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5
204화
그날 저녁, 나와 팀원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처리할 일도 남아 있고, 필리핀에 전부 있어 봤자 과잉 전력이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내 손 인사에 잔류 인원인 부장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대체 왜 나 혼자 남으라는 거야? 그냥 우리 쪽만 먼저 복귀하면 되는 거 아니냐?”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협력하는 녀석이 맡기고 갈 거면 이쪽 전력을 두고 가라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대 전력인 부장님을 두고 가는 겁니다.”
가면남 입장에선, 총이 난무하는 현지에 자신들만 남기고 우리는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가면남의 주장에 누군가의 입김이 꽤 들어간 것 같긴 하지만…….
고상미의 일 처리를 옆에서 확인하고 컨트롤할 사람도 필요하니, 나로서도 괜찮은 타협안이었다.
“그리고, 부장님 싸우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래도 좀…….”
치근덕대는 고상미와 함께 전투를 즐기냐, 아니면 그녀와 떨어지고 전투에서 빠지느냐.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하던 부장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쯧. 알았다.”
“일단 제가 말한 대로 진행해 주세요. 이후 작전은 한국 돌아가서 마저 전달하겠습니다.”
“어.”
부장님과 고상미, 그녀의 부하들과 춘식의 조직.
이 정도만 남겨 놔도 충분히 강한 전력이었다.
그렇게 잔류 인원이 공항을 떠나고, 건물 앞에 서 있던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다.
“아. 김치가 그립다, 그리워.”
“인정.”
두런대는 팀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는데, 품 안에 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 꺼내서 확인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유나 씨?’
예상하지 못한 전화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주혁 씨?
“네. 접니다.”
히죽.
“에이. 부러운 새끼.”
“사장님이지?”
내 표정을 본 팀원들이 뭐라 수군댔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별일 없으셨죠?”
-네. 주혁 씨는요? 다치신 데는 없죠?
“저야 항상 멀쩡하죠.”
나는 웃음을 지으며 내심 안심했다.
나와 부장님이 없는 사이에 풍원한정식을 건들진 않은 모양이다.
툭하면 엮이는 장소라 조금 불안했는데, 별일 없다니 다행이네.
-필리핀으로 나가셨다고 들었어요.
“네. 안 그래도 이제 다시 들어가려고 공항에 온 참이었어요.”
시계를 슬쩍 보니, 슬슬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나 씨의 전화인데 용건이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순 없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떠들던 중, 유나 씨가 본론을 꺼냈다.
-저……. 예원이 있잖아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왜요?”
월급은 많이 챙겨 주니 돈 문제는 아닐 거다.
-예원이가 요새 계속 한숨을 푹푹 쉬더라고요. 무슨 일 있는 거냐 물어도 말해 주지도 않고……. 혹시 주혁 씨는 뭐라도 아시나 싶어서요.
“흠.”
의심 가는 게 하나 있긴 하다.
얼마 전, 강예원은 강 권사의 뒤통수를 날렸다.
그것도 있고, 직원의 가족들은 보호해 줘야 했기에 강예원의 가족에 관해 알아봤었다.
아버지는 예전에 사망했고, 가족 중엔 어머니만 있는데…… 이게 문제였다.
‘새사람 교회 신자였지.’
성자와 정 목사가 감방에 들어가긴 했지만, 다른 목사나 신자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당연히 잔당들은 그 상황에서도 돈이 되는 신자들을 규합할 거다.
강예원도 아마 어머니가 다시 사이비에 빠진 것 때문에 걱정인 게 아닐까.
솔직히 걔가 고민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제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항상 밝던 애가 수심에 잠겨 있으니 걱정이 되네요.
새사람 교회. 또 눈에 띄면 박살 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마침 튀어나와 주네.
사이비에 빠진 강예원의 어머니를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긴 하지만, 그건 녀석과 이야기해 보면 되겠지.
“그럼, 조금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아, 네. 잘 해결되면 꼭 사례할게요.
사례라니. 그건 강예원이 해야 하는 거 아냐?
걔는 복 받은 거다. 이렇게 직원 생각하는 사장이 또 어딨어?
돌아가서 풍원한정식에 들르기로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어쩌다 보니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겨 버렸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교회를 회생 불가로 만들어야겠다.
새사람 교회는 한국에 돌아가서 처리하기로 하고.
그전에 할 일이 있다.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씨익.
우선 마테오, 그놈을 궁지에 몰아넣어 볼까.
* * *
강남서의 사무실.
오늘도 피로한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송태석이 방금 타 온 커피를 홀짝 마셨다.
담배로 텁텁하던 입 안이 달달한 믹스커피로 헹궈졌다.
싼 맛이었지만, 담배와 함께하는 데 이만한 게 없었다.
“후…….”
송태석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따뜻한 실내 공기 속에서 잠깐 눈이나 붙일 생각이었다.
그때.
우웅-.
어쩐지 불안하게 들리는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송태석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다시 일으켜 핸드폰을 확인했다.
“에이, X발…….”
눈을 질끈 감은 송태석이 전화를 받으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뉘었다.
“……여보세요?”
-아이고, 송 과장님. 오랜만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송태석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고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해외에 있는 범죄자 한 놈한테 적색수배를 좀 때리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설마 인터폴에서 내리는 적색수배 말입니까?”
-네.
“이번엔 또 누굽니까?”
그의 물음에, 이주혁은 마테오라는 사람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던 송태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수배를 내리려면, 일단 국제범죄에 관한 사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마약을 유통했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당연하죠.
타닥. 탁.
그때, 이주혁이 말해 준 정보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가 나왔다.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이름은 마대호. 정말로 과거 한국에서 불법도박을 알선하고 마약을 팔아 옥살이를 한 전적이 있었다.
-결과는 나왔나요?
“예. 전과가 많네요. 이런 놈들은 대체 어디서 자꾸 알아 오시는 겁니까?”
진심으로 이주혁이 가져오는 정보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물론 이번 건은 가면남, 고세운의 해킹 덕이었다.
“……후.”
송태석은 최근 부쩍 늘어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 정도면 요청은 넣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놈, 선생과 관계가 있는 놈입니다.
그 말에 송태석의 표정이 굳었다.
-선생 놈이 인터폴까지 손을 뻗진 않았어도, 인터폴이랑 연락하는 외사국은 충분히 건드려 놨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서 검사님이랑 광철이 아저씨한테도 연락해요. 도와주실 테니까.
서해결 검사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도맡아 해결한 덕에 이름값이 높았고, 한광철도 정계에서 발 넓기로는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송태석은 내심 든든함을 느끼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한정식 집에서 모였을 때 받아 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잠시 통화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송 과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입술을 축인 송태석이 바로 용건을 꺼냈다.
“한광철 의원님.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 * *
서울에 도착한 나는 팀원들을 회사로 보내 놓고 곧바로 풍원한정식으로 향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서 있던 유나 씨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오셨어요?”
“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마음 같아선 앉아서 조금 떠들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 놀러 온 게 아니다.
“걔는 어딨어요?”
“조금 전에 뒤뜰로 나갔어요.”
“일단 얘기 나누고 올게요.”
유나 씨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짐작뿐이었는데, 내가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복도를 지나 뒤뜰로 나가는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 유나 씨와 부장님이 운동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기에 어딘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끼익.
문을 여니 쭈그려 앉은 채 장독에서 퍼담은 장이 담긴 통들을 정리하는 강예원이 보였다.
“뭐 하냐?”
“어? 뭐야?”
“잠깐 얘기 좀 하자.”
강예원은 내 표정을 보고 왜 찾아왔는지 대충 감을 잡은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장님한테 들은 거야?”
“어.”
“……사장님도 참.”
슥.
통을 챙겨 일어난 강예원이 턱짓했다.
“휴게실에서 기다려. 그리로 갈게.”
“알았다.”
“안 그래도 너한테 말은 꺼내 볼까 했는데, 이렇게 된 거 고민 상담 좀 해 주라.”
“그러려고 온 거야. 우리 회사가 직원 복지 하나는 좋거든.”
.
.
.
휴게실로 이동한 뒤, 한참 동안 강예원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고민과 걱정이 담긴 강예원의 사정에 적당히 공감해 주던 나는 한 가지 단어에 멈칫했다.
“잠깐. 목걸이?”
“응.”
“어떻게 생긴 건지 기억나?”
“음, 그것까진 잘…….”
“아니면 가서 볼 순 없나?”
내 물음에 강예원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항상 목에 차고 있어서……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난감한 표정을 짓던 강예원은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아, 기억났다. 무슨 별자리 같은 모양이었던 거 같아.”
역시 그랬나.
“금색 펜던트였지?”
“어, 아니? 은색이었어.”
“그래?”
색이 다르다. 그럼, 금색은 간부급만 사용하는 표식인가?
꽤 일리가 있는 추리였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가까웠다.
일단 강예원의 모친이 별자리 펜던트를 받은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새사람 교회의 잔당에 접근할 방법을 찾은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필리핀 쪽은 내가 지시한 대로 당분간 알아서 진행할 테니, 나는 한국의 인원들로 새사람 교회의 잔당을 처리해야겠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어?”
“혹시, 어머니 언제쯤 돌아오셔?”
우선, 강예원의 모친이 향하는 장소를 알아내야겠어.
* * *
이주혁의 편에 합류한 춘식은, 카지노의 중간 관리자 필립의 연락을 받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는 품 안의 총을 꺼내며 으슥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춘식은 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계단 위의 층계참을 향해 총을 겨누며 물었다.
“사람을 불러 놓고 왜 음침하게 숨어있어?”
그 말에 어두운 계단 위에서 필립이 내려왔다.
“이봐.”
“음?”
필립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크가 실종됐다는 거 알고 있지?”
“마크가?”
“괜히 모르는 척은 하지 마라. 마테오가 너한테 연락했다는 걸 알고 왔으니까.”
어깨를 으쓱한 춘식이 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뭐, 마테오가 널 범인으로 의심하나 보네.”
“뭐라고?”
“그게 아니면 왜 굳이 나한테 의뢰를 했겠어? 그리고 나도 마크가 실종된 건 몰랐다고. 그냥 이 근방의 수상한 놈들을 찾으라는 말만 들었지.”
“젠장.”
필립은 밀려오는 짜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춘식에게 일을 맡길 거였으면, 자신이 마크가 실종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한번 찾아보라고 시키면 되는 거 아니었나?
아니면 저놈의 말대로 정말 자신을 의심하는 건가?
그동안 그렇게 개처럼 명령을 따랐는데도 아직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필립은 입맛이 썼다.
하지만 지금은 마크의 행방이 우선이었다.
고개를 든 필립이 마크에게 설명했다.
“마크가 그렇게 쉽게 당할 녀석은 아니야. 만약 당했다면, 분명 다른 조직에게 납치당한 거겠지.”
“오. 추리력 좋은데.”
“대체 어떤 놈들이 겁 없이 마닐라에서…….”
쏟아내듯 말하던 필립은 춘식의 손가락이 자신의 뒤를 가리키는 걸 보고 미간을 좁혔다.
“왜. 뒤에 뭐라도 있…….”
필립은 어느새 뒤에 서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보고 몸이 덜컥 굳었다.
“……어?”
라세흠과 고상미가 동시에 입꼬리를 올렸다.
“헬로우?”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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