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44
243화
철썩.
해가 지고, 어느새 어둡게 물든 항구.
원래는 고즈넉하게 파도 소리만 들려와야 하지만, 오늘은 그 사이로 소음이 들어찼다.
-죽여-!
퍽! 채앵!
“끄아악!”
칼날에 살이 찢겨 나간 남자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전장 속. 고광목은 야구 배트를 달고 달려오는 상대의 목을 덥석 붙잡고선 그대로 땅에 메다꽂아 버렸다.
쾅!
그 모습을 주머니에 손을 꽂고 여유롭게 지켜보던 윤필도가 이죽댔다.
“병신 돼서도 힘 하나는 좋네.”
“너 이 새끼……. 밑에 있는 놈들만 앞세우고 혼자 뭐 하는 거냐!”
“굳이 나까지 나서야 되나?”
윤필도의 말에 고광목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되겠어?”
그에 고개를 돌린 윤필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득-!
정태섭은 들이미는 칼을 피하며 한 명씩 팔을 낚아채 꺾거나 땅에 처박고 있었다.
그 옆에선 윤건한이 정권과 앞차기로 다가오는 조직원들을 뻥뻥 날려 버리는 게 보였다.
외에도 젊은 놈들이 진형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수하들을 때려눕히는 모습에, 윤필도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이 X발. 저런 인재들은 또 어디서 났나 몰라.”
“왜. 대가릿수만 많으면 쉽게 밀어 버릴 수 있을 줄 알았냐?”
뿌득.
윤필도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상대편에 저런 센 놈들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이 개자식. 우릴 방패로 세우겠다 이거냐?’
이런 식이면 윤필도의 조직원들이 당하는 건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그의 수하들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 당신네도 나서지 그래?”
그 말에 어딘가 다른 분위기의 남자들이 손도끼와 칼을 들고 움직였다.
고광목은 그들에게서 풍기는 위험한 분위기에 미간을 좁혔다.
“네놈들은……!”
얼굴이 낯이 익었다.
분명 왕후성과 함께 자신과 동생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삼합회 조직원들이었다.
분명히 그때 그놈들은 다 붙잡혀 본국으로 송환됐다고 들었는데, 이 자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노릇이다.
고광목은 굳은 표정으로 착용하고 있던 의수를 돌려 겉 부분을 분리했다.
그러자 의수 안에 들어있던 커다란 갈고리가 드러났다.
“큭. 그건 또 뭐야. 네가 해적이냐?”
윤필도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한 발짝 내딛자, 살벌한 인상의 남자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캇!”
왼쪽에서 손도끼가 내리 찍혔다.
삭!
몸을 틀어 피한 고광목이 왼손으로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면상에 박치기를 먹였다.
꽝!
“크엑!”
코가 내려앉은 남자가 피를 뿜으며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cao!”
이어 다른 놈이 뭐라 지껄이며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고광목은 침착하게 도끼머리에 갈고리를 걸고, 그대로 허리를 돌리며 잡아당겼다.
“어억!”
쑤욱 딸려 가며 중심을 잃은 남자의 얼굴에, 일반인 주먹보다 1.5배나 큰 주먹이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쩌억-!
“끄륵.”
묵직한 공격을 제대로 받아 버린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꺾인 채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후.”
비록 손이 하나 없긴 하지만, 강북을 노름으로 먹은 게 아니었다.
“다들 비키라. 보통 놈이 아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자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다섯 명의 인상 더러운 남자들이 걸어 나왔다.
고광목은 그들을 보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놈들이 진짜군.’
다섯 명 다 무시 못 할 실력자였다.
거기다 리더로 보이는 벙거지 모자를 쓴 중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네놈이 이 중에 제일 강한가?”
고광목의 물음에도 전귀, 일명 돈귀신의 조장 일귀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놈은 없는 모양이다.”
“다행임다.”
일귀가 벙거지 아래로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물었다.
“이보오. 우리 목적은 이주혁이 목이오. 순순히 비키면 다치진 않을 거요.”
“조선족인가?”
“그렇소만.”
조선족이라는 말에 고광목의 이마 핏줄이 툭 불거졌다.
손목을 자른 건 중국인인 왕후성이었지만,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이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우던 정태섭은 고광목과 대치 중인 남자들을 보고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저자들은 강하다. 고광목 혼자 상대하긴 버거울 정도로.
하지만 정태섭은 지금 최대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이주혁의 지시에 따라, 비교적 전투력이 처지는 이들을 돕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명을 눕히면 두셋이 더 들러붙는 상황 속에서 고광목을 도우러 달려갈 순 없었다.
결국 고광목의 의사를 확인한 벙거지가 고개를 까딱했다.
“치우라.”
그 말과 동시에 벙거지의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타닷!
뒤이어 아까보다 빠른 손도끼가 벼락같이 떨어졌다.
“큭!”
고광목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지만, 그 정도쯤은 이미 간파당한 채였다.
“발모가지부터!”
“크윽!”
펄쩍!
곧장 몸을 띄운 덕에 발목이 잘려 나가는 불상사는 피해 냈다.
하지만 고광목은 중심을 잃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수밖에 없었다.
쿠당탕!
‘이런……!’
몸을 바로 세운 고광목의 머리통으로 중식도가 단두대처럼 떨어졌다.
고광목은 한계까지 몰린 상황에서 극한의 반응속도로 갈고리를 사용해 칼날을 쳐냈다.
까앙!
그러나 이어지는 공격은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왼쪽에선 마체테. 오른쪽에선 손도끼.
고광목이 양팔을 포기하며 막으려던 그때.
휘리릭!
“큿!”
“윽!”
눈앞의 남자를 난도질하려던 두 사람을 향해 쇠파이프가 하나씩 날아왔다.
그 틈을 타 고광목은 빠르게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손도끼를 든 염소수염, 사귀가 으르렁거렸다.
“어떤 새끼가 방해하고 지랄……!”
“나다, 이 씹X끼야!”
황성빈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무기들을 집어 마구잡이로 던졌다.
때댕. 땡그랑.
대부분이 별 효과 없이 땅에 떨어졌지만, 고광목이 몸을 추스를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벙거지, 일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놈은 뭐지? 언뜻 보면 허접해 보이는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고광목은 주춤주춤 돈귀신들에게 접근하려는 동생들을 만류했다.
“아서라. 너희 상대가 아니다! 이놈들은 우리가 잡을 테니 안심해라!”
“재밌네.”
후욱!
카람빗 두 자루를 꺼내 든 일귀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이런!”
황성빈과 고광목이 각자 쇠파이프와 갈고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일귀는 무표정하게 휘어진 칼날로 두 사람의 무기를 잡아 흘려버렸다.
“윽!”
“헛!”
그 덕에 황성빈은 갈고리에 찍힐 뻔했고, 고광목은 쇠파이프를 겨우겨우 피해냈다.
‘빈틈.’
일귀는 조금 더 자세가 무너진 황성빈을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쇄액!
그의 양손에 들린 칼 두 자루가 춤을 췄다.
촤촤촥!
“크악!”
황성빈은 팔, 다리, 옆구리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칼날에 피를 튀기며 발악했다.
“끕!”
살이 찢기는 고통에 순간 눈앞이 하얘졌던 황성빈은, 이내 정신을 붙잡고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몸을 앞으로 날렸다. 상대가 칼을 가졌으니 거리를 좁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귀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쩍-!
마치 예상했다는 듯, 일귀는 뒤로 가볍게 뛰며 무릎으로 황성빈의 턱을 올려 쳤다.
“컥.”
황성빈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땅에 얼굴부터 처박히려는 그때, 누군가 황성빈의 뒷덜미를 붙잡혔다.
“쯧쯧. 역시 수준 미달이구만.”
고상미의 자칭 넘버 투 동생, 일명 ’대머리’가 이빨을 보이며 씨익 웃었다.
대머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성빈을 땅에 대충 내려놓고 몸을 풀었다.
“그래. 너희들은 좀 하는 것 같던데.”
갑자기 나타난 강자. 경계 태세로 들어간 돈 귀신들을 여유롭게 살피던 대머리가 멈칫했다.
“잠깐. 넌 왜 머리카락이 없지?”
“뭐?”
대머리의 지목을 받은 대머리 돈귀신, 오귀가 발끈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겹치잖아. 이 새끼야. 너부터 죽여 줄게.”
“동감이다. 이 X부럴 새끼야.”
오귀는 민두가 시뻘게진 채 달려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안경 중년, 이귀가 다른 돈귀신들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삼귀, 사귀! 오귀를 도우라!”
“예.”
대머리는 달려오는 이들을 보며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와라!”
* * *
턱.
나는 조심스럽게 선상에 발을 디뎠다.
“후.”
작게 숨을 내쉰 뒤, 차고 있던 산소통을 벗어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저쪽으로 조금이라도 신경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고광목 일행이 싸움을 시작하고 나서 올라온 거다.
그게 도움이 됐는지, 주변을 둘러봐도 적이 보이진 않았다.
스윽.
제압용 고무탄이 든 권총을 가슴 앞에 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
화물선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뭐지?’
여기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을 리는 없고.
설마 함정을 파 놨나 생각하던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 하나가 보였다.
방탄모에 조끼. 고글에 기관단총까지.
시가전에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을 정도의 무장에 속으로 혀를 찼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놈 한 놈 잡기가 더 빡세졌단 의미니까.
……슥.
나는 놈에게 들키지 않고 지나가기 위해 다른 루트를 찾았다.
괜히 총을 갈겼다가 주변에서 소리를 듣고 몰려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놈의 뒤로 천천히 지나가는데.
저벅. 저벅.
옆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삭!
그에 황급히 컨테이너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곧이어 나타난 한 남자가 경계를 서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특이사항은 없나?”
“예. 없습니다.”
“철저히 경계하도록. 놈을 선실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돼.”
“알겠습니다.”
선실이라. 아마 민지훈이 거기에 있겠지.
초대장까지 보내놓고 자기만 쏙 빠지는 얌체 같은 짓을 할 리는 없으니 말이야.
척. 척.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인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배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앞에서 나와 비슷한 자세로 걸어오던 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선수. 부장님은 선미.
이렇게 양쪽에서 배 위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한번 살피고 다 같이 선실로 쳐들어가는 게 계획이었다.
놈이 대놓고 갑판 위에 있을 가능성은 없으니, 당연히 선실 안 안전한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끄덕.
부장님이 이상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나는 난간 쪽으로 향해 손을 세 번 까딱였다.
수신호를 줬으니, 물속에서 대기 중인 인원들이 곧 올라올 것이다.
‘가자.’
‘네.’
앞장서 이동하는 부장님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길은 총 두 개.
아마 양쪽 다 경비가 서 있을 테니, 가장 안의 공간으로 향하려면 무조건 전투가 일어날 거다.
우리는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근육을 긴장시키며 움직였다.
끼익-.
크루즈 같은 배면 모를까, 아무래도 화물선인지라 선실로 가는 길의 조명이 썩 좋진 않았다.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던 그때.
“!”
부장님과 나는 동시에 황급히 몸을 날렸다.
퓩! 퓩!
그와 동시에 우리가 있던 위치에 총알이 날아왔다.
깡!
벽에 부딪힌 총알이 불꽃을 튀겼다.
나와 부장님은 순식간에 양쪽으로 흩어져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부장님은 빠르게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회수하더니, 이빨을 보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씨…….”
“왜요?”
“김정우야.”
“아.”
“먼저 가라. 난 저놈 잡고 따라갈 테니까.”
탐탁잖은 표정으로 권총을 꺼내 든 부장님이 손을 휘휘 저었다.
어지간하면 근접전을 선호하는 양반이 총을 들다니.
아무래도 김정우, 그 선배도 더럽게 센 모양이었다.
“사지 멀쩡히 다시 봅시다.”
“새끼.”
나는 부장님이 시간을 끌어 주는 사이 빠르게 침투하기 위해 땅을 박차고 달렸다.
탓!
* * *
“어이, 김정우.”
찰칵.
탄창을 한번 확인한 라세흠이 싸늘한 표정으로 복도 너머의 상대를 향해 말했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살벌한 선언에 반대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 봐. 할 수 있으면.”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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