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삼합회 홍콩지부장, 장쉬안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 녀석이 아직도 연락 두절이라니…….’
자신의 양아들이자 충실한 수하, 장룡이 소식이 끊겨 버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보고를 빼먹지 않던 녀석이라 조금 기다려보자 했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인천에 자리한 야쿠자들의 수장인 스가와라.
선생이 요구한 대로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반쯤 성공해 의식이 없다고 들었고, 그래서 장쉬안은 장룡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룡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또 이런 상황에 누군가가 명운제약을 음해하는 일까지 생겼다.
“음?”
그때, 한 가지 의심이 머릿속을 스쳤다.
장룡의 변고와 이번 사태의 시기가 겹친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느낌이 싸했다.
그렇게 장쉬안이 비서를 부르려던 순간, 책상 위에 올려 뒀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수신인은 확인한 장쉬안은 눈을 크게 떴다.
[어르신]“……뭐지?”
갑자기 연락할 때면 항상 좋은 일은 아니었다.
장쉬안은 내심 불안함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예. 어르신.”
그렇게 그는 전화기를 붙잡은 채로 삼합회 수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뚝.
“…….”
잠시 후 통화가 종료되고, 장쉬안은 한참을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쿠자들이 우리에게 이번 일의 대가를 치르길 원한다.’
청도지부의 지부장이자, 자신의 의형제라고 할 수 있는 남자, 루성.
그러나 지금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막대한 보상금을 자신이 부담해서 야쿠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거나.
그게 아니면 루성을 그들에게 제물로 던져 주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군.’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루성은 파멸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정식으로 성명문이 날아오기도 했고, 어르신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으니 말이다.
장쉬안은 루성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의리와 정을 덜어 냈다.
‘애초에 그 야쿠자 놈을 처리하라고 사람을 보낸 건 나였다. 어쩌다가 루성이 이런 상황에 처한 건지는 몰라도…… 나로선 이대로 넘어가는 게 가장 좋다.’
일이 꼬였을 때 어르신에게 추궁당할 각오까지 하고 저지른 일이었으나, 엉뚱한 녀석이 대신 뒤집어써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쁘진 않지만…… 우선 선생에게 연락해 봐야겠군.’
계획이 조금 틀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었다.
달칵.
장쉬안은 옅게 입꼬리를 올리며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 * *
“아, 진짭니까?”
-예.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주혁 씨께는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미우라와의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도망 다니면서 우릴 고생시켰던 그 노숙자 놈, 장룡이 탈출하려다 딱 걸렸단다.
그래서 지키고 있던 애가 회를 쳐 버렸다는데, 상태가 말이 아니라더라고.
사실 이젠 그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긴 하다.
입을 열 놈도 아니고, 데리고 있어 봤자 쓸모도 없다.
‘지금 증요한 건 여기지.’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숨을 들이켰다.
짭짤한 바다 내음과 함께, 도시 특유의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중국에 오는 건 처음이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국.
칭다오靑島시 안에 있는 스난市南구의 한 술집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사발이 칭따오 맥주를 마시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도 중국 애들이랑 거래를 터 봤어도, 본토에 직접 와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래?”
우리는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홀짝이며 간단한 안주를 즐겼다.
바삭한 닭튀김과 해산물 요리를 몇 개 집어 먹으며 사발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언제 온대?”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 모양인데…… 곧 올 겁니다.”
사발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던 그때, 도어벨 소리와 함께 술집의 문이 열렸다.
딸랑-
“어, 왔네요.”
내부를 슥 둘러본 사발의 지인이 이쪽을 확인하고 다가왔다.
그런데 예상한 것과 달리 그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우리 테이블에 앉으며 사발에게 말을 걸었다.
“추가 놈.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는 말이 좀 도와달라는 것밖에 없나?”
“하하. 사정이 있어서…….”
“그래. 어디 무슨 사정인지나 들어 보자.”
나는 사발을 슬쩍 돌아봤다.
중국에 있는 지인이라길래 당연히 중국인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한국어가 유창한 사람이었다.
내 얼굴을 슬쩍 본 그녀가 뭘 궁금해하는지 눈치챈 듯 설명했다.
“중국어가 아니라 놀랐니? 나 한국인이야.”
“아, 실례했습니다.”
“실례는 무슨. 넌 이런 것도 설명 안 해 줬냐?”
그녀는 사발에게 핀잔을 주곤 나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그 손을 맞잡고 미소를 지었다.
“남소영이야.”
“이주혁입니다.”
“그래서.”
남소영이 입꼬리를 슥 올리며 눈썹을 까딱였다.
“잘생긴 청년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
“제가 이 지역에서 볼일이 있는데, 여기 지리나 정세를 잘 몰라서 조언을 구하려고 이렇게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내 설명을 들은 남소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사발을 쳐다봤다.
“난 바쁜 사람이야. 길잡이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도 있었을 텐데.”
“으음. 이게, 비밀을 꼭 지켜줄 만한 사람이 당신 외에는 생각나지 않아서 말이지.”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시길래?”
이쪽을 보며 하는 말에, 나는 옆에 놓여있던 서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보는 눈이 있기에 열진 않았지만, 남소영은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채고 물었다.
“뭐야. 돈 몇 푼 쥐여 준다고 내가 이런 일까지…….”
“만 달러.”
“…….”
“일이 끝나면 4만 달러를 더 드리겠습니다.”
드르륵-!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남소영이 눈웃음을 지으며 공손하게 악수를 요청했다.
“사장님? 이 나라에 계시는 동안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안내만 부탁드릴 생각은 아닙니다.”
“좋아요. 그런데, 사장님.”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어어. 그럴까?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고 조용히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혹시 불법적인 일을 하려고 온 건 아니지? 그러면 나도 도와주기 곤란하거든. 특히 약 문제는 절대 안 돼.”
“그런 불법적인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곳에 있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돼서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 최대한 조용한 루트로 안내해 달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내가 여기서 지낸 것만 5년이야.”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자 뒤로 기댄 남소영이 히죽 웃으며 맥주병을 땄다.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편하게 한잔하는 건 어때?”
“좋죠.”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추가 놈 네가 이런 젊은 사장님이랑 어떻게 알게 된 거냐?”
“어?”
그 물음에 사발이 살짝 당황한 것처럼 내 눈치를 봤다.
노인들한테 사기 치고 다니던 놈을 내가 쫓아가서 두들겨 팬 게 첫 만남이라고는 말하기 조금 그렇긴 하네.
그래서 나는 적당히 포장해서 설명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생겨서 대화를 좀 나눴는데, 마침 제 회사에 자리가 비어서 스카우트했습니다.”
남소영은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사람이라면 사발이 사기 전문가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혹시 내가 호구 잡힌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겠지.
“무슨 회사길래 이놈을 고용했대?”
“경호 회산데, 지금은 잠시 영업 중지 상탭니다.”
“흐음. 그래……?”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발을 보던 남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아주 속이 음흉한 놈이니까.”
“하하. 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추가 놈이랑? 예전에 사업 파트너였어. 한국에서 크게 한탕 해 보려다 망하고 난 중국으로 넘어왔지.”
“아하.”
그럼 이 여자도 사기꾼이었단 소린가?
아니면 사발 이놈이 정상적인 사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그건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
.
.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묵고 있는 호텔 방에서 부장님과 연락했다.
동시에 출국하는 건 괜히 의심을 살 수 있으니, 나와 사발이 도착한 후에 오라고 전달해 둔 상황이었다.
-어. 우리 도착했다. 어디로 가면 되냐?
“일단 애들이랑 제가 묵는 호텔 근처로 오세요. 자세한 주소는 도착하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이번에 나선 인원은 늘 먹던 그 맛으로 준비했다.
부장님을 위시한 SA시큐리티의 팀원들이 머지않아 여기로 올 거다.
그전까지 나는 앞으로의 행선지와 계획을 세워 둬야겠지.
띵-
사발과 함께 필요한 걸 챙기고 로비로 내려오자, 남소영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어?”
“일찍 나오셨네요.”
“고용주보다 늦게 나올 순 없지. 그래서 어디로 안내해 드리면 되는 거야?”
“일단 안내 말고, 지금 남소영 씨가 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까?”
“그건…… 왜?”
내 질문에 남소영이 살짝 당황한 듯 되물었다.
“어제, 제가 여기 온 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랬지.”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조금 곤란하지만, 정확히는 제가 이곳에서 남들 모르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음.”
“그래서 여기서 처리할 일이 조금 필요한데, 혹시 남소영 씨가 진행 중인 사업이 있으면 투자를 좀 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남소영이 갑자기 공손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식품 유통을 소소하게 하고 있긴 한데, 혹시 투자라면 어느 정도를……?”
“제가 약속드린 금액 정도는 해야 중국까지 온 이유가 있겠죠.”
내 말을 들은 남소영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아이고……. 이거, 자리라도 잡아서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 드려야겠네요.”
“그냥 자세한 건 알아서 처리해 주시죠.”
“응?”
씨익.
“남소영 씨가 외부인한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요.”
“…….”
남소영이 살짝 눈가를 떨었다.
“사업에 투자해 준다는 사람한테 숨길 게 뭐가 있겠어.”
“뭐, 숨길 게 있을 거란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관여할 생각도 없고 하니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 그래?”
“네. 투자금은 오늘 오후 중으로
반응을 보니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본데, 괜히 사발 친구가 아니라 이건가?
근데 사실 여기서 누굴 등쳐먹고 있든지 지금 내가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어디부터 갈 생각이야?”
“혹시, 중산무역이라고 알아요?”
그 이름을 들은 남소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거기도 투자할 건 아니지?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안 하는 게 좋아.”
“왜요?”
“비리가 터졌거든. 솔직히 내가 보기엔 완전히 끝장났어. 원래 큰 회사도 아니었고, 삼합회랑도 엮여 있다는 소문이 도는 걸 보면 뒤 구린 것도 진짜겠지.”
음. 소문이 꽤 잘 퍼지고 있는 모양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히 투자하러 온 건 아닙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네.”
“그런데 그, 삼합회랑 관련이 있다는 거에 관해서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으음……. 그게 사실, 소문이 아니거든.”
“그럼?”
“말해도 되나 싶긴 한데, 솔직히 그냥 말할게.”
뭔가 도움이 되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한 질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예전에 그 인간들이랑 잠시 일했던 적이 있어서.”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렸다.
이거, 예상치 못한 행운이 또 따라 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