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고상미를 해외에 데려가겠다는 내 말에 전화 너머의 가면남이 조용해졌다.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해외까지 출장 나가는데.”
-……좀 과한 요구 아닌가?
“거긴 지나가는 사람 주머니 뒤지면 총 나오는 동네인 거 몰라? 나 같은 일반인은 툭 하면 뒈진다고.”
-일반인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뭐, 일단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 순간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갈 거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뭐?
-난 같이 갈 거라고!
-아니, 조용히 좀……!
이쯤 되면 둘의 관계가 대충 짐작이 간다.
“둘이 꽤 가까운 사이인가 보네? 같이 있는 걸 보면.”
-……잡설은 됐고, 본인이 간다니 말리진 않겠다.
좋아. 거기서 써먹을 패가 하나 더 늘었구만.
이렇게 몇 번 더 끌어들여서 맛을 보여 주면, 부장님처럼 전투광인 고상미는 우리 작전에 동참하지 않곤 못 배길 거다.
다행히 영상 통화가 아니라 가면남이 내 음흉한 웃음을 볼 순 없었다.
“그럼, 일정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하지. 고상미는 그때 보내.”
-아니.
“음?”
-지금 바로 보내 주지.
“잠깐. 그건 이쪽에서 거절이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어.”
그러자 어쩐지 가면남이 전화 너머로 웃는 듯했다.
-미안하지만, 늦었다.
“…….”
염병. 이미 이쪽으로 출발했나 보네.
그 인간은 솔직히 나도 감당하기 힘든데.
부장님은 그래도 최소한 규율 정도는 지키는데, 고상미는 그런 거 없었다.
안 그래도 통제할 수 없는 여자가 벌써 온다니,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부장님한텐 비밀로 해야지.
.
.
.
그렇게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로 돌아가려는데, 관심을 끄고 지내던 민수진에게서 온 문자를 발견했다.
[읽으면 답장해.] [할 말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아직도 안 읽었니?] [손해 보는 제안은 아닐 거야.] [핸드폰 잃어버린 건 아니지?]며칠 안 읽었다고 뭐 이렇게 문자를 많이 보냈어?
대충 답장을 보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잠깐 만나서 얘기 좀 해.] [바쁨.] [알았어. 전화로 하자.]뭔데 이렇게 자꾸 만나자고 하지?
제안이 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요 요인의 딸이니 한번 이야기는 들어 봐야겠지.
우웅-. 탁.
전화를 받으니 민수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연락하기 참 힘드네.
“용건만 말해.”
-말했잖아. 제안할 게 있다고.
“뭔데?”
내가 관심을 가지자 민수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우리 가족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지?
“음?”
-내가 그걸 넘겨줄게.
가족의 정보를 자기 손으로 넘겨준다고?
민수진이 뭐 중요한 걸 알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먼저 저렇게 나오니 일단 두고 볼까.
“원하는 건?”
-가족들한테 네가 내 약혼자라고 알리는 거야. 예전에 내가 말했던 대로 집안에서 독립하고 싶거든.
“그럼 너는 무슨 정보를 줄 수 있는데?”
-가족들의 위치나 일정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거절할게.”
-……뭐? 왜?
“메리트가 없거든.”
어차피 민수진이 물어올 정도의 정보는 우리 선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굳이 민수진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나를 노출하지 않아도 무방하단 말이지.
“그냥 각자 인생 살자. 너도 내가 말한 것처럼 조용히 살아라.”
-잠깐……!
뚝.
더 이상은 진짜 볼일 없겠네.
나는 전화를 끊고 회사 건물로 들어섰다.
프론트에 있던 직원이 날 보고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아, 예. 고생 많아요. 별일 없었죠?”
“네.”
“올라가 있을 테니까, 혹시 누가 방문하면 제 사무실로 안내해 줘요.”
“알겠습니다.”
혹시 고상미가 다른 데로 샐 수도 있으니 직원에게 말을 남긴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가면남에게는 호기롭게 말하긴 했지만, 필리핀은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한국보다 치안이 좋지 못하기도 하고, 내가 언급한 대로 총기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카지노와 마약에 발을 걸치고 있는 놈을 건드려야 한다니.
그놈의 조직을 비롯한 삼합회까지 상대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이건 최소로 잡았을 때고.
“흠.”
그래도 걱정되진 않았다.
부장님과 팀원들, 그리고 고상미와 거기 자동으로 따라오는 따까리들과 함께 갈 테니 말이야.
필리핀에 가서 총 하나씩만 쥐여 주면 뭐든 해낼 사람들이다.
일단 고민은 다 같이 하고, 먼저 우재성을 만나 봐야겠다.
해외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니 말은 해 놔야지.
똑똑.
-들어오세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재성이 자기 책상에 앉은 채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었다.
타닥. 탁.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제가 혹시 몰라 개인적으로 깔아 놓은 보안 프로그램에 뭔가 잡혀서 말입니다.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온 건가 싶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해킹 시도가 있었단 소립니까?”
“그렇습니다.”
하. 역시 내 컴퓨터만 턴 건 아니었네.
내 반응에 우재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가면남이라는 사람 짓인 겁니까?”
“아마도요. 이번 일은 제가 경고해 놓겠습니다.”
처음엔 이해해 줄 수 있는데, 계속 이러면 곤란하지.
우리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일단 앉으시죠.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아, 그게…….”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마테오에 관한 정보와 필리핀으로 향해야겠다고 말하자, 우재성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위험하다며 말리고 싶지만…… 의미는 없을 것 같네요. 같이 갈 인원은 정하셨습니까?”
“뭐 우리 팀원들이랑, 고상미 쪽도 섭외했습니다. 그 외에 같이 가겠다는 사람 있으면 데려갈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따로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네. 혹시 있으면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맡길 순 없죠.”
드륵.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근데 우재성 씨. 컴퓨터도 다룰 줄 아시는 겁니까?”
“아, 예. 취미로 조금 공부했습니다.”
MBA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래밍도 공부했다고?
나는 우재성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요새는 익숙해져서 그렇지, 새삼 괴물 같은 놈이었다.
역시 내 과로사 방지턱.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 우재성을 데려온 거다.
“그렇군요. 그럼 수고해요. 지시사항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네.”
우재성의 사무실을 나선 뒤, 나는 팀원들이 있을 대련실로 향했다.
히죽.
이거, 오랜만에 외국물 좀 먹겠는데?
* *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그 정문 앞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왔어?”
“어, 여기.”
서해결 검사가 그의 동생 서한결이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서한결은 잠시 형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이젠 아무렇지 않나 보네?”
“음? 뭐가.”
“예전 같았으면 민간인은 범죄자 인도에 관여할 수 없다면서 선을 딱 그었을 텐데, 지금은 이주혁 씨가 먼저 잡아서 넘기는 경우가 많잖아.”
그의 말대로였다.
민간인과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는 건, 위법을 용납하지 않던 과거의 서해결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주혁과 함께 많은 일을 거쳐온 서해결의 생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주혁 씨의 행동이 나쁜 결과를 내는 거 봤어?”
“……뭐, 주철수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던 서울 깡패들을 잠잠하게 만든 게 그 사람이긴 하지.”
“과정이 조금…… 과격할 때도 있지만.”
그 행동의 목적은 사회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이주혁과 서해결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고 볼 수 있는 셈.
그리고 이 사회를 뒤에서 조종하려는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신념이니 뭐니 하면서 굳이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선생이란 자가 최대한 빨리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어야, 거기서 파생되는 각종 범죄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긴 하지. 그럼 수고해.”
“그래. 고생해라.”
서한결이 돌아가고, 서해결은 동생이 넘겨준 종이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 인천에서 마약 제조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의 신상 명세였다.
원래 같으면 손에 넣기 번거로운 정보였겠지만, 동생이 힘을 써 준 덕에 구할 수 있었다.
이걸 이용하면 앞으로의 조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서해결은 어느새 조금씩 이주혁의 방식에 물들어가는 자신을 느끼지 못한 채, 다시 업무를 위해 검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 * *
고상미.
그녀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강골이었다.
흔히 말하는 돌주먹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신체를 움직이는 일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던 소싯적부터 동생에게 시비 거는 동네 오빠들을 두들겨 패곤 했다.
그러면 녀석들은 질질 짜며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은 그런 고상미를 철석같이 따랐고 말이다.
고상미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녀는 복싱장과 태권도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어지간한 성인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할 때쯤 갑자기 러시아 이민이 결정됐다.
급하게 진행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두 사람이 등교한 사이 부모님이 살해당했고, 고상미와 고세운은 마피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왜 그런 일을 당한 건지 이유는 모른다. 하룻밤 사이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고상미는 동생을 보호하고 먹여 살리기 위해 용병 일을 시작했다.
운 좋게도 한 용병이 고상미의 실력을 알아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뒤로는 목숨을 걸고 의뢰를 수행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부상은 셀 수도 없었고, 죽기 직전까지 몰린 적도 두 자릿수가 넘어가니 무뎌졌다.
복수의 일환으로 동생이 살해당할 뻔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상미의 이상형이 강한 남자로 굳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실전 속에서 벼려진 극한의 기술.
그게 자신과 동생을 지킨 고상미의 무기였다.
저벅.
SA시큐리티 건물 앞에 선 고상미가 잡생각을 지웠다.
라세흠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다 보니 괜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잉.
건물 안쪽으고 들어가니, 저번에 본 듯한 얼굴의 프론트 직원이 이쪽을 쳐다봤다.
직원은 살짝 흠칫하더니, 지나가려는 고상미를 향해 말했다.
“저, 저기. 방문이십니까?”
“그런데.”
“대표님께서 방문하신 분은 사무실로 올려보내 달라고 하셔서요. 제가 안내를…….”
“됐어. 어딘지 알아.”
“아, 넵.”
그 말에 직원이 얌전히 물러났다.
그는 로비를 때려 부쉈던 사람을 계속 설득할 만큼 담이 강하지 않았다.
고상미는 슬슬 눈에 익은 로비를 지나 사무실이 아닌 대련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라세흠과 대련이나 한판 해 볼 생각이었다.
턱.
대련실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래도 부장님이…….
-야. 그 사람은 여…….
덜컹.
고상미는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뭐, 뭐야.”
운동기구 위에 올라가 대화를 나누던 팀원들이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러닝머신을 뛰던 배상훈은 고상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온 거야?’
설마 그 대머리도 왔나 해서 뒤를 슬쩍 봤지만, 다행히 따까리들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고상미에 팀원들이 어리둥절한 사이, 배상훈은 러닝머신의 속도를 줄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혁이가 또 불렀어요?”
“어. 이번엔 해외 출장이라길래 바로 달려왔지.”
해외라는 말에 배상훈의 눈이 빛났다.
과거, 이주혁과 팀원들은 우재성을 영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강남파에 잠입해 있던 배상훈은 같이 가지 못했다.
‘드디어 나도 갈 수 있다!’
팀원 놈들만 즐기고 온 게 계속 불만이었는데, 이참에 해외에서 화끈하게 놀다 와야겠다.
그리 생각하던 배상훈은 대련실을 날카로운 눈으로 둘러보는 고상미를 발견했다.
마치 먹잇감을 찾는 듯한 눈빛에, 배상훈은 씩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부장님 찾으세요?”
“어. 어딨어?”
배상훈은 라세흠의 위치를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남자의 의리를 지킬지, 아니면 그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부장님을 저 여자 손아귀에 던져 버릴지.
정확히 1초 정도 고민한 배상훈이 씩 미소를 지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풍원한정식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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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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