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9
228화
이윤종 교수의 위치를 수소문해 보니, 오늘 열리는 학회에 참석한 모양이었다.
끼익-
나는 바로 학회가 진행되는 장소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보니 슬슬 학회가 끝나갈 시간이었다.
혹시 몰라 참석자 명단을 다 따 놓긴 했다. 나중에 조사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건물 인근에 차를 대고 이윤종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대기하자 건물 안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탁.
문을 닫고 내리며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저놈이다.’
저 멀리 이윤종 교수의 얼굴이 보였다.
이윤종은 네모난 뿔테 안경을 쓴 꼬장꼬장한 인상의 중년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윤종 박사님?”
“음?”
“처음 뵙겠습니다.”
척.
이윤종은 내가 건넨 손을 힐끗 쳐다보기만 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씁. 이거, 예상은 했지만 첫인상부터 상당히 아니꼬운 놈이네.
나는 머쓱하게 손을 거두며 말했다.
“사업 몇 가지 하고 있는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그런 분이 어쩐 일로.”
내 자기소개를 들은 이윤종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사업하는 놈이 갑자기 왜 아는 척을 하나 싶겠지.
나는 적당히 녀석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로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박사님 논문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인류를 질병의 위험에서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말이 참 와닿더군요.”
“그렇습니까?”
이윤종은 내 뻔한 아부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경각심이 부족합니다. 언젠가 질병이 세상을 뒤덮었을 때의 대비가 되어있지 않죠. 지진과 화산 폭발은 미리 준비해도 바이러스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제가 누누이 말했듯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신약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윤종은 원대한 포부를 가진 인물이었다.
만병통치약까진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바이러스의 억제가 가능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선생 놈 옆에 붙어 연구를 진행하는 거겠지. 그게 실현할 수 있냐는 별개로 말이야.
나는 주제만 던져 줬는데도 신나게 떠드는 이윤종에게 물었다.
“박사님. 그럼 박사님은 머지않아 전 세계로 퍼질, 그런 질병이 등장할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이윤종의 분위기가 살짝 수그러들었다.
“확신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질병의 등장은 예측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박사님은 어떤 근거로 질병이 발현할 거라는 걸 확신하시는 거죠?”
내 물음에 이윤종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여기서 대답하기엔 조금 난감한 주제군요.”
적당히 얼버무리는 이윤종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 놈한테 미리 들은 건가?’
선생의 목표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그 계획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윤종에게는 대략의 미래 정보를 알려 줬을 가능성이 크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하신 질병 관련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을 내달라는 말에 이윤종이 시계를 슬쩍 보며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일정이 있어서요.”
“아, 그럼 시간 되실 때 이쪽으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박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슥.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자, 그걸 받아든 이윤종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SA?”
“예. 저희 업체 이름입니다.”
“크흠. 그럼 저는 이만.”
이윤종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
나는 그 뒷모습을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내가 추측하는 선생 놈의 계획은 이렇다.
몇 년 후 발생하는 신종플루도 그렇고, 2019년에는 중국발 바이러스도 크게 터진다.
선생은 이걸 대비해 미리 신약과 백신을 개발해 떼돈을 벌어들일 생각인 거다.
저 박사가 어떤 역할인지는 몰라도, 민지훈이 접근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란 말이지.
턱.
이윤종이 자신의 차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도 내 차에 올랐다.
그리고 해커 고세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내가 말한 건 확인해 봤어?”
-어. 네가 말한 이름의 미국 제약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걸 조사하라고 시킨 거야?
“?!”
타미플루는 1996년에 미국에서 개발됐다.
선생이 시장을 독점하려고 해도 지금 시점에선 이미 출시된 제품이라는 말이다.
그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는데, 충격적이게도 타미플루라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는 버젓이 있어야 할 제약회사도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흔적도 찾지 못했다.
회사의 창립자를 제거한 건지, 아니면 회사가 만들어지는 것만 막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선생 놈은 이를 이용해 돈을 쓸어 담을 생각인 거다.
‘무조건 막아야 해.’
그대로 두게 되면 선생은 미국의 제약회사를 인수한 뒤 구축해 놓은 인프라를 이용해 돈방석에 앉겠지.
심지어 질병의 등장 시기를 알고 치료제까지 가지고 있다?
굳이 뒤 세계에서 암약하지 않더라도 어마어마한 파워를 얻게 된다.
“흠.”
그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 계획을 저지해야 할지 모르겠네.
콱.
나는 일단 차를 몰고 이윤종의 뒤를 밟았다.
내 이름을 듣고 뭔가 흠칫하던데, 민지훈에게 뭔가 언질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이윤종이 나와 마주쳤다는 사실을 어디 가서 불어 버릴 수도 있으니, 저놈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자주 가는 장소에서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으니까.
부웅-
그렇게 이윤종의 차를 따라가니 얼마 가지 않아 웬 높은 빌딩이 나타났다.
빌딩 건너편에 조용히 차를 세우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
미간을 좁히며 더럽게 높은 빌딩의 꼭대기를 빤히 올려다봤다.
과연 저기에 누가 있을까.
무턱대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저 안에 정예 병력 수십 명이 모여있을 수도 있다. 괜히 혼자 들어갔다가 피 보는 수가 있단 말이지.
쳐들어갈 거면 괴물 2인방과 팀원들까지 대동해야 한다.
오늘은 이윤종이 향하는 장소를 확인한 걸로 만족한다.
‘우재성이나 고세운에게 부탁해 놔야겠어.’
저 빌딩이 뭐 하는 곳인지부터 조사해 보자고.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로비만 봐도 보안 검색대까지 놓여 있다.
방문자들을 철저하게 확인한단 소리다.
게다가 민지훈이 나한테 접근까지 했으니 내 얼굴과 정보는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위장을 하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저 건물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 건지는 몰라도, 규모를 보니 꽤 중요하게 쓰이는 장소 같은데.
끼익.
나는 시트 뒤로 몸을 기대며 어렴풋이 보이는 꼭대기 층의 창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 * *
이윤종은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저벅.
이윤종은 경호원 둘이 지키고 선 문 앞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경호원이 문을 열며 안쪽을 향해 말했다.
“이윤종 박사님 도착하셨습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이윤종 박사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원탁에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
국내에 있는 공리회의 고위 인사들.
원래는 수가 더 많았지만, 최근 들어 일이 생긴 탓에 오늘은 몇 명 모이지 않았다.
그중 처음 보는 얼굴의 험상궂은 남자가 강한 사투리 억양으로 중얼거렸다.
“금마는 언제 오는 거고?”
이윤종은 그를 힐끗 보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의 시간이 흘러가던 때,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입장하십니다.”
그 말에 장내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덜컹.
문이 열리고, 깔끔한 복장의 민지훈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다들 오셨네요. 잘 지내셨죠?”
민지훈은 일상적인 인사말을 던지고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향했다.
털썩.
그가 자리에 앉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늦었군. 선생.”
“미안합니다. 일이 생겨서 잠시 확인만 하고 오느라 늦었네요.”
“인원은 이게 다요?”
“네.”
민지훈은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살피며 말했다.
‘레시피’를 제작하며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인 이윤종 박사. 주철수 대신 처음으로 모임에 참가한 국제파의 정광제.
그리고 호정그룹의 부회장과 재일 교포 출신 야쿠자까지.
‘공리회’라 불리는 조직에 속한 이들 중 한국에 있는 인원들만 모인 것이다.
“해외에 계신 분들은 바쁘시니까요. 간단한 얘기를 하러 모인 거기도 하고요.”
“그런가.”
“그리고 아시다시피 최근에 많은 일이 있었잖습니까.”
그 말에 재일 교포 야쿠자, 가네무라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민 수석과 서 회장 일은 유감이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계의 권력자, 민정수석이었던 민기형과 마약 유통으로 막대한 자금을 융통하던 서길석.
가네무라는 공리회에서 큰 역할을 하던 두 사람이 그렇게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는 게 아쉬웠다.
두 사람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트집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가실 분들은 아니었는데.”
민지훈을 지켜보던 호정그룹의 부회장, 박광훈이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누가 봐도 민지훈이 손해를 보기 전에 꼬리를 자른 거였다.
그러나 박광훈 또한 이 자리에서 대놓고 그걸 언급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대신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에 관해 물었다.
“그나저나, 마테오 그자는 이제 오지 않는 겁니까?”
“인터폴에서 수배를 내렸으니 얼굴을 내보이긴 어렵겠지.”
“흠.”
필리핀의 카지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할 텐데, 듣기론 카지노에서 마약을 사용한 탓에 위에 있는 호텔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거 하나를 제대로 관리 못 해서…… 쯧.’
가네무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의 박광훈에게서 시선을 돌려 민지훈에게 물었다.
“이제 마테오는 어떻게 할 거요?”
가네무라의 말에 민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마테오 사장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일 것 같군요.”
“음.”
“인터폴이 쫓는 사람을 저희 안에 들일 순 없으니까요.”
조금 아쉽긴 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 시한폭탄이 붙은 사람을 안고 갈 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유감이군. 그래서 오늘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는 뭐요?”
“육 대장님?”
딱.
민지훈이 손을 튕기자 육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민지훈이 외부 활동을 할 때 곁에서 보좌하는 경호대의 대장이었다.
덜컹.
회원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이는 종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네무라는 한 젊은 남자의 사진을 보며 물었다.
“이주혁? 이게 누구요?”
그 말에 민지훈이 사진을 손가락으로 탁 찍으며 말했다.
턱.
“오늘 여러분들을 불러 모은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이 남자가 뭐길래 그러는 거요?”
가네무라의 물음에 민지훈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선언했다.
“이주혁. 이 남자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지정하겠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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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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