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사발의 물음에도 야고보는 말없이 어디론가 그를 안내했다.
한참 걸어가던 그가 복도 한쪽의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여기로 들어가라고요?”
끄덕.
사발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야고보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하십시오.”
“예? 아니, 잠깐만…….”
쿵.
문이 닫혔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사발은 잠시 눈치를 보다 움직였다.
그의 손이 빠르게 책상 밑을 더듬었다.
그리고 벽과 바닥, 천장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 도청 장치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대강 확인한 사발은 재킷 안쪽에 달아 놓은 마이크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
-……왜? 무슨 일 있나?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저를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방에 넣어 놓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정숙자랑은 찢어졌고?
“예.”
-흠. 위험한 상황인가?
사발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아직까진 괜찮은 거 같은데요.”
-내가 준 건 가지고 있지?
그 말에 사발이 품 안에 고이 모셔 놓은 물건을 매만졌다.
“잘 가지고 있죠.”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야. 오는 사람 막진 않는 놈들이니까.
“믿겠습니다, 그럼.”
사발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무전을 종료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야고보가 아닌 다른 여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숙자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는데, 그녀와는 달리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윤 권사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이승호입니다.”
“예전에 몇 번 와 보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희 교리에 대해선 알고 계신가요?”
“아뇨.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 대답에, 여성이 가방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같이 공부해 볼까요? 야고보 형제님? 다과 좀 간단히 내 오세요.”
“알겠습니다.”
“…….”
쿵.
사발은 책상 위에 올려진 책의 두께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X팔…….’
.
.
.
그렇게 두 시간이 흐르고.
“아셨죠? 성자님이 고난과 시련을 당하시는 건 다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는 거.”
“예. 뭐…… 다 이해했습니다.”
사발은 피곤한 티를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간이 넘도록 입을 터는 데도 지치지 않다니, 엄청난 체력이었다.
그리고 하는 말도 가관이었다.
성경에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 메시아의 등장을 준비하던 요한이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이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성자라는 인간이 그 요한의 재림이란다.
요한의 사후 예수가 복음 전파를 시작한 것처럼, 성자라는 놈이 고초를 당하는 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메시아의 재림을 위해 예비된 길이다…… 라는 게 이 여자의 주장.
‘개소리지.’
애초에 그 사기꾼은 성자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던 놈이다.
그런데 보통 성자는 예수라고 불린다. 요한이라는 양반이 아니라.
차라리 성자 놈이 누구 아들이라고 하든가. 이건 뭐 순 믿는 척을 해 주기도 힘든 궤변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내색할 순 없었기에 사발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말씀을 들으니까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드륵-
윤 권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 같으면 새 식구분들은 따로 교육을 진행하지만…… 마귀들의 훼방 탓에 아쉽게도 큰 장소에 모일 수가 없어요.”
“그런가요.”
“그래도 곧 아버지께서 내려오셔서 우리를 이 고통에서 꺼내 주실 거랍니다. 같이 가실까요?”
“네.”
덜컥.
문을 열고 나간 윤 권사는 정숙자가 향했던 오른쪽 복도로 사발을 안내했다.
사발은 슬슬 뻐근한 목을 문지르며 그녀에게 물었다.
“저, 근데 어디로 가는 건가요?”
그 말에 윤 권사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승호 씨가 아닌 이승호 형제님이 되셔야지요.”
“네?”
씨익.
“세례부터 받도록 해요.”
사발은, 슬슬 이 작전에 투입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 * *
“그러니까 빨리 막으라고 하잖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X발!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애?!”
민정수석 민기형의 장인이자, 인천에서 발견된 필로폰 제조실의 주인.
서길석이 핸드폰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사장, 조 편집장한테 싹 다 연락 돌려! 지금까지 받아 처먹은 값 하라고! 해결 못 하면 너부터 모가지 날아갈 줄 알아!”
-예, 예! 알겠습니다!
탁.
핸드폰을 접은 서길석이 분노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X발-!”
콰직!
서길석의 손에서 날아간 핸드폰이 부품을 쏟아 내며 박살 났다.
“서길석이. 아직 성질 안 죽었네?”
그걸 지켜보던 휠체어 위의 노인이 피식 웃었다.
“후……. 이거, 내가 못난 꼴을 보여 드렸구만.”
한숨을 내쉰 서길석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몇십 년 만에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 곽 사장님.”
그 말에 주철수의 전 보스이자, 지금은 선생을 치기 위해 이주혁과 한배를 탄 곽환성이 담배를 꺼내 물며 대꾸했다.
“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우리가 하하 호호, 호형호제하는 사이도 아니고. 용건도 없이 얼굴 마주할 사이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요?”
“그래? 나름 오래된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적 없으니까, 아가리 그만 놀리시고…….”
쾅!
“할 말 없으면 꺼져. 뒈지기 싫으면.”
곽환성은 책상을 내리친 서길석을 보며 여유롭게 담배를 음미했다.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은 과거부터 악연으로 얽힌 관계였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폭들의 세력이 쇠락하기 전까지 서울 주먹계의 거물이었던 곽환성.
잘나가던 그와는 달리 서길석은 작은 구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사채업자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들을 꼬드겨 이자를 뜯어먹는 건 꽤 짭짤했다.
다만 그에게 불행이었던 일은, 곽환성의 본거지 또한 서길석과 같은 동네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이, 곽환성이. 병신 돼서 은퇴한 주제에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여길 찾아온 거냐?”
그에게 부러진 팔이 아직도 비만 오면 욱신거렸다.
“좋아. 용건을 말하지. 대신 재떨이 좀 갖다 주겠나?”
“뭐?”
“허허.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귀도 가물가물한가 보구만.”
“안 줄 거면 말고.”
눈썹을 까딱인 곽환성이 담뱃재를 테이블에 그냥 털어 버렸다.
툭.
그걸 본 서길석의 눈이 돌아갔다.
“이런 개 씨부랄 새…….”
“민기형이.”
“……!”
곽환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멱살을 잡으려던 서길석이 멈칫했다.
“많이 곤란하지?”
“뭔 개소리냐? 설마…… 네 짓인가?”
피식.
“내 짓은 무슨. 이런 몸으로 그 건장한 놈들을 전부 두들겨 팼다고?”
휠체어를 두들기는 곽환성을 보며 서길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X발. 재지 말고 말하지 그래.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민정수석을 장인으로 둔 뒤로 좀 사람처럼 사나 했는데, 역시 사람 본성은 안 바뀐단 말이야.”
“뭐?”
“이대로 있으면 어떻게 될지 대충은 알겠지?”
서길석은 이마를 턱 짚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직 그가 마약 제조실의 주인이라고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다.
유통을 맡기던 암시장의 그놈이 갑자기 자수를 하는 바람에 상황이 꼬인 거지, 원래는 이렇게까지 커질 일도 아니었다.
그냥 공장 관리자한테 돈 좀 쥐여 주면 민정수석의 파워로 어떻게든 덮을 수 있는 건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관리자 그놈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과거에 동남아에서 만들던 것들이라 해서 맡겼던 건데, 이렇게 잠적을 해 버리니 방도가 없었다.
‘이러다 진짜 확실한 물증이라도 발견되면…….’
조사를 받으며 먹는 밥 한 끼, 물 한 잔 전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놈 입장에선 서길석이 유죄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가기보단, 조사 중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나리오가 더 나을 테니까.
설령 감방에 들어간다 해도 그게 더 위험하다.
거기엔 서길석을 지켜 줄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서길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곽환성이 한마디를 툭 뱉었다.
“전향해라.”
“……뭐라고?”
“경찰이 밝히진 않았지만, 자네가 그곳의 주인이라는 게 곧 밝혀질 거야.”
“그게 무슨…….”
뭐라 말하려던 서길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공장의 관리자는 펜던트와 마약을 납품하는 장소, 유통 담당자는 어디로 약을 뿌리는지에 관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경찰이 들이닥쳤다면 그걸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 말은 즉.
‘설마, 중간에 누가 증거를 빼돌렸단 말인가?’
의혹을 담은 시선을 보내자, 곽환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난 아니야.”
“그래도 누군진 알고 있겠지. 대체 어떤 새끼야?”
“알면 달라질 거라도 있나?”
곽환성이 휠체어 뒤로 기대며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순간 서길석은 밀려드는 불안감에 눈가를 떨었다.
“아까 내가 한 제안은 아직 유효해.”
“……전향 말인가?”
“그래. 한 가지만 알려 주지.”
연기를 내뿜던 곽환성이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너에 대한 증거를 가진 녀석은 너한테 회유당하지도, 협박당하지도 않을 거다. 오히려 하면 모를까.”
“……뭐?”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끼익.
곽환성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선생. 그놈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물증을 들고 자수해.”
“…….”
“그게 유일하게 살 방법이야. 자네의 신변은 확실하게 보호해 주겠네.”
서길석의 표정이 굳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길석의 혐의가 드러나는 건 조만간이다.
그동안은 놈에게 도움을 주며 공생해 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해가 되는 존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자수할 순 없었다.
실수는 만회할 기회가 있어도, 뒤통수를 쳐 버리면 정말 끝이다.
“용건은 그게 다인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겠네. 서길석 사장.”
“선택을 잘못한 건 당신이지. 곽 사장님.”
벌떡.
서길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나가쇼. 앞으로 얼굴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군.”
“후회하게 될 걸세. 그것도 바로 말이야.”
곽환성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휠체어를 타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지잉-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서길석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처리해야 하나?’
곽환성을 저렇게 보냈다간 괜히 말이 새어나갈 수도 있다.
자신과 같이 기자들과도 연이 꽤 있으니까.
하지만 이 백주대낮에 담가 버리는 건 무리가 있었다.
여긴 어디까지나 서길석의 사무실.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성공한 패션 기업의 회장이었기에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순 없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그때.
콰앙!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뭐, 뭐야!”
“서길석 사장님.”
웬 젊고 잘생긴 놈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턱.
얼떨결에 맞잡은 손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아, 아! 아악! 이 새끼가……!”
갑자기 나타난 괴한, 이주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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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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