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47
246화
민지훈은 전에 마주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나를 맞이했다.
풍원한정식에선 웃는 얼굴로 마주해서 그런가, 선입견이 있음에도 사람 좋은 인상이었는데.
“왔네. 이주혁.”
지금은 전혀 달랐다.
하얀 피부에 무표정하게 있으니,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도 막 놓고.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놈이었으면 그런 짓을 하고 다니진 않았겠지.
“이제 가식은 집어치우기로 한 거냐?”
“가식이 아니라 예의라고 해야지.”
“지금은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단 말인가?”
“이편이 피차 편하잖아?”
민지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부터 두들겨 팰 건데 굳이 서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
“그 전에 대화나 좀 할까.”
스윽.
아직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주먹을 들어 보여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대화는 이걸로 하고.”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건 나중에 들으면 되지.”
“하.”
민지훈이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설치고 다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음?”
“내가 이대로 총을 꺼내 널 쏴 죽일 수도 있단 생각은 안 하나?”
민지훈의 으름장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한번 시험해 보던가. 네가 총을 꺼내 날 쏘는 게 빠를지. 아니면 내가 이 칼로 네 목을 따는 게 빠를지.”
피식.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대답이야. 그러니까 네가 이 자리까지 온 거겠지.”
나를 위아래로 훑은 놈이 중얼거렸다.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인 놈.”
“그러는 넌 뭘 믿고 날 여기까지 들여보낸 거냐?”
오히려 역으로 질문했다.
“평생 발끝에도 못 닿는 곳에서 지낼 수도 있고, 네 말마따나 내가 문을 열자마자 총으로 쏠 수도 있었을 텐데.”
칼을 손에서 빙글 돌렸다.
민지훈은 칼날에 묻은 피를 보고 눈썹을 까딱했다.
“그는 죽었나?”
“누구 말이야? 네 약 빨고 덤벼들던 덩치라면 내가 손 좀 봐줬는데.”
“역시 죽이진 않았나 보군.”
나는 놈이 칼을 든 사람을 앞에 두고도 의연한 태도인 게 의아했다.
경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내 의문은 이어지는 민지훈의 말에 풀렸다.
“넌 항상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았지. 이간질, 차도살인. 아니면 경찰에 넘기거나.”
“…….”
“불살을 고집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 행동으로 미루어봤을 때 네가 날 지금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지.”
“확신하는 모양이네.”
“말했다시피, 너는 나한테 알아내고 싶은 게 많을 것 같거든. 안 그래?”
확실히 보통 깡다구는 아니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전직 특수부대원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기 할 말만 하는 걸 보면.
나는 벌써 피곤해지는 걸 느끼고 눈두덩이에 튄 피를 닦으며 물었다.
“그래서, 도망도 안 가. 싸우지도 않아. 원하는 게 뭔데? 나한테 납치당해서 고문받는 거? 그거냐?”
“이주혁.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지껄여봐.”
저 뱀 같은 혓바닥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하네.
저벅.
민지훈은 여유롭게 옆으로 한 발짝을 내디디며 입을 열었다.
“넌 알 리가 없겠지만, 세상엔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있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비슷한 조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있다는 소리야.”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민지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정계와 깊은 관계에 있고, 폭력 조직을 하수인으로 두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향하는 독재자 같은 자들이.”
“뭐, 춘추전국 시대냐?”
“비슷해. 다들 피라미드의 정점을 바라는 사람들이니까.”
생각해보면 ‘선생’ 같은 놈이 더 없을 리가 만무하다.
민지훈이 미래의 지식을 통해 빠르게 기반을 쌓아 올린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한 자원만 있으면 공리회 같은 조직을 만들 순 있을 테니까.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힘이든, 인맥이든 간에.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깨끗한 정치인, 청렴한 사업가, 비즈니스맨을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지.”
“민기형과 너처럼?”
끄덕.
나는 선뜻 긍정하는 민지훈에게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었다.
“말 나온 김에 뭐 하나만 묻자. 민기형은 대체 왜 죽인 거냐?”
“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인데.”
“아. 아버지는 내가 안 죽였어.”
“그럼 뭐지?”
씨익.
민지훈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날 너무 사랑하셔서, 날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신 거지.”
“미친 새끼.”
“아버지도 내 뜻을 이해해주셨거든. 그래서 아쉬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 줄었으니까.”
“염병하네. 넌 개새끼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게 맞아. 이 개새끼야.”
큭.
내 인신공격에 민지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 그런 상스러운 욕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걸.”
“그래? 더 해줘?”
원한다면 24시간 정도 떠들어줄 용의는 있는데.
민지훈은 손을 들며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건 배부르니 나중에 하고…… 내가 하는 얘기나 잘 새겨들어. 네 선택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칠 테니까.”
내 선택이라.
그래. 뭐라 지껄이는지 들어는 보고 죽일지 반만 죽일지 결정해야겠어.
“아까 말했듯,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임을 형성하고 있어. 그놈들도 알고 있지. 위에 서겠다고 아등바등 힘겨루기를 해봤자 제 살 깎아 먹기밖에 안 될뿐더러, 옆에는 약해진 자신의 세력을 잡아먹고 몸집을 불릴 하이에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걸.”
“굳이 분쟁을 일으키기보단 다 같이 손잡고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가?”
“맞아. 한 명만 1등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혹시 자신이 탈락자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그냥 모두가 공동 1등을 차지하자는 생각이었겠지.”
“누가 1등을 하든 간에 ‘우리 편’이 우승하는 게 그림이 좋다 이거군.”
그놈들 사이에서도 힘의 차이가 존재했을 거다.
하위권은 자신들이 언제 밀려날지 모르니, 이들이 한 공동체로 묶이길 원했겠지.
그리고 상위권도 하위권이 힘을 합치면 자신들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테고.
이런 설명을 한다는 건 민지훈의 공리회도 그 모임의 일원이란 말인데.
‘이놈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런 게 있다는 건 평생 모르고 살았겠지.’
대체 나한테 이런 정보를 왜 알려주는 걸까. 원하는 게 뭐지?
민지훈은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여기까지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지?”
“한 줄 평해줘? 개새끼들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런 거 말고.”
미소를 지은 민지훈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네가 날 왜 잡으려 하는진 대충 알아. 날 사회의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지.”
“잘 아네.”
“그럼 그 모임은? 그들도 하나하나 잡아서 감옥에 넣을 건가?”
민지훈은 내 고민하는 표정을 봤는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손을 펼쳤다.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정체를 숨긴 악당들을 붙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 이게 네 목표인가?”
“그건 안 되지.”
“하지만 난 가능하다.”
“음?”
갑작스러운 선언에, 나는 순간 이 새끼가 갱생하는 줄 알았다.
“난 그 모임에서 나름 발언권이 강한 편이다. 그리고 내 발언권을 더 강화하고, 그걸 넘어 그자들을 밟고 넘어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진지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는 민지훈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신약, 백신 개발? 이윤종 박사랑 하는 거?”
내 물음에 민지훈이 멈칫했다.
“…….”
“맞지?”
“……맞다. 이걸 이용한다면 그들에게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어. 그 오만한 작자들의 돈을 통제하고, 행동을 제한하고, 법칙을 세울 수 있단 말이다.”
“백신 하나 가지고 거기까지 가능한가?”
사실 질병은 안 걸리면 그만인데.
“그것뿐이라면 언급하지도 않았다. 방법이 있지.”
민지훈이 음흉하게 웃었다.
“언제든지 놈들의 거점에 떨어뜨릴 수 있도록 바이러스를 무기화한다. 그리고 그 치료제는 내가 독점한다.”
“……미쳤군. 생화학 무기를 쓰겠다고?”
“이 정도 강수가 아니면 움찔하지도 않을 놈들이다. 그리고 놈들이 내 말을 따른다면 사용할 일은 없어.”
내 머릿속의 민지훈은 개새끼에서 제대로 미친 개새끼로 진화했다.
“그래. 그런 방법으로 네가 거기서 짱 먹었다 치자. 그래서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진심으로 궁금해 묻자, 민지훈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천칭자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천칭자리. 놈이 수장으로 있던 공리회의 표식이었다.
“천칭자리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가지고 다니던 정의의 저울대다. 그 저울은 인간의 선악을 재 운명을 결정하는 데 사용됐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네가 정의를 원하는 것처럼, 나도 정의를 원한다는 소리다.”
이 미친놈의 말에 혈압이 오르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그럼 네가 지금까지 한 짓은…….”
“최대한 빠르게 모임을 장악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릴 시간이 없었다.”
“핑계도 다채롭다. 이 미친놈아.”
“세계를 뒤덮은 거악을 상대할 방법은 이것뿐이야. 절대 완전히 박멸하진 못한다. 다만 내가 컨트롤할 순 있지.”
나는 열변을 토하는 민지훈의 눈깔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 새끼. 아무래도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조폭들 이용해서 사람 패고, 사이비 만들어서 신도들 세뇌하고, 방방곡곡에서 마약 팔아먹고. 네가 저지른 짓은 뭔데? 그게 네가 말한 정의냐?”
“실험을 진행할 돈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지.”
“하…….”
급발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
민지훈 이놈이 전생에 무슨 일을 겪고 이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히 잘못된 말이다. 단단히 뒤틀린 생각이고.
그런데 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설명해줄 자신이 없네.
괜히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같단 말이다.”
“…….”
“눈앞의 것만 바라보지 마라. 미래를 보라고. 네 아버지 일은 잠시 묻어둬. 사사로운 감정은 나중에 풀면 그만이니.”
민지훈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함께하자. 이주혁. 나와 너라면…….”
“X발. 지훈아. 이 새끼야.”
“?”
“대체 뭔 소리를 지껄이나 해서 쭉 들어줬는데…… 안 되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목을 돌렸다.
뚜둑.
“일단 좀 처맞자.”
후웅!
망설임 없이 민지훈의 얼굴을 박살 내기 위해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민지훈이 상체를 기울이며 피한 탓이었다.
‘이걸 피해?’
게다가 놈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피해냈다.
이런 내 반응에 민지훈이 이 와중에 흐트러진 정장 차림을 다듬으며 말했다.
놈의 말투는 내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의 것처럼 다시 바뀌어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간단한 호신 무술 정도는 배워놨지.”
“지랄……!”
허벅지를 노리고 발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민지훈은 그것도 예상했는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범위에서 벗어났다.
“말했잖아. 배웠다고.”
“이 새끼…….”
“배우다 보니 꽤 재밌더라고. 상대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게.”
“혹시 그건 알고 있냐?”
나는 그 말에 사납게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그런 애들 두들겨 패는 거 전문이거든.”
“아, 그래?”
민지훈의 느물거리는 표정을 보니 폭력 충동에 휩싸인다.
꾸욱.
아까 아귀와의 싸움에서 느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저놈이 싸움도 꽤 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기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한 땀 한 땀 빈틈을 파고들다 보면, 저놈도 결국엔 아귀 꼴이 날 거다.
그렇게 민지훈의 박살 난 얼굴을 떠올리며 접근하는데.
“그래. 뭐, 사실 끝까지 싸우면 네가 이기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설득에 실패한 이상, 나도 무사히 빠져나갈 순 없다는 거.”
민지훈이 반쯤 맛이 간 얼굴로 품에서 무슨 스위치 같은 걸 꺼내 눌렀다.
꾹.
“야. 뭐야, 그거. 뭐 한 거야.”
“아까 말한 생화학 무기.”
“……뭐라고?”
“사실 이미 프로토타입은 만들어놨거든.”
벌써 그걸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건 지금 이 배 안에 있고.”
“미친놈이.”
내 표정이 일그러지자, 민지훈이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진 마. 임상시험이라 죽진 않을 테니까. 아마도.”
“너도 같이 휘말릴 텐데.”
“난 백신 맞았지.”
민지훈은 바깥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범위를 꽤 넓게 설정해 놔서.”
나는 바깥에서 열심히 적을 상대하고 있을 팀원들이 생각났다.
씨익.
민지훈은 두 손을 편 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참고로, 10분 남았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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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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