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인상을 구길 대로 구겼다.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나한테 말한 건 아니지?”
민지훈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설마 진심인 건가?’
지금까지 꾸준히 서로를 박살 내기 위해 움직였고, 종국엔 나한테 피떡이 되도록 처맞고 수장당할 뻔했다.
그런데도 내 앞에 나타나서 손을 잡자는 제안을 던진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긴 하다.
나는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매듭짓고 물었다.
“제대로 설명해 봐. 손을 잡자는 게 무슨 의미지?”
“생각보단 격하게 반응하지 않는군요.”
“뭐라 지껄이는지 들어나 보려고. 네 모가지는 그 후에 따도 되니까.”
민지훈 이놈이 괜히 나를 찾아왔을 리가 없다.
내가 혹할 만한 뭔가를 들고 있으니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겠지.
“이주혁 씨. DS컴퍼니를 칠 생각이죠?”
확신이 담긴 물음에 그냥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너랑 같은 편을 공격해서 불만이라도 있나?”
“불만이 있을 리가요. 나와 목적이 같은데.”
“뭐?”
절로 미간이 좁아지는 말이었다.
“DS컴퍼니는 내부에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지금 그걸 진행 중이고요.”
“……넌 왜? H라는 놈이 네 목숨을 구해 준 거 아니냐?”
민지훈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그래서, 배은망덕하게 뒤통수를 갈기려는 이유가 뭐야?”
“일전에 제 목표를 말씀드렸죠.”
“…….”
배 안에서 민지훈과 일대일로 마주했을 때, 놈은 나한테 자기 사상을 주절주절 설파했었다.
나쁜 새끼들의 세력이 너무 견고하니, 그 안으로 들어가 수장이 되어 놈들을 통제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듣자마자 미친놈이다 싶었지.
“설마 그것 때문에 DS컴퍼니와 손을 잡은 거다?”
“그렇습니다.”
“그럼 알아서 하면 되지, 굳이 나한테 접근할 필요가 있나?”
“이주혁 씨와 협력하고 싶어서 말이죠.”
“협력?”
“난 머지않아 DS컴퍼니의 실권을 쥐게 될 겁니다.”
하긴, 민지훈 정도로 음흉한 놈이면 쿠데타로 혼란스러운 DS컴퍼니 정도는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반란을 주도한 H와도 깊은 관계에 있으니 더욱 쉽겠지.
“하지만 이주혁 씨는 내부 상황을 알 수가 없죠.”
“뭐 어쩌라고, 그래서.”
“내가 실권을 쥐었는데도 당신이 계속 공격하면 곤란하거든요.”
“상관있나? 어차피 너도 조질 건데.”
박살 내는 김에 민지훈도 같이 보내버리면 편하고 좋지, 뭐.
“DS컴퍼니만 처리하고 끝낼 겁니까?”
“……글쎄.”
“서클에는 다른 조직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들 이주혁 씨를 주목하고 있죠.”
“…….”
“‘선생을 처리한 남자’라고 알려졌으니까요.”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더 기분이 더러웠다.
이러면 다른 놈들과도 엮일 수 있단 소리잖아?
“이주혁 씨가 먼저 공격하지 않더라도, 그쪽은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마음에 들진 않아도,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지?”
“DS컴퍼니가 내 손에 떨어지도록 협력해 주시죠.”
“그게 끝이냐?”
“아, 물론 그 후로는 DS컴퍼니를 건드리지 마세요.”
꿈틀.
당당한 요구에 순간 열이 받았지만, 일단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삼키고 물었다.
“……그 대가는?”
“서클의 다른 조직입니다.”
“고작 정보 넘겨주는 걸로 퉁 칠 생각은 아니지?”
“그럴 리가요.”
민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걸 도와드리죠.”
“어떻게?”
“필요할 때 경호대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자금적 지원도 가능합니다.”
“너무 공수표 던지는 거 아닌가?”
“믿지 못하시겠다면, 내 좌표를 주기적으로 공유하겠습니다.”
이쯤 되자 나도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
여러 의미가 함축된 내 물음에 민지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답했다.
“내 계획에 있어 이주혁 씨는 꼭 필요한 존재니까요.”
“……무슨 소린지는 몰라도, 일단 제안을 받아들이지.”
“잘 선택하셨습니다.”
민지훈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상황이 조금 거북하긴 했지만, 지금으로선 민지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베스트였다.
들은 대로 다른 놈들이 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기도 할뿐더러, 나는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거기다 DS컴퍼니를 굳이 리스크를 져가며 내 손으로 무너뜨릴 것까진 없었다.
‘대신 처리해 주면 나야 땡큐지.’
물론 민지훈이 날 과녁으로 세운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한데,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이놈을 도구로 써먹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도구 놈이 표적에 화살이 꽂히지 않게 도와준다니, 손해는 전혀 아니었다.
민지훈에게 협력하는 이유를 다른 팀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잘 설명하면 납득할 거다. 아마도.
머릿속을 정리한 나는 고개를 들어 민지훈에게 물었다.
“그럼, 용건은 이게 끝이냐?”
“네. 아, 한 가지.”
민지훈이 살짝 그늘이 진 표정으로 말했다.
“……내 동생, 수진이 말입니다.”
“어. 납치하라고 시킨 거, 너지?”
“내가 아닙니다. 그걸 수진이에게 전해 줄 수 있으십니까?”
“아니라고? 아버지도 죽게 하고, 외할아버지도 제거하지 않았냐?”
“수진이는 이런 일과 관계없는 녀석입니다. 이용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난 고개를 틀며 의문을 표했다.
“걔 얼굴 다시 보긴 할 거냐?”
“…….”
“그게 아니면 굳이 오해를 풀 필요 없을 텐데.”
“그것도 맞지만…… 동생에게 해코지하려 한 오빠로 기억되고 싶진 않아서요.”
그래도 가족의 정이 있다는 건가.
“근데 말이야.”
“?”
“민수진은 우리 쪽에서 구출했거든? 그 뒤로 기사 난 것도 없고 말이지.”
나는 입꼬리를 비죽거리며 물었다.
“넌 어떻게 알았냐? 민수진이 너한테 연락할 순 없었을 텐데…….”
“…….”
“진짜 너 아닌 거 맞아?”
내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민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얼굴을 들며 웃음을 흘렸다.
“……하핫.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으시네요.”
“웃어?”
“수진이한테는 비밀로 해 주시죠. 상처받을 겁니다.”
“미친놈.”
드륵-.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 새끼는 내가 진짜 조진다.’
내가 떠나려고 하자 민지훈이 품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탁.
“뭐야?”
“필요하면 여기 있는 번호로 연락하세요. 항상 소지하고 있으니 위치 추적은 개인적으로만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공기관에 협력을 구할 만큼 떳떳한 짓만 하고 다니진 않거든.
내가 괜히 송태석 과장이나 서해결 검사랑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럼, 몸조심하시길.”
저벅.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놈의 목적도 알아냈고, 나한테 이득이 되는 상황도 만들어 냈다.
‘잠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DS컴퍼니를 조지러 미국에 왔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멋대로 어디 쳐들어가기 조금 애매하다.
애들을 이용한 놈들에게 단단히 벼르고 있던 부장님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은데…….
나는 뒤로 살짝 고개를 돌려 민지훈을 불렀다.
“이왕 미국 온 김에 뭐라도 족치고 싶은데, J 그놈은 어때?”
“음.”
민지훈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저울질이 끝났는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경호대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 정돈가?”
“본인도 실력이 있을뿐더러, 무장한 경호원들이 그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부탁 좀 하지.”
“장비도 지원하죠. 장소는 제가 문자로 전달하겠습니다.”
“오케이.”
조져 버릴 놈도 생기고, 공짜 장비도 준다니. 달달하구만.
어차피 자금이든 물자든 꿍쳐 둔 게 많을 거다.
좀 뜯어먹어도 된단 말이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몸을 돌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이용해 주마.’
.
.
.
“……난 아직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조수석에 앉은 부장님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일행은 내가 민지훈의 도움을 받기로 한 이유를 전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적과 협력하는 모양새라 그런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끼익-.
지금 우리는 민지훈이 말한 대로 당장 필요한 장비를 얻어내기 위해 근처의 빈 건물 부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놈도 수틀리고 싶진 않은지 최대한 맞춰 주려 하더라고.
덕분에 질 좋은 물건들을 좀 빼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립시다.”
“여기냐?”
“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쩝.”
탁.
나는 차에서 내리고 앞장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러자 저 멀리서 지프 한 대가 굴러왔다.
부웅-.
부드럽게 멈춰 선 지프에서 마스크를 단단히 올려 쓴 남자들이 내렸다.
“신호 전까지 대기해요.”
경계하는 일행에게 일러두고 앞으로 나섰다.
“물건은?”
마치 거래하러 온 사람처럼 뻔뻔하게 입을 여니, 경호대원으로 보이는 놈 하나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나를 노려봤다.
그에 나도 마주 노려봐 줬다.
“…….”
“…….”
잠시간의 묘한 대치 후, 결국 꼬리를 내린 경호대원들이 지프 뒤에서 척 봐도 묵직해 보이는 더플백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덜그럭.
“여기, 요청한 물건들이다.”
“그래. 수고했다. 가 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놈들의 이마에 혈관이 불쑥 튀어나왔다.
자신의 상관도 아닌 사람이 설치고 있으니 아니꼽겠지.
‘근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차피 저놈들은 아무리 열받아도 나한테 잘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는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더플백을 열었다.
지익-.
가방을 열어 보니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말한 대로 잘 구해 왔네?”
“…….”
내가 요구한 건 이러했다.
기관단총과 권총, 그리고 탄약과 보호 장비.
거기에 탄띠와 고글 등 이것저것 해서 야무지게 장바구니에 담아 넣었다.
물론 1인 1보급으로 말이지.
덜컥. 잘그락.
경호대원들은 내가 히죽거리며 장비를 확인하는 걸 보곤 인상을 구겼다.
“잘 쓸게. 고맙다, 야.”
“…….”
“안부 전해 주고.”
비록 헤어진 지 반나절도 안 되긴 했지만.
툭툭.
나는 녀석들의 어깨를 기분 나쁘게 두드린 뒤 일행을 불렀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며 손을 휘저었다.
“훠이. 빨리 가.”
“이런 개…….”
“참아라. 가자.”
시뻘게진 채 뒤도는 놈을 향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 참을 줄도 좀 알아라.”
내 말과 동시에, 경호대원 한 놈이 다른 녀석을 질질 끌고 가 지프에 태웠다.
‘쯧쯧. 저렇게 도발에 잘 넘어가서야 쓰나.’
부릉-.
지프가 떠나고, 다가온 부장님이 내가 뜯어낸 무장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야. 이걸 진짜 다 줬다고?”
“빌린 거긴 한데, 뭐…….”
나는 다시 돌려주고 싶은데.
혹시 실수로 중간에 분실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잖아?
철컥.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으며 뒤에 서 있던 이로운을 돌아봤다.
얼떨떨한 표정의 녀석에게 웃으며 물었다.
“복수할 준비는 됐어?”
“…….”
내 말에 이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꼬리를 올렸다.
씨익.
“당연하죠.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