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나는 송태석과 함께 지하상가를 둘러보며 이동했다.
송태석은 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상점들을 힐끗대며 입을 열었다.
“어째 손님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말대로, 여기는 활발하게 돌아가는 다른 시장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유는 뻔했다.
지리적인 문제나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뒷세계에서 주로 이용하는 장소겠지.’
돈세탁이든, 살인 청부든.
평범한 상가로 위장한 이 공간에서 다 이루어지는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과거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전생에서 내가 DG그룹, 그러니까 기업화가 끝난 강남파의 부장이던 시절.
나름 안면 있던 부하 놈이 카지노에서 돈을 크게 딴 적이 있었다.
-현금으로 준다고? 거기서 그만큼 나올 구석이 있나?
-지하상가 모르십니까?
-지하상가?
-예. 현금 깨끗하게 세탁해 주는 걸로 유명한데.
그렇게 말한 부하는 다음 날 현금을 수령했고, 그다음 주에 다른 조직과의 시비로 살해당했다.
뭐 어쨌든 녀석이 말한 지하상가가 아마 여기일 거다.
저벅.
우리는 상점 주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주소에 적힌 가게 앞에 도착했다.
[방앗간]심플한 이름의 간판. 어떻게 보면 성의가 없다고도 볼 수 있는 이름의 가게 문을 두드렸다.
쿵쿵.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안에서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쇼?
“고객.”
그 말에 문이 슬쩍 열렸다.
잠금쇠를 풀지 않은 채로 눈만 드러낸 남자가 물었다.
“손님이라고? 낯선 와꾸신데.”
“그럼 새로운 고객이구나 해야지, 손님 응대를 X같이 하네?”
내가 인상을 확 구기며 으르렁대니 남자가 한 수 접었다.
“거, 미안합니다. 대충 알고 오신 거 같은데, 여기가 워낙 상종 못할 인간들이 많아서…….”
달칵.
절그럭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와 송태석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밀가루, 부침가루라고 적힌 포대들이 쌓여 있었다.
문을 다시 잠근 남자가 안을 둘러보던 나한테 물었다.
“따로 찾는 건 있으신가?”
“뭐 피로회복제 같은 거?”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인 피로회복제를 언급하자 남자가 씩 웃었다.
“잘 찾아오셨네. 여기가 취급하는 게 거의 다 그쪽이거든.”
“한번 봅시다.”
내 말에 남자가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멀끔한 걸 보니 돈이 없는 양반은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이 마시려고 사시는 건가?”
필로폰은 중독성이 강한 만큼 금단 현상과 부작용도 치명적이다. 사람 하나 정도는 하루 안에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그걸 아는 남자는 내가 왜 굳이 필로폰을 사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건 개인 정보.”
“쩝. 그렇긴 하지. 고기나 예요도 있으니 필요하면 말하쇼.”
“물건이나 봅시다.”
남자는 우리를 힐끗 보며 어디론가 안내했다.
우리의 목적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쉽다고?’
의아한 마음으로 들어가 보니, 뒤쪽 창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스들이 쌓인 게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이 다 물건입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물량이 더 들어올 거요.”
“아, 인천에서?”
“그렇지. 인천…….”
말을 잇던 남자가 멈칫했다.
그리고 내 쪽을 슥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인천 물건이란 건 어떻게 아쇼?”
“서 사장님 소개로 온 거니까.”
내 설명에 남자는 안심하며 표정을 풀었다.
“서 사장님 소개받고 오신 분이었구만? 이거, 난 또 짭샌 줄 알고 간 떨어질 뻔했네.”
“근데 그쪽은 서 사장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입니까?”
“그것도 개인 정보.”
“음.”
계속 나불대길래 한번 슥 떠봤는데, 역시 입이 그 정도로 싸진 않나 보네.
“그래서, 뭐 얼마나 필요하신가?”
“흠. 사실 내가 뽕 같은 거 사러 온 건 아니라서. 서길석이랑 어떻게 아는진 말 안 하겠단 거지?”
“뭐?”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X발. 너…….”
“강남경찰서 송태석 경정입니다.”
척.
옆에 있던 송태석이 공무원증을 꺼내 들며 말했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네.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허.”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X발. 짭새 맞았네.”
“협조해 주시죠. 성함.”
송태석의 무감정한 말에 남자가 손을 내저었다.
“아, 오케이. 협조할 테니까, 대신 수갑 차기 전에 담배 한 대만 피게 해 주쇼.”
“개소리하지 말고 이름.”
갑작스러운 말에 송태석이 미간을 찌푸리는데도,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로 돌아 서랍을 뒤적거렸다.
“쓸데없는 짓 말고 이름이나…….”
그 순간, 놈이 서랍에서 묵직한 쇳덩이 같은 물건을 꺼냈다.
그걸 본 나는 쏜살같이 몸을 틀며 놈의 손에 들린 걸 발로 걷어찼다.
퍼억!
발등이 살짝 욱신거렸지만, 그걸 의식할 상황이 아니었다.
“씹……!”
고통에 손을 움츠린 놈이 반대 손으로 품에서 또 뭘 꺼내려고 했다.
그에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어 놈의 명치를 차 버렸다.
뻥-!
“크악!”
뒤로 훅 날아간 놈이 벽에 쾅 부딪힌 뒤 상자를 무너뜨리며 떨어졌다.
그런 놈에게 다가가 일어나지 못하게 가슴을 밟아 눌렀다.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송태석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날 돌아보며 물었다.
“설마 저거…….”
“맞을 겁니다.”
놈의 손에서 떨어진 쇳덩이엔 길쭉한 원통 두 개와 방아쇠가 달린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조잡한 형태의 사제총기였다.
“이거, 방앗간이 아니라 대장간이었어?”
내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하자 발밑의 놈이 이를 뿌득 갈았다.
“X발……! 이 개새끼들!”
“진짜 또라이구나. 너 지금 경찰을 쏘려고 한 거냐?”
설마 설마 했는데, 그냥 빠꾸 없이 총을 들어 버리네.
옆에 있던 송태석이 분노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냈다.
“미친 새끼. 널 불법 총기 소지 및 살인 미수 현행범으로…….”
“X까!”
와장창!
놈이 상자를 마구 무너뜨리며 도망가려 했다.
그 뒤에는 비밀 통로인지 문이 하나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딜 튀려고.”
나는 책상 위에 있던 가루 포대를 잡았다.
10kg쯤 될 법한 포대를 그대로 놈을 향해 던져 버렸다.
후웅-. 퍽!
“억!”
포대에 적중당한 놈이 바닥에 엎어졌다.
무게가 꽤 나갔으니 충격이 만만치 않을 거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빌빌대는 놈에게 다가가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원래 있던 곳으로 질질 끌고 오자, 그걸 지켜보던 송태석이 수갑을 들고 다가왔다.
“허. 일단 연락을…….”
“잠시만요. 제가 이 새끼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예?”
“어차피 강남서 관할도 아니잖습니까. 나중에 잡아가시죠.”
내 말에 송태석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무슨 짓을 할 생각인 겁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뭐 사고라도 친 적 있습니까?”
“음…….”
“이놈은 제가 데려간 뒤에 강남서로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럼, 실적도 챙기고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닙니까?”
송태석은 내가 정보를 얻는 방식을 대충 아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럴 거면 영장을 가져올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야.”
툭툭.
발로 건들자 정신을 차린 놈이 힘겹게 나를 올려다봤다.
“대체 무슨 깡이냐? 우리 쏴 죽이고 튀려고 한 거냐?”
“큭. 멍청한 놈들.”
뭔가 이상하다.
처맞고 제압당했는데도 아직 자신감에 찬 얼굴이라니.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느낌이 좋지 않아 놈이 나가려던 문 쪽을 쳐다보니, 벽에 걸려 있는 인터폰의 수화기가 떨어진 채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그새 누구한테 연락한 거냐?
“쯧.”
귀찮게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게 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귀에 잡혔다.
“송 과장님.”
“예?”
“이 새끼 안 도망가게 잘 붙잡고 있어요.”
뻥!
“칵.”
발차기 한 방으로 놈을 기절시킨 뒤 수갑을 채웠다.
“무슨 상황인 겁니까?”
“글쎄요. 비상 상황? 위급 상황?”
“그게 뭔…….”
“아, 송 과장님. 싸움 잘해요?”
내 물음에 송태석이 인상을 구겼다.
“설마.”
“정답입니다. 우릴 담그러 괴한들이 달려왔네요.”
“씨…….”
송태석은 언제 챙겨 왔는지 품에서 경찰용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나는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위험한 건 다시 집어넣으십쇼. 와이프랑 딸내미 못 볼 일은 없을 테니까요.”
송태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괜찮은 거 맞습니까?”
“거참. 잠깐만 기다려요.”
그때, 사장 놈이 잠가 놨던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그에 창고 바깥으로 한 발짝 나가자, 웬 놈들이 짧은 복도를 통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저 새끼들 잡아!”
많이도 몰려왔네.
나는 대충 테이블을 훑어 아무거나 손에 집히는 걸 던졌다.
볼펜, 파일철, 렌치 등등을 마구잡이로 던지니 들어오던 놈들이 움찔했다.
턱.
그 사이 놈들이 송태석이 있는 곳을 들어가지 못하게 바깥으로 나와 창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복도 반대편에서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 안에 있는 놈이 뭐 너희들 대장이냐? 뭔데 이렇게 헐레벌떡 구하러 와?”
“멍청한 새끼. 넌 독 안에 든 쥐새끼야.”
“그래? 근데 어쩌나. 내가 쥐여도 잡으러 온 놈들이 벌레 수준인데.”
“죽여!”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하자 격분한 놈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이 좁은 복도는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 두 명 정도.
아무리 많이 몰려온다 해도 결국 내가 상대할 사람은 매 순간 두 명을 넘지 않는단 말이다.
탓.
나는 오히려 눈앞의 상대에게 마주 달려가 드롭킥을 날렸다.
퍼억-!
“크악!”
강하게 맞은 놈이 쓰러지며 뒤에 있는 놈들도 볼링핀처럼 날아갔다.
그 옆에 있는 놈이 운 좋게 피했는지 사시미를 들이밀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손을 붙잡은 뒤 벽에 처박았다.
“큭!”
놈이 놓쳐 떨어지는 사시미를 캐치하고, 칼등을 이용해 두들겨 팼다.
뒤에 경찰이 있는데 날붙이로 썰어 버릴 순 없지.
퍽! 퍽! 퍽!
“끄아아!”
쇳덩이로 처맞은 놈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런 놈의 머리를 붙잡아 벽에 박아 주고, 그새 일어난 뒤의 놈들을 상대했다.
“개X끼!”
“죽여 버려!”
“어떻게 치는 대사가 항상 똑같냐.”
누가 깡패놈들 아니랄까 봐 하는 말도 다 비슷비슷하다.
퍽! 퍽!
칼등으로 몇 놈을 더 두들기고 사시미를 던졌다.
빡!
손잡이에 맞은 놈이 이마를 붙잡으며 땅을 뒹굴었다.
상대의 진형이 흐트러진 틈을 타 땅을 박차며 파고들었다.
“흡!”
뻑!
당황한 놈의 턱을 돌리고.
콱!
“욱!”
옆에 있던 놈의 명치를 찔러 차고.
“크앗!”
삭.
달려드는 놈의 칼을 회전하며 피한 뒤, 그대로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어 버렸다.
쩌억! 쿵.
내가 한 호흡 정도 되는 시간에 세 명을 눕힌 걸 본 놈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뭔가 잘못된 걸 느꼈나 본데, 늦었어. 새끼들아.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놈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못 들어 봤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는 녀석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씨익.
“그리고. 승부를 걸었으면 끝을 봐야지. 안 그래?”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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