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일명 6호.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번화가를 구경해 봤다.
시설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은 이런 고층 빌딩보단 나무와 산이 대부분이었다.
멍하니 거리를 둘러보고 있는 6호의 귀에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봐라.”
“신기한갑네.”
“촌놈이네, 촌놈.”
그 말에 6호는 벌렸던 입을 꾹 다물었다.
꾸욱.
척 봐도 허접해 보이는 세 명.
더럽게 세던 그놈이면 몰라도, 이런 놈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셋 중 가장 커다란 놈이 와서 말을 걸었다.
“마. 니 이름이 뭐고? 내는 김석호다.”
“…….”
“무시하는데?”
“나온나. 이 얼굴이 뭣 같이 생기가 겁먹은 거 아이가.”
제일 키가 작은 놈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난쟁이는 키 차이 때문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내는 최동철이라고 한다. 저 돼지는 고천산.”
“마! 내 소개를 왜 니가 하노?”
“가마 있으라. 나이는 몇 살인데?”
“…….”
“씁. 낯설어서 그런가. 뭐, 알았다. 우리보다 많지는 않겠지. 배고프제? 밥이나 묵자.”
네 사람은 식사를 위해 움직였다.
자칭 미식가, 돼지가 둘과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보냈다.
‘알제?’
‘알지.’
‘당연히 그거지.’
씨익.
6호와 덩치 사이에서 어깨동무를 한 난쟁이가 말했다.
“니, 삼겹살 무 봤나?”
.
.
.
치이익-
“…….”
6호는 불판 위에서 익어 가는 삼겹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노? 냄새 쥑이제?”
“야, 내도 삼겹살 처음 무 볼 때로 돌아가고 싶네.”
“다 익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고기를 굽던 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 봐라. 내가 쌈 하나 싸 줄라니까.”
팔랑-
상추를 집어 든 돼지는 삼겹살 두 점과 쌈장, 꼬맹이를 배려해 맵지 않게 구운 마늘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 넣었다.
“마! 뭐 하노!”
“으음. 실수.”
돼지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쌈을 쌌다.
“자. 무라.”
“크흠.”
헛기침을 뱉은 6호가 쌈을 받아서 들었다.
군침이 싹 도는 모습에, 6호는 참지 못하고 한입 크게 넣고 씹었다.
“음, 으음……!”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소한 기름. 그걸 잡아 주는 상추와 마늘.
대한민국 국민의 입맛에 딱 맞춘 소스인 쌈장까지.
그동안 전투식량과 거지 같은 배식만 먹어 왔던 6호는 혓바닥에 가해지는 폭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흐흐. 어떻노?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의 정수, 쌈이다!”
난쟁이가 주접을 떠는 돼지한테 핀잔을 줬다.
“옘병 떨지는 말고. 이 뒤로 딴 것도 무야 되니까 적당히 무라.”
“내 별명이 무한의 위장이다.”
6호는 살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잘만 하면 저들의 돈으로 자신의 배를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나만 더 먹어도 되겠습니까?”
“이제야 입이 트이나. 양껏 무라.”
그 말에 6호는 뜨거운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삼겹살을 흡입했다.
그걸 흐뭇하게 쳐다보던 세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오락실로 향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도망갈지 고민하던 6호도 조금은 고분고분해진 채 그들을 따라갔다.
‘그래. 일단 나한테 음식을 제공해 주는 걸 보니…… 아직은 빠져나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거기다 3일이라는 시간도 있으니까…….’
6호는 동행했던 청소부가 매일 밤 정기적으로 누군가와 연락한다는 건 알지 못했다.
“……!”
오락실로 들어선 6호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온갖 화면이 번쩍거리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싸우거나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최근 봐온 거라곤 차가운 칼날과 피, 황량한 나무와 풀밖에 없었기에 신선한 광경이었다.
난쟁이가 다시 한번 6호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하며 물었다.
“니 겜도 안 해 봤제?”
“……예.”
“일로 와 봐라. 통영의 텍켄 킹, 이 최동철이가 한 수 알려 줄라니까.”
난쟁이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냈다.
“가서 동전으로 좀 바꿔 온나. 할 줄은 아나?”
그 말에 눈썹을 꿈틀했다.
‘누굴 바보로 아나.’
6호는 지폐를 들고 동전 교환기 앞으로 갔다.
‘1,000원짜리 넣는 곳…… 여기네.’
지잉-
지폐 한 장이 들어가자, 기계가 동전 여러 개를 쏟아 냈다.
차라랑-
동전으로 바꾸고 돌아가 보니, 덩치와 돼지는 이미 오락 삼매경이었다.
“아, X바! 얍샙이 하지 말라고!”
“얍샙이는 먼 얍샙이. 다 쓰라고 있는 기술인데.”
“아! 게임 뭣 같이 하네!”
“칭찬 고맙고.”
돼지한테 탈탈 털린 덩치가 비명을 질렀다.
난쟁이는 6호를 앉혀 놓고 대략적인 조작법을 설명했다.
“이게 왼손, 이게 오른손. 이게 움직이는 거. 밑에는 왼발 오른발이다.”
그렇게 난쟁이와 6호의 일대일이 시작됐다.
퍽-! 퍽-!
“이것이 공중 10단 콤보!”
“아.”
“오아~!”
“왜 세 대밖에 안 맞았는데 죽는 겁니까?”
“원래 텍켄은 맞으믄서 배우는 기라!”
무력하게 맞던 6호는 슬슬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게임 뭣 같이 한다는 말을 어떨 때 쓰는지 알 것 같았다.
‘파악은 다 끝났다.’
6호는 승부욕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임무를 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동기들과 달리, 굳이 교관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처맞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가슴 속이 뜨거웠다.
‘한 번은 이긴다!’
그 뒤로 6호는 내리 10번을 패배했다.
“아……. 게임 뭣 같이 하네…….”
얼굴이 시뻘게진 6호의 말에 덩치가 낄낄 웃었다.
“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난쟁이가 일어나 몸을 풀었다.
“할 만큼 했으이 가자.”
“한 판만 더 하시죠.”
“내도 그라고 싶은데 현금이 없네.”
팔랑팔랑.
난쟁이의 텅 빈 지갑을 본 6호가 이를 악물었다.
히죽 웃은 덩치가 6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중에 더 연습해서 이기믄 되지. 맛난 거나 무러 가자!”
그 말에 6호는 어쩔 수 없이 분노를 마음속으로 삭였다.
그리고 난쟁이를 노려보며 다짐했다.
‘좋아…….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와서 훈련한다. 그럼 언젠가 저 재수 없는 얼굴을 뭉개 줄 수 있겠지.’
6호가 오락실이 밤에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
“뭐야, 벌써 왔어?”
로비에 있던 나는 후배들과 함께 내보낸 꼬맹이가 벌써 돌아온 걸 보고 물었다.
그러자 덩치가 손에 든 봉투를 들며 말했다.
“예. 뭐 임마 델꼬 술도 못 마시니까, 그냥 들어와서 치킨이나 뜯으라 할라고예. 이따 저녁에 다시 나가든가 할 낍니더.”
“그래?”
“근데 행님. 어디 가십니꺼?”
“잠깐 볼일이 있어서.”
슬쩍 꼬맹이를 살피니, 녀석의 눈빛에서 독기가 조금 빠진 것 같았다.
어디 산속에서 훈련만 하다가 세속의 맛을 봤으니, 이제 녀석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유’를 얻으면 얼마나 즐거운지 똑똑히 각인됐을 거다.
“꼬맹이. 맛있게 먹어라. 너희들도 수고하고.”
“예, 행님!”
“…….”
나는 묘한 표정의 꼬맹이를 지나쳤다.
이거, 어쩌면 3일까지도 필요 없었겠는데?
저벅.
서해결 검사가 말하길, 아마 지금쯤 검찰 측에서 동성유통을 탈탈 털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거랬다.
그쪽은 경과를 지켜보면 될 것 같고, 내가 나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민수진.’
선생, 민지훈의 동생인 녀석이 날 불렀다.
중요한 게 떠올랐으니 꼭 혼자 오라고.
솔직히 귀찮아서 그냥 문자로 알려 줬으면 싶지만, 그래도 중요 참고인이니 대우해 주는 거다.
부웅-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기만 해 봐라.’
.
.
.
끼익-
서초구의 한 고급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민수진은 그 와중에도 이런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납치될 뻔했으면서 호텔이라니.
호텔리어들이 있으니 쉽게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한다 해도 안일한 결정이었다.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JC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602호 방문입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확인 절차를 거쳐 민수진이 묵는 객실로 올라갔다.
쿵쿵쿵.
객실 문을 두드리자,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민수진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초인종은 안 보이니?”
“열기나 해.”
“교양 없긴.”
나는 민수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탁.
자연스럽게 미니바에서 물 한 잔을 꺼내서 마시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바빠? 항상 본론부터 들어가더라.”
“항상 바쁘니까.”
“하…….”
민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음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주혁아.”
“뭐가.”
저벅.
나는 들려선 안 될 발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넌 뭔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거지?”
그 말처럼, 화장실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가죽 재킷을 입은 놈이 입을 열었다.
“이주혁. 난 너와 민수진을 해칠 의사가 없다.”
“어쩌지? 난 널 해칠 의사가 있는데.”
휘익!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재떨이를 놈에게 던졌다.
콰직!
그리고 고개를 틀어 피한 놈을 향해 달려가 발차기를 날렸다.
퍽-!
“큭. 잠깐!”
“잠깐은 지랄!”
품 안에 있던 삼단봉을 꺼냈다.
촤라락!
화장실 안으로 밀려난 놈을 향해 삼단봉을 내리쳤다.
하지만 놈의 대응은 빨랐다.
촤락!
이놈도 나와 마찬가지로 품에서 뭔가를 꺼내 펼쳐 막았다.
칵!
꺼낸 것은 삼단 톤파였다.
수직으로 긴 막대에 손잡이가 달린 무기.
“이러지 말지 그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삼단봉을 휘둘렀다.
딱! 따악!
“큭!”
놈은 톤파를 꽤나 잘 다뤘다.
톤파 잘 쓰는 놈들은 하나같이 까다롭다.
방어도 용이하고, 원심력을 이용해 날아오는 공격도 체중이 실려 맞으면 뼈가 쉽게 부러진다.
콰득!
하지만 톤파는 삼단봉보다 짧지.
콱! 콱! 콱!
놈이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삼단봉을 연속으로 마구 내리쳤다.
참고로 화장실 가구는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놈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톤파를 돌리다 수도꼭지를 날려 먹었다.
탱!
“그걸 부수면 어떡해!”
“네가 다짜고짜 공격했잖아, 이 미친놈아! 그만하라고!”
놈의 간절한 외침에 잠시 멈췄다.
“내가 왜?”
“난 싸울 생각이 없다니까?”
“사람을 협박해서 날 유인해 놓고 싸울 생각이 없다? 그런 개소리를 잘도 믿겠다.”
“너와 접촉할 방법이 없었다고! 과격한 방식을 사용한 건 사과하겠다.”
슥.
나는 들고 있던 팔을 슬쩍 내렸다.
“그래? 그럼, 민수진을 협박한 건 용서해 주지.”
“그거참 고맙군.”
“하지만 날 속인 건 용서할 수 없다!”
“이런 미친놈이!”
내가 달려들려고 시늉하자 놈이 당황했다.
“그러니 이름과 소속, 방문 이유를 밝혀라. 안 그러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내 경고에 남자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그래. 사정상 이름은 못 밝히지만, 사장님이 허락했으니 소속은 알려 주지. 나는 호정기획 경호원이다.”
“호정기획?”
기억에 있는 이름이다.
분명 야쿠자 가네무라와 함께 선생과 모임을 가지던 놈이었지.
박광훈. 그놈이 호정기획의 사장일 거다.
“박광훈이 보냈나?”
“그래. 널 만나고 싶다던데.”
“거절한다.”
“뭐?”
“날 만나려면 본인이 직접 오라고 전해라.”
그 말을 들은 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충 상황을 생각해 보니, 아쉬운 건 그쪽인 것 같거든.
“너, 감당할 수 있겠냐?”
“감당 못 할 거 뭐 있어?”
삼단봉을 놈의 머리를 향해 겨누며 입꼬리를 올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아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