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그 시각, 평화로운 평일 낮 시간대의 풍원한정식.
강예원은 직원 휴게실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하…….”
그건 바로 그녀의 어머니, 정숙자 때문이었다.
얼마 전, 새사람 교회에 사건이 터졌다.
목사와 성자라는 사람들이 헌금을 빙자해 신도들을 갈취한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 뉴스를 보고 강예원은 정숙자의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교회에 등을 돌릴 거란 예상과 다르게, 정숙자는 더욱더 신앙에 빠져들었다.
현실이 아닌, 그들만의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가둬 버린 것이다.
세상의 타락한 악마들이 성자라는 사람을 가뒀고, 우리는 그분을 구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런 내용의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교회로 나가는 빈도가 더 늘어나 버렸다.
‘그거뿐만이 아니지.’
강예원이 더욱 불안한 건 따로 있었다.
원래 같으면 교회에 나갈 때 항상 돈을 챙겨 나갔다.
그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강예원은 가족의 정을 매몰차게 걷어찰 만큼 냉정한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숙자는 현금을 뽑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에서 무슨 목걸이를 받아 와 애지중지하며 자신은 선택받았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예전과는 달라진 그 모습에 강예원은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찜찜했다. 차라리 이주혁에게 받은 월급을 가져가는 게 더 마음 편할 정도였다.
그런 강예원의 근심이 겉으로 티가 났는지, 휴게실로 들어오던 임유나가 다가왔다.
“예원아. 무슨 고민 있어?”
맞은편에 앉으며 하는 질문에, 강예원은 밝은 웃음을 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요새 외로워서요.”
“아, 그래?”
아무리 봐도 그렇게 가벼운 문제를 아닌 것 같았지만, 임유나는 이어지는 강예원의 말에 당황했다.
“사장님은 좋으시겠어요. 돈 많고 잘생긴 남자도 있고.”
“뭐? 아, 아니야.”
“아니긴요. 걔 올 때마다 사장님 표정을 보셔야 하는데.”
꼬리가 있었으면 분명 마구 흔들렸을 거라는 말은 삼켰다.
“지금 전화라도 걸어 봐요.”
임유나는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예원의 계획대로, 그녀의 고민을 더 캐묻지 않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안 그래도 좋지 못한 사정.
굳이 동네방네 떠벌리며 나 불쌍하다, 도와달라 광고할 것까진 없었다.
“후.”
그러나 강예원은 이미 이 상황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쳤다.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월급도 두 배 이상 올려 주고, 정보를 팔아넘기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걸 알고서도 강예원을 내치지 않았다.
만약 그라면 이번 일도 해결해 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강예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그걸 복도에 기대 지켜보던 임유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주혁 씨한테 말씀드려 봐야겠어.’
* * *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마크는 마테오에 관한 정보를 술술 풀어냈다.
마테오는 12시부터 3시까지 낮술을 마시며 휴식을 즐긴다.
그 후로는 호텔이나 카지노로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거나, 다른 지역의 업장을 관리하기 위해 돌아다닌다고 한다.
“카지노에서 쓰는 마약에 대해선 알고 있나?”
“내부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난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야.”
“쓸모없다고 자기소개하는 건가?”
“젠장. 이러지 말라고. 최대한 협조했잖아?”
나는 일그러진 마크의 표정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럼 도움이 될 만한 걸 더 생각해 봐.”
“큭…….”
놈은 한참을 고민하는 듯 끙끙대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필립은 알겠지.”
“알지. 그놈은 왜?”
“녀석이 그의 단골 술집을 알고 있다. 직접 연락할 수도 있고.”
“오호. 그런 정보를 이제야 말하다니.”
괘씸하네. 내가 추궁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나?
뭐, 대충 이 정도면 들을 건 다 들은 것 같네.
나는 마주 놓여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날 보고 있던 눈이 흔들렸다.
“……이제 풀어 주는 건가?”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불안한 표정을 짓는 마크에게 내 계획을 설명해 줬다.
그걸 다 들은 마크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진심이냐? 이 마닐라 바닥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하고 살아남을 순 없다. 그놈은 삼합회와도 협력 관계란 말이다.”
“그래서, 협조 안 할 거냐?”
놈은 정수리에 느껴지는 따끔함에 눈을 질끈 감으며 목을 움츠렸다.
“젠장! 알았다고! 하면 될 거 아니냐!”
“잘 생각했어.”
역시, 최고의 설득 방법은 눈앞에 날카로운 무언가를 갖다 대는 거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회유에 성공한 나는 백기준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습하고 어두운 안과는 다르게, 한국보다 조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흠…….”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됐다.
마음 같아선 마테오를 포함해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을 싹 다 밀어 버리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해외에 나와 있을 순 없다.
듣기론 필리핀에 빅 보스라 불리는 놈이 있고, 마테오는 그놈이 신뢰하는 수하라고 한다.
그래도 선생과 직접적인 커넥션이 있는 건 마테오뿐인 것 같다.
빅 보스와 선생이 결탁했다면 귀찮고 힘든 싸움이 됐을 텐데 다행이었다.
‘일단 마테오부터 잘라낸다.’
최악의 가정이 들어맞을 수도 있지만, 그럼 다시 찾아와서 마저 족치면 되는 일.
나는 핸드폰을 꺼내 한창 마약 공장들을 쳐부수고 있을 팀원들 쪽에 문자를 보냈다.
[복귀]* * *
춘식은 코에 휴지를 잔뜩 쑤셔 넣은 남자를 무릎 꿇려 놓은 뒤 라세흠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이놈이 카지노로 들어가는 마약을 총괄하는 놈입니다.”
“얘가?”
코가 부러지기 전에도 추했던 외모를 보며 고상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나였으면 이런 못생긴 애한테 뭘 맡길 것 같진 않은데.”
그녀의 촌철살인에 남자의 눈이 증오로 물들었다.
춘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원래 병신 같은 놈이었는데, 개새끼처럼 시키는 건 다 하는 거 때문에 그 양반 마음에 든 겁니다.”
“아, 그런 거야?”
“일단 이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자고.”
그걸 지켜보던 라세흠은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부장님.
“어. 네가 말한 그 조직, 찾았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이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마약 공장 위치만 몇 개 알아내기만 하고, 이젠 필요 없는 놈이니까 알아서 처리하셔도 됩니다. 슬슬 마무리해야 하시죠.
“알았다. 다들 들었지?”
한국어로 통화한 탓에 혼자만 알아듣지 못한 남자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멍청한 놈들! 마닐라에서 날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나!”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야?”
퍽!
춘식은 발로 남자의 턱을 돌렸다.
“어그윽.”
턱이 빠진 남자가 피와 침을 질질 흘렸다.
“마테오가 고작 개새끼를 위해서 복수할 위인으로 보이나?”
“끅…….”
“귀찮게 그럴 바에 새로 사고 말 사람이다. 하여튼 병신 같은 새끼……. 아직도 그걸 모르네.”
남자를 더 패려던 춘식이 멈칫했다.
“아, 누님이나 형님이 하실 거면 하셔도 됩니다.”
“그럴까? 어차피 공장 위치만 알아내고 마음대로 하랬는데.”
고상미가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뭔가 고문 같은 걸 연습해 보고 싶단 말이지.”
“좋죠.”
히죽.
남자는 몸을 풀며 다가오는 고상미를 보며 눈가를 잘게 떨었다.
.
.
.
그로부터 몇 분 뒤, 지켜보던 배상훈은 백기준이 확실히 고문 전문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땅에 널브러진 놈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저기요.”
“음?”
“질문하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패 버리면 어떡합니까?”
배상훈의 핀잔에 고상미가 귀를 긁적였다.
“뭐 어때? 괜히 시간 잡아먹을 바엔 그냥 다져 놓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
“고분고분해졌으니까, 이주혁이 말한 거 알아내.”
어쩌다 보니 다짐육에게 정보를 빼내게 생긴 배상훈이 인상을 구겼다.
‘고분고분이 아니라 반시체구만.’
머리를 긁적이고 남자를 향해 몸을 숙이던 그때.
“아, 예. 예. 알겠습니다. 누님!”
영어로 누군가와 통화하던 춘식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실실 미소를 짓는 게, 아무래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긴 눈치였다.
“뭐야?”
“운이 좋네요.”
“누구 전화였길래?”
“제가 마테오 쪽에서 의뢰를 몇 번 받았다고 했잖습니까. 거기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네요.”
“그래? 뭐라고 왔는데.”
그 물음에 춘식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 근방에서 수상한 놈들을 찾아보라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 쪽인 것 같은데.”
“수상한 사람?”
“근데 수색하라는 장소를 들어 보니까 저희가 갔던 곳은 아니더라고요?”
“다른 애들 쪽인가 보네.”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테오라는 놈이랑 직접 통화한 건 아니지?”
“네. 이놈은 따까립니다. 저기 저놈이 마약 담당이면, 얘는 마테오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놈입니다.”
설명을 듣던 라세흠은 미심쩍은 마음에 물었다.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마닐라 골목길에서 십 년 넘게 살다 보면 다 알게 됩니다.”
“흠.”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만, 일단 지금은 의심해 봤자 얻을 게 없었다.
“일단 주혁이 쪽으로 합류하자. 모여서 얻은 정보를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좋습니다. 저도 그쪽 대표님 한번 뵙고 싶네요.”
“다 됐습니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남자에게서 공장의 위치를 대강 알아낸 배상훈이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본 춘식이 조직원들을 불렀다.
“저놈은 저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출발하시죠.”
“누가 보면 너도 우리 팀원인 줄 알겠네, 아주.”
“하하. 한국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춘식의 너스레에 라세흠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왠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다.
라세흠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 * *
마크를 심문하던 창고 안.
나는 고상미가 데려온 춘식이라는 남자를 소개받았다.
대충 들어 보니 실력도 괜찮고,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혹시 취직 생각 있어요?”
“아이고, 하하하.”
춘식은 대답 대신 부장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흠 형님이 절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요.”
“부장님이요?”
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장님이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고상미의 지인이다보니 거부감이 좀 드시나 본데.
뭐, 일이 끝나고 다시 얘기해 보면 되겠지.
“저, 이 대표님.”
허허 웃던 춘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말 말씀하신 만큼 챙겨 주시는 거 맞습니까?”
“그럼요. 제가 고상미 씨 지인을 굳이 등쳐먹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물론 초면인 데다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이놈한테 큰돈을 쥐여 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가면남이 춘식의 신원을 보증해 주기도 했고, 고상미를 끌어들이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녀석이다.
이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끼익.
그때, 창고 문이 열리며 우리 팀원들과 고상미의 부하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왔냐?”
“왔다.”
그렇게 다 모인 이쪽 인원들을 둘러보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했다.
사실 마테오를 제거하려면 어떻게든 할 순 있다.
그동안 미룬 이유는 하나.
이대로 놈을 없앤다 해도, 어차피 그 자리에 또 누군가 들어와 똑같은 짓을 할 거다.
그걸 막기 위해 마약 공장을 없애고 다닌 거기도 하다.
그 결과 이 근방의 마약 제조실은 대부분 사라졌고, 카지노의 주요 인물들도 동선을 다 파악해 놨다.
한국으로 돌아갈 땐 가더라도, 선생의 돈줄인 카지노 쪽에 제대로 엿을 먹여 줄 생각이다.
그리고 특히 마테오 그놈은 나락 끝까지 떨어뜨려 줄 거다.
히죽.
일단, 인터폴에 적색수배부터 요청해 볼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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