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트럭이 과일 상자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는 걸 지켜보던 부장님이 물었다.
“이제 그놈들 잡으러 갈 거냐?”
“그래야죠.”
도망간 대머리 일행은 지금쯤 팀원들이 하나씩 쫓아가 제압하고 있을 거다.
일단 보내 주긴 했어도, 정말로 본진에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빈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아까 두들겨 팬 마약상 둘 중 하나가 눈을 떴다.
“으…….”
“깼네?”
“@#, @#$#.”
“뭐라는 거야?”
“살려 달라는데요?”
사발의 말에 나는 히죽 웃었다.
“어느 조직에서 왔고, 약을 누구랑 거래하는지 싹 다 불라고 해. 대답 잘하면 살려 준다고.”
“아, 예.”
사발에게 심문을 맡겨 놓고 팀원들을 마저 기다렸다.
상대는 대여섯 명 정도였으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 기다리고 있자니 팀원들이 손에 축 늘어진 사람을 들고 하나둘씩 돌아왔다.
“어, 왔냐?”
“그래.”
백기준이 질질 끌고 온 대머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더럽게 무겁네.”
“……야. 뭐 어떻게 잡았길래 애가 이 꼴이냐?”
대머리의 목에는 뭔가 감긴 듯 빨간 선이 남아 있었고, 관절 몇 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 채였다.
“총 들고 있던데. 최대한 멀쩡하게 잡은 거야.”
“네 기준에선 그렇지.”
피거품을 물고 있는 대머리를 발로 들쑤시던 부장님이 말했다.
“근데 주혁아.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할 거냐? 네가 묵는다던 호텔에 데려갈 순 없잖아.”
“음. 사실 얘네를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긴 하죠. 심문할 것도 딱히 없고.”
“뭐?”
그 말에 백기준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현장에서 잡기도 했고, 약도 사진으로 찍어 놨습니다. 돌아가죠.”
“이렇게 그냥 간다고?”
“아, 그렇지.”
스윽.
바닥에 쓰러진 삼합회 놈들을 보며 손짓했다.
“이놈들은 경찰에 넘기고요.”
* * *
그날 저녁.
삼합회 청도지부의 간부, 조추성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오늘 약을 거래하러 갔던 녀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가지고 갔던 트럭만 현장에 덩그러니 있었던 것이다.
불안함에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열어 봤지만, 여전히 부하들의 연락은 없었다.
그 와중에 어제 받았던 문자가 눈에 밟혔다.
[루성이 마약에 손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선택해. 마지막 기회다.]루성의 비리 혐의를 뒤집어쓰고 자수하려던 조추성은 이것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추성은 문자로 누구냐고 물어봤지만, 상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심지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제기랄.’
너무나 큰 불안 요소였기에, 조추성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오늘은 마약 거래를 위해 보낸 부하들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에 빠진 조추성은 미칠 지경이었다.
저벅.
그래서 조추성은 이 문자를 보낼 만한 사람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청도지부의 내부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이런 협박을 할 정도의 원한이 있을 것 같은 사람.
쿵쿵쿵!
한 집 앞에 도착한 조추성이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어이! 조추성이다!”
그러자 안쪽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 보지. 할 얘기가 있다.”
-난 없어.
꿈틀.
조급해진 조추성이 사나운 투로 말했다.
“좋게 말할 때 여는 게 좋을 텐데.”
-…….
그 말에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컥.
조추성은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에 이 집의 주인, 남소영이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더 무례하네.”
“뭐?”
“나 바쁘니까, 용건만 빨리하고 돌아…….”
콱!
그녀의 멱살을 틀어쥔 조추성이 눈을 부릅떴다.
“자꾸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마라.”
“……뭐, 알았어.”
남소영은 핏발이 선 시선을 받으며 눈을 살짝 깔았다.
‘오늘따라 성격 한번 더럽네.’
두 사람은 고향이 같아 나름 가깝게 지냈기에 그의 성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 같은데, 성질을 더 긁었다간 괜히 얻어맞기라도 할 기세였다.
탁.
남소영은 거실 식탁에 자리 잡은 그의 앞에 대충 우린 찻잔을 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찾아온 거야?”
그 물음에 조추성은 차에 손대지 않고 물끄러미 남소영을 쳐다보기만 했다.
“왜 그래?”
“……잠시 핸드폰 좀 줘 봐.”
“뭐라고?”
“확인할 게 있어.”
남소영이 인상을 구겼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잠깐만 보자고.”
“난 네 부하가 아니야. 내 핸드폰을 봐야 할 이유가 뭐…….”
쾅!
조추성이 식탁을 내리치고 일어섰다.
“지금 네 모가지가 누구 덕에 붙어 있는 줄 모르지? 내놔.”
“정말 미쳤니?”
조추성은 끊어지려는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남소영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녀는 이미 밀고자였다.
그러나 과거에 함께했던 일말의 정 때문에 참고 있는 것이었다.
“오지 마. 분명히 말했어.”
“확인만 하고 돌려줄 테니…….”
“그러니까, 내 핸드폰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뿌득.
남소영의 눈빛에 담긴 경멸을 느낀 조추성이 결국 폭발했다.
“X발. 그냥 좀 내놓으라고!!”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던 조추성의 귀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어이. 아저씨.”
“?!”
조추성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뺀질뺀질하게 생긴 젊은 놈 하나가 안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새끼, 너 뭐야?!”
이런 상황을 대비해 남소영의 집에서 그녀를 경호하고 있던 이주혁이었다.
“그러는 너는 뭔데 남소영 씨한테 윽박을 지르고 그러시나.”
이빨을 꽉 깨문 조추성이 남소영을 향해 물었다.
“남소영! 네가 대답해라! 이놈은 뭐지?”
“그게…….”
“조추성. 문자는 잘 받았냐?”
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홱 돌렸다.
“설마 네가……!”
“슬슬 선택해.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니까.”
조추성은 당황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남소영.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남소영도 내심 불안한 게 없지 않았지만, 이주혁의 계획을 들으며 그런 마음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무사는 무슨. 어차피 망할 사람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어?”
“이 망할 년이!”
“거, 입조심 하시고. 조추성.”
두 사람의 사이로 불쑥 들어온 이주혁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오늘 일도 네 짓이냐?”
피식.
그 웃음에 조추성은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거래 장소를 알려 준 건 남소영 저년이겠군. 대체 언제부터 붙어먹은 거지?’
그동안 많이 편의를 봐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니 이가 갈렸다.
그러나 조추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눈앞의 남자에게 덤벼들 수 없었다.
“……이런 짓을 하는 목적이 뭐지?”
“이 동네 삼합회의 몰락.”
“…….”
“난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로 루성을 끝장낼 생각이다. 그 옆에 붙어 있다가 같이 망하는 것보단, 이쪽에 협조하는 게 네 신상에 더 좋지 않겠어?”
조추성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고민했다.
충성심으로 대신 감옥에 가서 죽느냐, 조직을 배신하고 사느냐.
“난…….”
“나 같으면 네 입을 막을 것 같은데.”
“뭐?”
“언제라도 딴소리를 할지 모르는 너를 과연 살려 둘까?”
“개소리. 15년이 넘게 형님을 모셨다. 그런 나를 왜…….”
발끈하던 조추성은 순간 믿음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루성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의미에서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지어 준 이름 대신 추성追成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런 자신을 그가 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추성은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비정한 루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내심 설마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조추성은 그런 본인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듯 칼을 꺼냈다.
“그냥 여기서 너를 처리하면 해결되는 일 아닌가?”
그 말과 동시에 달려드는 그를 보며 남소영이 화들짝 놀랐다.
“위험……!”
빡!
그 순간, 조추성의 턱에 순식간에 주먹이 꽂혔다.
“컥.”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조추성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고개를 드는 그에게 이주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생각해 봐라.”
뻐억!
.
.
.
“헉!”
조추성은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전 있었던 남소영의 집 근처 골목길이었다.
‘기, 기절했던 건가…….’
욱신거리는 얼굴을 매만진 조추성이 담벼락에 손을 짚었다.
남소영의 배신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지만, 그렇다고 다시 저곳으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젠장. 주먹이 보이지도 않았어.’
결국 조추성은 터덜터덜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대로 자수하면 분명 마약 혐의까지 뒤집어쓰고 사형 판결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아까 그놈의 말대로…….
‘아니. 형님이 그럴 리가 없다.’
고개를 저은 조추성은 다른 상황을 가정했다.
‘이대로 돌아가서 남소영의 배신을 알린다고 뭔가 달라지나?’
그럼 조급해진 루성이 남소영을 어떻게든 제거하기 위해 사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놈이 그것도 예상 못 하고 있을까?
“제기랄!”
욕지거리를 뱉은 조추성은 이내 소득 없이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갔다.
* * *
삼합회 청도지부의 관리자, 루성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 있었던 조직원들의 실종 사건을 전해 들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면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다.
“후…….”
안타깝지만 빠른 결단이 필요할 때다.
‘미안하게 됐군.’
한참을 고민하던 루성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저벅.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온 조추성이 품을 뒤적였다.
“후.”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갈 요량으로 불을 붙이는데, 불 꺼진 아지트의 창문에서 뭔가 그림자 같은 것이 일렁거렸다.
“음?”
누가 아직 남아 있나 싶었지만, 할 일 없는 인원은 전부 사라진 녀석들을 찾으라고 보냈기에 여기 있을 사람은 없었다.
“…….”
잠시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조추성은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예. 형님.
“어. 혹시 지금 사무실에 있는 놈 있나?”
-어, 아마 없을 겁니다. 형님 시키신 대로 다 내보냈습니다.
“확실해?”
-예. 다 이 근처에서 없어진 애들 찾고 있는데……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뚝.
조추성은 전화를 끊고 다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이었나.’
이내 고개를 휘휘 저은 조추성이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던 중, 왜인지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라도 딴소리를 할지 모르는 너를 과연 살려 둘까?
꾸욱.
‘젠장. 왜 그런 소리를 해서는…….’
담배를 구겨 던진 조추성은 어쩐지 불안해진 마음에 조심스레 칼을 뽑았다.
뚜벅. 뚜벅.
불이 다 꺼진 사무실 복도를 걸으면서도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혹시 모르는 거니까…….’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
조추성은 자신의 자리에 있는 금고를 열어 모아 둔 금괴 몇 개를 작은 주머니에 담았다.
나중에 챙기지 못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숨겨 두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귀중품을 다 챙긴 그가 자리를 뜨려던 그때.
후욱!
책상 아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괴한이 조추성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까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