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저벅.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정숙자의 물음에 사발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반장님한테 한 소리 듣긴 하겠지만…… 어차피 잠깐 하는 일인데요, 뭐.”
두 사람은 합동기도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사발은 교리에 관해 알고 싶다고 했지만, 곧 합동기도원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정숙자는 집을 나왔다.
그러자 사발이 자기도 합동기도원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데려가도 되려나……?’
정숙자는 살짝 고민이 됐다.
합동기도원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따르는 신실한 이들이 모이는 곳.
신앙을 아직 가지지도 않은 이 남자가 기도원에 가도 되는 건지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은 항상 새 식구를 반겼다. 분명히 이 남자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리라.
결국 고개를 끄덕인 정숙자가 사발에게 물었다.
“저, 뭐라고 불러야 하죠?”
“아, 제 이름을 말씀 안 드렸네요. 저는 이승호라고 합니다.”
정숙자는 사발의 가명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그렇군요. 그럼 갈까요?”
“기대되네요. 기도원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 안에서 뭘 하는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 * *
“흠…….”
차 안에서 둘을 지켜보던 나는 숨을 내쉬며 시트에 등을 기댔다.
생각보다 쉽게 합동기도원까진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발이 입을 털긴 했지만, 정숙자의 경계심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덕이었다.
일단 들어가는 건 성공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잡을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나는 한쪽 이어폰으로 사발과 정숙자의 대화를 들으며 조수석에 놓인 노트북을 무릎 위에 얹었다.
딸깍.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해 내가 정리한 기사들을 열었다.
서길석과 관련이 있는 걸로 추정되는 마약 제조실. 그리고 현직 경찰이었던 서한결의 피습 사건 등 선생 놈과 관련 있는 일들이 보도된 걸 따로 정리해 놓은 것들이었다.
아내의 가족이 마약 사건에 엮인 탓에 민기형은 또 구설수에 휩싸였다.
첫째 아들 민지용은 마약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처가는 마약과 연루됐다. 그것도 마약 사용이나 유통이 아닌 제조다.
‘대사건이지.’
보통 한국에 유통되는 마약은 해외발이다.
러시아나 동남아, 중국 또는 남미의 카르텔. 이런 바다 너머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래서 정부도 항구에서 일어나는 밀수를 단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에서 마약을 직접 제조하는 공장이 발견됐다.
그것도 중독성과 부작용이 아주 강한 필로폰, 메스암페타민을 말이다.
그러니 만약 마약 공장과 서길석이 관계가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민기형의 커리어를 끝장날 가능성도 있다.
부릉-.
나는 차의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아마 민기형은 이번에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정계에는 놈의 편이 많다.
깨끗한 평소의 이미지와 민정수석이란 위치를 이용해 아군들을 만들어 놨겠지.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민기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 봤던 판교신도시 투자자 명단에 포함된 정치인들.
‘놈들은 민기형을 배신하지 못해.’
한배를 탄 사람들이고, 공리회의 회원들이기도 하다.
무너지지 않을 코어 층들이 단단하다는 말이다.
대신 놈을 압박할 수단도 많다.
광철이 아저씨, 서해결 검사, 송 과장을 이용해 민기형을 다방면에서 괴롭힌다.
그러다 보면 그놈도 반응을 보일 거다. 어쩌면 또 내 주변 사람들을 건드릴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저번과는 다를 거다.’
중요한 인원들한테는 싹 다 경호를 붙여서 서한결 팀장처럼 희생되는 일은 없게 만들어 놨다.
만약 억지로 암살 시도를 한다 해도, 그렇게 나오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뭐, 한 번 더 그 짓을 한다면…… 둘 다 지옥 끝까지 가는 거겠지만.
척.
마이크에 대고 사발에게 말을 남겼다.
“알아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30분마다 보고해.”
부릉-.
나는 목적지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우선, 회사 직원들을 더 구해야겠어.
* * *
“후…….”
전 강남서의 순경이자 주철수, 강유찬의 스파이.
그리고 현재는 SA시큐리티의 인턴으로 재취직한 황성빈이 담배 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뿜었다.
끼익.
그는 저 멀리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옆으로 지나가던 중년의 여자가 황성빈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저요?”
“네. 그쪽이요. 단지 내에서 금연인 거 몰라요?”
“아, 죄송합니다.”
여자는 다급하게 담배를 밟아 끄는 황성빈을 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기 주민은 맞으시죠?”
그 물음에 황성빈이 황급히 말했다.
“저, 여기 산 지 며칠 안 돼서 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조심 좀 해 줘요. 바닥에 버린 꽁초도 줍고.”
“아. 네.”
황성빈은 머쓱한 표정으로 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슬쩍 넣었다.
그걸 확인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에 사는 거예요?”
“맞습니다.”
“같은 동 주민이네요. 앞으로 오며가며 인사해요.”
“네. 들어가십쇼.”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황성빈이 허리를 푹 숙였다.
“…….”
황성빈은 잠시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사람이 바로 송태석 과장의 아내. 그가 상시 경호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이렇게 바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손에 묻은 담뱃재를 탁탁 털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혁의 지시로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동생과 같이 살 수 있게 편의를 많이 봐준 건 고맙지만, 아까 그 아줌마 바로 옆집에 산다고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맡은 일을 대충할 순 없는 노릇.
황성빈은 혹시 주변에 수상한 사람 있나 둘러보며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어.”
“또 보네요.”
들어가자마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여자를 마주쳤다.
아까 봤던 송태석의 아내였다. 그 옆에는 딸로 보이는 조그만 여자애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띵-.
황성빈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러자 송태석의 아내가 손짓했다.
“뭐 해요? 안 타고.”
“아, 먼저 올라가십쇼.”
“타요.”
“넵.”
그 말에 얌전히 둘을 따라 탔다.
띵-.
10층에 도착하고, 송태석의 아내와 딸이 내렸다.
황성빈이 따라 내리는 걸 본 그녀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저씨도 10층 살아요?”
“……예. 그리고 아저씨 아닙니다.”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해요.”
“알겠습니다.”
삑삑삑삑.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쩝.”
입맛을 다시며 지켜보던 황성빈은 그 옆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컥.
“나왔다.”
탁. 삐릭.
현관문이 닫히고.
지잉-.
앞 복도에 비치된 소화전 안에 설치된 카메라가 머리를 돌렸다.
* * *
찰팍.
마테오의 카지노과 함께 일하던 사채업자, 마크가 비가 온 탓에 진흙탕이 된 길을 달렸다.
“헉, 헉!”
그가 멘 백팩 안에는 금괴 여러 개와 달러 지폐들이 들어 있었다.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하던 그는 헉헉대며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잡아!”
“으아아!”
마크는 팔다리를 휘적대며 쫓아오는 부하들을 보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아니, 부하들이었던 남자들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개새끼들……!”
이게 다 그 두 연놈 탓이었다.
갑자기 웬 금고를 주더니, 이걸 들고 도망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한참 감금되어 있던 마크는 옳다구나 싶어 금고를 들고 다시 부하들에게로 돌아와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금고를 열어 본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훅! 후욱!”
묵직한 것들이 든 데다 빗물에 젖은 탓에 가방이 천근만근이었다.
게다가 아까 총알이 스쳐 지나간 팔에서도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흐엑! 헥!”
“X발! 잡아!”
어느새 턱밑까지 달려온 부하 중 한 놈이 마크의 가방끈에 손을 턱 걸었다.
“크악!”
그에 마크는 뒤로 넘어지고, 붙잡은 부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런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마크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달리려 했지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부하가 그대로 그를 덮쳐 버렸다.
퍼억!
“컥!”
“내놔!”
마크의 배 위에 올라탄 부하가 칼을 내리찍었다.
마크가 어금니를 악물며 그의 손목을 턱 붙잡아 칼날을 멈춰 세웠다.
“X바알! 더러운 배신자들……!”
“네가 먼저 혼자 챙겨서 도망가려고 했잖아! 이 개자식아!”
부하의 말에 마크가 눈을 희번덕 뜨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지랄하지 마! 너희가 먼저 뒤통수치려고 해서 도망간 거다!”
“개소리를……!”
마크는 몸을 튕기며 팔에 힘을 줘 칼을 빗나가게 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부하의 허벅지에 꽂았다.
푹!
“아아악-!”
“X발!”
칼을 뽑은 마크가 정신없이 발을 다시 놀렸다.
하지만 부하들은 이미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덮쳐!”
“쪽수는 우리가 많아!”
“으아아!”
마크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았다.
이 가방에 든 것들만 잘 챙겨도 해외에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
여기서 쓰러지는 건 너무 억울했다.
“흡!”
자세를 잡은 마크는 찔러 오는 칼을 피한 뒤, 왼손에 들고 있던 잭나이프로 부하의 옆구리를 쑤셨다.
푹! 푹! 푹!
“윽! 억!”
평소 수금할 때마다 데리고 다니던 녀석 중 하나다.
마크는 악귀 같은 얼굴로 자신을 포위한 부하들을 둘러봤다.
둘이 땅을 구르고 있었고, 서 있는 건 4명.
“죽어…… 아악!”
달려들던 남자의 팔뚝이 쩍 갈라졌다.
그리고 그의 목에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털썩.
한 명이 더 쓰러져 세 명이 남았다.
먼저 덤빈 두 사람이 순식간에 당하자 남은 부하들이 머뭇거렸다.
“왜. X발, 우르르 오면 금방 담글 수 있을 줄 알았냐?”
마크가 약해서 그 괴한에게 납치당한 게 아니다.
그도 십수 년을 길바닥에서 구른 베테랑이었지만, 고도로 훈련을 받은 괴한을 이길 순 없었기에 패배한 것이다.
마크는 피가 튄 얼굴로 부하였던 자들에게 칼을 겨누며 노려봤다.
악에 받쳐 한꺼번에 덤비라는 객기는 부리지 않았다. 그러다 진짜 죽는다.
하지만 부하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한 번에 덮쳐. 그럼 아무리 센 놈이어도 칼침 하나는 맞을 거다!”
“그, 그래!”
“셋에 덮친다. 자. 하나, 둘…….”
카운트를 기다리던 마크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먼저 땅을 박찼다.
“셋! 이 개새끼들아!”
.
.
.
필리핀 외곽의 한 산길에서 국제범죄자 마테오의 자금과 시신들이 발견되는 건, 이로부터 약 2주 후의 일이다.
* * *
두 사람이 으슥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오, 도착했군요.”
‘더럽게 머네.’
사발은 싱글싱글 웃으며 속으로 짜증을 뱉었다.
합동기도원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정숙자의 말동무를 하는 건 고역이었다.
그동안 이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이 믿는 아버지와 성자 등 교리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쏟아 냈다.
끼익-.
이상한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경비실 같은 곳에 앉아 있던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야고보 형제님. 안녕하세요.”
“예. 자매님.”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곤, 정숙자를 따라 들어오던 사발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아 그게…… 우연히 알게 된 분인데, 저희 교리에 관심이 있고 공부해 보고 싶다고 해서…….”
성큼.
야고보라 불린 대머리가 사발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190은 족히 넘을 듯한 덩치에 사발이 조용히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물끄러미 사발의 얼굴을 쳐다보던 야고보가 고갯짓으로 왼쪽 복도를 가리켰다.
“따라오십시오.”
사발은 [기도실]이라고 적힌 오른쪽 복도로 가는 정숙자를 보며 살짝 당황했다.
“저는 저쪽으로 안 가는 겁니까?”
“예.”
종종걸음으로 기도실을 향해 걸어가던 정숙자가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봐요. 이승호 씨.”
사발은 망연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당연히 정숙자와 함께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따가운 시선에 삐걱대는 목을 돌리자, 야고보가 험악한 인상으로 한 번 더 고개를 까딱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 말에 사발은 당장 숨겨 놓은 무전기 너머의 이주혁에게 묻고 싶었다.
‘이, 이거…… 괜찮은 거 맞겠지?’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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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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