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그날 저녁.
회사 로비 안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주혁 씨?”
그들이 찾아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예. 접니다.”
“광역수사대 박건 팀장입니다. 잠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부장님보다 조금 큰 것 같은 키에 우락부락한 몸.
황성빈과 같이 남자답게 생겼지만 조금 더 험악한 느낌의 남자가 공무원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나한테 상황 설명을 듣고 옆에 서 있던 부장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괜찮겠냐?”
부장님은 혹시 저 경찰이 선생의 하수인이 아닐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나도 전생에 납치당할 때 탔던 차가 떠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방법이 있다.
혹시 몰라 안에 방검복도 든든하게 챙겨입었고.
“예. 걱정하지 마세요.”
정광제든, 김정우든, 아니면 거기 몰래 숨어 있던 누군가든.
국제파가 깨진 걸 알게 된 선생 놈이 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경찰을 움직였다.
총성도 크게 나지 않은 인적 드문 부둣가에 그렇게 빨리 경찰이 도착한 걸 보면, 분명 위에서 오더가 내려왔단 뜻이니까.
“가시죠.”
“예. 이리로.”
박건의 차를 타고 용산서로 출발했다.
부웅-.
불리한 상황에 놓이긴 했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많으니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다.
바로 선생 놈과 공리회 놈들이 어떻게 날 공격해 들어올지.
.
.
.
탁.
나는 취조실 안에서 박건과 마주 앉아 있었다.
“우선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죠.”
“지금은 참고인 신분이지만, 후에 용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참고인이고 용의잡니까?”
내가 뻔뻔하게 나오자 박건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조윤기의 마지막 통화 상대가 이주혁 씨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조 군 이름이 조윤기였나.
그나저나 딱 끊어 버리네.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같은 편이면 든든할 텐데, 하필 날 족치려고 파견된 사람이라니.
“체포된 사람들의 입에서 이주혁 씨와 SA시큐리티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규모 폭력 사건 현장에서 체포됐고 말입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흥신소 직원들과 SA시큐리티 그리고 나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래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조윤기가 이주혁 씨에게 현장 보고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단 말이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턱.
박건이 싸늘한 얼굴로 책상을 짚었다.
“이주혁 씨와 SA시큐리티가 부두를 정리하고 조윤기 일행에게 그 뒤처리를 맡긴 게 아닐까. 이게 제 추리입니다.”
“…….”
핵심을 정확히 짚은 박건의 추리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당한 놈들이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박건의 추리가 맞다면 우리도 똑같은 범법자일 뿐이니까.
“게다가 수배자였던 정광제와 신원 미상의 한 남자는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살인 교사, 또는 살인의 혐의로 이주혁 씨를 체포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소립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 싫으면 원하는 답변을 해라? 이겁니까?”
“정확한 정황을 말씀해 달란 겁니다.”
그 말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정광제가 서울로 올라온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놈을 찾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한이 조금 있어서요. 그런데 수소문 끝에 찾아보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럼,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시단 말입니까?”
박건의 인상이 슬쩍 구겨졌다.
그에 당당하게 답했다.
“네. 저희 쪽은 최초 발견자인 거지, 폭행이나 살인. 이런 무서운 거랑은 관계없습니다.”
하지만 내 설명에도 박건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정말입니까?”
“제가 경찰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뭐, 제가 저질렀다는 증거라도 나온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만…….”
“무죄 추정의 원칙. 팀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폭행, 살인, 살인 교사를 했다는 명확한 물증이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절 의심하시는 거 아닙니까?”
박건은 내가 정당한 이유로 따지니 할 말이 없는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조윤기. 흥신소 직원이던데, 그럼, 이주혁 씨는 흥신소를 이용해 정광제의 위치를 추적하신 겁니까?”
“예. 뭐…… 그건 맞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슬슬 취조를 마무리하려는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돌아가도 되는 건가요?”
“예. 협조 감사드립니다.”
의아함이 느껴진다. 고작 이거 물어보고 끝이라고?
어쨌든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건이 품에 있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줬다.
“다음에는 좋은 일로 뵀으면 좋겠습니다. 박건 팀장님.”
“예.”
그렇게 우리는 명함을 교환한 뒤 헤어졌다.
* * *
탁.
이주혁이 취조실을 떠나고.
“흠…….”
박건은 그가 나간 곳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생각했다.
윗선에선 이주혁을 오래 잡아 놓고 조사하라고 지시했지만, 박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추적 중인 희대의 악당, 일명 X.
정·재계에 깊이 파고들어 조폭들을 부리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인물이다.
X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박건은 원래 강남파의 주철수를 체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주철수가 유치장에서 갑작스럽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될 뻔했으나, 감이 좋은 박건은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따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애초부터 주철수는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박건도 주철수가 부패한 고위층과 결탁해 이득을 취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주철수의 핸드폰을 포렌식해 본 결과, 추적이 불가능한 번호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이어 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확신을 얻은 건, 강남파 출신의 남상민이라는 수감자를 만나고 난 이후였다.
그는 박건이 X를 잡고 싶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니, 난감해하면서도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줬다.
X라는 존재가 정말 실존하고, 그자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이미 있다고 말이다.
그 후로 박건은 X를 추적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병행해가며 계속 X를 조사하던 중, 갑자기 민기형 수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건은 당황스러웠다. 민기형은 자신이 나름대로 만들어 놓은 X 용의자 리스트에 적혀 있던 인물인 탓이었다.
그래서 박건은 민기형의 가족인 민수진을 찾아갔다.
자살한 이유를 조사하는 것처럼 질문을 던져 봤지만, 민수진은 민기형이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박건이 실망하며 나오던 그때, 민수진을 찾아온 서해결 검사와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박건의 감이 강렬하게 진동했다.
피해자 조사는 경찰들이 하면 될 텐데, 왜 검사가 유가족을 직접 찾아온 걸까.
박건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서해결의 앞을 막아섰다.
그동안 청렴결백하고 자신처럼 정의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걸로 이름난 서해결 검사.
그라면 X에 관해 아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적중했지.’
확신 반 떠보기 반으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서해결 검사는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분들에게 말씀은 드려 보겠습니다.
이 말은 즉, 서해결 검사가 남상민이 말했던 X를 쫓는 무리의 일원이란 의미였다.
그 와중 부둣가에서 정광제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분명 이주혁도 뭔가를 알고 있다.’
흥신소 직원들까지 고용해 가며 원한이 있는 조폭을 추적한다?
어지간한 사람들을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
수십 명의 조폭을 때려눕힐 자신이 있거나, 그를 반드시 붙잡아야 할 이유가 있거나.
이주혁은 단순 원한이 아닌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정광제를 쫓은 것이다.
박건은 처음에 이주혁이 X의 편인가 싶었다.
누군가에게 국제파가 토벌당하고, 이주혁은 X의 지시를 받아 그 뒤처리를 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썩어 빠진 윗선의 지시를 받는 순간 그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만약 X의 하수인이라면 빨리 풀어 주라고 하지, 붙잡아 두라고 할 리는 없으니 말이다.
척.
이주혁의 명함을 집어 든 박건이 중얼거렸다.
“SA시큐리티…….”
조만간 다시 만나 봐야겠다.
* * *
“하악……. 후…….”
“오늘은 여기까지.”
“부장님. 저 더 할 수 있어요.”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임유나의 말에 라세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다고 더 강해지는 게 아니야. 오히려 건강을 해치거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도 있어.”
“……그런가요.”
“그런 거지. 돌아가서 쉬도록.”
“……네.”
임유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임유나가 임시 휴업을 한 탓이었다.
“하…….”
임유나를 위협했던 그 사건 이후로, 동생은 뼈에 금이 가 통원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범인들은 전부 경찰에 체포됐지만, 솔직히 임유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아직 약해.’
듣기론 이주혁 씨나 라세흠 부장님, 태섭 씨 같은 사람들은 여러 명이랑 싸워도 충분히 이긴다던데.
현재 자신은 아직 그 정도가 아니었다.
태섭 씨의 도움이 조금만 늦었어도 두 사람은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아직도 그때 느꼈던 무력함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임유나는 라세흠이 투덜대며 말해 준 사람을 떠올렸다.
새로 주혁 씨 쪽에 합류한 사람인데, 여자고 엄청 강해서 말을 해도 들어 먹지를 않는다고.
‘나도 그렇게만 된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테고, 주혁 씨에게 짐이 되지도 않을 거다.
그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임유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신을 향하는 신경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장님에게 훈련의 강도를 더 높여 달라고 말한 거기도 하고 말이다.
저벅.
복잡한 심경으로 샤워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임유나는 정태섭이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태섭 씨. 무슨 일 있어요?”
“이거…….”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찬찬히 살피던 임유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무슨……?”
* * *
다음 날.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부둣가에 흔적을 남기지 않은 덕에 용의자로 몰리진 않았다.
사실 물증이 없으면 내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조금 대강 넘어간 듯한 느낌은 있단 말이지.’
박건이라는 이름의 광수대 팀장.
조금 더 윽박을 질러 가며 날 취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적당히 날 보내 준 것 같달까.
게다가 목소리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광수대 팀장이면 꽤 큰 권한이 있기도 하고, 선생 놈의 하수인도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우리 쪽으로 포섭할 마음도 있었다.
만약 박건이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선생의 존재를 알자마자 어떻게든 잡고 싶어 할 테니까.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우재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웅-.
“예.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우재성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여론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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