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필립은 너무나도 태연한 두 남녀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라세흠과 고상미는 그 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탓!
“이런 씹!”
두 사람이 동시에 내지르는 발차기에 필립은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그리고 빠르게 총을 꺼내려는데.
툭.
춘식이 발을 슬쩍 들어 필립의 뒤꿈치에 갖다 댔다.
필립은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어억!”
쿠당탕!
땅을 한 바퀴 구른 필립은 총을 들려고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달려온 라세흠이 필립의 총을 걷어차 버렸다.
콰직!
“큭!”
이내 고상미의 손이 뱀처럼 파고들었다.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든 고상미의 팔이 필립의 목과 팔을 같이 조르기 시작했다.
필립은 기술을 풀어내려 했지만, 압박이 너무 강했다.
경동맥이 졸리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끄……아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던 필립은 금세 눈을 까뒤집고 의식을 잃었다.
툭.
고상미는 그를 바닥에 던졌다.
원래 같으면 바로 목을 꺾었겠으나,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야 했기에 그럴 순 없었다.
씨익.
미소를 지은 고상미가 라세흠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엔 미치지 않게 잘해 볼게.”
라세흠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또 한 놈 병신으로 만들려고? 차라리 내가 한다.”
둘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춘식이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둘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
* * *
풍원한정식에서 대화를 마친 후.
해외에 다녀온 팀원들에게 오늘까지 쉬라고 전달했다.
그리고 나는 교회 잔당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강예원의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안 그래도 슬슬 교회에서 돌아올 시간이라고 하니, 지금쯤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원래는 밤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오후에 한번 집에 온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유를 찾기 위해 직접 접근할 수는 없다.
우선 강예원의 어머니가 어디로 가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맞겠지.
끼익.
강예원의 집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조금 낙후된 동네에 외제차가 들어온 탓인지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앞에 보이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계십니까?”
혹시 몰라 밖에서 불러 봤지만,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김에 내부나 좀 뒤져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괜히 그랬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턱.
다시 차에 타 주차 위치를 조금 옮기고 기다렸다.
“흠…….”
나는 막간을 이용해 우재성에게 들은 현재 상황을 복기했다.
우선, 부산의 정광제.
그때 항구에서 있었던 총격전 이후로, 러시아의 밀매 루트가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
선생 놈과 정광제는 어떻게든 경찰에 침을 바르려고 하는 것 같던데, 어림도 없었다.
광철이 아저씨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민심은 굉장히 좋다.
그 때문에 아저씨의 입김도 강력하게 작용했고, 밀항과 밀수 단속도 삼엄해진 것이다.
근데 사실 이게 맞는 거지.
그동안 부산의 단속이 너무 허술했던 거다.
어쨌든, 현재 정광제는 총격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수배까지 내려진 상황이라고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아무리 매수와 회유가 있다 해도, 경찰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국에서 대놓고 총을 썼는데 그렇게 슬쩍 넘어가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판교 리스트.
거기에 대한 조사도 슬슬 마무리되어 간다.
서 검사, 송 과장과 별개로 나도 우재성의 흥신소를 이용해 그놈들을 추적했다.
그 덕분에 리스트에 있던 사람들의 일부가 일정한 주기마다 어딘가에 모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기서 뭘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가 보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
요새 할 일이 계속 늘어나네.
해외도 나갔다가, 누굴 추적하고 어딜 또 찾아가고.
몸이 지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끝이 없는 싸움에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하긴 하다.
그렇게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그때.
‘왔나?’
한 중년 여자가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사진으로 확인한 사람이 맞았다.
나는 강예원의 어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잠시 기다리자 그녀가 손에 상자 하나를 들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탁.
이어 어디론가 걸어가길래, 나도 차에서 내려 그 뒤를 따랐다.
.
.
.
강예원의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 내렸다.
정류장이긴 한데, 위치 자체가 상당히 외진 곳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계속 따라가던 나는 한 건물에 붙은 간판을 발견했다.
[합동기도원]보기만 해도 뭐 하는 곳인지 알 것 같은 이름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특별 신도? 그건가?’
완전히 세뇌되어 공리회 밑으로 들어가 선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걸 특별 신도라고 지칭한 것 같은데, 아마 그런 사람들을 육성하는 곳이 아닐까.
끼익.
강예원의 어머니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혀를 찼다.
지금 나 혼자 저기 들어가는 건 무리다.
내부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도 결정하지 못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확신할 수 없다.
갑자기 수십 명이 달려들 수도 있을뿐더러, 강예원의 어머니를 사이비에서 구하는 것도 엄연히 목표 중 하나다.
저기 함부로 들어갔다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일단 오늘은 위치를 알아낸 걸로 만족하고, 나중에 팀원들과 다시 와서 진입해야겠다.
탁.
다시 차로 돌아와 위치를 우재성에게 전달했다.
“흠.”
이번에도 깽판을 치면 선생 놈도 꽤 화가 날 거다.
러시아 마피아들이 들어오는 걸 막았으며, 대리로 내세워 돈을 빨아먹던 성자와 정 목사도 감방으로 보냈다.
자연스럽게 교회의 세력이 줄어들었을뿐더러, 신도들이 훈련하던 사격장도 습격해서 밀수한 총기와 마약을 싹 다 압수했다.
그리고 놈의 심복 강 권사도 잘라 버렸다.
내가 선생이었다면 날 죽이고 싶을 거다.
‘그래도 다행이지.’
선생 놈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때는 계속 불안감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민정수석 민기형.
그놈이 정말 선생 본인이라는 확증은 없긴 한데, 어쨌든 주요 인물인 건 확실하니까.
민기형의 주변만 조사하면 대충은 미리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우리 정보 조직을 이용해 그놈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물론 청부를 맡기고, 범죄를 사주하는 건 증거로 잡기 힘들긴 하다.
부릉-.
하지만 놈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파악해 놨다.
선생 놈의 하수인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긴 해도, 그 줄 하나하나의 위치를 다 파악해 놓으면 우리가 거기 걸릴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돌렸다.
어느새 슬슬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씨익.
이제 휴가는 끝이다.
* * *
송태석은 한광철을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가는 길이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지체 높으신 의원님을 오라 가라 할 순 없었다.
“그러니까, 그놈에게 적색수배를 때리는 걸 도와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설명을 들은 한광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놈이 이번엔 그나마 합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송태석은 이주혁이 단순히 그런 이유로 수배를 내리려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마테오라는 사람을 파멸시키려는 악의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당하는 놈이 범죄자니 딱히 동정심 같은 게 들진 않았다.
한광철도 크게 이견은 없는지 송태석을 보며 말했다.
“이 건은 제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 말이십니까?”
“인터폴 공조는 행정자치부에 요청할 수 있잖습니까?”
“맞습니다.”
한광철은 전 민정수석 김우천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김우천은 현 행정자치부 장관과도 꽤 돈독한 관계였다.
‘발이 안 닿는 곳이 없으시구만.’
그 말에 송태석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처리 못 했다간 또 그 인간의 갈굼을 들게 될 터였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 어르신이 들어주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워낙 꼬장꼬장하신 분이라.”
“음.”
“그래도 도와주시긴 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알겠습니다.”
“따로 말할 것도 있으니, 주혁이한테는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한광철이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하던 순간.
쨍그랑!
사무실 창문이 깨지며 안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의원님!”
깜짝 놀란 송태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재킷을 벗어 한광철의 머리 쪽을 가리며 사무실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들이…….”
뭔가 했더니, 어른 주먹만 한 돌멩이가 날아온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과거에도 있었기에 한광철은 침착할 수 있었다.
송태석은 그가 멀쩡한 걸 확인한 뒤,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조심스럽게 창문 바깥을 내다봤다.
마스크를 낀 깡패 같은 놈들이 돌멩이 몇 개를 더 들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삐빅.
그걸 확인한 송태석이 무전기로 팀원들에게 연락하려던 그때,
타닷!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튀어 나가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SA시큐리티 팀원이자 한광철의 경호원, 윤건한이었다.
분명 한광철과 대화할 때만 하더라도 방 한구석에 서 있었는데,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저기까지 내려간 것이다.
빠르게 달려간 윤건한이 말릴 새도 없이 깡패들에게 달려들었다.
쇠파이프를 쥐고 있던 깡패 하나가 갑자기 달려오는 윤건한을 보며 당황했다.
“뭐야, 이 새…….”
퍼엉-.
깡패는 윤건한이 달려오면서 날린 정권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날아갔다.
“크아악!”
비현실적인 광경에 송태석이 무전기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너무 심하게 패면 안 됩니다!”
정치인 사무실을 테러한 놈들을 제압하는 건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해 버리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윤건한은 그 말을 들었는지, 나머지는 적당히 손을 써 바닥에 눕혔다.
소란에 주변 상가 사람들이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송태석은 팀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한 뒤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윤건한이 어디서 난 건지, 웬 낚싯줄 같은 거로 범인들의 손을 뒤로 묶고 있었다.
그 광경에 한광철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저 사람도 이주혁 팀원이라고 했나?’
역시, 그쪽은 정상인이 없다.
* * *
찰칵.
커터로 시가 끝을 자른 마테오가 글라스를 닦던 바텐더에게 말했다.
“늘 먹던 거로 한 잔 줘.”
끄덕.
마테오는 칵테일을 주문하고 시가를 입에 물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을 텐데.
그렇게 시가를 피우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때.
딸랑.
한 남자가 바의 문을 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웬일이실까? 이 귀한 곳에 누추한 몸을 부르시고.”
뒤로 넘긴 머리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남자, 필리핀의 한인 용병 춘식이 씩 미소를 지었다.
마테오는 그걸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한국인이었기에, 그들의 입에선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 와?”
“늦은 것도 아니잖아요?”
춘식의 너스레에도 더 뭐라 할 순 없었다.
태도는 불량해도 능력 하나는 확실한 놈이었다.
혀를 한번 찬 마테오가 시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됐나?”
“아, 그거…….”
뭐라 말하려던 춘식이 바텐더가 내려놓는 칵테일을 보고 말했다.
“나도 같은 걸로 하나 줘요.”
“이봐. 내가 묻잖아.”
“찾긴 했어요.”
“그래?”
역시 일은 잘한다.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춘식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수소문해보니까 그놈들이 칼라이 애들을 밀어 버렸더라고요.”
“뭐? 그게 그놈들이었다고?”
바로 얼마 전, 누군가 카지노에 마약을 납품하던 조직을 궤멸시켰다.
그것 때문에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마크가 사라진 것도 그놈 짓인가?”
“그렇겠죠. 필립 그 자식이 당신 뒤통수를 칠 만큼 강심장도 아니고.”
“그 한국인들 위치는 파악했나?”
그 물음에 춘식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누굽니까? 3일 안에 알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춘식은 히죽 웃으며 바텐더가 내온 칵테일 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마테오 앞으로 지폐를 턱 올려놨다.
그에 바의 소유주인 마테오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웬일로 네가 돈을 내고 마시는 거지?”
“돈 들어올 일이 생겼잖습니까.”
“하긴.”
“잘 챙겨 두십쇼.”
물론 둘이 생각하는 일은 다를 테지만 말이다.
춘식은 말을 아낀 채 칵테일을 쭉 들이켰다.
‘네 노잣돈이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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