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1
220화
“에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발이 뒤로 몸을 눕히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주마등인가 싶던데요.”
“살았잖아. 그럼 됐지.”
“진짜 죽기 일보 직전이었잖아요. 저 손주는 보고 죽을 겁니다. 아셨죠? 이제 그런 일에 투입하지 마세요. 절대 안 하렵니다.”
피식.
“그게 될까?”
“예?”
“너도 선생의 표적 중 하나야. 내 회사에 들어온 이상, 그 새끼한테 찍힌 거나 마찬가지라고.”
“염병. 그럼 적당할 때 발 빼지도 못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끝까지 같이 가자고. 그놈 박살 낼 때까지만. 솔직히 너도 알잖아? 내 옆에 있어야 너랑 네 와이프 둘 다 지켜 줄 수 있는 거.”
내 말에 사발이 체념한 듯 고개를 푹 떨궜다.
“알죠. 잘 아니까 아직 붙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 튀면 와이프한테 다 불어 버리겠다고 한 게 누군데요.”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연봉도 많이 챙겨 주는데.”
“쩝.”
“그러니까 몸조심해라.”
“웬일로 대표님이 제 걱정을 하네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해야지. 내 소중한 인력이 약 먹고 골로 갈 뻔했는데.”
“감동인데요?”
“그 새끼 잡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든 다 데려가야지 않겠어?”
지금부턴 정말 한 명도 잃지 않을 것이다.
성자나 이런 놈을 지킬 바엔, 내 사람들을 지키는 데 집중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그때, 작게 틀어 뒀던 라디오에서 한 가지 소식이 흘러나왔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민기형 민정수석의 장인, 서길석 씨의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의 증인으로 나선 박 씨가 사망했습니다. 박 씨는 스스로 서길석 씨의 마약 제조실에서 만들어진 필로폰을 판매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 측은 타살의 가능성이 없는지 조사 중이며, 결과가 밝혀지는 대로…….
박 씨라. 아마 지하상가에 찾아갔을 때 찾아갔던 그 가게 주인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신변 보호를 해 준다고 말은 했지만, 아마 경찰 쪽에서 잠깐 방심한 모양이다.
어차피 서길석이 유죄 판결을 받는 건 거의 확정된 상황이긴 해도, 나름 서울 바닥에 풀린 필로폰을 회수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아마 입막음을 위해 제거당한 거겠지.
경찰이라고 다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경찰서 내로 누군가 독극물을 반입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입맛이 쓰네.’
미련 가지지 않고 우리 편을 지키는 걸 우선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저런 증인 하나하나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직원들이 수십, 수백 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끼익-.
사발과 나는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넌 못 들었지? 오늘 신입들 온다.”
“신입이요? 누구…… 아, 설마 그 건장한 여성분?”
“정답.”
“척 봐도 보통이 아니시던데, 좋은 소식인 거죠?”
“뭐…… 따지고 보면 좋은 소식이긴 하지. 인력도 보충하고, 노총각도 보내 버리고.”
“노총각이요?”
“아니다. 기억에서 지워.”
손사래를 치며 입구로 들어갔다.
부장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저벅.
나는 텅 빈 로비의 데스크를 보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원래는 강예원을 포함해 직원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대신 CCTV를 뒀다.
만약 여기 선생 놈이 사람을 끌고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데스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그걸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된다.
일반인인 그들로선 칼이나 무기를 든 놈들에게 맞설 수가 없기 때문에 굳이 직원을 두지 않는 거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강예원에게는 당연히 월급을 똑같이 줄 거다.
띵-.
강예원 하니까 생각난 건데, 안 그래도 그쪽에 경호로 붙였던 백기준이 보고한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다.
‘음침한 놈 하나가 근처를 맴돈다고 했었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상한 빨간색 츄리닝을 입은 채로 강예원의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다고 들었다.
예전에 유나 씨를 따라다니던 놈처럼 단순 스토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백기준이 근처에 있는 이상 해코지를 당할 일은 없을 거다.
마음 같아선 그냥 수줍음이 많은 남자가 강예원에게 반한 거였으면 좋겠지만, 시기상 그럴 것 같진 않고.
“회의실에서 보는 겁니까?”
“어.”
고민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회의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측 인원이 보였다.
우재성, 부장님, 그리고 후배들 중 대표로 부른 덩치까지.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새로 영입한 고세운과 고상미, 춘식이가 자리했다.
나머지 우리 직원들이나 저쪽 부하들은 대련실에서 알아서 놀게 내버려 뒀다. 몸 쓰는 애들은 그걸로 자기소개하는 법이니까.
대화를 통해 뭔가를 해결하는 건 우리 수뇌부끼리 하면 된다.
“오셨습니까.”
우재성의 말에 나는 상석으로 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발도 덩치와 부장님 사이에 앉는 걸 보고 신입사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서로 얘기는 좀 나누고 계셨습니까?”
“예.”
우재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대표님.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어떤 거 말입니까?”
“이분 말입니다.”
녀석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고세운이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우재성은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저분도 외국에서 살다 오셨습니까?”
“그건 왜요?”
“다른 게 아니고, 초면에 반말부터 하시길래 여쭤보는 겁니다.”
“음.”
그런 거였나.
하긴, 저 녀석이 얌전히 누구 밑에 들어가 일할 사람은 아니긴 하지.
우재성도 그걸 그냥 두고 볼 만큼 호인은 아니고.
이런 일이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초면부터 이럴 줄은 몰랐네.
“자자. 두 사람 다 너무 열 내지 마시고. 고세운. 그래도 예의는 지키자고.”
“미국에서 살다 왔다면서. 그럼 반말을 하든 존대를 하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고세운의 말에 우재성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항상 닫혀 있던 눈이 거의 열리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옆에 있던 고상미가 고세운의 뒤통수를 후렸다.
딱!
“아악!”
“새끼가. 거, 미안하다. 동생이 어릴 때부터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내다 보니 싸가지가 없네.”
“그렇습니까?”
“아, 나도 반말하면 안 되나? 그래도 내가 나이는 위인 것 같은데.”
“고상미 씨는 편하게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우재성은 마음이 조금 편해진 듯 표정이 풀린 모습이었다.
고세운은 씩 웃는 고상미는 몰래 노려봤다.
그래도 누나라 통제가 돼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결속력을 위해 MT라도 다녀와야 할 뻔했다.
나는 대충 상황이 정리된 걸 보고 입을 열었다.
“일단 서로 얼굴은 익혀 놓으시라고 한 자리에 부른 겁니다.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작전 계획을 같이 세우게 될 테니까요.”
“걔네들은 부대끼면서 알아서 친해지겠지.”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차피 오늘 저녁 식사도 같이할 거니까요. 우리가 미리 모인 건, 고세운이 가져온 정보를 같이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보 말입니까?”
내가 손짓하자, 고세운이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주혁이 예전에 따로 부탁한 게 있었는데, 이번에 대충 정보가 추려져서 가져왔다. 아니, 가져왔습니다.”
고세운에게 요청한 건 민지훈의 정보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일본에 선생 놈의 손이 닿지 않는 이유.
과거 성자와 정 목사의 대화를 도청했을 때 이런 내용이 들렸다.
일본으로 도망가자. 거긴 선생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니까.
그런데 그 이유는 듣지 못했기에, 마침 정보 수집 분야에선 최고봉인 고세운에게 거기 관련된 정보를 한번 찾아달라고 부탁한 거다.
고세운은 가지고 있던 노트북을 펼쳐 화면을 띄웠다.
“이건?”
납작한 마름모꼴, 태양 같은 선 안에 붓글씨로 적힌 주(住), 그리고 벼와 넥타이 같은 게 그려진 복잡한 문양까지.
어떤 조직의 문장처럼 보이는 세 개의 문양은 어디선가 본 것처럼 눈에 익었다.
고세운은 그 세 개의 문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각자 일본의 3대 야쿠자 조직이라 불리는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의 다이몬(代紋)입니다. 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죠.”
“야쿠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
내 물음에 고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폭력 조직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 그 때문에 지금의 야쿠자는 어떻게 보면 양지로 끌려 나온 깡패들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제약이 가해진다. 한국처럼 정체를 덮어 놓고 사업을 하다 걸리면 사기죄로 감옥행이다. 은퇴나 탈퇴를 하더라도.”
“바깥의 깡패 새끼들이 들으면 화들짝 놀라겠군.”
“아마 그게 선생이 일본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직을 결성해도 지정폭력단에 등록되면 국가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니까. 그럼 돈벌이도 제대로 못 할 텐데, 그놈 입장에선 사람을 모아 봤자 손해인 거지.”
“제법 가능성이 있는 말이네.”
암중에서 음흉한 계략을 꾸미는 놈으로선 국가에 감시받는 조직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들인 노력에 비해 얻을 게 적단 말이지.
“그리고 종교 쪽으로도 마찬가지인 게, 이미 국민의 거의 전부가 토속 신앙이나 불교를 믿는 상황에서 성부니 성자니 들이밀어 봤자 별 재미를 못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가 내 의견이다.”
“좋은 의견이야.”
컴퓨터만 잘 다루는 줄 알았더니, 이런 추론도 꽤 제법인데?
고세운은 여기서 끝이 아닌지 다른 파일을 열었다.
화면에 띄워진 사진 속에는 날카롭게 생긴 중년의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구야?”
“아까 봤던 스미요시카이의 부두목. 스가와라 켄타라는 놈이다.”
“뭐 하는 놈인데?”
“대략 30년 전쯤, 민기형은 일본에 있었다.”
“아, 그랬지.”
예전에 민기형을 조사했을 때 본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학위를 땄다고.
“그때 이 스가와라라는 놈이랑 민기형이 알고 지냈다는 정보가 있어.”
“둘이 말이냐?”
야쿠자 조직원과도 친분이 있다라.
내가 묘한 표정을 짓자 고세운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한 걸 하나 알아냈지.”
“뭔데?”
탁. 탁.
고세운은 화면에 웬 차트 같은 걸 띄웠다.
“바로 그 야쿠자가 한국으로 입국한 기록이다.”
“한국에 있다고?”
“어. 작년 5월 16일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왔지. 그래서 행적을 찾아보니까, 최근까지 쭉 인천 유흥가에서 돌아다니는 것 같더라고.”
“뭐 하러 온 거야? 조직 정리하러 왔나?”
“그것까진 나도 아직 몰라. 조사한 건 여기까지다.”
“수고했어. 기대 이상이네.”
급하게 요청한 거라 이 정도까지 해 줄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았다.
그나저나 인천이라. 야쿠자 부두목씩이나 되는 놈이 왜 거기서 놀고 있는 거지?
“흠…….”
아무래도 직접 한번 가 봐야겠어.
얼마 전에 갔을 땐 별 이상한 점을 못 느꼈는데, 이번에는 그 스가와라라는 놈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겠다.
나는 직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스기와라라는 놈 얼굴 보러 가려는데, 같이 가실 분?”
그러자 세 사람이 번쩍 손을 들었다.
“이번엔 꼭 델꼬 가 주셔야지예.”
항상 끼고 싶어 하는 덩치와 부장님. 그리고 고상미였다.
고상미가 손을 든 걸 본 부장님이 조용히 들었던 손을 내렸다.
“오케이. 그럼 세 사람이 저랑 같이 가는 겁니다.”
“잠깐. 난 취소.”
“그런 게 어딨어요. 부장님이 솔선수범하셔야지. 내일 바로 출발합니다. 준비해 두세요.”
“이런…….”
부장님이 뭐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끄덕.
내 시선에 고상미가 씩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애잔한 표정으로 부장님을 바라봤다.
‘화이팅.’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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