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0
219화
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민지훈이 사람 좋게 웃으며 설명했다.
“제 동생한테 들었습니다. 수진이 기억하시죠?”
“아.”
어디서 내 뒷조사를 했나 싶었는데 그쪽이었나.
하지만 멀쩡한 놈처럼 보이더라도 민기형의 아들이니만큼 경계를 풀 순 없었다.
아버지가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혼자 한정식집에 온 것부터가 뭔가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혼자 오신 거면 혹시 같이 자리해도 될까요?”
얼핏 보면 조금 과한 제안이긴 해도, 나로선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학교, 회사를 반복하느라 이 녀석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는데, 자기 발로 찾아와 대화할 상황을 만들어 주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지.
“뭐, 저도 마침 적적하던 참입니다.”
“하하. 제가 원래 이런 짓은 잘 안 하는데, 워낙 까칠하던 수진이 마음에 든 남자라니 관심이 가서 말입니다.”
턱.
자리를 옮긴 민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여긴 자주 오는 편이세요? 저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오는데.”
“네. 꽤 자주 옵니다. 언젠가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글쎄요. 이렇게 잘생기신 분이면 제 기억에 남아 있을 텐데.”
“너무 금칠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사실인데요, 뭐.”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에게 직원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손님. 혹시 테이블 옮기실 건가요?”
“네. 음식은 이쪽으로 부탁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주혁 씨. 음식은 굳이 따로 시키지 마시고 같이 드시죠. 코스로 시켜서요.”
“혼자 식사하시는데 코스를요?”
풍원한정식은 아무래도 단체 손님이 많은 탓인지, 코스 요리는 최소 2인부터 시작이었다.
그래서 혼자 오면 보통 단품 메뉴를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가 다양한 맛을 즐기는 걸 좋아해서요. 여기가 특히 음식이 맛있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죠.”
“원래 매주 가족들과 찾았는데, 아쉽게도 이번 주는 다들 바쁜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니 뭐, 혼자서라도 와야죠.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즐거움이니까요.”
“그렇군요.”
우재성과 같이 미식을 즐기는 편인지, 민지훈은 음식 얘기를 하며 들뜬 것처럼 보였다.
“아, 제가 중요한 걸 하나 놓치고 있었군요.”
“중요한 게 뭐죠?”
“수진이랑은 현재 정확히 무슨 관계인 거예요?”
“아…….”
“조금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오빠로서 그 정도는 알아도 되지 않나요? 추궁하는 건 아니고, 순전히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둘이 좋게 만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마음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 건지요.”
뭐라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민수진과의 마지막이 썩 좋지 않기도 했을뿐더러, 지금까지 오는 문자도 계속 무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걸 솔직히 말하자니 좀 그렇고, 그렇다 해서 거짓말을 하자니 민수진이 뭐라고 말해 놨을지 예상이 안 간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약혼할 사이니 뭐니 이런 헛소리를 하진 않았나 본데, 그건 다행이네.
“서로 알아 가던 사이는 맞긴 한데, 성격 차이로 잘 되진 않았습니다.”
“음. 수진이가 한 성격 하긴 하죠.”
민지훈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진 마십쇼.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라서 좀 삐뚤어진 거니까요. 유치원 다니던 시절만 하더라도 얼마나 귀여웠는지…… 참.”
“하하……. 그렇습니까?”
그렇게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석사 과정이랑 사업을 병행하신다고.”
“수진이가 그러던가요?”
“네.”
내 말에 민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화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어머니 회사 화장품 개발에 도움도 좀 드렸죠.”
“화학이라.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네요. 전 과학은 젬병이라.”
“하하. 그런 분들 많죠. 그리고 사업도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운 좋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 정도는 해야 맞는 거죠. 전 최소한 물려주신 걸 까먹고 싶진 않거든요.”
하긴 여자들이랑 술 먹고 약 빨며 놀다가 감방에 처박힌 민지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만하지.
“그럼 이주혁 씨는 어떤 일 하시는 겁니까? 척 봐도 몸이 보통이 아니신 거 같은데요.”
“아, 저는 경호업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 경호업체요? 나중에 한 번 이용해 봐도 될까요?”
“예. 뭐, 언제든 연락주세요.”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건넸다.
나는 우리 회사의 명함을 집어넣은 민지훈을 보며 물었다.
“민지훈 씨도 꽤 열심히 운동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냥 취미 수준이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서요.”
“그렇군요.”
적당히 대꾸하며 밥을 먹다 보니, 민지훈이 뉴스에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아까 그 사이비 사건 주동자가 방금 병원에서 사망했다네요.”
그 말에 TV를 확인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들것에 실려 가던 여자가 결국 죽은 모양이다.
대체 어떤 놈이 시켜서 저런 짓을 저지른 건지 궁금했지만, 저렇게 돼 버린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나마 위안인 건 어쨌든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일을 막아 냈다는 거겠지.
씁쓸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자 민지훈이 나를 향해 물었다.
“요새 이런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네요. 안 그런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네 아빠 때문이다. 라고 하긴 좀 그래서 돌려 말했다.
“나쁜 놈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 악명 높은 강남파가 무너지고 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봅니다.”
“그 뒤에 더 개새끼들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내 과격한 언사에 민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뒤라뇨?”
“강남파도 높으신 분의 개의 불과했으니까요.”
난 슬슬 정보를 풀면서 민지훈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래요? 그런 쪽으로 잘 아시나 봅니다.”
“잘 알죠. 저 사이비도 그놈의 산하에 있는 조직이니까요.”
민지훈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산하요? 설마…….”
“강남파도, 저 종교도 그놈이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민지훈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런 건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경찰 내부에서나 공유될 법한 정보 같은데요.”
미심쩍은 듯한 질문에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조사한 사실입니다. 제가 그놈한테 관심이 아주 많거든요.”
“왜죠?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냥, 그런 짓을 저지르면서도 잘 먹고 잘살고 있더라고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음……. 그래도 일반인인 이주혁 씨가 따로 움직이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조폭도 부렸던 사람이면 더더욱이요.”
은근히 반응을 떠보는 거였는데, 민지훈은 그게 자기 아버지라곤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민지훈도 공범인데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그냥 경찰에 알리는 게 나을 텐데요.”
“경찰도 믿을 수가 있어야죠.”
“어휴. 이 얘기는 그만합시다. 밥 먹다 체하겠어요. 전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인생의 모토거든요.”
민지훈이 손사래를 치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흠. 전혀 동요가 없네.’
내가 아는 정보를 조금씩 흘리면서까지 반응을 보려 했는데, 민지훈은 선생이나 민기형의 정체에 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감정이 얼굴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타입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하지만 진짜 무고한 놈이라기엔 뭔가 마음에 걸렸다.
겉으로만 보면 사교성 좋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어딘가 꺼림칙함이 느껴진단 말이지.
그 집 식구들은 하나 같이 하자가 있었는데 이놈만 멀쩡하다고?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어.’
흥신소를 통해서는 민지훈이 살아온 행적을 추적하는 것에 그쳤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손님이 많아 유나 씨한테 인사를 못 드리긴 했는데, 굳이 민지훈에게 친분을 광고해서 좋을 건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닙니다. 먼저 아는 척했으니 제가 대접해 드려야죠.”
민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슥 올렸다.
그의 환한 미소와는 달리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 되면 여기서 식사나 하시죠.”
“좋습니다.”
“아, 그리고…….”
몸을 돌리려던 민지훈이 입꼬리를 올렸다.
“주혁 씨가 말한 사람. 꼭 잡길 바랍니다.”
민지훈은 그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저놈은 모르고 있겠지. 선생을 잡는 그날이 자기 가족이 파탄 나는 날이라는 걸.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해커 고세운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또 뭐야? 재촉인가?
“그건 아니고. 조직 정리는 대충 끝났나?”
-어차피 익명 집단이라 정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오늘 저녁에 신입 환영식이나 할까 해서. 우리 회사 어딘지 알지? 고상미 씨랑 거기로 잠깐 넘어와.”
-난 신분 노출하는 걸 꺼리는 편인데.
“그럼 고상미 씨한테 말씀드리지, 뭐. 알았다.”
내 말에 고세운이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꺼린다는 거지, 안 된다고는 안 했잖아. 간다고. 가.
“그럼 오는 길에 뭐 하나만 부탁하자.”
-어째 이게 본론인 것 같은데. 뭐야?
“민정수석 둘째 아들, 민지훈. 이놈 뒷조사 좀 해 줘. 그놈 회사 내부 정보랑, 다니는 대학원 지도교수까지.”
-그것까지 다 조사해 오라고? 오늘 저녁에?
“할 수 있잖아?”
나중엔 국정원 보안까지 뚫어 낸 놈인데, 그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급한 건 아닌데 오늘 해 주면 좋고.”
-하……. 일단 알았다. 누나한텐 내가 전달하면 되나?
“어. 부탁한다.”
탁.
전화를 끊고 내 차로 향하며 미소를 지었다.
민지훈. 너는 과연 선량한 사람일까, 아니면 양의 탈을 쓴 늑대일까.
부릉-.
나는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슬슬 정신 차렸을 사발이나 데리고 회사로 복귀해야겠다.
.
.
.
사발이 실려 간 병원 앞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에는 피해자와 관계자들을 취재하고 싶어 몰려든 기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십 명이 집단자살을 시도했다고 알려졌으니, 기자들 입장에선 엄청난 특종감일 거다.
부웅.
그대로 입구를 지나쳐 옆 건물로 향했다.
내가 차를 세우자, 그 안에서 환자복이 아닌 원래 옷을 입은 사발이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나는 뻔뻔한 표정의 녀석을 보며 혀를 찼다.
“참 나. 대표가 직접 데리러 오기까지 해야 하나?”
사발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치료받지 않고 미리 병원을 빠져나왔다.
가짜 신분을 사용하는 탓에 병원에 끝까지 남아서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신분이 자세히 밝혀지기 전에 도망간 거다.
사발 추현국 씨는 잡히면 징역살이니까.
“빨리 갑시다. 대표님.”
“뉴스에 얼굴 나온 거 아냐? 와이프가 보면 기절하시겠는데.”
“에헤이. 절대 비밀입니다. 아시죠?”
“참나. 알겠어. 타기나 해.”
탁.
나는 사발을 차에 태우고 회사를 향해 달렸다.
가서 오랜만에 신입들 환영회나 좀 해 볼까.
일단 새로 들어온 녀석들 보직부터 정해 줘야겠다.
고상미 남매부터, 필리핀에서 넘어온 춘식이까지.
다 쓸 만한 녀석들이니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대신 처음부터 기강을 좀 잡아야겠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씨익.
어차피 조만간 미친 듯이 구르게 될 테니까.
나한테 합류한 이상, 본전 뽑을 때까지는 쪽쪽 빨아먹어 주마.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