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나는 안내인으로 고용한 남소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사업을 말아먹고 여기로 넘어왔을 때, 뭘 하고 살지 막막했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손을 벌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뒷세계 쪽 인간들과 엮이게 됐고.
“내가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몸으로 살아남으려면 뒷배로 뭐라도 있어야 했어.”
그에 이 칭다오시의 암흑가를 관리하는 삼합회와 접촉해 서로 동업자 관계를 맺었단다.
여러 잡다한 일부터 시작해 사업체가 앞으로 나아갈 일까지.
어머니가 중국인이라 소통에도 문제가 없었고, 그녀는 나름 사업에도 재능이 있었다.
중산무역이 지금처럼 성장한 배경에도 남소영이 관여했던 모양이다.
“그때까진 다 잘 될 줄 알았지.”
하지만 남소영은 점점 그들의 행동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적당히 양심에 털이 난 남소영과는 달리, 삼합회는 진짜배기 범죄자들이었으니 그들이 갈라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마약 문제였다고 한다.
“솔직히 잘 먹고 잘살자고 시작한 일인데, 그 일로 감방에 들어가면 본말전도잖아?”
“그렇죠.”
“그래서 그냥 손 털고 나왔어.”
남소영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어 물었다.
“보복은 없었습니까? 그놈들이 가만히 두진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새로 시작한 사업에 장난질을 하더라고. 수익의 절반을 넘겨라, 70%를 넘겨라. 온갖 요구를 다 해 왔어.”
“힘드셨겠군요.”
“나야 뭐, 그놈들이 갑자기 눈이 돌아서 날 죽여 버리면 끝이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 지금도 그것들한테 돈을 뜯기며 살고 있지.”
말을 마친 남소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한테 떳떳하게 얘기할 내용은 아니지만, 네가 중산무역이랑 혹시 이상하게 엮일까 걱정돼서 말해 주는 거야. 정말 악질적인 놈들이거든.”
“말씀하시기 어려웠을 텐데, 감사합니다.”
“아냐. 큰돈까지 받았는데 이런 일을 숨기는 건 좀 그렇지.”
나는 사발처럼 조금 음흉한 성격인 줄 알았지만, 그냥 돈을 조금 밝힐 뿐 나름의 기준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발 놈 지인이라 별 기대 안 했는데, 훨씬 낫네.
“남소영 씨.”
슬슬 본론을 꺼내 볼까.
“그동안 많이 고생하셨겠습니다.”
“솔직히 그렇긴 해.”
“이대로 두면 언제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니 불안하실 테고요.”
“어. 맞아.”
“사실 말입니다. 남소영 씨 사정이랑 제가 여기 온 이유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좀 있거든요?”
“뭐라고?”
“삼합회.”
내가 진짜 목적을 말하자 남소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그쪽이랑 볼일이 조금 있어서요.”
그 말에 남소영이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슬쩍 웃었다.
“추가 놈을 구워삶았다길래 보통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위험한 도련님이었네?”
“하하…….”
도련님이라니. 자꾸 낯부끄러운 소리를.
내가 건조하게 반응하자 남소영이 표정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혹시 놈들이 마약에 손댔다는 증거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건 왜?”
“뭐, 거창한 건 아닙니다. 제가 협박할 일이 좀 있어서요.”
“협박이라고?”
“네. 여기 출신 삼합회 놈들이 제 지인을 건드려서요.”
정말 청도지부장이 이번 일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지훈이 상관없다고 언급했기에 처리해도 상관은 없을 거다.
야쿠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딱 좋은 만만한 먹잇감이기도 하고.
“으음. 물증 같은 걸 가지고 있진 않은데, 거래하는 위치는 대충 알고 있어.”
씨익.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 * *
인적 드문 항구.
“후…….”
턱.
과일이 든 상자를 내려놓은 남자가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군. 큰일이야.”
그러자 그 옆에서 상자를 정리하던 남자가 물었다.
“뭐가?”
“삼합회 놈들 망한 거 못 들었냐? 이제 거기다 팔면 안 된다고.”
“쩝. 그렇긴 하지.”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졌으면, 당국에서도 한 번은 칭다오의 삼합회를 조사할 것이다.
괜히 재수 없는 일이 생기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몸을 빼내는 게 좋을 듯했다.
“마지막으로 팔고 뜨는 게 좋겠어.”
“그러자고.”
타닷.
그렇게 두 사람이 트럭에서 마저 상자를 내리려던 그때.
쩌억!
지금 하고 있던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응?”
밑에서 작업하던 남자가 고개를 들자, 짐칸 위에서 작업하던 동료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마네킹처럼 뒤로 넘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쿠웅!
남자는 동료가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는 걸 보곤 곧바로 몸을 돌렸다.
‘이런 미친!’
본능의 경고대로 바로 도망가려 했지만, 어느새 발소리는 바로 뒤까지 도달해 있었다.
뻐엉!
“크악……!”
남자는 차에 치인 듯한 충격과 함께 붕 떠 날아갔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땅바닥을 보며 몸을 웅크렸다.
쿵! 쿠당탕!
“끄으으…….”
딱딱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니 온몸이 쑤셨다.
게다가 허리가 접혀서 그런지 척추가 부러진 것처럼 아팠다.
남자가 땅에 꿈틀대는 사이, 그를 공격한 이주혁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과일을 꺼냈다.
“이야. 이젠 파인애플이냐?”
그 말에 트럭 뒤에 숨어 있던 사발이 슬쩍 나왔다.
사발은 거품을 문 채 고개가 반쯤 꺾인 채로 바닥에 누운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거기 약이 들어 있는 겁니까?”
꾹. 툭.
파인애플의 껍데기를 잡고 당기자, 일부분이 쑥 빠졌다.
안을 보니 과육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간엔 웬 비닐봉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허, 참. 지랄 났네.”
그걸 본 이주혁이 작은 봉지를 달랑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그대로 머리를 발로 차 버렸다.
“사, 살려……!”
빡!
이주혁과 사발은 그렇게 기절한 남자들을 구석진 곳에 묶어 놓고 옷을 벗겼다.
“어우, 좀 끼네.”
두 사람은 마약상들이 입고 있던 옷으로 갈아입은 뒤,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러고 있자 잠시 후 5톤짜리 트럭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부웅-
과일이 실린 용달 옆으로 다가온 트럭에서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대머리가 대뜸 물었다.
“물건은 준비됐겠지?”
그러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발이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하지요.”
“……못 보던 얼굴인데?”
“하하. 요즘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가, 직접 나서는 걸 좀 꺼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대신 왔습니다.”
“쯧.”
대머리의 남자도 대충 이해는 했다.
중산무역의 마약 수사에 괜히 엮일까 봐 발을 뺀 것이다.
‘고작 그 정도 깜냥이니 약이나 배달하고 있겠지.’
정작 자신의 처지는 자각하지 못하는 그였다.
“물건부터 확인해 보지.”
“예. 그러시죠.”
덥석.
대머리는 사발이 건넨 작은 봉지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봤다.
“음. 돈은 여기 있다.”
“어이쿠.”
가방을 받아 든 사발이 안에 든 금액을 확인하는 척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
“예?”
사발을 불러 세운 대머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거래는 어디서 할 거지?”
“으음. 다음 거래요. 그게 말입니다…….”
난감한 질문이었으나, 이 옷의 주인들이 나눈 대화를 대강 엿들은 덕에 적당히 둘러댈 수 있었다.
“일단 윗선에 물어보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보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백 사장에게 안부 전해 주고.”
그 말에 사발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저 ‘백 사장’이라는 인물을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대답하지 않은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리려던 대머리가 멈칫하더니, 다시 사발을 향해 말했다.
“아, 그때 백 사장한테 했던 제안의 답은? 뭐라던가?”
“으음. 저희는 원래 다른 구역을 담당하던지라, 솔직히 칭다오시에 관한 건 잘 모릅니다. 오늘도 땜빵으로 온 거거든요.”
“그래? 좀 급한 문제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답을 줬으면 좋겠군.”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아. 근데 말야.”
사발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대머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 턱짓했다.
“이봐. 너.”
지목을 받은 이주혁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너도 모르나?”
“…….”
침묵이 흘렀다.
중국어를 모르는 이주혁으로선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정적이 길어지자,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삼합회의 조직원들이 술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발이 불안함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생긴 거에 비해 머리를 좀 쓰는 놈이야.’
이주혁도 마찬가지였다.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가 갑자기 유창해질 순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 목을 좌우로 꺾었다.
뚜둑.
불온한 제스처를 확인한 대머리가 헛웃음을 짓고선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댔다.
“너희들 누구냐? 어디서 왔어?”
그 말에 이주혁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를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중국어를 배워 왔어야 했나.”
“저, 대표님…….”
이주혁은 불안한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발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막 도착했다니까.”
“아!”
대머리는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냐! 어디서 보낸 놈들이……!”
휘릭-!
열을 올리던 대머리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파인애플을 주먹으로 쳐냈다.
퍽!
가시에 찔린 손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X발!”
얼굴이 시뻘게진 대머리가 다시 상대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 자리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어디…….”
대머리는 트럭 아래로 보이는 다리를 확인하곤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것들. 어디 놈들인지는 몰라도, 이런 수작질이 통할 것 같았나?”
사납게 웃으며 다가가던 대머리의 귀에 어렴풋한 소리가 들렸다.
‘음?’
지금 들려서는 절대 안 될, 아주 위험한 소리가 말이다.
애애앵-
“이런 X발!”
기겁한 대머리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흩어져! 흩어져서 도망쳐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약 거래 현장에서 잡히면 끝장이다.
그렇게 삼합회 조직원들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 * *
애앵- 뚝.
사이렌 소리가 멎었다.
“갔나?”
고개를 내밀어 보니, 대머리를 포함한 삼합회 놈들은 진작 내뺀 상태였다.
저 멀리서 다가오던 부장님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야. 효과 죽이는데?”
피식.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시네요. 부장님.”
부장님이 이쪽으로 다가오며 손에 들고 있던 걸 흔들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휴대용 사이렌을 하나 구비해 놨다.
워낙에 뒤가 구린 놈들이라 경찰차 소리만 들려줘도 화들짝 놀랄 것 같았거든.
내 예상은 적중했고, 그 덕에 대낮에 불필요한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
“애들은요?”
“도망간 놈들 추적 중이다. 근데 이건 어떡할 거야?”
과일 상자를 보며 하는 물음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글쎄요. 어디 두기도 애매하고…….”
스윽.
주변을 둘러보자, 외진 곳에 있는 선착장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걸 보다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달칵.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리고 과일 상자로 가득한 트럭의 뒤로 와서 범퍼에 손을 얹었다.
히죽.
“이거, 같이 좀 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