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싸움에서 머릿수는 중요하다.
그게 패싸움이든, 조직 간의 이권 다툼이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이든 간에 말이다.
주먹 꽤 쓴다 하는 놈도 두셋 정도만 들러붙으면 두들겨 맞는 건 금방이거든.
전투의 승패가 한 사람이 많냐 적냐로 갈리는 경우도 꽤 많이 봤다.
다만 앞에 나열한 상황의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콰앙-!
“끄아악!”
싸움판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
으직!
“끼아악!”
한 놈을 발로 차 날려 버린 뒤, 다른 놈의 팔꿈치를 바깥으로 굽게 만들어 줬다.
콰직!
머릿수가 중요한 것도 같은 수준일 때 이야기지, 사냥개가 몇 마리 덤빈다고 코끼리가 쓰러지는 건 아니거든.
나는 벽을 타고 놈들의 뒤로 이동해 빠져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은 뒤, 복도에 갇힌 적들을 차례차례 두들겨 패 줬다.
방금 쓰러진 게 마지막 놈.
열 명 정도 되던 적들은 전부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손을 탁탁 털며 잠그고 나왔던 창고 문을 두드렸다.
“정리 끝났습니다.”
끼익.
문을 열고 복도를 살피던 송태석이 신음성을 냈다.
“음. 혼자 다 쓰러뜨린 겁니까?”
“뭐, 그렇죠.”
송태석은 새삼 나를 향해 놀란 눈빛을 보냈다.
뭘 이제 와서 이 정도 가지고 놀라고 그래?
그에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정도 실력도 없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습니까? 주철수랑 선생 놈 상대로.”
“그렇습니까. 특수부대 출신이라 다르긴 하네요.”
“특수부대라고 다 같은 건 아닙니다.”
우리 부대, 그것도 현재 팀원들이 유독 괴물 같은 기수였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참…… 괜히 이주혁 씨가 위험한 일에 서슴없이 뛰어드는 게 아니었군요.”
송태석은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진 채 쓰러져 있는 놈들을 질린 눈으로 쳐다보다 물었다.
“안에 있는 저 사람은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음. 뭐, 일단 입에서 뭐가 나오나 들어 봐야죠. 송 과장님은 복도에 있는 놈들 다시 못 덤비게 처리 좀 해 주세요.”
포대 더미 옆에 있던 케이블 타이를 건네자 송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실 거면 겉으로 티 안 나게 해 주십쇼. 저 사람한텐 얼굴이 팔린지라.”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저도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백기준의 고문 방식을 곁에서 지켜본 게 몇 년이다.
서당 개도 풍월을 읊을 시간인데 내가 어깨너머로 배우지 못했을 리가.
나도 꽤 기술 좋거든.
내 표정을 본 송태석이 고개를 저으며 케이블 타이를 챙겨 나갔다.
탁.
놈들이 중간에 깨어날 수도 있지만, 총도 가지고 있으니 별일은 없겠지.
나는 내가 아까 기절시켰던 가게 주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짝! 짝!
다가가서 뺨을 몇 대 쳐 주니 놈이 슬슬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개X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원하는 걸 얻어갈 일은 없을 거다!”
“그래?”
지금부터 자신이 어떻게 될지 예감한 듯 놈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쩌나. 저런 다짐을 하고 진짜로 끝까지 버틴 놈은 없었는데.
“그럼 버텨 봐. 얼마나 가나 보자고.”
.
.
.
하지만, 놈이 버티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끄으……. 말할게! 다 말한다고!”
“진작 그럴 것이지. 시간만 날리고 이게 뭐야?”
땡그랑.
손에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빌빌대는 놈의 머리채를 틀어쥐며 물었다.
“내가 뭘 물어볼지 알겠어?”
“큭……. 서길석…… 사장에 관한 정보인가?”
“눈치는 빠르네. 근데 왜 쓸데없이 반항을 하고 그래.”
툭.
손을 놓고 쳐다보자, 가게 주인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서길석 사장은…… 사채업을 접고 마약 제조 및 유통, 수출 사업을 하고 있다.”
“그건 나도 알고. 근데 서길석은 민기형의 장인 아닌가? 약팔이라는 게 드러나면 큰 타격을 입을 텐데.”
“누군가 덮어 주고 있겠지. 서길석 사장의 인맥은 온갖 데 얽혀 있으니까.”
지금 상황으로선, 서길석의 뒤를 봐주는 사람은 선생 놈일 확률이 높다.
큰 규모의 사업을 덮을 만한 능력이 있고, 또 무엇보다 서길석의 딸이 민기형의 아내니까.
선생은 서길석의 불법 사업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해 주고, 서길석은 그런 선생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어떻게 보면 상호 보완 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길석의 범죄가 드러나면 그 피해는 민정수석 민기형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선생의 정체가 민기형이 맞다면, 둘의 관계에서 서길석이 조금 더 우위에 있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교활한 선생 놈이 과연 자신이 불리한 관계를 맺을까?
서길석이 사건을 터뜨리면 바로 입지가 추락하는데?
“흠…….”
의문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었지만, 여기 이놈이 그것까지 알 정도의 위치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겠지.
일단 마저 정보나 빼내 봐야겠다.
“아까 수출이라고 하던데, 어디로 수출하는 거지?”
“…….”
“아, 공장에서 네 쪽으로 보내는 거 알고 온 거니까 괜히 힘 빼지 말자.”
“큭…….”
놈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봐. 있는 대로 다 불어 버리면 난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최소한 목숨 부지할 수 있는 구멍이라도 만들어 줘.”
“서길석이 사람을 보낸단 말이냐?”
“아니, 서길석은 아니다. 명목상 수출까지 맡고 있긴 하지만, 해외 담당은 따로 있어.”
“누군데? 그건.”
내 물음에 놈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내 안전을 보장해 주면 알려 줄 수 있다.”
“그래?”
여기선 당근을 좀 던져 줘야겠네.
“송 과장님!”
내 목소리에 밖에 있던 송태석이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깥에서 이놈의 비명을 한참 들은 탓인지 송태석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예. 무슨 일입니까?”
“이놈, 신변에 이상 없이 재판까지 보내 주실 수 있죠?”
“……뭐, 가능합니다.”
“들었지?”
송태석의 말에 놈이 덧붙였다.
“감옥 안에서도?”
“그쪽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네.”
광철이 아저씨가 감방 안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한테 부탁하면 이놈 하나쯤은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다.
“좋아. 말해 주지.”
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해외 담당은…… 마테오다.”
……그게 누군데?
.
.
.
그 뒤로 놈은 마테오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서길석은 삼합회에서 받은 재료로 약을 만들어 국내에 유통하고, 그 마테오라는 놈은 해외에 따로 제조실이 있단 말이냐?”
“그래. 동남아 쪽 삼합회랑 꽤 인연이 깊은지, 그쪽을 본거지로 삼아 돈을 쓸어 담고 있지.”
“흠. 그놈에 관해 더 아는 건 없나?”
“나도 자세히는 몰라. 다만 놈의 주요 사업이 카지노라는 건 안다.”
카지노. 카지노라.
하긴, 해외에서 잘 나간다 싶은 카지노면 몇십, 몇백억을 버는 건 순식간이겠어.
어쩌면 선생의 가장 큰 돈줄이 마테오라는 놈일 수도 있겠는데?
“다른 건?”
“나도 더 아는 정보는 없지만…… 충고 하나만 하지.”
“충고?”
가게 주인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경고했다.
“죽을 각오가 아니라면 절대로 마테오를 건드리지 마라.”
“뭐?”
“그놈은 필리핀의 마약왕과 가까운 사이다. 그리고 필리핀은 한국관 달리 총기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그 총을 쏠 사람도.”
“건들면 뒈진다, 이 말인가?”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 과장님. 이것들은 처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후……. 그럼 담당 서에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더 이상 볼 건 없었다.
마테오라는 놈을 족치면 선생의 가용 자금이 확 줄어들 거다.
다음 목표가 정해졌으니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씨익.
이번 출장은 필리핀이다.
* * *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해커 집단 언노운의 리더이자 친동생, 고세운의 물음에 고상미가 귀를 긁적였다.
“늦긴 무슨. 얼마나 걸렸다고.”
뻔뻔한 그녀의 태도에 고세운이 이마를 탁 짚었다.
“말했잖아. 오래 붙어 있으면 의도하든 안 하든 상대한테 정보를 흘릴 수밖에 없다고.”
“아, 잔소리 그만해. 네가 엄마야?”
고상미는 손을 내저으며 동생의 침대에 그대로 털썩 누웠다.
“아, 누나! 침대에 누울 거면 옷 갈아입고 씻은 다음에 누우라고 몇 번을 말해?”
“귀찮다.”
“하…….”
고세운은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삼키며 물었다.
“이주혁이랑은 대화 나눠 봤어?”
“어.”
“어떻던데?”
그가 이주혁을 보며 떠올린 건, 바로 자신이었다.
자기 목적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접근한 뒤 조금씩 떠보며 우위에 서려고 한다.
고세운이 이주혁과 대화하며 마치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주혁에 대한 고상미의 평가가 궁금했다.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고상미가 침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강했지.”
“강하다고?”
“어. 나랑 라세흠과는 조금 다른 결이긴 한데, 거의 비슷한 수준 같긴 하더라고. 다른 녀석들도 우리 애들이랑 꽤 재밌게 놀 정도던데?”
그 말에 고세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라세흠이 고상미와 대등하게 강하다는 걸 들었을 땐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상미가 괴물이긴 하지만, 라세흠은 육군 첩보부대(HID) 교관 출신이었으니 실력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부대원인 이주혁과 SA시큐리티의 직원들의 무력도 그가 상상한 수위 이상이었다.
고상미와 부하들을의 강함을 이용해 SA시큐리티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고 했던 고세운으로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중엔 이주혁이 가장 강했지.”
“……정확히 어느 정돈데? 누나에 비하면.”
“글쎄. 자기 실력을 다 드러낸 것 같진 않아서 정확히는 몰라도, 나한테 크게 뒤지진 않을걸?”
“흠…….”
고상미는 이주혁이 대머리를 두들겨 패던 모습을 떠올렸다.
타고난 맹수인 라세흠이나 그녀와는 다르게, 이주혁은 상대방을 파악하며 천천히 깎아 먹는 전략을 사용했다.
전형적인 ‘사냥꾼’식 싸움법이었다.
고상미가 그리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실력이 워낙 좋으니 관심이 갔다.
“언젠가 전력으로 한번 붙어 보고 싶네.”
“어?”
“과연 나까지 사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단 말이지…….”
고세운은 고상미가 또 혼잣말을 지껄이는 걸 보고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거기엔 SA시큐리티와 고상미가 쓸고 지나간 인천 방직 공장의 흔적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고세운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그러던 그때, 그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여러 개의 핸드폰 중 하나가 울렸다.
저번에 이주혁에게 번호를 알려 줬던 핸드폰이었다.
꾹.
그가 따로 추가한 음성 변조 기능을 키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 너머로 이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보세요?
“뭐 좀 알아냈나?”
고세운의 물음에 이주혁이 여유롭게 답했다.
-당연하지. 근데 약이 유통되는 게 우리나라가 끝이 아니더라고?
“해외로 넘긴다는 말인가?”
-에이. 그걸 맨입에 말해 주긴 좀 그렇지?
“…….”
고세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시험이랍시고 던져 준 건이긴 해도, 어쨌든 이주혁이 위험을 감수하고 얻어 온 정보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맨입에 듣는 건 양심이 없는 행동이었다.
남의 개인 정보를 털던 고세운이 이제 와서 양심 운운하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지만, 이주혁과 협력하는 게 목표인 만큼 어깃장을 놓을 순 없었다.
“원하는 게 뭐지?”
-고상미 좀 빌리자.
“……또?”
그리고 이어진 이주혁의 말에 전화를 듣고 있던 고상미가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해외 파견으로.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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