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다시 돌아온 나를 향해 남소영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네 말대로 정말 올 줄은 몰랐네.”
“그놈은 남소영 씨를 범인으로 의심했을 테니까요.”
내가 놈의 번호를 알아내 보낸 협박 문자.
조추성은 남소영이 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놈이 남소영을 해코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이 조추성의 입을 막으려고 할까?”
“그렇겠죠.”
15년 가까이 조폭들의 실상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겉으로는 의리니 뭐니 하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배신하는 놈들이다.
몇 년 동안 충성을 다한 부하도 실수 몇 번에 숙청하는 주철수는 물론이고, 돈에 눈이 멀어 모시는 보스를 찌르는 놈들도 꽤 많이 봤다.
‘그리고 민지훈도 말했었지.’
청도지부의 루성은 물욕과 명예욕이 큰 인물이라고.
그런 사람이 위험 요소를 남겨둘 리가.
‘자살당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물론 조추성이 내 설득에 넘어가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차피 놈이 아니더라도 루성 놈을 몰락시킬 방법은 많으니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입질이 올 때까지 기다려 봐야죠. 그때까지 투자 얘기나 할까요?”
내 말에 남소영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좋지.”
.
.
.
남소영은 주류를 이 동네 가게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과 수완으로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지만, 과거에 삼합회와 엮인 탓에 그의 절반 이상을 상납금의 형태로 착취당하는 중이었다.
언제 암살자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무시할 순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남소영을 괴롭히던 놈들은 이 사회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그럼 투자금은 일이 다 끝난 후에 드리는 걸로 할게요.”
“정말 고마워.”
남소영은 큰 대가 없이 이런 투자를 해 주는 내가 고마운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실 정보 제공과 비밀 유지의 대가로는 그리 비싼 것도 아니긴 하다.
하지만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이는 남소영의 성품은 잘 알게 되었다.
‘이걸 빌미로 투자금을 좀 더 뜯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과한 가정 아닌가 싶어도, 이 세상엔 생각보다 감사 대신 보따리를 찾는 사람이 많거든.
대체 이런 사람과 사발 그 사기꾼 놈이 어떻게 친해진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바로 물어보자, 남소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거를 다 알고도 그 녀석을 채용하다니, 참 배짱도 좋네.”
“통제할 자신이 있었죠.”
“사실 걔가 원래부터 그렇게 사람들 등쳐먹고 다니던 애는 아니었어.”
처음부터 그런 놈이 어딨나 싶었지만, 일단 잠자코 들었다.
“그럼요?”
“아, 근데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 남이 꺼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그런가요.”
뭐, 나중에 한 번 물어보든가 해야겠네.
어르신들한테 건강식품이나 팔던 놈이, 전생에선 왜 갑자기 강남파에 붙었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돈 때문인가.’
남소영은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다는 듯 대화 주제를 바꿔 가며 이야기를 꺼냈다.
듣기 편한 화법을 구사했기에 나도 지루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렇게 조추성의 것과는 다르게 남소영이 제대로 우린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슬슬 일어나야 할 것 같네요.”
“그래? 아쉽네. 재밌었는데.”
“저도 마찬가집니다. 이 주변에는 직원을 보내 놓을 테니 발 뻗고 주무셔도 됩니다.”
“……10년만 젊었어도…….”
“예?”
절레절레.
“아냐. 고맙다고.”
“쉬세요.”
탁.
남소영의 집을 나와 핸드폰을 열었다.
거기엔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백기준 – ㅋㅋㅋㅋ 얘네 진짜 왔네]씨익.
나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 * *
까앙!
“큭!”
뒤통수를 향해 떨어지는 쇠파이프를 겨우 팔을 들어 막았다.
쪼개지는 듯한 고통에 조추성은 팔을 감싸며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X발, 무……!”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려던 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대답이 돌아올 질문이 아니었다.
그 대신 조추성은 다행히도 놓치지 않은 칼을 휘둘렀다.
휙!
그러자 상대가 한 발짝 뒤로 빠졌지만, 이내 뒤편에서 두 사람이 더 나타났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젠장. 막을 줄 알았나.”
조추성은 자신을 두고 시시덕거리는 그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미안하게 됐소. 조 형.”
그동안 몇 년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지내 온, 그의 동료들이었다.
“우리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용서하지 마시오.”
짙은 배신감에 치를 떨던 조추성이 조용히 물었다.
“……형님 지시냐?”
끄덕.
그 말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이런 짓을 할 만큼, 내가 입을 열까 봐 무서우셨대냐?”
“조 형.”
“그렇게 날 못 믿었습니까!!”
최후의 발악으로 덤벼들려던 조추성은,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팔을 툭 떨궜다.
“……가족들을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시오. 확실히 책임져 준다고 했으니.”
“…….”
“그럼 가만히 계시오. 최대한 고통 없이…….”
퍽! 쿵.
쇠파이프를 들어 올리던 남자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왜 그래?”
쓰러진 이를 쳐다보던 남자들이 깜짝 놀랐다.
“이런 미친!”
그의 뒤통수에 웬 칼이 하나 꽂혀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당황하던 남자의 목에 와이어가 감겼다.
지익-
“컥! 끄에…….”
그리고 이내 버둥거리던 그의 팔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축 늘어지는 몸뚱이 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검은 형체가 서서히 일어났다.
남은 이들은 그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난데없이 나타나 두 사람을 순식간에 처리해 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이 장소에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너 뭐야! 어떻게 들어온 거냐?”
그러자 괴한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푹! 푹!
“어억.”
남자는 돌연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양쪽 허벅지에 어느샌가 단검이 박혀 있었다.
“어, 이 씨…….”
괴한이 몇 번 더 움직이자, 남자는 꼭두각시처럼 사지에 칼이 하나씩 박인 채로 휘청대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털썩.
“끄, 아아아…….”
조추성은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다.
직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배신감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누, 누구십니까.”
“…….”
마스크를 쓴 괴한은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란 말입니까?”
“…….”
괴한은 말이 없었다.
그에 조추성은 조심스럽게 한국어로 물었다.
“……앉으면 되는 겁니까.”
“어. 앉아.”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조추성은 오싹한 기분으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저, 혹시…….”
“쉿.”
“아, 예.”
아까 자신을 때렸던 그놈이 보낸 건가 물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조추성은 공손한 자세로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 *
“소감은?”
내 질문을 들은 조추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힘들군.”
“내가 예방주사 놔 준 덕에 좀 덜한 거라고 생각해라.”
“……원하는 게 뭐냐.”
“뭘 거 같은데?”
그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놈의 얼굴이 수심으로 물들었다.
“밀고인가.”
“정답.”
조추성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족이 있다. 분명히 보복당할 거야.”
“내가 보호해 준다면?”
“…….”
“말했잖아. 어차피 루성은 내가 끝장낸다. 가족이라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아직도 고민하는 눈치길래, 백기준을 향해 손짓했다.
“얘네가 가지고 있던 거.”
나는 피가 살짝 묻은 종이를 조추성에게 건넸다.
“한번 읽어 봐. 무슨 내용인지.”
“…….”
스윽.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쳐 든 조추성이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놈의 눈동자가 좌우로 격하게 떨렸다.
“이, 이, 이…… 개 같은…….”
조추성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로 잠시 떨었다.
“뭔데 그래? 중국어를 몰라서.”
“……내 유서.”
“역시.”
“X부럴 새끼…….”
아무래도 충격이 큰 건지 조추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침묵하고 있던 녀석이 말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히죽.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 * *
그 시각, 삼합회 청도지부장 루성의 사무실.
퇴근하지도 못하고 인맥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루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마를 짚었다.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거지?’
조금 전 조추성의 처분을 위해 보냈던 수하들에게서 일이 마무리됐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최근에 약을 사러 갔던 놈들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데 말이다.
‘내가 분명 바로 보고하라고 했을 텐데…….’
혹시라도 실패한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추성 혼자서 그들을 다 처리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조급해하던 루성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우웅-
“……!”
발신인을 본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전화를 받았다.
“……예. 어르신.”
-아직 문제없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루성은 조추성을 생각하며 말했다.
“문제가 된 건 수하가 떠안고 가기로 했습니다. 중산무역은 당분간 운영을 중단해야겠지만…… 수입에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무슨 소리지?
고저 없는 목소리에 루성이 황급히 덧붙였다.
“아, 확실하게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모르는가 보군.
“예?”
-몸이나 숨기게. 자넨 끝났으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길 바라지.
뚝.
그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루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끝났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분명히 대책이 있다고 했을 텐데, 어째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자신이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설마…….”
꾹.
루성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놓인 TV를 틀었다.
그러자 한창 앵커가 열심히 보도 중인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중산무역의 비리를 내부자가 폭로했다는 소식이었다.
“…….”
그걸 본 루성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뉴스에서는 비리뿐만 아니라 중산무역이 실상은 마약을 수출하는 회사였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성은 숨이 가빠 오는 걸 느끼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수갑을 찬 채로 연행되는 남자들의 얼굴이 익숙했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경찰에 붙잡힌 거였나……?’
루성은 내부고발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곤 이를 부득 갈았다.
“조추성, 이 개새끼가……!”
내부의 사정을 알고, 마약을 거래했다는 증거까지 경찰에 넘길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보낸 암살자들에게서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놈의 짓이 분명했다.
격분한 루성은 외투를 걸친 뒤 수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두목.
“조추성 가족, 다 죽여 버려.”
-예? 조 형이 자수하면 돈 챙겨 주라고…….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아, 알겠습니다.
꽈악.
조추성은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일단 도망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탁.
그렇게 루성은 다급하게 뛰어 자신의 차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급한 탓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선, 핸드폰의 배터리부터 빼 놨어야 한다는 걸.