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4
193화
팅-. 탁.
나는 라이터의 뚜껑을 열었다가 닫으며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이 제조 시설을 싸그리 다 불태워 버리고 싶지만, 증거를 남기기 위해선 현장을 보존해 놔야 했다.
‘삼합회……. 삼합회라.’
왕후성이 죽은 이후 내 머릿속에서 뒤로 밀려났던 조직인데, 이렇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네.
하긴, 예전부터 선생과 삼합회는 협력 관계였다.
‘이 새끼들을 어쩌면 좋을까.’
워낙 규모가 큰 조직이라 씨를 말려 버릴 수도 없다.
그리고 선생 놈의 영향력 탓인지 단속을 강화해도 빈틈이 자꾸만 생긴다.
결국엔 삼합회의 진출을 막으려면 선생 놈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 거다.
슥.
나는 품에 챙겨 놨던 종이 한 장을 꺼내 살폈다.
천칭자리 펜던트만 따로 빼 옮긴 장소의 주소가 적힌 서류였다.
컨테이너로 오기 전에 혹시나 해서 관리자의 자리를 뒤져 보니, 자물쇠로 잠긴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물론 열쇠가 없어서 박살을 낸 뒤 꺼내 오긴 했지만.
[용산구 이태원동…….]아마 이 주소가 가리키는 곳에서 천칭자리 펜던트를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거기서 누가 이것들을 구매해 가는지 알 수 있을 거다.
품에 다시 종이를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산. 용산이라.”
마침 우리 본거지인 SA시큐리티도 용산에 있는데 말이야.
씨익.
뭐 일단, 붙잡은 조민수부터 족쳐 보자고.
* * *
“음…….”
마약 제조 시설의 관리자, 조민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윽.”
그러다 머리를 울리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맞아서 기절한 건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 남자의 주먹이 떠올랐다.
조민수는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의 공간을 돌아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X바……. 잘못 걸렸네.”
누가 봐도 고문실 같은 풍경에 불안함을 느낀 조민수가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 나타나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던 조민수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그리고 두 사람이 걸어들어오는 순간.
“뭐든지 다 말하겠습니다! 살려 주십……!”
다급하게 말하던 조민수가 멈칫했다.
다가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낯선 탓이었다.
조민수가 눈을 굴리고 있자, 의자 두 개를 챙긴 백기준이 조민수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일어났냐? 너도 앉아라.”
“그러지.”
턱.
백기준의 옆에 고상미의 부하 중 하나가 앉았다.
일명 의사라고 불리는 남자로, 머리를 싹 넘긴 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백기준과 같이 고문을 좋아하는 가학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
다만 의사라는 별명치곤 의학적인 공부를 한 적이 없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뭘 알아내야 되더라?”
그 말에 의사가 백기준의 고문 도구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수술하다 보면 뭐라도 불겠지.”
“아니, 잠깐. 다 말한다니까요? 굳이 고문할 필요 없…….”
“그런가?”
“다 말한다고!”
조민수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의 장비를 꺼내 들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러자고.”
백기준이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놈이 먼저 시작한 자존심 싸움이다.
“이런 X발! 다 말한다고! 좀 물어보라고!”
“시끄럽군.”
나지막이 중얼거린 의사가 조민수의 입에 테이프를 찍 발라 버렸다.
“읍! 읍!”
스윽.
백기준은 장침을 하나 들고서 조민수의 묶여 있는 팔을 붙잡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리고 그대로 조민수의 팔꿈치에 침을 쑥 찔러 넣었다.
관절에 바늘이 꽂히는 느낌에 조민수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비틀었다.
“끄읍! 읍!”
“어허. 가만히 있어. 다친다.”
이어 백기준은 조민수의 무릎에도 똑같이 장침을 찔렀다.
푹!
“으으읍-!”
그 활어 같은 반응을 본 백기준이 의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가 애용하는 부위들이지.”
“흠. 관절은 잘못 찌르면 불구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큭. 내가 해부학을 몇 년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런가. 저기도 연습해 봐야겠군. 내가 주로 수술하는 부위는 여기다.”
의사도 옆에 놓인 구급상자 같은 걸 뒤지더니, 비슷하게 생긴 바늘 여러 개를 꺼냈다.
그걸 지켜보는 조민수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좀 물어보라고!!’
쿵. 쿵.
조민수가 몸을 들썩여 의자가 흔들리자, 의사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움직이면 장기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얌전히 있지.”
“…….”
그 말에 조민수가 눈물을 삼키며 얌전히 멈췄다.
의사는 침을 꺼내 그대로 조민수의 갈비뼈에 하나하나 꽂기 시작했다.
“끄으읍-!”
그의 기술을 지켜보던 백기준이 팔짱을 꼈다.
“폐에는 닿지 않게 쑤시는 건가? 근데 해부학 같은 건 공부한 적 없다며. 감으로 익혔냐?”
“그래. 실전에서 익힌 감각이지.”
“읍! 으급……!”
“호오…….”
백기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손기술을 유심히 지켜봤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민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슥.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기술을 견식한 둘은 조민수에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 냈다.
그러자 입에서 침이 주륵 흘렀다.
“으, 어으.”
백기준은 눈이 풀린 조민수의 뺨을 때려 깨웠다.
짝! 짝!
하지만 조민수는 극심한 고통과 긴장 탓인지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이럴 때 꽂으면 좋은 혈 자리가 있지.”
그에 백기준은 침을 꺼내 조민수의 정수리에 푹 꽂았다.
“어억.”
그러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조민수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허. 정말이군.”
“사, 사, 살려 주십쇼.”
“이제 말할 게 생각나?”
백기준의 물음에 조민수가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뭐, 뭐든지 말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정보는 필요 없고, 우리한테 필요한 것만 말해.”
“필요한…… 필요한 거라면…….”
머리를 굴리던 조민수는 머리 쪽으로 다가오는 침을 발견했다.
“내가 한의학도 꽤 공부했거든? 여기 찌르면 머리가 맑아지더라고.”
“잠깐마안!”
* * *
“흠.”
“뭐, 더 이상은 진짜 없는 것 같다.”
나는 백기준의 보고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민수가 자백한 정보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놈이 그 종이에 적혀 있던 주소의 가게에 직접 천칭자리 펜던트와 제조한 필로폰을 배달한다.
그럼 가게 주인이 지난달의 판매 수익 일부를 조민수에게 넘겨준다.
한 마디로, 그 가게로 찾아가서 주인장을 족치면 된다는 소리였다.
“쯧. 이거 완전히 말단이었구만?”
기껏 데려왔더니 생각보다 아는 정보가 별로 없네.
“그냥 네가 가지고 놀아라.”
“그래야지. 저놈은 좀 오래 가지고 놀아야겠다.”
백기준이 히죽대며 돌아간 뒤, 난 누굴 데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부장님은 다시 풍원한정식으로 돌아가겠다며 고상미 몰래 황급히 도망갔고, 나머지 녀석들도 같이 가가기엔 좀 애매했다.
‘그냥 나 혼자 갔다 올까.’
고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내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갑자기 뭡니까?”
난데없이 침입한 고상미가 내부를 둘러보며 물었다.
“라세흠 어디갔어?”
“저야 모르죠.”
“흠…….”
“뭐, 알아서 찾아보시고…… 전 볼일이 있어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고상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볼일?”
“예.”
“그럼 같이 가자. 할 일도 없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근데 안 돌아가십니까?”
“음?”
“고상미 씨 본진으로 가셔야죠.”
“아. 그렇네.”
설마 까먹고 있었던 거냐?
순간 이런 사람을 데리고 있는 가면남이 불쌍해졌다.
“빨리 돌아가십쇼.”
“쯥.”
고상미는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가면남의 지시를 듣긴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신세 좀 질게.”
“예.”
그렇게 같이 사무실을 나온 고상미는 부하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대련실 쪽으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뒤, 품 안에 넣어 놨던 메모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그때, 같이 갈 만한 사람 하나가 떠올랐다.
씨익.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 *
서울강남경찰서, 송태석 과장은 팀원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말없이 군만두를 집어 먹던 송태석에게 팀원 중 하나가 물었다.
“근데 과장님. 요새 엄청 바쁘시던데, 사건들은 자꾸 어디서 물어오시는 겁니까?”
“음?”
“어디 정보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팀원의 농담에 송태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후…….”
“어, 말씀하기 곤란하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밥이나 먹자.”
송태석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젓가락을 놀렸다.
그러던 그때.
우웅-.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송태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걸 본 다른 팀원 하나가 말했다.
“과장님. 전화 왔는데요?”
송태석은 수신인을 확인하곤 다시 핸드폰을 내려놨다.
“안 받아도 돼요?”
“하, 씨…….”
마음 같아선 씹고 싶지만, 중요한 일일 수도 있으니 덮어 놓고 안 받을 순 없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온다. 먹고들 있어.”
“옙.”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송태석은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송 과장님. 바쁘십니까?
“식사 중이었습니다.”
-아이고. 이거 실례했네요.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부탁이라니, 듣기만 해도 불안해지는 말에 송태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또 뭡니까.”
-별건 아니고, 제가 이번에 또 약쟁이들 족쳐서 넘겼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주혁이 말한 대로 인천에서도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다행히 강남서의 관할은 아니라 송태석이 갈려 나가진 않았다.
그런데 이주혁의 뉘앙스가 뭔가 불안했다.
“그래서요.”
-제가 거기서 뭐 단서를 하나 찾았지 뭡니까.
“단서 말입니까?”
-공장에서 마약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찾았거든요.
송태석은 그걸 듣고 귀를 의심했다.
“설마, 그거 경찰에 안 넘기고 본인이 챙긴 겁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나중에 제가 붙잡아 놓은 내부자랑 같이 경찰에 넘겨줄 생각이니까요.
경찰보다 자기가 먼저 움직이겠다는 뻔뻔한 소리였다.
송태석은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부탁이라는 게 대체 뭐예요?”
-잠깐 어디 좀 동행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마약이 넘어간 장소 말입니까?”
-네. 일개 시민 혼자서 가기엔 위험한 장소잖습니까.
“후…….”
얼굴을 쓸어내린 송태석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제가 애들 보내겠습니다.”
-아뇨. 직접 와 주시죠.
꾹.
‘개X끼.’
하지만 거절할 수도, 명분도 없었다.
송태석은 퀭한 눈빛으로 눈앞의 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
.
송태석은 이주혁이 불러 준 주소로 향하기 위해 동작대교를 건넜다.
끼익-.
문제의 그 주소로 향하려는데, 아무리 봐도 장소가 지하상가였다.
차도 못 끌고 들어가는 상황에 송태석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X발.”
탁.
근처에 주차한 뒤 문을 열고 내리자, 저 멀리서 이주혁이 다가왔다.
뺀질거리는 그 얼굴을 본 송태석은 한숨을 참으며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예.”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커피라도 한 잔…….”
“할 일이나 끝냅시다. 근데 이주혁 씨.”
송태석은 뭐냐는 듯한 표정의 이주혁을 보며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팅-. 칙.
그리고 불을 붙이며 물었다.
“오래서 오긴 했는데, 애초에 이렇게 찾아간다고 해결되는 게 있습니까?”
“가서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겠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영장이 없잖습니까.”
송태석은 공무원증을 꺼내 달랑거렸다.
“경찰이긴 해도, 그런 놈들은 아시다시피 이거 하나 가지곤 쫄지도 않습니다. 뭐라도 있어야…….”
“아, 영장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수롭지 않게 답한 이주혁이 품에서 나온 봉투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걸 받아든 송태석은 입에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툭.
영장 번호,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집행일시와 처리자의 서명까지.
관계자가 아니라면 척 보고 속아 넘어갈 정도로 잘 위조된 영장이었다.
“…….”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요?”
송태석은 고개를 들고 이주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러면 형사처분인 거 아십니까?”
씨익.
미소를 지은 이주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신고할 사람이 없는데, 제가 왜 처벌받겠습니까?”
그 사악한 웃음에 송태석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갑시다. 그냥.”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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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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