먼 거 덜렁거리는 놈들이랑 해수욕장에서 노셨잖아요?”
그 말에 부장님은 부산에서 있었던 일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건전하게 논 거지.”
“재미없게 논 거죠.”
“듣자 하니 이 새끼가…….”
“둘 다 진정하시고. 해야 될 일이나 합시다.”
더 두면 부장님이 배상훈을 떡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마음을 가라앉힌 부장님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뭐부터 할 건데?”
“음, 우선…….”
의아한 듯 날 보는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지었다.
“좀 놉시다.”
.
.
.
으적!
“크, 맛있네.”
“그러게요? 솔직히 별 기대 안 했는데.”
부장님이 통으로 구운 돼지의 다리를 야만스럽게 뜯어 먹었다.
그 옆에서 배상훈도 볶음밥을 열심히 퍼먹고 있었다.
원래 외국 음식은 입맛을 탄다지만, 우리 팀원들은 그런 걸 걱정할 필욘 없다.
부대에서 먹을 거 못 먹을 거 다 먹어 본 애들이거든.
나는 바삭하게 씹히는 튀긴 돼지고기를 씹으며 유나 씨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민수진이 유나 씨를 찾아갔을 줄이야.’
가서 무슨 자기랑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던데, 어이가 없다.
그걸 듣고 민망해서 고개를 못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마음에 좀 걸리는 게 있었다.
내가 민수진의 제안을 거절해서 유나 씨를 해코지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민수진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올 사람은 아닐 거다. 나름 머리는 굴러가는 사람이니까.
마음 같아선 유나 씨한테 우리가 복귀할 때까지 휴업하라 하고 싶지만, 저번에도 거절한 만큼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다. 그리고 오히려 가게를 운영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최소한 퇴근 전까진 안전하단 소리니까.’
내가 조용히 식사만 하고 있자, 부장님이 이쪽을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임 사장 생각하냐?”
“…….”
“맞네, 맞아.”
“식사나 마저 합시다.”
“근데 주혁아.”
“왜요?”
부장님이 지나가던 현지인과 여행객들을 살피며 물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움직여도 되는 거냐? 계획도 자세히 말 안 해 주고.”
“우린 여행객이잖아요. 여행하러 왔으니까 좀 즐겨야죠.”
“뭐?”
내 말을 듣던 배상훈이 밥을 먹다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카지노 같은 데도 가는 거냐?”
“어떻게 알았어?”
배상훈도 진짜 갈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란 눈치였다.
“간다고?”
“그래. 사실 거기 가려고 온 거야.”
간다는 말에 배상훈이 신나서 물었다.
“근데 웬일이야? 너 같은 꼰대 대표가 카지노도 보내 주고.”
“이 새끼가…… 어디 뒷골목 가서 정보상이랑 접선만 하다 집에 갈래? 그리고 놀자고 카지노 가자는 거 아니다.”
배상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사업이라도 하러 간다는 거냐?”
“쯧. 다 이유가 있으니까 가는 거지.”
들떠 있던 녀석이 축 처졌다.
“게임은 하게 해 줄 테니까 밥이나 마저 처먹어라.”
“오!”
배상훈이 다시 싱글벙글했다.
이 단순한 새끼. 그동안 심심했나?
“네가 카이지냐? 카지노 간다니까 왜 이렇게 신났어?”
“아니, 예전에 한번 라스베이거스에서 가 봤는데, 이게 중독성이, 이야…….”
“위험한 놈이네, 이거.”
일단 대충 식사는 마무리된 것 같고.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
“갑시다.”
“바로?”
“아뇨. 옷부터 갈아입고.”
씨익.
“지금부터 우린, 한국에서 넘어온 졸부인 겁니다.”
* * *
필리핀에서 가장 발전됐으며,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관광 산업으로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수도, 마닐라의 한복판에 위치한 커다란 호텔이 있었다.
[Solar Hotel]아시아권의 대형 호텔 체인인 솔라. 마닐라에는 솔라가 운영하는 카지노가 존재한다.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여비를 탕진하게 만드는 시설 중 하나로, 고급화된 시설과 그 자리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시스템 덕에 카지노는 블랙홀처럼 도시에 도는 자금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한 솔라 카지노에, 웬 동양인 세 명이 등장했다.
저벅.
선글라스를 낀 채, 딱 붙는 슈트로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며 들어오는 남자들.
빨간 정장을 입은 중앙의 남자, 이주혁이 선글라스를 벗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여긴가.”
“이야.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여기 엄청 잘돼 있네?”
배상훈은 파란 정장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선글라스를 재킷에 꽂았다.
“이제 그냥 놀면 되는 거냐?”
“어. 망나니처럼. 네 전문이지?”
“지랄. 내 계좌에 얼마 넣어 놨는데?”
“1억?”
“오호. 좋아. 그럼 난 저쪽으로 간다. 내가 또 홀덤 전문가거든.”
“알아서 해라.”
원래 이 시기의 한국에선 홀덤이 거의 유행하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때다.
배상훈이 떠나고, 이주혁은 흰색 슈트를 차려입은 부장님을 돌아봤다.
꽉 끼는 핏에 순간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물었다.
“부장님은 하고 싶은 게임 없으세요?”
“글쎄다. 난 별로 아는 게 없어서…….”
“홀짝은 어때요? 룰도 쉽고 판도 그렇게 커질 일 없어요.”
“홀짝이라. 괜찮네. 그동안 넌 뭐 하게?”
“저야, 뭐 당연히…….”
스윽.
한쪽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슬롯머신부터죠.”
“슬롯머신? 그건 순 운 아니냐?”
“운 맞아요.”
씨익.
“근데, 제가 운이 꽤 좋아서요.”
일단 저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 * *
솔라 카지노의 직원, 톰은 카지노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손님이 없나 둘러보고 있었다.
“젠장! 또 잃었군!”
쿵!
요 일주일간 매일 오던 중년 남자가 오늘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쯧쯧.’
톰은 속으로 혀를 차며 남자를 쳐다봤다.
사람들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언제나 이기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The House always wins.)
무조건 업장이 이득을 보는 걸 알면서도 도박의 스릴에 중독되어 계속 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는 따겠지. 딱 한 번만 따면 본전 회수할 수 있어.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점점 늪으로 빠지는 거다.
“음?”
그렇게 시선을 돌리는데, 저기 슬롯머신 앞에 앉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기계를 처음 만지는 듯 어리바리한 모습이었다.
‘슬롯머신이라.’
저것도 겉으론 잭팟만 터뜨리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운이 나쁘면 거의 당첨금만큼의 돈을 꼬라박아야 잭팟이 터져준다.
하지만 방법이 간단하고 직관적인 만큼 카지노 초심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단순히 즐기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초보자인가 보군.’
다른 곳으로 가려던 톰은 칩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따라라란-.
조금 전 머신 앞에 앉은 사람이 깜짝 놀라며 웃고 있었다.
톰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처음 돌린 거 아니었나?’
엄청난 운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아마 초심자의 행운이리라.
그리 생각한 톰은 이내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따라라란-.
“……?”
앞으로 카지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말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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