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오늘 몇 명 정도 한대?”
“글쎄다. 한 다섯?”
“제임스 그 호구 자식은 꼭 왔으면 좋겠는데.”
“큭.”
마테오가 숨어 있는 별장의 경호원들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용주가 여기 있으니 앞으로 몇 주, 몇 달은 이 저택에서 지내야 한다.
그래서 무료한 밤에는 소소하게 내기 포커를 치곤 했다.
“기억나지? 고작 하이카드로 끝까지 들어오던 거.”
“하여튼, 지는 건 더럽게 싫어하는…… 음?”
대화를 나누던 둘은 저택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황급히 튀어나가며 총을 겨눴다.
“거기, 멈춰!”
“정지! 정지! 손들고 신원을 밝혀라!”
보초를 서던 두 사람이 총을 들고 경계하자,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오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나다.”
“뭐?”
“나라고. 필립.”
“어, 필립?”
총을 조준하던 경호원들이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꼴이 왜 그 모양이야?”
경호원의 말대로, 필립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일단 마테오한테 데려다줘.”
“어. 일단 들어오라고.”
마테오에게 자주 보고하던 필립이었기에, 경호원들은 별 의심 없이 그를 안으로 들였다.
“마테오는 어딨어?”
“지하 집무실.”
“거기 연락 좀 부탁하지.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꾹. 꾹.
그 말에 경호원은 마테오의 집무실에 연결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필립인가?
“예. 사장님께 데려다 달라고 하네요.”
-데려와.
“알겠습니다. 가자고.”
까딱.
필립은 절뚝거리며 경호원이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이 쑤셨지만, 절묘하게 불구가 되기 직전에 멈춘 건지 억지로 걸으려면 또 걸을 순 있었다.
꾸욱.
이를 악문 필립이 고통을 참으며 그 악마 같은 놈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 펜, 절대 빼지 마라.’
필립은 가슴 주머니에 꽂힌 볼펜을 힐끗 내려다본 뒤, 고통을 참으며 집무실로 향했다.
* * *
한편, 라세흠과 고상미는 간첩들이 입을 법한 시커먼 옷을 입은 채 별장 건물 위에 은신하고 있었다.
“좋은 데 사네.”
라세흠은 필립의 볼펜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저택 내부의 구조를 확인했다.
마테오가 숨어있는 집무실까지 가는 위치를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들고 있던 소형 모니터를 크로스백에 집어넣었다.
그에 고상미가 복면을 살짝 내리며 물었다.
“진짜 내 방식대로 해도 되는 거지?”
“그래.”
라세흠은 이주혁이 전달한 비보를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혁이가 코드 옐로우라고 했으니까 상관없다.”
블루. 아무도 사살하지 않고 생포 및 제압.
옐로우. 가능하다면 생포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사살 가능.
레드. 거점 섬멸.
보통 이주혁의 작전은 블루로 진행했으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번 작전에선 사살까지 허가했다.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하고 돌아오란 뜻이다.
“대신 마테오 그놈은 어지간하면 생포하고. 나머지도 흔적 안 남게 처리해.”
“당연하지.”
씩 웃은 고상미가 복면을 올렸다.
탓!
두 사람은 지붕을 붙잡고 그대로 매달렸다.
라세흠이 긴 다리를 이용해 발을 뻗어 창문틀을 밟았다.
“흡.”
몸을 튕겨 창문에 매달린 라세흠이 가방에서 장비 하나를 꺼냈다.
유리를 원형으로 잘라 주는 절단기를 창문에 붙이고 손에 힘을 줬다.
까드득!
창문이 동그랗게 잘려 나가고, 라세흠이 그걸 손으로 살짝 밀었다.
툭.
원형으로 떨어져나간 유리가 복도에 떨어졌다.
미소를 지은 라세흠은 손을 구멍 안으로 넣어 잠금을 푼 뒤 창문을 열었다.
드르륵-.
창틀을 넘어 먼저 복도로 돌입한 라세흠이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사이 매달려 있던 고상미가 몸을 튕기며 복도로 따라 들어왔다.
탁.
라세흠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살폈다.
저택은 총 3층. 하지만 마테오는 지하 집무실에서 일과 대부분을 보낸다.
그 말은 즉, 3층까지 올라와서 보초를 서진 않는단 소리다.
살금살금 움직이던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진입하려다 멈칫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필립 봤어?
-봤지. 말이 아니더군.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야?
-어디 납치당하기라도 한 거 아냐?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두 남자의 형체가 나타났다, 라
그걸 확인한 라세흠은 고상미를 붙잡고 바로 왼쪽의 방문을 열어 빠르게 몸을 숨겼다.
찰칵.
“…….”
문을 잠근 뒤,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남자들이 그냥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잠긴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덜컥.
-어? 뭐야.
-왜. 잠겼어?
-안에 누가 있는 모양인데. 어이!
쿵쿵.
‘어쩔 수 없나.’
지하까지는 최대한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 좋게 풀렸다.
라세흠이 문 쪽으로 총을 겨누던 순간, 고상미가 그의 뒷덜미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끼익.
그녀는 캐비닛을 열고 라세흠을 그 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자신도 같이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뭐 하는…….”
“쉿. 여기서 기다려 보자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라세흠이 당황하는 사이, 어느새 문을 딴 남자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젠장. 대체 누가 문을 잠그고 나간 거야?
턱.
남자들은 바로 나갈 생각이 없는 건지, 테이블에 총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 자리를 잡았다.
‘이런 씨…….’
고개를 뒤로 쭉 뺀 라세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고상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거의 숨결까지 닿을 지경에 몸을 조금씩 비틀자, 고상미가 히죽 웃으며 더 밀착했다.
라세흠은 이를 악물며 이 와중에도 이럴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고상미는 상관없다는 듯 뻔뻔한 얼굴이었다.
꾸욱.
몸을 긴장시킨 라세흠이 캐비닛 틈으로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우리끼리 좀 하고 있자고.
-좋지.
품에서 카드를 꺼내는 게, 한참 기다려도 나갈 것 같진 않았다.
‘X팔……!’
평생 독신으로 살던 라세흠은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는 캐비닛 문을 발로 차 열며 방아쇠를 당겼다.
깜짝 놀란 남자들이 무기를 집으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탁! 탁!
소음기에 막힌 총성이 두 번 울리자, 총으로 손을 뻗던 남자들이 의자에서 뒤로 벌렁 넘어갔다.
“컥.”
“읍……!”
쿠당탕.
그걸 확인한 라세흠이 다급히 캐비닛에서 탈출했다.
고상미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안 들키고 간다면서?”
“안 들켰길 바라야지.”
라세흠이 이를 악물며 고상미를 노려봤다.
조금 전 상황에서 숨지 않고 맞서 싸우는 건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
총을 들고 있었을 테니 바로 쐈을 테고, 그럼 총성이 별장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히죽.
사심을 채운 듯한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 상황에선 맞는 대처였기에 뭐라 할 순 없었다.
“뭐 해? 가자.”
라세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그래서, 몰골은 왜 그 모양이야?”
“…….”
마테오의 날카로운 질문에, 필립은 욱신거리는 귀를 긁적이며 말했다.
“습격당했습니다.”
“습격? 뭐 하다가?”
“마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상황을 설명하던 필립의 귀에 차가운 핀잔이 날아와 꽂혔다.
“멍청하긴. 그걸 그대로 믿고 간 거야?”
“그게…….”
“그래서, 마크는 어떻게 됐어?”
“……못 찾았습니다.”
“뭐? 그럼 가서 대체 뭘 한 건데?”
필립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냥 찾아갔다가 뒤통수 맞고 납치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변명 거리는 있었다.
필립을 부른 사람은 그동안 마테오 밑에서 일하던 춘식이었기에 별 의심 없이 일단 나가 본 거다.
하지만 그 악마 같은 인간들이 거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쯧. 여긴 왜 찾아왔어? 잘 돌아왔다고 보고하려고? 아니면 내 은신처를 동네방네 광고할 생각이신가?”
“그, 그건 아닙니다.”
마테오는 필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머리를 다쳤는지 영 상태가 안 좋았다.
“일단 치료부터 해.”
“예.”
눈치를 보던 필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 참고로 나는 이틀 뒤에 필리핀을 떠날 거다.”
“예?”
“나한테 수배가 떨어졌다. 인터폴이 엮여서 덮는 건 무리야.”
“어……. 그럼 저도 따라가면 됩니까?”
그 순간 마테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왜. 내가 쫓기는 신세가 되니까 버리고 가고 싶나?”
“그럴 리가요.”
“가 봐.”
허리를 꾸벅 숙인 필립이 집무실을 떠나고, 마테오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흠…….”
말과 행동이 뭔가 수상했다.
자신이 알던 사람과 다른 느낌이었다.
‘설마 뒤통수를 칠 생각인가?’
필립이 그 정도의 강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습격을 당해 저런 부상을 입고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게 이상하다.
그리고 자꾸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그렇고, 여하튼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의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이런 의심만으로 처리하기엔 꽤 쓸 만한 놈이라 고민이 됐다.
‘일단 두고 봐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마테오가 책상 위의 수화기를 들어 한 번호를 눌렀다.
꾹.
그러자 비밀 회선으로 전화가 연결됐다.
-무슨 일이요?
“배편은 언제 준비되나?”
-거의 다 됐수다.
“조금만 서두르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왜 이렇게 재촉이요? 어련히 잘 구해 줄 텐데.
“말했잖나. 느낌이 좋지 않다고.”
전화 너머의 남자는 귀찮은 듯한 투로 대꾸했다.
-거, 알아서 한다니까. 오늘 밤 전까진 될 거요.
“좋아. 기다리지.”
탁.
마테오는 전화를 끊고 책상 위에 팔을 얹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물린 것 같은데.’
인터폴에서 마테오에 대한 적색수배를 내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한국에서 한 요청으로 말이다.
어지간하면 선생이 막았을 것이다. 마테오는 그의 큰 돈줄 중 하나이니까.
하지만 왜인지 빠른 속도로 마테오의 혐의가 입증되었다.
이 말은 즉, 선생도 쉽게 막지 못할 정도로 거물이 개입됐거나…….
‘선생이 날 버리려 하거나.’
미간을 찌푸리던 마테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자신이 빅 보스 밑에서 일하면서도 꼬박꼬박 몰래 자금을 보내 주는데, 고작 인터폴에서 수배를 내렸다고 관계를 청산할 리가 없다.
얼마나 리스크를 지고 그와 협력하는지 모르는 게 아닐 테니, 이렇게 쉽게 신의를 저버리진 않으리라.
그렇게 희망적인 관측을 하던 마테오에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마테오가 있는 집무실은 지하 벙커와 거의 유사하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나름 방음 처리가 되어 있기에 바깥의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이 정도라도 잡힌다는 건…….
‘총소리?’
미약하긴 하나, 분명 총성이었다.
마테오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설마 경찰 놈들이 벌써 여길 찾아낸 건가?’
아니, 그럴 순 없다.
공들여 정해 놓은 장소에 지은 별장인 만큼, 보안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관리했다.
마테오의 최측근들을 제외하면 이 장소를 알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 생각을 이어 나가던 마테오는 순간 조금 전 찾아온 최측근 중 하나가 떠올랐다.
“필립……!”
그가 찾아오고서 바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필립, 그놈이 이 장소를 밀고한 것이다.
이를 악문 마테오가 책상 서랍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단단히 잠긴 집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쿵쿵쿵!
-마테오! 문 열어 주십쇼!
필립의 목소리였다.
“이 배신자 자식! 내가 열어 줄까 보냐!”
열이 뻗친 마테오가 바깥을 향해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대신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삑.
뒤이어 강렬한 폭발음이 들림과 동시에, 마테오의 시야가 순간 새하얗게 물들었다.
콰아앙-!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